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익히 알다시피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창밖의 빗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지 못하며, 여름날 고요한 밤하늘의 달빛을 응시하지 못하고, 새벽녘 홀로 일어나 앉아 방안의 침묵을 뭉클하게 보듬어 안지 못할 때, 아마 우리는 병든 것일 겁니다. 그 병명은 ‘매임’이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입버릇처럼 “무언가에 매여 있노라”고 말하는 그 ‘매임’. 그리고 입버릇처럼 하는 그 말의 앞뒤로 우리는 무수한 탄식과 희생, 포기와 눈물, 그리고 보류를 은닉하고 있습니다. 문득문득 우리는 이 매임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지 않습니까?
유몽인은 같은 글에서 말합니다.
“천하의 사물은 맺음이 있으면 반드시 풂이 있다. 띠는 송곳, 머리는 빗, 병은 약, 구름은 바람, 근심은 술, 적진은 장군, 귀신은 주문 등 맺은 것으로 인하여 풀지 않음이 없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다. 포승줄로 묶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붙잡아매고 있는 듯하다. 단단히 구속되어 스스로 풀질 못한다. 유독 어째서인가?”
아마 우리는 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그 답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요? 대상과 경계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대상과 경계를 오인할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허상을 진짜라고 확신하겠지요. 개인의 허상은 개인을, 집단의 허상은 집단을 묶을 것입니다. 우리는 답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에 허상에 그리도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유몽인은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말합니다.
“지금 묶지 않았는데도 묶여 있고 풀려나야 마땅한데도 풀려나지 못한 지 20년째. 무엇이 묶었는지 따져보니 밧줄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일 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벗어나고자 한다면 나를 붙잡아 맨 자를 찾으면 그뿐입니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용기를 내어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운 채 고요히 대면해 봄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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