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전원으로 돌아가리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7. 25. 11:03

- 예순다섯 번째 이야기
2013년 7월 25일 (목)
전원으로 돌아가리

아침저녁 온종일 너무도 바빠
먼지 속에 잠시도 쉬지 못하네
청산에는 기쁜 일 많을 터이니
돌아가서 띠풀을 베어보련다

朝暮一何忙
塵中不蹔歇
靑山樂事多
歸去茅將伐

- 정탁(鄭琢, 1526~1605)
「귀전원(歸田園)」
『약포집(藥圃集)』
 


  이 시는 33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에 대사성, 대사헌, 이조 판서, 병조 판서, 예조 판서, 우의정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가, 74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은퇴하고 고향 예천으로 돌아간 정탁의 시이다. 전체 3수 중 두 번째 시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전원으로 돌아가고픈 소망을 간절히 그리고 있다. 관직 생활에 분주했던 그의 행력을 살펴볼 때에 전원으로 돌아가 한가로이 지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일면 이해가 될 듯도 하다. 그 세 번째 시도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러나 나아가길 구하지 않으니         退潛不求進
세인들 물정 모른다 말들을 하네        世人或曰迂
이 마음 어디고 매인 데 없으니          此心無係累
영욕의 마음이야 본래 없다네            榮辱本來無

  출세를 지향하는 세속에서, 물러난 후 다시 나아가기를 추구하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말이 많았나 보다. 그러나 시인은 영욕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의지에는 변함이 없고, 청산을 즐길 뿐이다. 옛날 벼슬한 관인들은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전원의 한가로운 생활을 노래한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진정한 바람 속에 모든 관직을 거절하는 경우일 때도 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그저 욕심 없는 마음을 보이기 위한 구호에 불과할 때도 하다. 「귀전원(歸田園)」의 전통은 중국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귀전원거(歸田園居)」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며, 현대로 내려와서는 전원주택 생활과 귀농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쁜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한 전원생활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삶이었을까? 농가 생활을 노래한 또 하나의 갈래는 「상전가(傷田家)」 전통일 것이다. 당(唐)나라의 섭이중(聶夷中)은 “이월에 새 고치실을 팔고, 오월에 새 곡식을 판다네. 눈앞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겠지만, 심장의 살점을 도려내는 것이라네.……[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醫得眼前瘡 剜却心頭肉……]”라고 하였다. 2월에 이미 여름에 생산할 고치실을 저당 잡혀 돈을 꾸고, 5월에는 또 가을 곡식을 먼저 저당 잡혀 돈을 꾸고 있으니, 정작 수확을 했을 때에는 내가 가질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미리 돈을 꾸고 있지만, 결국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장을 도려내는 삶의 파탄뿐이다. 결과를 모르지는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또 현실이다. 그 옛날 수많은 백성은 어떤 노래가 가슴에 와 닿았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은 전원에서의 한가한 삶을 꿈꾸고 있다. 지역마다 전원주택 단지도 생겨나고, 수많은 귀농 프로그램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은퇴 이후의 전원생활을 위하여, 혹은 전원생활을 동경하며 열심히 주말농장을 경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지, 오이, 고추, 토마토 등이 한창 열리고 있다. 그러나 바쁘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바쁘기만 하고 바쁜 만큼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농사에 나와 가족의 생계를 모두 걸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이 시대에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귀농하여 올해 처음 고추농사를 짓기 시작한 오랜 친구가 생각난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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