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더 늦기 전에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11. 25. 16:31

- 이백스물네 번째 이야기
2013년 11월 21일 (목)
더 늦기 전에
안정됨과 조급함은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니
천양지차로 벌어져서 후회할 일만 남는다네
의당 삼자부를 유념할지어다
흐르는 세월은 봐주지 않는다오

靜躁苟異馳 霄壤終自悔 宜念三字符 流年不相貸
정조구이치 소양종자회 의념삼자부 유년불상대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수재 양준과 공생 홍유손에게 주다[贈楊秀才浚洪貢生裕孫]」
 『점필재집(佔畢齋集)』

 

  
  윗글은 조선 전기의 학자인 점필재 김종직이, 글을 배우러 서울에서 내려온 선비 셋이 돌아갈 때 지어준 시 가운데 들어 있는 구절로서, 시제(詩題)에는 “그들이 돌아갈 때에 그 사모하여 차마 헤어지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보고, 다섯 편의 시(詩)를 써서 노자로 주는 바이다.”라는 소제(小題)가 병기되어 있습니다.

  선현들은, 마음은 예리한 칼날과 사나운 말[馬]과 같아서 제재하기 어려우며, 하늘을 날기도 하고 못[淵]에 빠지기도 하여 유지하기 어렵다고 여기고, 마음을 보존하는 것을 학문의 요체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안정(安靜)된 뒤에야 일을 이룰 수 있고 학문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조급함은 그와 반대로 악덕(惡德) 중의 으뜸이라고 여겨 매우 경계하였습니다.

  삼자부(三字符)는 세 글자의 부절(符節)이라는 뜻으로, 세 글자는 『주역(周易)』「복괘(復卦)」에 나오는 ‘불원복(不遠復)’을 말합니다. 송나라 유학자 주희(朱熹)가 스승인 병산(屛山) 유자휘(劉子翬)에게 도(道)에 들어가는 차제(次第)를 묻자, “나는 『주역』에서 도에 들어가는 문을 얻었다. 이른바 ‘불원복’이라는 것이 나의 삼자부이니, 몸에 항상 차고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대는 힘쓸지어다. [吾于『易』, 得入道之門焉. 所謂‘不遠復’者, 吾之三字符也, 佩服周旋, 罔敢失墜. 汝尙勉哉!]”라고 병산이 답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주역』 「복괘」 초구(初九)에, “머지않아 되돌아올 것이니, 후회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며, 크게 좋고 길할 것이다. [不遠復,無祗悔,元吉。]”라고 하였습니다. 과오를 바로 깨닫고 고치면 오히려 수신(修身)하게 되어 환란에서 멀어지고, 반면에 속히 고치지 않으면 돌아올 길을 잃어서 결국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젊은 선비들은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선택의 폭도 넓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세월은 한정이 있는 만큼, 자칫 정반대의 길로 걷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멀어져서 결국은 엄청난 차이를 초래함은 물론이고 회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점필재는 이 점을 염려하여 후배들이 잘못된 길임을 알게 되면 즉시 되돌아서 제 길을 찾기를 당부한 것입니다.

  ‘불원복’장(章)을 풀이하면서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학문에 뜻을 둔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지금까지 성취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 이유를 깊이 추구해 보면 실로 이 두 가지 병통-불선(不善)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즉시 고치지 못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저 천하의 큰 병통을 내가 지니고 있었으니, 성취한 것이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고치지 않는 병통이 가장 심하기에, 나의 방에 ‘불복(不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음속으로 또 다짐하였으니, 지금부터 선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그 즉시로 분연히 일어나서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결연히 떨쳐버리리라.

  한 해를 갈무리하는 지금, 옛 선비의 자성(自省)하는 글을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듯합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