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중종 대부터 선조 대 사이에 활동하였던 여항 시인 박계강의 작품입니다. 유재건(劉在建,1793∼1880)의 『이향견문록(異鄕見聞錄)』에 박계강과 관련된 일화가 전하는데, 그의 집안은 부유했으나 교육을 받지 않아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어떤 하인이 그에게 편지를 내 보이며 어디에 전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모른다고 하자니 창피해서 바빠서 볼 시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인이 깔보며 비웃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발분하여 수년 간 글을 읽어 문장 실력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박계강은 당시 명사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잘 짓는다는 명성을 얻었는데, 위의 시는 목계(木溪) 강혼(姜渾,1464~1519)과 함께 남산에 올라 지은 것입니다. 목계가 운을 불러주면서 시를 짓게 하자, 박계강은 그 즉시 시를 지어 입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시인은 남산에 올라 한강을 바라봅니다. 강물은 넘실넘실 흘러가고, 강 건너 산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흐르는 물과 먼 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상쾌해지면서 늘 이렇게 강가에서 자연을 벗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내 당장 먹고 사는 문제로 여유를 찾을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양반으로 태어나 벼슬을 한다면야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괴로움이 덜하겠지만, 여항에서 살아가는 삶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고 재능을 칭찬해 주는 양반들과 가끔 만나 시를 짓는 것을 낙으로 삼지만, 재능이 있어도 뜻을 펴기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 슬프게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 한수산님이 지은 『미지의 새』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하는 말 중에도 이런 심정을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출퇴근이라는 생활…… 그 속에 무언가 진정한 뜻이 남아 있어야 할 게 아냐? 그런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거든. 그저 무의미한 일상사가 있을 뿐이야. 한때는 즐겁기만 했던 그 일상사가 차츰 괴롭게 느껴져. 마음의 어딘가에 흐르지 않는 물이 고여 있는 것 같은……”
박계강도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저마다 자기의 재능에 맞는 일을 하는 세상은 아직도 멀리에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요일마다 표정이 달라지는 그림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감을 사는 것을 보면 먹고사는 일이 즐겁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 올 한 해 고생을 함께한 주변 사람들과 서로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흐르지 않는 물이 고여 있는 것 같던 마음이 서로의 위로를 통해 흐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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