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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단상(冬至斷想)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3. 12. 10. 16:08

- 삼백 번째 이야기
2013년 12월 9일 (월)
동지 단상(冬至斷想)
  해가 떠서 지나가는 길이 점점 남쪽 산자락에 다가간다. 여름보다 한 뼘은 더 아랫녘으로 내려갔다. 해의 밝기도 점점 옅어진다. 아침마다 서리가 뽀얗게 내리고 자주 안개가 낀다. 응달에는 밤사이 물기가 얼어 생긴 얼음이 아침나절에도 한참 녹지 않는다. 해의 높이가 낮으니 햇빛은 방안 깊숙이 들어오지만 낮아진 햇빛에 비친 산 그림자가 마당까지 들어오고 집 주위에 선 나무 그림자도 길게 져서 나를 둘러싼 공간은 명암이 분명하면서도 빛은 옅어졌다. 겨울이 깊어 가는 게다.

  양력으로 12월, 음력으로는 11월에 들면 동지가 든다! 겨울의 정점이다. 1년 열두 달 삼백예순날이 하루라도 다 의미 없는 날은 없을 터이다. 둥근 고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으랴? 삼백예순날로 돌아가는 나달에 처음과 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준이 없으면 나달에 매듭을 지을 수 없고, 삶의 순환과 주기를 가늠할 수 없다. 한 해의 살이를 어느 것 하나라도 맺고 끊고 새로 이어갈 수 없는 것이다. 해와 달을 의지하여 살아온 삶이라, 영원한 세월을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해가 뜨는 가운데 해가 지나가는 길과 해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 달이 찼다 이지러졌다 하는 모양으로 마디를 삼아 날을 헤아리고 철을 가늠하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감은 하늘에 뜨는 달의 모양으로 헤아리고, 철의 오고 감은 해의 높이로 헤아렸다. 해가 가장 높아졌다 낮아지는 기점과 가장 낮아졌다 높아지는 기점을 기준으로 하지와 동지를 삼는다. 하지는 양의 극점, 동지는 음의 극점. 우주가 운행하는 이치는 끝없는 소장(消長)과 순환과 반복인지라 극점은 곧 전환점이다. 양은 극점에 이르면 다시 줄어들면서 음이 자라고, 음은 극점에 이르면 다시 줄어들면서 양이 자라고.

11월 동지
열두 달 절기에 절일 아닌 날이 없겠지만 홀로 동지를 절일로 삼는 까닭은 양 하나가 처음 생겨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환구단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관측대에 올라가 구름의 모양을 살피고 기록하는 예식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온 나라가 조하(朝賀)를 하고 모두 이 날을 한 해의 머리로 삼는다. 나라에는 종묘와 사직 제사가 있고, 민가에서도 선조의 사당에 제사지낸다. 또 중국 남쪽 지방의 풍속에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역귀를 물리쳤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따라 하여서 절기 음식으로 삼아 조상께 바친다.

十一月冬至.
十二氣日, 無非節日, 獨以冬至爲節日者, 以其爲一陽始生之辰也. 古有圜丘奏樂登臺書雲物之禮, 今者萬國朝賀, 皆以此日爲首. 國有宗廟土祭, 民家亦祭先祠. 又荊楚俗, 至日作豆粥以辟疫鬼, 故我國仍用爲節物奠薦.
 
- 황호 (黃㦿, 1604-1656), 「택당왜인문목(澤堂答倭人問目)」, 『동사록(東槎錄)ㆍ해행총재(海行摠載)』

  
  이 글을 쓴 황호는 본관이 창원(昌原)이고, 자는 자유(子由), 호는 만랑(漫浪)이다. 그의 인물 내력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일찍이 대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였으나 관운은 순탄하지 않았다. 1636년에서 1637년 사이에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부수찬, 교리, 장령, 사간, 대사성,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김자점과 연루되어 쫓겨나기도 하였고, 다시 복귀하여 대사성이 되었으며, 사은사 이시백(李時白)의 부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글로 이름을 떨쳐서 당대 신진 가운데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일컬어졌으며, 오준(吳峻), 안민행(安敏行) 등과 함께 여덟 학사로 불렸다고 한다. 저서에 『만랑집』이 있다. 이 글은 일본에 외교관으로 갔던 사신들의 기록을 모은 『해행총재』에 편집되어 있는 황호의 『동사록』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 관한 일본사람의 물음에 짤막하게 답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1900년대의 뒷자락까지도 전기가 안 들어간 산간벽촌에서는 해가 지면 어둠의 세계였다. 머리 위에까지 올라와서 삼라만상을 태워버릴 기세로 이글거리던 태양도 추분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점점 눈에 띄게 낮아지다가 동지가 가까워지면 낮이 자꾸만 짧아지고 창백해져서 마침내는 끝없는 어둠의 세계로 몰락할 것만 같았다. 여름 한낮 중천에 뜬 태양은 강렬한 빛 무리 한가운데서 거울처럼 투명하더니 깊어가는 겨울에 서쪽으로 지는 해는 불꽃이 사위어가는 장작불처럼 불그스름하게 생명을 잃어갔다. 그러다가 동짓날을 전환점으로 하루하루 햇빛은 살아나고 떠오르는 기세도 드높아진다. 그래서 동지는 태양의 부활제이다.

  기독교인의 축제였던 크리스마스 성탄제가 이제는 온 세계 사람의 축제처럼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물론 기독교의 선교주의에 맞물린 장삿속이 한몫했겠지만 인류의 동지 맞이 계절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고 바로 동지와 이틀 사흘 사이이다. 기독교 문화가 전파되기 이전, 전통사회의 동지축제가 기독교 전파와 함께 크리스마스 성탄축제로 쉽사리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한 해의 시작을 정할 때 태양의 주기를 기준으로 할 수도 있고, 계절의 시작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다. 태양의 주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동지가 설날로 되고, 계절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입춘이 든 달의 첫날이 설날로 된다. 농경문화는 식물의 생장주기를 따라 농사일이 진행되는 과정으로 한 해의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절의 시작인 입춘을 중심으로 한 해의 시작을 정하였다. 그러나 자연의 순환을 중심으로 한다면 태양의 운행에 전환점이 되는 동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리라. 아무튼, 그래서 고려 시대까지 동지를 민간에서는 설날로 삼았다고 하기도 하고, 내가 어릴 때도 우리네 곳에서는 애기설이라고도 하였다.

  동지가 되면 할머니, 어머니는 참으로 진지하고도 정성스레 팥죽을 쑤었다. 찹쌀을 이겨서 손으로 둥글려 새알을 빚고 팥을 삶아서 큰 가마솥에 넣고 팥죽을 쑤었다. 수십 년 오랜 세월을 그분들이 유년 시절부터 동지 때마다 팥죽을 쑤는 걸 보고 팥죽을 먹고 살아와서 습관으로 지켜온 것인지는 몰라도 물에 팥을 담가 건져 일어서 팥죽을 쑤는 과정에는 신앙의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팥죽을 쑤어서 먹고 동지를 기념해야 새로운 한 해가 잘 흘러간다고 믿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나에게도 열 살이 되기 전까지는 작은 새알만 나이 수대로 넣어 주고, 열 살이 지난 뒤로는 열을 나타내는 큰 새알 하나와 작은 새알을 나이 수대로 넣어 주었다. 팥죽을 먹고 새알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어린 나도 팥죽 한 그릇 먹고 나이 한 살 더 먹게 되었다고 꼭 그렇게 믿었다. 찹쌀로 빚은 새알은 끈적끈적 입에 들러붙어 성가셨지만, 달콤하고도 구수한 팥죽은,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아 싱싱한 김치와 곁들여 먹으면, 내 마음속에 동지를 지내고,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벅찬 뿌듯함을 확실하게 새겨 넣었다. 가마솥 하나 가득 쑨 팥죽은 며칠 동안은 마실 온 사람들의 밤참이 되기도 하고 점심을 대충 때우는 땟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먹을거리가 부족하고, 늘 먹는 음식 외에 특별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흔하지 않고, 먹어도 배고프고 군것질거리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팥죽은 시절 음식이라는 의미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훌륭한 별식이었다.

  그래서 팥죽에 관한 갖가지 민담이 생겨났다. 쓸모가 다하여 버림받은 미물들과 늙어서 쭈글쭈글해지고 힘도 없는 팥 농사를 짓는 할머니가 슬기를 모으고 재주를 합하여 호랑이를 물리친다는 팥죽 할머니 이야기는 탐관오리의 횡포에 저항하는 민중의 건강한 저항의식과 함께, 쓸모라는 것이 반드시 한 가지 정해진 측면으로 있는 것은 아니며, 무엇이든 나름의 쓸모가 있다는 슬기도 가르쳐준다. 팥죽이 너무나도 먹고 싶은 어떤 시아버지가 며느리 몰래 한 그릇 훔쳐 외양간에 숨어서 먹으려다 역시 식구들보다 먼저 한 그릇 먹으려고 팥죽을 퍼온 며느리와 맞닥뜨리자 엉겁결에 팥죽 그릇을 뒤집어쓰고서는 팥죽 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시부모와 자식세대의 동거와 갈등, 먹을거리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신산(辛酸)한 삶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를 엮어가는 매개로 등장하는 팥죽은 묵은해와 새해를 보내고 맞는 전환기를 신성하게 축성하는 벽사(辟邪)의 의미와 함께 세대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이에 걸맞게 슬기로워져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동지섣달 하면 누구나 감회에 젖는다. 한해를 돌아보고, 살날이 점점 줄어듦을 아쉬워하여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그리하여 우리 전통사회에는 동지를 소재나 제재로 한 시가 참 많았다. 동지는 『주역』의 괘로는 복괘(復卦)에 해당한다. 열두 달을 괘에 배당하면, 음과 양이 서로 소장(消長)하는 관계로 나타낼 수 있다. 음력 11월 동짓달은 여섯 효가 모두 음으로 순음괘이며 10월을 나타내는 곤괘(坤卦) 다음으로 양효가 맨 밑에서 처음 생겨나는 복괘로 나타낸다. 복(復)이란 회복한다는 뜻이다. 곧 음의 세력이 사라지고 양의 세력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복괘에서는 영원히 순환하는 자연 질서의 의미[天地之心]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어느 한 힘이 영원무궁하지 않고 늘 상대되는 힘과 갈등하고 길항하고 모순대립하고 조화하는 자연의 운행 의미를 말이다. 그리하여 옛날 지식인은 동짓날이 되면 음과 양이 교차하는 순간에 깨어 있으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그래서 동지를 두고 읊은 시가 유독 많은 것이다.

                                              
  자연에서 소외되어 있는 현대 문명사회의 삶도 문명을 잠시만 벗어나면 바로 혹독한 자연에 노출되어 자연의 힘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문명에서 태어나 문명에서 살아가니 자연의 의미를 점점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여전히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아침이 되면 눈이 뜨이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밥을 먹고, 삭여서 똥을 누고, 오줌을 누고, 하품을 하고, 눈이 감기고, 잠자리에 든다. 이 모든 것은 자연현상이며,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일이다. 몸을 영위하려고 먹는 음식은 문명이고 문화이지만 먹고 삭이고 똥으로 배설하는 과정은 자연이다. 우리의 의식(意識)은 달력을 외면하고 절기를 잃어버려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달력과 계절의 주기를 신식(身識)하고 있다. 동지를 맞이하고 보내면서 우리는 더욱 우리 삶의 근원이요 터전이며 삶의 본질적 원리인 자연의 순환과 질서를 성찰할 일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과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의 지혜를 동지에서 찾을 일이다. 자연에서는 어느 힘이라도 그 힘 하나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자연이 만들어낸, 하늘 아버지와 땅 어머니가 낳아 놓은 삼라만상의 모든 삼탄것들도 다 그러하다.


  

  
김태완 글쓴이 : 김태완
  • (사)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
  • 주요저서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소나무, 2004
    - 『중국철학우화393』 소나무, 2007
    - 『율곡문답,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 역사비평사, 2008
    - 『경연, 왕의 공부』, 역사비평사, 2011
    - 『맹자,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꿈』, 아이세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