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홍길동전』은 그 주제가 혁명이다. 그러나 현실을 개혁하지 못하고 율도국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나라를 건설하는 홍길동의 뒷모습에는 혁명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허균이 배어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런 허균을 데려다가 꼭두각시 왕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려는 새로운 인물로 그려낸다. 많은 이들이 감독의 의도에 공감하는 이유는 ‘광대 광해’ 속에 홍길동의 마음이 오버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허균의 글 가운데는 혁명을 이야기하면서도 혁명을 부정하는 「호민론」이 있다.
1) 반란의 메커니즘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불이나 맹수보다도 두려워할 만한데 윗자리에 있는 자가 업신여기며 길들이고 심하게 다루는 것은 또한 무슨 까닭인가? 성공을 함께 즐기면서 일상에 얽매여서 순순히 법을 받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받는 자는 항민(恒民)이다. 항민은 두려워할 것조차 없다. 가렴주구에 가죽이 벗겨지고 뼛골이 부서지는데도 번 것은 모두 갖다 바친다. 끝없는 요구에 괴로워하고 한숨 쉬며 윗사람을 헐뜯는 자는 원민(怨民)이니 원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백정이나 장사치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몰래 이심을 품고는 천하를 엿보아 시절이 어지러워지면 자신이 바란 것을 이루려는 자는 호민(豪民)이니, 저 호민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만한 존재이다. 호민이 나라의 분열을 엿보고 시절의 어지러움을 틈타서 밭도랑 가운데서 한번 치고 일어나면 저 원민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여서 모의하지 않고도 한목소리를 낸다. 그러면 저 항민도 역시 살 구멍을 찾아서 몽둥이와 낫을 들고 따라 나서 무도한 임금을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학정에 반란은 당연한 일, 그러나 우리나라엔 반란은 없다. 진나라는 진승(陳勝)과 오광(吳廣) 때문에 망했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또한 황건적 때문이며, 당나라가 쇠퇴해지자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기회를 틈타서 마침내 나라를 망치고야 말았다. 이는 모두 백성을 가렴주구 하여 자신만을 배불렸기에 호민이 그 틈을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무릇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보호하라는 것이지, 임금 한 사람이 눈을 부라리며 온갖 욕심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진한 이래로 나라가 망한 것은 당연지사이지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땅은 좁고 사람은 적다. 백성은 잗달고 악착스러워 기절이나 협기가 없다. 따라서 태평한 시대에 대단한 인물이 나서 세상에 쓰이지도 않지만, 난세라고 하여 호민이나 한졸(猂卒)이 나와 백성을 선동하여 국가의 근심이 되는 일도 없으니 이 또한 다행이다.
3) 그래도 지금처럼 하면 조선에도 반란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고려와는 다르다. 고려 때에는 백성에게 세금을 매겨도 한도가 있었다. 논밭을 제외하고는 산이나 강에서 나는 산물은 백성과 함께 나누었고 상인과 장인들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세금이 들어올 것을 헤아려서 쓸 것을 정하여 나라에 비축이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갑자기 전쟁이나 국상(國喪)이 나도 세금을 더 걷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려 말기에 가서는 오히려 나라의 곤궁을 걱정하게 되었다. 조선은 그렇지 않다. 몇 안 되는 가난한 백성을 가지고 중국과 똑같이 예법을 차려서 귀신 섬기고 조상 모신다. 백성의 세금이 국가로 들어오는 것은 겨우 2할이고 나머지는 간사한 무리에게 낭자하게 흩어진다. 또 저축이 없으니 일이 생기면 일 년에 두 번도 세금을 거두는데, 수령은 이때를 빙자하여 빗자루로 쓸듯 싹싹 거두어간다. 백성의 원성은 고려 말보다 높은데도 윗사람들이 편하게 앉아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에 호민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견훤이나 궁예 같은 자가 나와서 몽둥이를 들고 일어나면 저 원망하는 백성이 낫과 가래를 들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천하가 변란에 휩싸이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이 두려운 작금의 형세를 분명하게 알아서 지금까지의 잘못을 고친다면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民之可畏, 有甚於水火虎豹. 在上者, 方且狎馴而虐使之; 抑獨何哉? 夫可與樂成而拘於所常見者, 循循然奉法役於上者, 恒民也. 恒民, 不足畏也. 厲取之而剝膚椎髓, 竭其廬入地出, 以供無窮之求, 愁嘆吐嗟, 咎其上者, 怨民也. 怨民, 不必畏也. 潛蹤屠販之中, 陰畜異心, 僻倪天地間, 乘時之有故, 欲售其願者, 豪民也. 夫豪民者, 大可畏也. 豪民, 伺國之釁, 覘事機之可乘, 奮臂一呼於壟畝之上. 則彼怨民者, 聞聲而集, 不謀而同唱. 彼恒民者, 亦求其所以生, 不得不鋤耰棘矜往從之, 以誅无道也. 秦之亡也, 以勝廣; 而漢氏之亂, 亦因黃巾; 唐之衰, 而王仙芝黃巢乘之, 卒以此亡人國而後已. 是皆厲民自養之咎, 而豪民得以乘其隙也. 夫天之立司牧, 爲養民也. 非欲使一人, 恣睢於上, 以逞溪壑之慾矣. 彼秦漢以下之禍, 宜矣! 非不幸也. 今我國不然, 地陿阨而人少. 民且呰窳齷齪, 无奇節俠氣. 故平居, 雖無鉅人雋才出爲世用; 臨亂, 亦无有豪民悍卒倡亂首爲國患者, 其亦幸也. 雖然, 今之時, 與王氏時, 不同也. 前朝, 賦於民有限, 而山澤之利與民共之, 通商而惠工, 又能量入爲出, 使國有餘儲, 卒有大兵大喪, 不加其賦. 及其季也, 猶患其三空焉. 我則不然. 以區區之民, 其事神奉上之節, 與中國等. 而民之出賦五分, 則利歸公家者, 纔一分, 其餘狼戾於姦私焉. 且府無餘儲, 有事則一年或再賦, 而守宰之憑以箕斂, 亦罔有紀極. 故民之愁怨, 有甚於王氏之季. 上之人, 恬不知畏. 以我國無豪民也. 不幸而如甄萱弓裔者出, 奮其白挺, 則愁怨之民, 安保其不往從: 而蘄梁六合之變, 可跼足須也. 爲民牧者, 灼知可畏之形, 與更其弦轍, 則猶可及已. - 허균 (許筠, 1569~1618), 「호민론(豪民論)」,『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권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