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문득 나를 돌아보다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1. 5. 5. 18:08

한시감상 - 일곱 번째 이야기

문득 나를 돌아보다

2011. 5. 5. (목)

 

여러 해 문전 골목 풀조차 안 베었더니
조각구름 나무 하나 절간과 비슷하여라
오랜 세월 맺힌 마음 다 녹아 사라지고
가슴 속엔 만권의 서책만이 남았노라

門巷年來草不除
片雲孤木似僧居
多生結習消磨盡
只有胸中萬卷書

- 유방선(柳方善 1388~1443)
  <즉사 3수(卽事 三首)>
 《태재집(泰齋集)》(한국문집총간 8집)

[해설]

  송나라의 문장가 장뢰(張耒)는 “만물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목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이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夫物不受變, 則材不成, 人不涉難, 則智不明.]”라고 하였다.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은 이 말의 본보기로 소개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으로, 자신에게 닥친 불우한 운명을 초극하여 학문으로 승화하였다고 할 만하다. 서거정은 <태재집서(泰齋集序)>에서 ‘조정의 문학하는 선비들이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모두 선생에게 나아가 질정하였다.’ 라고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는 권람(權擥), 한명회(韓明澮), 강효문(康孝文), 서거정(徐居正) 등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고 하였다.

  유방선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에서 공부하던 중 가화(家禍)를 당하여 주로 경상도 영천(永川)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궁달(窮達)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운수가 통태(通泰)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태재(泰齋)라고 자호(自號)하고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시로 삭히며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19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는 원주의 법천사(法泉寺) 아래에 거주하게 된다.

  허균은 유방선의 삶을 소재로 하여 <원주법천사 유람기[遊原州法泉寺記]>를 썼다. 현세적 삶의 불우를 정신적으로 극복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문제와 그러고도 남는 인간 삶의 허무를 동시에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 글에 의하면 저자는 베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도토리를 주워 생계를 잇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시는 마흔 어름의 어느 늦은 봄날, 유배지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그간의 회포를 드러낸 작품으로 담담한 필치 가운데 저간의 사정이 은은히 비치고 있다. 여러 시 선집에는 제목이 <회포를 쓰다[書懷]>로 되어 있다. 서거정은 저자의 시를 청신(淸新)하고 아담(雅淡)하며 고고(高古)하고 간결(簡潔)하다고 평하였는데, 이 시 역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풀, 구름, 나무와 같은 시어들이 기본적으로 고담(古淡)한 정서를 자아내는데다가 구절마다 정운(情韻)이 서린 시어들이 미묘한 함축미를 자아낸다. 첫 구의 ‘풀을 베지 않았다’는 것은 은자로서 바깥세상과 교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함께 ‘봄철 창 앞의 생기가 가득한 풀을 베지 않은’ 주돈이(周敦頤)의 의사를 취한 것이기도 하다. 둘째 구절의 편운(片雲)이나 고목(孤木)은 저자 자신의 투영으로,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은자의 거처에 쓰다[題隱者居]>란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생(多生)과 결습(結習)은 불교 문자인데, 다생은 선악의 업(業)을 지으며 육도(六道)를 윤회하는 것을 뜻하고, 결습(結習)은 어떤 사물에 집착하여 생기는 번뇌와 습관을 아울러 이른 말이다. 이 시에서는 소동파의 시에 “번뇌는 점점 사라져 남아 있지 않다.[結習漸消留不住]”라고 한 구절을 변용한 것이다. 저자의 이전 시에 ‘스스로 생을 끊고자 해도 끊기 어렵다[自斷此生難自斷]’라거나 ‘장부의 호기를 이기기 어렵다[丈夫豪氣自難勝]’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간의 내면적 고충을 오랜 세월의 맺힌 마음[多生結習]이라 표현한 것도 이해가 될 것이다.

  마지막 두 구는 특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성취한 자의 자부심과 함께 회한이 서려 있는데, 다만 지(只)자에 봄날의 무상함도 언뜻 묻어 있는 구절이라 여러 번 되뇌게 된다. 호소력 있는 시적 메시지가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내용인데다가 함축적인 시어의 행간에 여향이 감돌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이런 것이 어쩌면 선자(選者)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조선 시대의 이름난 시 선집(詩選集)에 두루 선록된 이유는 아니었을지?

  얼마 전 원주의 법천사지에 가 보았다. 절터 아래편에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에 뜨일 뿐, 인걸이 거처하던 장소는 흔적도 없다. 두보의 시처럼 천추만세에 이름을 남긴다 하더라도 죽은 뒤의 일은 적막하기만 한 것[千秋萬歲名, 寂寞身後事.]이란 말인가! 사위를 두른 춘산의 봄빛은 다정하여 더 무상하고 그 사이로 천고의 바람만이 제 뜻대로 그저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글쓴이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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