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 대신 ‘사상’ 도입한 독창성으로 역사상 처음 동아시아 의학체계 흔들다 임상경험으로 사람유형 나눴지만 ‘수양’에서 궁극의 치료법 찾은 유학·의학이 만나 피운 찬란한 불꽃
» 황석영 에 등장하는 유비·관우·장비·공명의 인물도(왼쪽에서부터). 삼국지의 이 주인공들은 태음(유비)·태양(관우)·소양(장비)·소음(공명)의 성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지은이는 사상체질의 한 사례로서 이들의 인성적 특질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창비 <삼국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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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속 사상/(17) 이제마의 사상의학
1939년 <조선명인전>의 출간은 이제마(1837~1900)가 일부 한의학계의
울타리를 넘어 조선의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우뚝 서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한국의 역사에서 걸출한 위인 98명을 선정했는데, 이제마는 을지문덕, 세종대왕, 이순신, 장영실 등과 함께 당당한 1인으로 등재됐다. 개항 이후의 인물로는 그가 유일했으며, 의학분야의 인물로는
그 외에 허준이 있었을 뿐이다.
사후 50년도 채 되지 않아 이런 평가를 받은 인물은 그다지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책 이후 이제마는 홍이섭의 <조선과학사>,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등의 책에서 한국과학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런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조선명인 꼽힌 과학사 중요인물
<조선명인전>에서 이제마의 전기를 쓴 인물은 이능화였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 <조선무속고>, <조선해어화사> 등의 저작으로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국학자로 평가받고 있었다. 이능화는 이제마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다. 이제마가 고향 함흥을 떠나 서울에 머물 때 그의 집에 머물면서 사상의학을 연구했다. 이 때 이제마는 그에게 자신은 사상인 가운데 태양인이라 했으며, 이능화를 소양인으로 판정하면서 그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이렇듯 이제마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능화는 매우 상세하게, 또 흥미롭게 그의 의술과 학문세계를 서술했다. 이능화는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그 이치가 지극히 묘하고 그 효력이 신과 같아 가히 전 사람들이 발명치 못한 바를 발명한 것”이라 칭송했다.
동아시아에서 한의학이 탄생한 뒤 수많은 학설이 나왔지만,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그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의 독창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잠시 우리가 한의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의학체제의 특성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시술돼온 한의학은 기본적으로 인체와 자연의 ‘기’를 중심으로 한 의학체계다. 그 기의 운용은 음기와 양기로 나뉘어 파악되며, 목·화·토·금·수 등 오행으로 일컬어지는 기의 상태로 전변되는 것을 가정한다. 이른바 음양오행의 의학이다. 한의학은 이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하여 몸의 상태를 다루는 생리학, 병을 다루는 병리학, 병을 알아내는 진단학, 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학, 약물을 다루는 약리학 등을 발전시켜왔다. 대체로 동아시아 의학체계를 수놓은 수많은 학설과 논쟁은 대체로 이 음양오행 개념을 그대로 인정하는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마는 동아시아 의학 역사상 처음으로 오행에 따른 오장육부의 개념을 따르지 않고, 오행 대신에 사상을, 오장육부 대신에 사장사부를 중심으로 한 학설을 내놓았으니, 그 파격성이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보다 더 놀랄 만한 부분이 있다. 환자와 병을 접근해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인식을 바꾼 점이 그것이다. 기존의 동아시아 의학의 일관된 입장은 환자의 병증을 살펴 음양·한열·허실·표리를 따져 병을 고치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환자 개개인의 차이보다는 병증의 유사함과 다름이 우선이 된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사람은 넷의 유형으로 나누면서, 각 유형에 따라 병을 앓는 것이 다르며, 당연히 병을 고쳐가는 방법도 달리해야 한다는 학설을 주장했다. 곧 증상보다 환자의 유형을 앞세운 것이다. 이제마는 비록 증상이 같다 해도 사람의 유형이 다르면 다른 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1만명에 태양인은 10명 이내
물론 고대 한의학을 대표하는 <황제내경>에서도 25가지 인간의 유형을 나눈 바 있지만, 그러한 시도는 이후 동아시아 의학계에서 중요한 학설로 발돋움할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와 달리 이제마는 사상인의 개념을 내놓았고, 그것을 사상사부의 생리학, 병리학, 약물학을 포함하는 정교한 이론체계를 만들어냈다. 이제마는 무수히 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런 의학의 뼈대를 세웠다. 그는 “오늘까지 관찰한 결과 한 고을에 사람 수가 1만이라 하고 대략 논한다면 태음이 5천명이고 소양인이 3천명이고, 소음인이 2천명이며 태양인의 수가 극히 적어서 한 고을에 3~4명 내지 10명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이런 언급은 그가 사상인의 학설을 내놓기 위해 얼마나 넓은 규모에서 관찰했는지를 드러내준다.
이제 사상의학의 개요를 말할 차례다. 사상의학에서는 사람의 유형을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 등 네 가지로 나누며, 각 유형에 따라 간장·비장·폐장·신장 등 네 장부의 허실이 상대적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본다. 그런데, 만일 허한 것이 더욱 허하거나, 실한 것이 더욱 실할 때 병으로 나타난다고 보며, 장부의 소(少)는 실하거나 허한 것을, 장부의 태(太)는 더욱 실하거나 허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폐의 기운이 크고 간의 기운이 작은(肺大肝小) 유형이 태양인이며, 비장의 기운이 크고 신장의 작은 것(脾大腎小)을 소양인이다. 태음인은 간의 기운이 크고 폐의 기운이 작은(肝大肺小) 사람이며, 소음인은 신장의 기운이 크고 비장의 기운이 작은(腎大脾小) 사람을 가리킨다.
타고난 허·실을 바로잡아야
그렇다면 어떻게 사상인을 구별할 수 있을까? 이제마는 자신이 관찰한 바를 토대로 하여 사람의 체형,
성격, 자주 앓는 증상에 따른 사상인 감별법을 제시했다. 일례로 태양인은 체형의 기상이 내민 이마의
기세가 웅장하고 성질은 활발하며 또 과단성이 있고, 제대로 잘 걷지 못하거나 먹으면 토하는 증상에
잘 걸린다는 것이다.
사상의학이 마치 몸의 체질을 감별하는 것인 양 인식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제마는 의학 그 자체보다 도덕과 수양을 더욱 중시했다. 어찌 보면 그는 윤리적인 의학을 세웠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가 말한 사상인은, 심지어 태양인까지 포함해서 모두 완성체가 아니다.
그는 오직 인격적 완성체로서 성인의 존재를 가정했는데, 성인이란 기의 편벽됨이 전혀 없는 인물로
사심에 치우치지 않은 공자와 맹자 같은 존재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런 성인은 거의 없고
단지 기가 치우친 존재인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 사상인은 각각 비루하거나, 천박하거나, 탐욕스럽거나, 게으른 천성을 지녔다. 이런 성질 때문에 병의 증상이 각기 달리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병이 생겼을 때, 그 증상을 바로잡는 것이 급한 처치이기는 하지만, 본래 타고난 그릇된
성질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천성의 단점을 수양하는 것이 궁극적 치료법인 셈이다.
동아시아 의학의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매우 독특한 의학체계이다. 하지만
이런 의학체계가 등장하게 된 토대와 토양은 한의학의 전통과 유학 전통이었다. 이제마는 장중경의
<상한론> 등을 연구하면서 사상인의 실마리를 잡았고, <동의보감>을 통해 동아시아의학 전반의 윤곽을
학습하면서 한의학 전통의 핵심을 이해하는 한편 미진한 부분을 알아냈고, 그것을 사상의학으로 정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대의 유학을 가열차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심오한 철학적 기반을 가진 의학을 창안할 수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이며, 인간의 몸이 어떠한 것이며,
수양을 통해 어떻게 완성되어갈 것인가? 이제마는 이런 의문을
그가 임상에서 겪은 수많은 임상경험과 결합했다. 그 결과물이
사상의학의 정수를 담은 <동의수세보원>(1894년 탈고,
1901년 출간)이다. 이렇게 봤을 때,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미지의 곳에서 불쑥 솟아나온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의학과
유학이라는 양 전통을 젖줄로 탄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남선은 이를 가리켜 “조선의학의 마지막 부분을 찬란하게 빛낸
불꽃”으로 표현했다. 또한 근대 민족주의 시대에 한국의학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기도 했다. .newsdw@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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