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가 대책(對策)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대책은 주로 과거(科擧)에서 시험관의 질문에 응시자가 답변하는 형식에 많이 쓰였다. 그러나 반드시 과거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관리들이나 유생들도 이런 형식으로 시험하곤 하였다. 또한, 일반인들이 자신의 의론을 펴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하여 짓기도 한다.
제목은 「당국자미(當局者迷)」이고, 그 질문은 이렇다.
“사람들은 항상 일을 담당하는 자는 혼미하다고 하는데, 일을 담당하는 자가 혼미하다면 반드시 일을 담당하지 않은 자라야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무명자는 이 질문에 대해 풍수(風水)를 보는 지관(地官)이나 배를 모는 사공의 예를 들면서, 실제로 일을 담당하는 자가 오히려 더 상황을 명확히 볼 수 있음을 설파하였다. 실제로 그 상황을 극복하거나 처리해나가야 하는 사람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단락되고 있을 때였다. 조정에서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에 대한 교체 여론이 한창일 때, 선조(宣祖)는 말했다.
“곁에서 보는 것과 직접 담당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아무개가 가면 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이 가도 역시 전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속담에, ‘고양이를 쥐로 바꾼다.’고 한 것이 또한 이런 유이다.”
사람들은 원래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기를 좋아한다. 관심을 보이는 것은 좋게 말하면 애정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욕심이 있는 것이다. 장기판에서 훈수를 두는 것은, 하다못해 승자에게 공치사를 듣거나,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국 내내 개입하려 들다가는 자신도 어느새 욕심으로 혼미해진 당국자의 신세가 되어버려, 결국에는 남의 판을 망치고 만다.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이나 조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부 사람들이 충분히 스스로 꾸려갈 역량이 되는데도, 또 내부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외부 관계자들이 마치 제 주머니 물건인 양 오지랖 넓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보다 못한 양반집 며느리가 난전에서 장사라도 해볼라치면, 쌍수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은 항상 가뭄에 콩 나듯 들여다보는 배부른 시숙부나 시고모들이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청빈이 전통인데, 도대체 장사가 웬 말이냐?”
그 집안 식구들의 고생은 안중에도 없고 집안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잘되라고 한 충고라면서 뿌듯해하겠지만, 며느리나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야속하기 짝이 없는 간섭이라고 할 것이다.
자신이 담당자가 아닌 일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동양의 오래된 가르침이다. 『논어(論語)』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不在其位 不謀其政]”
장자(莊子)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요리하는 사람이 주방에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시동이나 축관이 제기를 넘어가서 그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묘책이 샘솟듯 하더라도, 심기가 불편하더라도 때로는 그냥 좀 지켜볼 일이다. 판을 엎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