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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 수사(別件搜査)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11. 20. 18:46

- 이백아흔다섯 번째 이야기
2013년 11월 4일 (월)
별건 수사(別件搜査)
  최근에 우리나라 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검찰 조직 전체가 한바탕 큰 홍역을 치렀다. 총수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파장이 조직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자주 보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평소 정치나 사회 현상에 무관심했던 일반인들까지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개운치 않은 수사 용어 하나가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하였다. 바로 별건 수사라는 말이다. 별건 수사란 피의자의 특정한 범죄혐의를 밝혀내기 위해 그와는 관련 없는 사안을 수집, 조사해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수사방식을 말한다. 이 방식은 약점을 잡힌 피의자가 그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순순히 협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외로 수월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허위자백을 유도하는 등 악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다.

  현대 형사법에서는 ‘열 사람의 도둑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 수도 있는 별건 수사라는 방식을 검찰, 경찰이 수사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놀랍다.

  고어(古語)에 이르기를, “땅에 금을 그어놓고 감옥이라고 해도,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감옥 속에서는 하루가 한 해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손에는 쇠고랑을 채우고 발에는 차꼬를 채우는 등 감금(勘禁)이 매우 견고하기 때문에 몸이 가려워도 긁을 수 없고 얼굴이 더러워도 씻을 수 없으며, 음식도 제때에 먹지 못하고 배고픔과 목마름이 번갈아 공격하여 모든 행위가 모두 자유스럽지 못하므로, 극도로 괴로운 것이 마치 뜨거운 물이나 불길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한 달을 보내는 것이 한 해와 같은 것입니다. 만약 제날짜에 판결을 내리지 않고 시일을 끈다면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또 인심이 어지러워 쟁송(爭訟)이 날로 많아지니, 한 사람의 옥사에 연루되는 자는 수십 명입니다. 양쪽에서 만들어내는 말이 교묘하기 짝이 없어 흰 것을 검은 것으로 만들고 빈 것을 찬 것으로 만들어 송사를 맡은 자로 하여금 현혹되어 어떻게 단서를 잡아내야 할지 모르게 만듭니다. 만약 총명하고 과감한 자가 아니라면, 장차 말을 듣고 모습을 살펴서 숨긴 것을 적발해 내어, 그들로 하여금 실정을 다 고하고 죄를 자복하여 억울함을 펼 수 있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개 작게는 채찍질과 몽둥이질에서부터 참수하는 형벌의 경우까지, 끊어진 것은 다시 이을 수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한 번 잘못 판단한 것이 있으면, 후회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그만이고, 고아와 과부는 원통함을 머금고 하늘을 우러러 가슴을 칠 따름입니다.
  이제 수십 일 동안 이어진 가뭄 때문에 하교를 내려 직언을 구하셨는데, 신이 반복해서 생각해 보아도 위로는 잘못된 정사가 없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이 없어서 가뭄을 부를 만한 단서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타는 듯한 재해가 이처럼 심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어찌 잘못이 없는데 무단히 일어난 것이겠습니까? 참으로 보잘것없는 신이 잘못 형조의 장관을 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보좌하는 참모가 있어서 서로 논의를 하더라도 가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신의 결정이 필요합니다. 신이 노쇠하고 병이 들어 혼망한 것은 위에서 아뢴 바와 같거니와, 판결해야 할 즈음에 경중이 전도되어 억울함을 끼친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에 한 여인의 죽음으로 인해 3년 동안 가뭄이 들었을 정도이니, 하물며 한 사람에 그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을 파직하시고 다시 밝고 미더운 사람을 택하여 형벌을 자세히 살피는 직임을 주소서. 그리하여 위로 하늘의 꾸짖음에 답하여 재해를 복으로 바꾸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古語曰。畫地爲獄。期不入。又曰。囹圄之中。度日如年。以其杻手械足。勘禁甚固。身癢不得搔。面垢不得洗。飮食不時。飢渴交攻。凡百攸爲。皆不自由。困苦之極。如在湯火。所以度月如年也。苟不剋日剖決。延引時月。則豈不冤哉。且人心淆訛。爭訟日繁。一人之獄。連逮數十。兩造之辭。巧詐百端。轉白爲黑。變虛爲實。使聽訟者。眩瞀迷惑。而莫知端倪。苟非聰明剛果者。將不能聽辭稽貌。發摘隱伏。而使之輸情服辜。冤枉得申矣。夫自鞭扑之微。以至殊死之刑。斷者不復續。死者不復生。一有所誤。噬臍莫及。死者已矣。孤兒寡婦。含冤抱痛。仰天搥胸。繼之以血。傷和召災。職此之由。今者。以連旬旱暵。下敎求言。臣反覆思之。上無闕政。下無民瘼。靡有召旱之端。而焚惔之災。至於此極。斯豈無釁而罔作歟。正由微臣謬長刑官。雖有參佐。相與論議。至於可否。必待臣決。臣之衰疾昏妄。如上所陳。聽斷之際。輕重失所。以貽冤屈者。多矣。昔一女之死。三年枯旱。況不止一人乎。伏惟聖上亟罷臣職。更擇明允者。以授詳刑之任。仰答天譴。變災爲福。幸甚。


- 이승소(李承召, 1422~1484), 「사형조판서장(辭刑曹判書狀)」, 『삼탄선생집(三灘先生集)』 권12

  
  조선 초기의 문신인 삼탄(三灘) 이승소가 형조 판서를 사직하며 올린 글이다. 당시 계속되는 혹독한 가뭄의 원인이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해 쌓인 억울한 옥사 때문이라고 하면서, 잘못된 수사로 인해 피의자가 겪을 고초와 재앙적 결과에 대해 절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본문의 ‘한 여인의 죽음으로 인해 3년 동안 가뭄이 들었다.’는 말은 한 사람의 억울함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자주 거론되는 고사이다. 한(漢)나라 때, 동해군(東海郡)에 한 청상과부가 개가(改嫁)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효성스럽게 모셨는데, 시어머니는 자기 때문에 며느리가 개가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자살해 버렸다. 얼마 뒤 그녀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오해한 시누이의 고발로 마침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후로 동해군에는 3년간 심한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통시대에는 자연재해를 인간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하늘의 응징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함이 없도록 옥사를 분명하게 처리하는 것은 선정(善政) 여부를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의 『흠흠신서(欽欽新書)』도 수령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억울한 희생자를 낳는 것을 막게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편찬한 형법서(刑法書)이다.

  명(明)나라 만력(萬曆) 연간의 대도(大盜)인 주국신(朱國臣)이 사형을 당할 때가 되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옥사와 관련한 문초는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개와 아무개를 죽인 사람은 모두 나였다. 당시에 살인범으로 지목되어 죽은 자들은 모두 원통할 것이니,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누가 다시 밝혀 주겠는가.”

  조정이 발칵 뒤집혀 당시 사건을 맡았던 고관들이 모두 큰 처벌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땅에 금을 그어놓고 ‘이것이 감옥이다.’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금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린다.”는 말이나, “감옥에서의 하루는 1년과 맞먹는다.”는 옛말에서 보듯이, 감옥에 구속되는 것은 설사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못 견딜 일일 것이다. 하물며 억울하게 갇힌 경우라면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설사 나중에 사실이 밝혀져서 석방된다고 하더라도, 수사 과정이나 구속 상태에서 느꼈던 모멸감과 공포, 육체적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수사를 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증거를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을 얽어매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별건 수사와 같이 상대의 약점을 잡아 자백을 유도하거나 지나치게 겁을 먹게 만들어 범죄를 자복하게 하게 만든다면 전혀 실제와 다른 엉뚱한 결과를 도출할 확률이 높다.

  명(明)나라 때 구암(九庵) 유명원(劉明元)이 시어사(侍御史)로 지방을 순찰하러 나갔을 때였다. 책상 위에 놓아둔 복숭아 두 개를 쥐가 훔쳐 먹는 것을 보고는, 시험 삼아 급사인 동자를 떠보기 위해 “네 이놈, 어째서 복숭아를 훔쳐갔느냐?”라고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동자가 승복하지 않았는데, 다시 짐짓 화를 내며 “아무래도 벌을 줘야 하겠구나.”라고 윽박지르자, 그 동자가 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이 훔쳤노라고 허위 자백을 하고 다른 복숭아를 들고 왔다. 그 일을 본 유명원은 “천하만사가 다 이렇지 않겠는가.”라고 하면서, 그 길로 벼슬을 버리고 스님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수사하는 경찰이나 검찰, 판결하는 법원이 모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권경열 글쓴이 :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 주요역서
      - 국역 갈암집공역, 민족문화추진회. 1999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