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旅軒) 장현광이 늘그막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쓴 글인데, 노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생활 태도에 대해서 네 가지로 말하였다. 그 네 가지는 지나치게 간섭하여 잔소리하지 말고, 잡스러운 일을 줄여 심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잡념을 끊고, 자신의 삶을 천지자연의 이치에 맡겨 지나치게 아등바등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노년기의 삶을 살면서 가져야만 할 올바른 마음가짐과 생활태도가 얼마나 많겠는가. 잡다한 것까지 다 말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많고 많은 가운데에서 위에서 말한 것만 어느 정도 실천하여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 않고, 존경을 받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가 몹시 친애하면서도 존경하는 형님이 한 분 계시다. 지금 연세가 아흔을 훌쩍 넘겨 나와는 나이 차이가 거의 40년이나 나는 형님이시다. 물론 친형님은 아니다. 육촌 형님이다. 형님은 예전에 우리나라의 명문 여대에서 약학을 가르치셨다. 지금은 나의 고향인 충청도의 궁벽한 산골에 살고 계시다.
형님은 시골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형님이 경제력이 없어서 그런 생활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또 자식들이 불효하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형님의 자식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효심도 외려 남들보다 훨씬 더 지극하다. 그런데도 형님은 이렇게 지내신다.
형님은 시골에 계시면서 뒷밭에서 풀을 뽑거나 하실 때 보면, 그야말로 완벽한 시골 농부의 모습이다. 손에는 지팡이가 아닌 삽이나 괭이가 들려있다. 얼굴 모습에는 노년의 노쇠함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웃으실 때 보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형님의 환한 웃음은 주위의 사람들까지 마음이 환해지게 한다. 또한, 나들이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나서면, 시골 농부의 모습에서 멋진 신사로 돌변한다. 하얀 한복이라도 걸쳐 입으면, 그야말로 신선의 풍모다.
내가 시골에 가서 형님을 찾아뵐 때면 거의 밭에 나가 있다. 밭으로 가보면, 풀이 곡식보다 훨씬 더 크게 자라있다. 곡식 줄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수확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다. 나는 안다. 형님이 농사짓는 것이 곡식을 거두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나는 형님에게 타박 아닌 타박을 한다. 이젠 몸을 움직이고 싶으시면 밭에 나가 풀 같은 거 뽑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냇가를 따라 산책이나 하시라고. 형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답하신다. 잡초 속에서 자라나는 곡식들이 보기 좋고, 내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형님은 풀만 뽑고 지내시지는 않는다. 책도 가까이하신다. 젊은 시절 형님의 전공분야인 이공 계통의 책을 접하지는 않고, 인문학 쪽 서적을 가까이하신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우리 역사와 한시 쪽에 관심이 많으시다. 내가 한문을 좀 안다는 이유로, 시골에 내려가 뵐 때마다, 궁금한 것을 묻곤 하신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지적 활동을 하신다.
형님은 또 젊은이들과도 끊임없이 교류하신다. 형님은 대학에 계실 때 약학을 전공하셨으면서도 특이하게 국악에 관심이 많아서 국악반을 이끌기도 하셨다. 지금도 그때의 제자 분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현재 대학에서 국악반에 속해 있는 학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로 인해 형님은 고리타분한 노인네의 생각만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생각도 잘 이해하고 계시다.
형님은 아흔넷의 연세인 지금에도 어디 나들이하실 때에 직접 운전을 하고 나가신다. 물론, 서울 시내와 같이 복잡한 곳에는 혹시라도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서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한가로운 시골 길에서만 하신다. 형님이 이처럼 아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직접 운전을 하고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신체 활동과 지적 활동을 하면서 항상 자신을 가다듬는 생활을 하여서일 것이다.
나는 지금 젊은 시절의 형님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노년의 세월만큼은 형님을 닮은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아직도 형님처럼 밭에 나가 땀을 흘리면서 풀을 뽑을 자신은 없다. 그러나 형님처럼 세속의 명리를 초탈한 채 한가로운 가운데에서 자연을 배우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남들은 다 허연 머리 싫어하지만, 人皆羞白髮 나는 홀로 사심 없어 좋아한다네. 我獨愛無私 늘그막은 의당 오게 마련인 거로, 衰境理宜有 젊은 시절 호시절이 얼마나 되랴. 少年能幾時 젊었을 땐 허물지은 일이 많았고, 舊愆多弱壯 늘그막엔 새로 얻은 것이 있다네. 新得在衰遲 깨끗하긴 가을 서리 빛을 닮았고, 皎潔秋霜色 고상하긴 늙은 학의 자태 닮았네. 淸高老鶴姿 술잔 들자 흰 비단이 쳐진듯하고, 臨杯疑散練 거울 보니 하얀 실이 드리워지네. 入鏡樣垂絲 백발 본디 날 따르는 물건이거늘, 自是相隨物 굳이 뽑아버릴 필요 뭐가 있으랴. 何須鑷去爲
병자호란 때 김상헌과 함께 척화(斥和)하다가 청나라와의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며 자결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고서, 경남 거창으로 낙향하여 은거해 지내었던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지은 「백발(白髮)」이란 제목의 시이다.
봄이면 돋아나고, 여름이면 생장하고, 가을이면 결실을 맺고, 겨울이면 사라져 가는 것, 이것이 천지자연의 이치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천지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쇠하고, 사라져간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삶의 과정에서 벗어나려고 지나치게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과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의 노년기라고 해서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뜨는 태양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듯이, 저녁에 지는 해에도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년기에도 젊은 시절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검은 머리의 동안(童顔)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허연 머리의 주름진 얼굴도 그에 못지않게 멋진 것이다. 거기에는 타고난 것이 아닌, 지난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또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나이스 샷을 외친다고 멋진 것이 아니다. 그윽한 눈길로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다.
다만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나 누릴 수가 있지만, 늘그막의 아름다움은 차근차근 준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늘그막을 위하여 신체적 건강과 경제적 여유로움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로움도 준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