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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훈수는 판을 망친다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12. 3. 16:25

- 이백아흔아홉 번째 이야기
2013년 12월 2일 (월)
지나친 훈수는 판을 망친다
  당국자미(當局者迷)요, 방관자명(傍觀者明)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수를 더 잘 본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훈수를 두는 사람이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급이 낮은데도 수를 더 잘 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바둑을 두는 당사자는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한 식으로 이해하거나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판단을 흐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판을 이끌어가는 것은 당사자이다. 곁에서 아무리 수를 잘 본다고 해도 그것은 부분적인 한 수일 뿐이지, 전체의 판면에 대한 구상이나 운용하는 능력은 결코 당사자에 비할 수 없다. 실제로 판을 넘겨주고 직접 두어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그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오지랖 넓게 남의 바둑판에 끼어들어 이런저런 훈수를 두다가, 오히려 판을 망치게 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는지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국면을 담당하는 자는 혼미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홀로 “국면을 담당한 뒤라야 혼미하지 않을 수 있으니, 국면을 담당하지 않으면서 국면을 담당한 자가 혼미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혼미한 것이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세상의 일은 바둑판과 같아서 대국을 새로 하게 되면 나중의 대국은 이전의 대국이 아니고, 이쪽 대국은 저쪽 대국이 아닌 것입니다. 일마다 하나의 국면이 있어서, 일이 변하면 국면 역시 변하며, 곳곳에서 하나의 국면을 이루어, 장소가 다르면 국면도 역시 달라집니다. 국면이 비록 천만 가지로 다양하더라도 그것을 담당하는 것은 각각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한 시대의 사람이 한 시대의 일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어서, 인재를 다른 시대에서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경우입니다.(중략)
  대개 국면을 담당한 뒤에야 정세를 살피는 것이 정밀해지고, 변고에 대처하는 것이 기민해져서, 상황에 따라 응수하고 기미를 미리 알아채 착수할 곳을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옆의 사람이 잠깐 들여다보는 것은 간혹 여산(廬山)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지 못하는 우려가 없을 수 없으니, 결국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전자에게 달린 것이고 후자에게 달리지 않은 것입니다.
  비유해 보겠습니다.
  풍수를 보는 경우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형체가 바뀌어 국면이 판연히 달라지게 마련인데, 오직 담당하는 자만이 그 미세한 차이를 살펴서 그 향배(向拜)를 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백 걸음 밖에 있는 자에게 물어본다면, 그르치고 말 것입니다.
  배를 조종하는 경우에는, 바람을 만나면 돛을 펴고, 여울을 만나면 닻줄을 쓰게 마련인데, 이 또한 오직 담당하는 자만이 그 키나 노를 움직여 좌우로 적절하게 운행할 수 있습니다. 만약 물가에 있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다면, 우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국면을 담당하지 않은 사람이 문득 국면을 담당한 사람의 혼미함을 논한다면, 이는 옥(玉)을 조탁(彫琢)하게 하면서 그 기술자를 가르치려고 하고, 글씨를 쓰게 하면서 그 팔꿈치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찌 옳겠습니까?

人皆以爲當局者迷。愚獨曰當局而後不迷。不當局而謂當局迷者是乃迷也。何則。世事如棊局。局而新則後局非前局也。此局非彼局也。事事而有一局。事變而局亦變。處處而成一局。處殊而局亦殊。局雖千萬㨾子。而當之者自有人焉。此所謂一代之人。足了一代之事。而才不借於異代者也。(中略) 蓋惟當局而後。其察勢也精。其處變也敏。隨遇而應手。先幾而審着。自傍人驟觀之。則或不能無疑於不見廬山眞面目。而畢竟辦得事來者。在此而不在彼也。譬如看風水者。移步換形。局面頓異。而惟當之者爲能審其分寸。定其向背。若問諸百步之外則舛矣。操舟船者。遇風而帆。遇灘而纜。亦惟當之者爲能運其柁楫。宜其左右。若詢之上之人則迂矣。今以不當局之人。而輒論當局之迷。則是猶琢玉而敎工。書字而掣肘也。烏乎其可也。


- 윤기(尹愭, 1741~1826), 「당국자미(當局者迷)」,『무명자집문고(無名子集文稿)』 책8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가 대책(對策)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대책은 주로 과거(科擧)에서 시험관의 질문에 응시자가 답변하는 형식에 많이 쓰였다. 그러나 반드시 과거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관리들이나 유생들도 이런 형식으로 시험하곤 하였다. 또한, 일반인들이 자신의 의론을 펴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하여 짓기도 한다.

  제목은 「당국자미(當局者迷)」이고, 그 질문은 이렇다.


“사람들은 항상 일을 담당하는 자는 혼미하다고 하는데, 일을 담당하는 자가 혼미하다면 반드시 일을 담당하지 않은 자라야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무명자는 이 질문에 대해 풍수(風水)를 보는 지관(地官)이나 배를 모는 사공의 예를 들면서, 실제로 일을 담당하는 자가 오히려 더 상황을 명확히 볼 수 있음을 설파하였다. 실제로 그 상황을 극복하거나 처리해나가야 하는 사람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단락되고 있을 때였다. 조정에서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에 대한 교체 여론이 한창일 때, 선조(宣祖)는 말했다.

“곁에서 보는 것과 직접 담당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아무개가 가면 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이 가도 역시 전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속담에, ‘고양이를 쥐로 바꾼다.’고 한 것이 또한 이런 유이다.”

  사람들은 원래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기를 좋아한다. 관심을 보이는 것은 좋게 말하면 애정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욕심이 있는 것이다. 장기판에서 훈수를 두는 것은, 하다못해 승자에게 공치사를 듣거나,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국 내내 개입하려 들다가는 자신도 어느새 욕심으로 혼미해진 당국자의 신세가 되어버려, 결국에는 남의 판을 망치고 만다.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이나 조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부 사람들이 충분히 스스로 꾸려갈 역량이 되는데도, 또 내부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외부 관계자들이 마치 제 주머니 물건인 양 오지랖 넓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보다 못한 양반집 며느리가 난전에서 장사라도 해볼라치면, 쌍수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은 항상 가뭄에 콩 나듯 들여다보는 배부른 시숙부나 시고모들이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청빈이 전통인데, 도대체 장사가 웬 말이냐?”

  그 집안 식구들의 고생은 안중에도 없고 집안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잘되라고 한 충고라면서 뿌듯해하겠지만, 며느리나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야속하기 짝이 없는 간섭이라고 할 것이다.

   자신이 담당자가 아닌 일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동양의 오래된 가르침이다. 『논어(論語)』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不在其位 不謀其政]”

  장자(莊子)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요리하는 사람이 주방에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시동이나 축관이 제기를 넘어가서 그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묘책이 샘솟듯 하더라도, 심기가 불편하더라도 때로는 그냥 좀 지켜볼 일이다. 판을 엎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권경열 글쓴이 :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 주요역서
      - 국역 갈암집공역, 민족문화추진회. 1999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