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계의 모든 것
영의 불가사의한 관념
사람들이 만년설(萬年雪)을 이루고 있는 대알프스의 연봉을 한 눈에 바라보거나 아프리카의 대사막이라든가 대삼림 속에 서 있거나 또는 끝없는 바다물만이 이어지는 대양(大洋)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자기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과연 이와 같은 경관(景觀)은 어는 것을 막론하고 정말 장대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러한 경치만은 아니다. 물론 눈으로 본 장대함이라든가 익숙함도 있겠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이상으로 이것을 전부가 영원한 태고로부터 존재하고 또 미래의 영겁에 걸쳐 그 존재를 계속할 것이라는 마음에 느끼는 영원한 시간에 대한 인식 때문이리라.
내가 지금 여기에 든 경관은 전부가 누구의 눈에도 영원한 상(相)으로 비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자기도 영원한 태고로부터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미래도 영원히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감회에 잠기게 된다. 영원한 상(相), 그런데 바꾸어 말한다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시간은 모조리 죽어 없어지고,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느낄 때에 그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 바로 “상”이다.
나는 시간에 대해서 영들과 토론한 일이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 세상에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인간 세계에서의 태양이란 영계의 태양과는 달라 회전이라고 하는 운동을 한다. 인간은 이 회전의 결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하는 계절의 변화를 경험한다. 봄에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의 싹을 돋우고, 여름에는 그 생명이 더욱더 왕성해지고, 가을에는 생명이 열매를 맺으며, 겨울에는 잠든다. 그리고 그 흐름은 항상 같은 차례로 흐르며, 역전하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또 태양은 동쪽 하늘로부터 떠오르고 서쪽 하늘로 지는 것을 하루로 치고, 하루를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어 아침, 낯, 저녁, 밤으로 세분해서 이것을 시간이라고 하고 있다. 인간 세계의 귀중한 척도의 하나가 바로 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들은 때로는 고개를 끄덕여 이해한 표정을 지었지만, 때로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군, 참으로 기묘한 세계도 있군! 그런게 정말 존재할까.” 이런 표정을 짓거나 두통이라도 나는지 이마를 짚기도 했다. 어떤 영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소. 당신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요? 도대체 인간계의 태양이란 무엇이요? 만약 태양이라면 움직일 리가 없을 텐데, 나로서는 당신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소. 다만 당신 말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생명의 상태에도 변화가 있다는 말은 이해가 될 듯 하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오. 내가 느낀 대로 말하자면 당신은 반쯤은 정상이고 반은 미치광이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내 눈앞이 캄캄해진 듯한 생각마저 듭니다.”
앞에서 인간계에도 영원의 상(相)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는 사물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도 이 사실은 쉽게 인정하리라. 이와는 달리 영계의 사물은 모든 것이 영원한 삶을 나타내며 존재하고 있다. 인간계에서 영원한 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알프스산맥이나 대양(大洋), 대사막 등 특수한 것뿐인데 영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한 상속에 있다.
한 포기의 작은 꽃, 한 개의 작은 돌이라도 그것은 태고로부터 영원한 미래를 향해 부동 불변의 것으로 존재하고, 엄연히 영원한 모습을 그 작은 모습 안에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계가 시간이라는 기준을 초월한 시간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영들에게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과 같이 시간이라고 하는 관념도 없다.
나의 말에 대해서 영이 “그런 말은 들은 적이라곤 없소. 내 눈앞이 캄캄해진 것 같소.”하고 말한 것은 그들에게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아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시간적인 관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껏해야 상태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이 점도 앞에서 말한 영의 이야기 가운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생명의 상태에도 변화가 있다는 말은 이해가 될 듯 하오.”라고 한 말로도 알 수가 있다. 상태의 변화라고 하는 넓은 바다 안에서 조수의 간만(干滿)에 따라 상하로 흔들리며 살아가는 영들에게는 이 조수의 간만만이 그들이 살고 있는 표적이므로 “시간”이 생길 수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영들에게 시간관념이 없는 것은 영의 생명이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함께 다음과 같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즉 영계의 태양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항상 천공의 한쪽에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뒤에 공간의 항에서 말하겠지만 영들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멀다는 관념이 생길 리가 없고 따라서 시간의 관념도 생길 여지가 없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영들의 시간의 관념에 관련해서 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여기에 두 사람의 영이 있다고 하자. 인간계적(人間界的)으로 말하면 한 사람이 20세를 조금지난 청년의 얼굴 모습이고 또 한 사람은 60세를 지난 노인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의 영이 늙었다고 생각할 것인가? 이 세상의 표현 방법으로 말하자면 청년은 젊고 노인은 나이를 먹었다고 하겠지만 청년 쪽이 노인 보다 수천 년이나 먼저 죽어서 영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년 쪽이 나이가 더 많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영계에서는 시간이 없고 따라서 연령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인간으로서 죽은 얼굴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 광경은 참으로 으스스한 기분 나쁜 광경이었다.
몇 십만, 몇 백만이라고 하는 영들은 일단이 되어 뒤에 뒤를 이어 어떤 방향으로 전진해간다. 만약 이들 영들에게 인간과 같은 육체가 있었다면 이 행진하는 발자국 소리는 기괴한 소리로 울려 퍼져서 공포를 일으켰을 것이다. 아직도 계속 영들은 꼬리를 이어 전진해 갔다. 그리고 목적지를 삼고 나가는 방향에는 하늘 꼭대기라도 닿을 듯한 높은 산이 서 있었다. 영들의 선두는 이제 그 높은 산의 중턱에 닿으려 하고 있다....... . 그러자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선두의 영들, 즉 높은 산 중턱에 이른 영들의 모습이 갑자기 씻은 듯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자기 눈을 의심하고 한 번쯤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높은 산의 중턱에 이른 영들은 그 앞에 가던 자들과 똑같이 산중턱에 닿기만 하면 잇달아 그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 산에 영들을 집어 삼킬만한 큰 동굴이 그 입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 영들의 집단 행진은 어떤 영의 단체가 영계의 다른 지역으로 자기들 단체의 거주 장소를 옮기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산 중턱에 닿기만 하면 사라지는 영들은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이 이야기의 결론은 보류하고 다른 이야기를 좀 하기로 한다.
어떤 영이 강폭이 무한히 넓은 강가에 앉아서 강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 영원한 태고 때부터 지녀온 모양 그대로 조용히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 저쪽 기슭은 너무 멀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이런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 이 강의 서쪽 기슭은 도대체 어디쯤에 있을까? 그 곳엔 무엇이 있을까? 그런 일들을 생각하며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그 자신 속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 안개가 걷혔는가?
그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었던 수면은 조금씩 멀리까지 보이게 되고, 아득한 곳의 물이 흐르는 모양까지도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편 건너 기슭도 보이고 다시 그 앞에 성곽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곽 앞에는 한 사람의 노인인 듯한 영---그 영은 땅에 닿을 정도의 긴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이 서서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윤곽만이 보일 뿐, 눈과 코도 없고 물론 표정 같은 것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 저 영은 누굴까? 만나보고 싶은데!
다음순간 그는 무한한 강폭이라고 생각했던 이 강을 건너 그 노인인 듯한 영의 눈앞에 서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영계는 광대무변하다. 이 세상에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몇 백만 년 동안이나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죽어서 영계로 돌아온 영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보면 가히 그 넓이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면 이 광대무변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영들이 그 공간에 대하여 어떠한 관념을 갖고 있는가 하는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 말해 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그토록 광대무변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공간이라는 관념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 영계에 사는 영의 입장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어디에나 순식간에 자기가 마음먹은 곳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이점은 강가에 서 있었던 영의 경우로 미루어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리라고 믿는다. 그가 노인의 영 앞에 서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노인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단숨에 무한한 거리를 날아 노인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그들은 스스로가 희망하기만 한다면 견고한 바위이건 산이건 또는 벽이건 수목이건 무엇이고 간에 자유자재로 통과, 즉 투과(透過)할 수 있는 점이다. 또한 영계의 결혼에 관해 말했던 것처럼 남녀의 영이 한 몸이 되는 것을 보아도 알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주로 이 두 가지 이유로 해서 그들은 공간의 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고 또한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시 같은 이유로 해서 그들은 거리에 대한 관념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리를 느끼는 일이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생각하는 대상물에 대한 욕망이 적을 경우이다.
그 소망이 강력한 것이라면 그들은 순식간에 그 대상물과 같은 위치에 서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영계에 거리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열의의 다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조금 전에 말하던 집단 행진을 하는 영의 단체는 이미 그 높은 산의 중턱을 뚫고 지나서 산너머에 나갔을 것이다.
영계의 언어와 문자
“나는 일찍이 그토록 놀란 적이 없었다. 영계에서는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영계 들어 온지 얼마 안 되는 어느 영이 놀랍다는 말투로 영계의 기이한 언어에 대한 그의 경험을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영계의 언어가 어떤 것인가를 논하는 전제로 삼기로 한다.
그는 다른 영---물론 그 보다 영계의 경험이 풍부한 영이었다.---과 그들이 각기 자기 속해있는 단체와는 다른 단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다고는 하지마는 그는 다만 선배가 되는 영의 말을 듣고 있는 편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방문한 단체의 수는 무척 많다. 그 가운데서 가장 기이하다고 느낀 단체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 나는 그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선배격인 영은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은 것뿐으로도 갑자기 격렬한 충격을 느꼈다.
“...........그 단체는 우리 단체가 있는 곳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었고, 그 단체에 속해 있는 영의 수는 우리 단체보다는 몇 십 배나 더 많았다. 또 비교적 최근에 생긴 단체로서 십만 년 이내의 것이었으며, 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늘에 있는 성운(星雲)처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단체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영은 북유럽에서 시베리아에 걸친, 말하자면 지구의 북반구 지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
쇼크는 무어라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도 없으나, 이러한 얘기 내용이 그에게 즉각 확신을 안겨 준다는 데에 있었다. 선배격인 영은 아직 그 단체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얘기한 적인 없고, 영계의 일에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그런 내용의 일을 상상조차도 할 까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해했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등골이 오싹 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상대편 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대편 영은 그의 심정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분명히 그 단체는 그가 “이미 이해한” 것처럼 남쪽 방향에 있었고, 그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가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영이 또다시 기이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 단체의 영들은 누구나 얼음집에 살고 있었으며, 얼음집은 그 단체가 있는 곳 도처에, 즉 산기슭과 중턱에도 그리고 강가나 들판에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거리를 이루고 얼음집의 추녀가 반듯하게 잇달아 늘어선 곳도 있었다. 게다가 이상스럽게도 이 얼음집의 내부는 말할 것도 없이 산기슭이나 강변이나 들판이나 거리가 모조리 작열하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 뜨거운 열기도 그 단체의 영들에게는 조금도 괴로움을 주지 않는 모양이어서 그들은 모두가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라서 뜨겁다는 것은 이 단체를 방문하는 외부의 영들에게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또 이 단체의 집 주변에 있는 나무나 산과 들에 있는 나무들도 한결같이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하였고, 게다가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어 도저히 나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뿐이랴, 더욱 기묘한 느낌이 든 것은......... .
선배의 영이 이렇게 이야기 하자, 그는 또 한번 강한 쇼크를 받았다. 그의 눈앞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얇은 공기의 막(幕)과 같은 것이 나타나 거기에 여러 가지 광경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 막에는 얼음집이 늘어섰고 기괴한 모양의 나무---그것은 아무리 보아도 수목이라고 볼 수 없는 별세계의 이상한 생물을 연상케 했다---도 비치었다. 그런가 했더니 비쳐진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 단체의 영들은 공중을 자유자제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 기괴한 나무에도 달라붙는가 하면, 이번에는 나무도 또 영들과 마치 친구라도 되듯이 기괴한 모양의 가지를 흡사 사람이 손 놀리 듯 흔들며 장난치고 있었다...... .
영들은 아득히 먼 저 건너로 날아갔다가는 다시 막에서 뛰쳐나와 이쪽에 있는 그를 향해 날아오듯이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이상야릇한 것은 이들 영들이 공간을 날아다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간은 흡사 그것을 비쳐주고 잇는 엷은 막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한 장의 투명한 막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숨 막히는 감동과 두근거리는 가슴 그리고 현기증조차 느끼면서 이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이 광경의 불가사의한 것만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선배의 영이 아직 얘기도 하기 전에 그 얘기의 내용을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눈에 비치는 형상으로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영의 이야기에 속으로 미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계에 와서 아직 경력이 적은 그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실은 이러한 일들은 영계에서는 극히 예사로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대하는 것만으로도 영과 영 사이에는 상념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벌써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인간들에게도 영이 말을 하는 경우에는 보다 더 쉽사리 상념의 교류가 잘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짐작이 갈 것이다.
영계의 말에는 이승에서의 말과 다른 특이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으나, 그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어라 해도 이승 사람들이 수천 마디를 떠벌이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것을 영들은 겨우 몇 마디 아니면 몇 십 마디로 통화가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매우 적은 말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뜻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말을 쓰는 경우일지라도 그 음절(音節)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의 몇 배나 되는 많은 뜻을 표현 할 수가 있고, 또한 자기의 마음에 있는 상념을 음절의 구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에 나타나는 말 이상으로 몇 백배 아니 몇 천 배의 뜻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방금 얘기한 영의 경우도 실은 이런 사연을 아직 잘 몰랐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선배의 영이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이제부터 얘기해 주려고 생각한 상념이 음절의 구분을 통해 나타났고, 그는 이것을 처음에는 내적인 시각으로 알았고 나중에는 외적인 시각으로 보았던 것이다. 영계의 언어에는 이 외에도 말 그 자체가 엷은 기체의 흔들림처럼 눈에 보이고, 또 그 “보이는 언어” 속에 이야기의 내용이 비치어 영상처럼 두둥실 떠서 보이기도 한다.
그 뿐 아니라 이 밖에 영계의 언어에 대해서 말해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 하나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반면에 마음에 없으면 귓전에서 얘기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영계의 말은 인간의 말과 같아서 공기(단, 영계의 공기)를 타고 전달되어 상대방의 귀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이 인간과 똑같이 귀와 입과 혀를 갖고 있는 이상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젊은 영이 늙은 영에게 아득한 저쪽에 있다고 하는 영계의 황금빛 연못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연못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그 곳을 찾아간 영들 중 돌아온 자는 아직 한 사람도 없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온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은 그 연못이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라고 하니까요........ .”
이 금빛의 연못이란 영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연못인데, 실제는 반 전설적인 것이다. 이 연못(해안의 높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은 황금빛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지만 자칫 한번 휩쓸려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가 굽이치고 있으며, 그 연못 주변에는 영들 스스로도 모르게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 들이는 유혹의 바람이 괴상하게 불어온다고 한다.
젊은 영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연못을 다녀온 유일한 영이 꼭 한 분 있는데, 그 영은 여기에서 수천 억 킬로나 떨어진 단체에 있으며, 나는 일찌기 그를 찾아가 금빛 연못에 얘기를 들은바 있습니다......... .”
늙은 영---늙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젊은 영보다 영계의 경험이 적으며, 불과 수 일전에 영계로 갓 들어온 영이므로 수백 년 전에 영계로 들어온 젊은 영 보다도 영계의 경험으로 말하면 젊은 편이다.---은 처음으로 듣는 연못 얘기를 열심히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이 늙은 영은 어쩐지 자기의 주의가 이야기 줄거리와는 다른 그 무엇인가에 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차차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야기 줄거리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현상이었으나 젊은 영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 말투 가운데에 일종의 리듬이라고나 할까 끊임없이 미묘한 변화와 억양을 반복하면서 이어가고 있는 점이었다. 그는 여기에 신경이 쏠리자 그때부터는 선배의 영(영계에서는 수백 년이나 먼저 영계에 들어온 젊은 영이 선배가 된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리고 그 리듬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말 속에는 흐르는 리듬이 높아졌다 낮아지고, 그런가 하면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도 했으나 그 고저 강약의 폭에는 다양한 변화가 있을 뿐 아니라 이에 호응하는 것처럼 음색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늙은 영은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언어의 운율 속에 나타나는 미미한 리듬의 변화와는 별도로 말의 배열과 음절을 이어가는 격식에 무엇인가 나타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음절에 있어서도 우, 오 등의 자주 뒤 딸아 나올 때와 이, 아 등이 나오는 두 가지 경우로 들리는 것 같았다. 늙은 영은 이 두 가지의 느낌, 즉 말의 리듬과 배열, 음정의 연결법에 마음이 쏠려 젊은 영이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선 반은 흘리고 들었다.
틀림없이 이 속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다! 늙은 영에게는 그러한 느낌이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는데 급기야 다음 순간에 일어난 사태는 그의 이러한 공상을 단번에 날려 버리는 놀라움을 던져 주었다.
굉장한 진동과 함께 그가 서있는 지면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그의 눈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영계의 끝까지 삽시간에 뻗어 나갔다. 그 틈바구니에는 깊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암흑의 심연이 깔려 있었다.
그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으나 그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갈라진 틈에서 한 권의 두루마리 비슷한 것이 나타나 그의 발아래에 와서 멈추더니 스스로 소리도 없이 풀리어 슬슬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처럼 큰 이변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영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여전히 아까부터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두루마리에는 그 젊은 영이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일상의 기록과 이제까지 지내온 영계에서의 기록, 그리고 이제부터 그가 영계에 보낼 영원한 미래의 삶에 대한 기록 까지도 적혀 있었다.
인간의 감각은 영의 그것에 비하면 수천 배 아니 그 보다도 훨씬 더 둔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약 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영들 사이에서는 상대편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말하는 사람의 의사, 감정, 지성의 전부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듯이 비친다.
의지와 감정은 그 말의 미비한 리듬의 변화 속에, 지성은 말과 음절의 무의식적인 배열 속에 나타난다. 이것은 1만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희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영은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영은 그 말을 자기 마음의 상태 그대로, 스스로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소리 내어 이야기 한다. 거기에는 인간과 같이 여러 가지 번잡한 조심성이라든가 판단에 구애받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사실로도 대개 짐작이 가겠지만 영의 말은 전부 수백의 눈처럼 그의 본심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 본심 속의 어떠한 미세하며 미묘하고 희미한 것일지라도 그는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과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영의 민감한 감수성으로 말미암아 듣는 이는 말하는 영의 전부를 알 수가 있다.
의지와 감성과 지성은 영의 경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본성을 결정하는 전부이며, 마음의 본성이 결국은 그 인간이나 일생을 결정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면 아까의 두루마리가 늙은 영 앞에 나타난 이유를 짐작하리라 믿는다. 그렇다. 늙은 영은 젊은 영이 이야기할 때, 이야기 내용을 듣는 것과는 다른 그의 마음 전부를 음성에서의 리듬의 변화와 음색 그리고 음절 및 말의 배열 속에서 느낄 수가 있었고, 다시 이것이 표상으로서 두루마리를 통해 젊은 영의 생애가 펼쳐진 것을 보았음에 지나지 않는다.
영계에 언어가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듯이 문자도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영계의 문자는 그 모양이나 사용하는 방법 등 여러 면에서 인간계의 문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 가장 큰 차이점은 영계의 문자에는 곡선이 많고 문장을 통한 전체적인 인상 또한 그렇다. 또 하나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 상징으로서의 숫자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며, 역시 영계의 언어가 그러한 것처럼 영계의 문자도 인간계의 문자에 비하면 적은 수의 문자 속에 어마어마한 뜻이 담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영계의 글자는 복잡, 미묘, 정묘해서 지금 인간계로 돌아와 지금 이 수기를 쓰고 있는 나로서는 정확히 그 전부를 기억해 낼 수는 없으나, 그 글자가 품고 있는 의미라든가 사용 방법에 대한 예를 들어서 인간의 글자로 고쳐 본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 된다.
영계의 상례로 처음에는 숫자가 적히고 다음에 문장이 씌어진다. 수자가 품고 있는 뜻은 퍽 넓으며, 수많은 복잡한 표시, 예를 들면 12, 25, ...... 104 등과 같은 것인데, 이 숫자가 문장 전체의 취지와 쓴 자가 누구인가, 언제 무엇 때문에 썼는가...... 등을 빠짐없이 나타낸다. 우리들은 여기에 적힌 11이라는 수자가 어는 정도의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뜻을 간직하고 있으랴 하고 생각하지만, 영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음 항에 가서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문장에 대한 것을 먼저 설명하기로 한다.
이 문장은 “마음의 상태(영의 상태를 말한다)가 양호할 때에 영과 상념의 교류를 한다. 이에 참가할 뜻이 있는가...... .” 라고 말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은 이 문장 속에는 우리의 글자로 바꾼다면, 아마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문장을 읽은 영에게는 그것이 이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숫자 속에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거나 마찬가지여서 그 선의 굽은 각도, 씌어 있는 위치, 앞 글자와 다음 글자와의 간격, 글자의 크기와 경사(傾斜), 같은 글자라도 그 모양의 사소한 차이 등을 이용해서 영들은 많은 뜻을 담아 상대편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든 예문을 보더라도 어느 단체에 있는 어느 영이 어느 단체의 어느 영에게 보낸 문장인가, 또 상념의 교류를 하고 있는 영은 어디에 사는 어느 영인가, 그것은 언제 하는가, 상대편 영은 어떤 성격을 가진 영인가, 왜 글을 보내는가 등 당면한 용건이 모조리 담겨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문장을 쓴 영의 단체는 어디에 있고 얼마나 많은 영들이 있으며 또한 어떤 상태에 있는가, 그 단체에 속해있는 영의 개개의 성격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낱낱이 적혀 있는 셈이다.
이런 일은 인간계에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이 많은 뜻이 먼저 말한 글자의 곡선이 굽은 모양이라든가 글자의 배치 등으로 틀림없이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 글자를 읽은 영은 이 글을 쓴 영의 얼굴 모습이 떠오를 뿐 아니라, 적혀 있는 글에 따라서는 이미지 조차도 그의 시계 속에 표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계의 글자에는 곡선이 많다고 말한바 있지만, 내가 영계에서 최초로 본 글자는 어딘지 모르게 이집트의 신성(神聖) 문자라든가 그리이스 문자를 닮은 것 같았고, 아니면 어린아이가 아무 뜻도 모르고 그린 장난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글자와 글자 사이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혹은 일정치 않는 제멋대로의 간격으로 띄어 썼거나, 곡선이 큰가 하면 작기도 하고, 또 동일한 문자이면서도 왼쪽으로 뚝 튀어 나왔는가하면 반대로 오른쪽이 불룩한 것 같이 보였다. 또 곡선의 굽어진 품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어서 이것 역시 그 속에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로서는 그저 걸맞지 않는 인상만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또한 영계의 문자가 이집트의 신성 문자와 그리이스의 문자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아주 먼 태고적, 아직 인류가 문자를 갖지 않았던 옛날에 그들이 영계의 문자를 빌려 썼다고 하니까, 그 흔적이 신성 문자와 같은 고대문자에 남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계의 글자가 영계의 말과 같이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언어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리고 또 표현상의 뜻으로부터 더욱 깊은 곳까지 이르는 영의 감정이나 의지나 지성까지도 표현하기 위한 것임은 말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즉 곡선이나 글자의 모양, 배치로써 글자의 표현에 나타난 뜻 이상으로 뜻을 표현함과 동시에 문장 속에 포함되어 있는 리듬의 흐름(영계의 글자에서는 음악의 리듬처럼 음으로써 귀에 들리는 경우도 있다. 즉 글자가 소리를 낸다)이나 글자의 선택 방법에서 틀림없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영계에 갓 들어와 아직 경력이 많지 않는 영을 상대로 다른 영이 글자에 대해서 설명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이 글자를 읽어 보라” 이렇게 말하면서 그 영은 새로 온 영에게 작은 종이쪽지를 주는 것이었다. 새로운 영은 영계의 글자는 물론 인간 세계에 있었을 시절에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런데 그는 받은 종이쪽지를 들여다보고는 눈이 휘둥그렇게 떴다.
“내가 글을 읽다니,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그러자 고참격인 영은 그 종이쪽지를 일단 도로 거두어 앞에 놓고는 그 위에 자기의 손을 얹은 다음 다시 그 종이를 새로 온 영에게 주었다.
----- 그래서 이제는 영의 글자도 쓸 수가 있다.-----
아닌게 아니라 새로 온 영은 종이쪽지에 씌어진 것을 이렇게 읽을 수가 있었다. 다음엔 자기도 똑같이 종이쪽지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손은 자유자제로 종이쪽지 위에서 움직였다. 물론 그의 경우에도 글자는 씌어져 있었다.
영계의 글자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글자를 쓰는 경우 영들은 손을 종이 위 공간에 가져가 자유자제로 그리고 무의식중에 움직인다. 그러면 종이에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거침없이 술술 적히는 것이다. 그 글자에는 그들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감정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글씨체나 곡선의 변화를 타고 그대로 표현된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인간계에서 쓰고 있는 말과 글자가 영계에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인간계의 말과 글자 외에도 몇 백만이라고 하는 말과 글자가 있으니, 이것은 인간계의 말이나 글자로는 표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인간계에 없는 사물이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영들의 감각이나 마음의 움직임에 있어서 인간계의 말과 글자로는 마땅한 표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와 문자만을 보더라도 인간계는 영계를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저급한 세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계에서 만난 역사상의 인물
나는 영계에서 많은 역사상의 인물과, 세상에 있을 때에는 알지도 못했던 이방인들, 즉 아시아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과 자유롭게 담화를 할 수가 있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서로 말이 달라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던 사람들과도 영계에서는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몇 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이야기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어떤 영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현대의 종교 관계자들이 영에 대해서 너무나도 인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 이제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현대의 교회의 관계자들은 고대 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탁 트인 마음으로 대오각성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소. 종교는 원래 아시아에서 일어나 점차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으니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깨달은 사람이 많을 것이오."
나도 영에 대한 것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내가 한 이야기를 듣자 매우 기뻐하면서 “당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영적인 뜻이 담겨 있소. 어찌 현대의 종교 관계자들이 그 뜻을 알리요? 나에게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소.”하고 머리를 흔들어 가며 탄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영계와 영에 대한 일을 인간 세계에 알려야 되겠소. 이것 말고는 세상을 구할 길이 없소.” 이야기하는 도중에 다른 영들이 끼어 들어 엉뚱한 소리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그는 일체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엉뚱한 말을 하는 영도 많지만 별로 이상히 여길 건 없소. 이들은 육체적 생애를 보내고 있었을 때에 학자나 종교 관계자들로부터 잘못 배워 그릇된 생각에 젖은 사람들이오. 인간 세계에 퍼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을 일소하지 않고서는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는 어려우며, 모든 현대의 학자와 종교관계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또한 배움이 부족한 것이오.”
<역자 주> 스웨덴브로그는 그의 생전에 사람들에게 역사상의 어떤 인물과도 영계에서 자유롭게 교신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했다. 그리고 또 요구하는 대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지로 해 보였기 때문에, 당시 온 유럽에서 불가사의한 인물이요, 영매로서 유명했다.
나는 그의 말에 일일이 맞장구를 쳤으나 이상하게 여긴 것은 그의 말투에서 어딘가 모르게 아름다운 라틴아가 섞여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의 대화에서도 로마의 시이져에 관한 일을 가끔 비쳤고 또 그는 자객 때문에 암살당했다고 밝혔다. 나는 그의 생김새, 언어, 이야기의 내용 및 태도로 보아 그가 키케로(Cicero. B.C 106-43. 로마의 웅변가, 정치가, 철학자)였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 밖에도 고대 사람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정면으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훌륭했던 것은 그들과 얼굴을 마주쳤을 때 그들의 머리 위에 나타난 아름다운 표상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표상들은 그들이 나에게 말하려는 뜻을 그들의 마음을 통해 시각으로 비치게 된 형태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성질은 비록 이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순진한 이방인(<역자 주> 중세기에 있어서는 유럽인은 두 인종 기독교와 그 밖의 이방인으로 나누어 생각했다.)도 만난 적이 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유럽의 신화에서 골라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비탄에 빠져 고통을 참을 길이 없는 표정으로 넋을 잃다시피 되었다. 그는 무지했지만 그 바탕은 순진했다.
나는 어느 날 멀리서 들려오는 합창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는 암양(牡羊), 기장떡, 흑단(黑檀)의 비수 등이 보였다. 물론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그와 비슷한 동시에 하늘에 떠있는 누각도 심안(心眼)을 통해 나타났다. 이러한 표상으로 보아 합창의 주인공은 중국인이라고 깨달았다.
이윽고 그들이 가까이 오자 짐작했던 대로 일단의 중국인 영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마음속에 약간 혐오감을 느낀 것 같았으며,, 나 자신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혐오감은 그들이 인간 세계에 있었을 당시 그리스도 교도란 그들보다 착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과 중국에 관한 일과 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에 관한 일을 이모저모로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상으로 소개한 것 외에도 나는 영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역사상 유명했던 사람이며 그의 행적과 인격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곧 그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내가 인간계에서 교제를 하였거나 얼굴을 잘 아는 사람들로서 영계에서 만난 예는 수천 건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들은 영계에 와서 얼굴이 달라진 자도 많았고 또 반대로 인간계에 있을 당시와 별로 변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얼굴 모습이 변한 영들은 인간 세계에 있었을 때에 세상의 예의나 관습 혹은 이해타산이나 모략 따위로 자신의 이녁의 본심을 속이면서 거짓 탈을 쓰고 있었던 자들이다.
나는 영계에서 성운(星雲)의 단체라고 불리 우는 단체를 방문하여 태고적 사람의 영과 만난 적이 있다. 이 단체는 영계 안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른 단체와 현저하게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단체의 영들은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중간 과정인 아득한 태고적 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단체를 성운의 단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영들의 영시력(靈視力)으로도 확실히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아무리 바라보아도 하나의 구름처럼 공중에 떠있는 희미한 덩어리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단체의 중심령은 태고의 영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영이며, 전 영계를 통해서 가장 오래된 영이기 때문에 영계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일에 통달해 있고, 특히 영계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도 모조리 그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영의 영적 능력의 우수성은 영계 안에 있는 모든 영들을 상대로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일시에 상념의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그는 성운의 단체에 있는 여러 영들과 담소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가자 둘러싼 여러 영들을 물러서게 하고 나를 곁으로 가까이 불렀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영들은 모두가 나를 환영하는 뜻으로 나에게 얼굴을 돌렸으나, 그 얼굴에는 한결같이 깨끗한 마음씨와 순박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으며, 마치 동심이 그대로 얼굴이 되었을 것 같은 부드러움과 평화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대는 현대의 영이렸다. 그렇다면 내가 영계에서 경험한 옛일을 이야기 해주지.” 그는 내가 그에게 들어보고자 했던 일을 앞질러 짐작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영계에 들어온 후의 몇 백만년 전부터의 일을 여러 가지 들려주었는데 그 중에서 두세 가지만 골라 적어보기로 한다.
어느 때---그것은 몇 백만년 전의 일이었는지, 몇 십 만년전의 일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했다.---그는 그림자처럼 영계를 방황하는 몇 사람의 영을 본적이 있었다. 이들의 몰골은 보통 영들과 달랐고. 그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영이 몇 사람씩 무리를 지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래서 그는 이 영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에게는 이 영들이 일시적으로 육체를 이탈하여 인간계를 떠났고, 게다가 정령계에서도 얼마 있지 않고---아마도 전혀 있지 않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저 정령계를 지나쳤을 뿐인 모습이었다고 그는 말했다.---불쑥 영계에 들어온 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그들은 대홍수를 만나 죽을 영들임을 알았다.
과연 그의 눈은 정확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 백만이라는 인간의 영이 한꺼번에 영계로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들 가운데에는 아직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자가 있어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집트의 나일강이 범람하여 밭과 집이 다 떠내려가 숨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영계에 무리지어 나타난 영들은 특히 영적인 눈이 빨리 열린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홍수로 인한 죽음에 앞서 미리 이를 예감하고 그들은 육체를 이탈해서 영계로 나타난 자들이다.”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인간계와 영계의 관계를 과거에는 황금시대, 백은(白銀)시대, 청동시대가 있었다고 말하고 현재는 철시대(鐵時代)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 이상한 무리 영들처럼 일어난 현상은 근래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철시대이기 때문이다. 황금 시대에는 물론이고 과거의 백은 시대만 해도 가끔 일어났던 일이었다...,... .”
황금시대니 백은시대니 하는 말을 처음 듣는 나로서는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즉-----
과거 특히 태고의 인간이 아직 자연, 그대로인 마음의 소유자였을 때는 그들의 마음은 우주의 일을 한결같이 곧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태고의 인간들의 마음은 영계나 영의 일에 대해서 근래의 사람들 보다 훨씬 트여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태고의 사람들은 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세속적인 일이나 물질적인 일, 그리고 외면적인 지식과 학문 따위, 즉 영들의 말을 빌리면 “정도가 낮은”일에 쏠리었고 그로 말미암아 영계의 일과는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영계와 인간계의 관계는 태고로 갈수록 긴밀한 것이었으나, 시대의 경과에 따라 소연해지고 현재에 이르러선 전혀 관계가 없는 양 따로따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인간들은 영이나 영계조차 깨닫지를 못하게 되었다. 이런 영유로 해서 태고시대를 황금시대 그 다음을 백은시대, 그리고 청동시대, 철시대라고 구분하여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계에 새로 들어오는 영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적인 각성의 정도가 뒤떨어져 그들이 영적인 각성을 터득하는 데 필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나는 그의 설명과 내가 앞서 설명한 키케로의 이야기에는 서로 공통되는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무리지은 영들은 인간 시절에 이미 영적으로 상당한 경지에까지 눈떴던 자들이며, 따라서 그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고 또한 죽기 전에 그 육체를 벗어나 영계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다음은 지하의 영계는 지옥, 어떤 영계로 가는가. 입니다.)
지하의 영계는 지옥
많은 영들이 어느 영의 둘레를 동그랗게 감싸고 앉아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궁금하고 호기심에 끌려 가까이 가 보았다. 그것은 원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영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광경이었다. 열심히 귀를 기울려 듣고 있는 영들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야기가 퍽 재미있는 내용이라 생각되며, 또 그들이 모두 흥분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이야기는 이러한 것이었다.
----- 나는 그때 얼핏 사람(영)의 말소리를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 멍청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위는 평소 때보다 꽤 어두웠는데,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눈을 비비고 보았으나 여전히 주위는 어두웠다. 이미 그 무렵엔 잠도 말짱히 가시었을 때이므로 참으로 이상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문득 의심이 났다.
그러는 순간 나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광경을 눈앞에 두고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희미한 한 줄기 빛으로 밝혀지고 있는 어둠 속에서 많은 영들이 마치 여러 영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듯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한 복판에 몸집 큰 한 영이 서서 무어라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만 이라면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놀라게 한 하나는 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하의 큰 동굴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그곳에 있는 영들의 얼굴 모습이나 몸짓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어서 각각 다른 얼굴이었는데, 한결같이 이야기에서 듣던 지옥의 흉악한 귀신을 생각게 하는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자들뿐이었다. 지옥의 귀신이라면 옛 이야기에서나 듣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눈앞에 실지로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얼굴은 어떤 놈은 눈이 퀭하니 뚫려 해골처럼 어두운 구멍을 드러내고 있으며 볼에는 살이 없었다. 또 어떤 놈은 기분 나쁜 이빨을 드려내고 희죽희죽 야비한 웃음을 띄고 있으며, 어떤 놈은 얼굴 한쪽이 달아나 버린 반쪽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짐승을 방불케 하는 얼굴이나 망령으로 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진 자 등, 갖가지 해괴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 한복판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영이었다. 그는 키도 다른 영들보다 배나 되어 보이는 거인이었고, 얼굴 전체를 뒤덮을 듯한 두 눈을 부라리었고 번뜩이면서 귀까지 찢어진 큰 입을 벌려 시뻘건 혀를 뱀처럼 널름거리며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도저히 설명할 도리가 없을 정도였으나 배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어 정신을 바짝 차려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지하의 동굴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단지 보통 동굴과 다른 것이, 이 동굴은 얼마나 깊은지 그 안쪽의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무한한 깊이를 가진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나에게 확신을 주는 것 같았다. 또한 그 아늑한 안쪽에 작은 검붉은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원을 그린 영들의 한 가운데에 서서 외치고 있는 영은 연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대략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너희들은 지옥계의 영이 된 것이다. 너희들은 지옥계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행운아들이다. 항상 지상에 있는 영들을 유혹해서 그들을 어두운 길로 이끌어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너희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더 너희들 자신의 영원한 삶을 축복 받게 되는 것이다. 너희들을 환영하는 뜻에서 나는 한 사람에 대하여 환영의 인사를 나눌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그는 괴기한 모습의 영들과 하나하나 기묘한 인사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영들과 인사가 끝나자 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떠벌렸다. “너희들은 저것을 보아라. 저것도 영이란 말이다. 그의 모습이 아무리 추하게 보이더라도 놀라지 말라. 저 영은 이제부터 너희들의 하인으로서 혹사를 당할 영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보고 외쳤다. “너는 이 둘레 안으로 나오라. 우리는 너를 조사해 봐야겠다.” 나의 공포와 굴욕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그러나 마침 이 때였다. 영계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땅울림이 일어나자 산이 무너져 큰 암석이 하늘에서 비오듯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실제로 산이 무너져 내려앉았고, 큰 바위덩이가 산기슭을 요란스럽게 굴러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두려움에 미친 듯이 소리쳤다. “나는 이제 끝장이다. 나는 산에 깔려 꼼짝없이 죽는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제 여러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영계로 돌아와 있었다. 그 산사태는 산밑에 틀어박혀 살고 있는 흉악한 영들을 우리들 단체의 주령이 퇴치해 준 산사태였던 것이다. 나는 참으로 위기일발의 위험 속에서 살아난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그는 그 순간의 무서웠던 생각이 되살아나는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지금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내가 보았던 지옥계의 모습이었다. 지옥계는 참으로 무섭고 불유쾌한 곳이다. 너희들은 마음에 새겨 지옥계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 영의 이야기는 나로서도 처음들은 지옥계의 실제 경험담이다. 그 후 나는 영계의 경험을 쌓아 올림에 따라 지옥계에 관한 일도 자세히 알게 되었으나 다음 몇 항에 걸쳐 지옥계의 갖가지 상황을 적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미리 양해를 얻을 것은 내가 앞으로 기록할 지옥계는 어디까지나 영계 속의 한 세계(그것은 추악한 세계지만)로서의 지옥계이며, 종교에서 말하는 공포 분위기라든가 사람들을 선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는 가공적인 지옥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정령계를 설명할 때, 인간은 죽은 뒤의 영은 처음 정령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일정한 기간을 보낸 뒤 어떤 자는 영계로 어떤 자는 지옥계로 간다는 것을 약간 비쳤다. 그러면 영계와 지옥계 그리고 정령계는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가?
영의 세계는 지금 든 세 가지의 세계가 합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이 중에 정령계는 영의 세계에서는 중간 지대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세계이며, 영계와 지옥계는 각기 그 성질을 달리한 영들이 살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세계이다. 영계, 지옥계, 정령계, 그리고 인간계의 관계를 가령 그림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정령계로부터는 영계로나 지옥계로도 통로가 있으나 영계와 지옥계 사이에는 이러한 통로가 없으며, 두 세계는 일단 갈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옥계는 영계의 땅 밑에 있다.
현세에서 나쁜 짓을 하고 부도덕한 생애를 보낸 자는 죽은 후에 지옥으로 끌려가 그 곳에서 영원한 벌을 받는다. -----이것은 동양, 서양을 막론하고 온 세계의 종교에서 설교하는 “지옥의 교훈”이므로 새삼스럽게 여기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교상의 필요에 의해서 지어낸 이야기이며, 전혀 근거가 없는 가공의 이야기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내가 말하는 지옥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곳이며, 더욱이 현세의 죄업을 청산하는 인과응보로 던져지는 지옥도 아니려니와, 지옥에 살고 있다는 사탄(마귀의 대왕이나 흉악한 귀신 등)에 의해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는 그런 지옥도 아니다. 내가 소개하려는 지옥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영계 안에 있는 하나의 세계로서 실제로 존재하는 지옥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은 후 정령이 된 자 중에서 어떤 자가 지옥으로 가는가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끝내 영으로서의 눈을 뜨지 못하고 영계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정령들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해서 종교가 말하는 것처럼 현세에서 저지른 악덕 때문에 신의 심판으로 벌을 받기 위해 지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원하는바에 따라 스스로 지옥을 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이들 영의 세계에 눈뜨지 못한 정령들 가운데에는 확실히 현세에서 악업을 저지른 자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점에서 본다면 결과적, 표현적으로는 종교의 교훈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의 이유는 종교에서 말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옥으로 가는 정령은 인간으로 있을 때, 물질적인 욕망이나, 색에 대한 욕망, 속된 명예욕 또는 지배욕 등 인간의 외면적이며 표면적인 감각을 즐겁게 하는 일에만 마음을 쓰고 참다운 영적인 사항들은 극단적으로 경멸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영적인 면에서 전혀 눈을 뜨지 못했던 까닭에 정령계로 들어와서도 역시 눈을 뜨지 못하는 자가 많다. 따라서 정령이 된 뒤에도 그들의 마음은 태양의 빛이나 영류를 자기 내부에 흡수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정령계에 오래 머물러 있어도 영계의 태양 빛이나 열이 부여하는 행복이라든가, 영적인 이성의 찬란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그 중간에 있는 지옥계의 불빛에 마음이 끌리어, 심지어는 지옥계의 흉한 영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의 희망에 따라서 자기 내부에 도사린 흉령적인 마음이 명(命)하는 대로 지옥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인간계에서 말하는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현상과 꼭 같은 것이다.
지옥계의 흉한 영들은 영계의 빛이나 영류로 인한 영으로서의 희열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에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을 기뻐한다. 이러한 욕망들은 다른 흉령들을 지배하거나 다른 영에게 악덕을 행하거나 혹은 다른 영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다는 따위의 외면적이고 물질적인 저속한 욕망에 지나지 않지만, 이러한 저급한 욕망을 만족시킨다는 것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것을 “빛”으로 삼고 영원한 삶을 보내게 된다.
영계의 영은 자기들의 생명의 근원과 행복의 원천도 모두 태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사실은 태양이야말로 주인이며, 이 태양이 영계의 구석구석까지 비치어 다스리고 있는 영계의 질서에 따라서 삶을 영위한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지옥계의 영들은 영적 생명의 근원이 그들 자신의 욕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욕망만이 오직 그들의 빛이 된다. 따라서 그들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며, 다른 어떠한 주인도 인정하려 않으려고 한다. 지옥계가 투쟁의 수라장이며 고통과 더러움에 가득 찬 곳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이 최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종교계에서는 지옥계의 형벌을 신이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 역시 전혀 틀린 이야기이다. 지옥계의 벌이란 그 곳에 살고 있는 흉령들 자신이 그 성질 때문에 스스로 불러 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다른 영을 지배하고 이를 학대하며 이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자기의 기쁨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계에서는 질서가 없고, 있는 것은 오직 추악한 자기집착에서 빚어지는 대립뿐이다.
거기다가 그들의 악의 처절상은 법률이나 사회의 평판, 상호간의 이해타산 등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욱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악을 거리낌 없이 발휘하여 내어 뿜는다.
얼굴이 반쯤 달아난 흉령, 해골처럼 눈두덩만 삐끔하게 뚫린 흉령,...... 등 기괴한 얼굴 생김새는 그들이 본래 지니고 있던 악의 정체를 영이 된 뒤로부터는 숨김없이 노출 시켰다는 하나의 징표이다. 그들이 아무리 흉하다 할지라도 인간이었을 때에는 그토록 외면적인 용도가 흉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령들이 영계의 태양 빛을 거부하고 있음은 그처럼 기괴한 몰골을 밝은 빛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계의 태양 빛이 그들에게는 눈부시어 견디지 못한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나는 단 한 번 지옥으로 가는 정령을 따라 지옥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그 때보았던 지옥의 양상을 자세히 말하기로 한다.
나는 어두운 땅굴 같은 통로를 따라서 지옥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이윽고 길은 비스듬히 꺽이고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층계는 20-30계단을 셀 수 있을 정도만 보일 뿐, 그 앞은 끝없이 아래를 향해 뻗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만 한 계단 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주위는 어두움에 쌓여 있었는데, 아주 희미한 빛이 언저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 빛이 어디에서 비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한참동안 계단을 내려가자 똑같은 몇 개인가의 계단으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 중의 한 계단을 골라서 다시 내려갔다. 얼마동안 내려갔을 때, 시커먼 안개 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 후 안개 속에서 눈이 익숙해지자 먼 곳에 붉은 색깔을 띤 작은 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시커먼 안개 밑에는 땅이 보인 듯 했다. 나는 땅에 내려서기 위해 층계를 밟아 내려갔다. 그러나 그곳은 계단의 층계참(層階站)처럼 조금 넓직한 장소였다. 여기에 서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빛이라고는 오직 아까 보았던 희미한 불빛뿐이었다.
희미한 불빛, 그것은 흡사 영계의 태양처럼 무한한 저쪽에 있었는데 밝기와 빛깔은 달랐다. 이 희미한 불빛은 의지해서 살펴본 결과 층계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은 그게 아니라 넓고 넓은 세계의 입구라는 것을 알았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짐에 따라 차차 그곳에 펼쳐진 세계가 영계와도 같은 광대무변한 넓은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도 역시 영계에서처럼 많은 영이 영원한 삶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 영들의 모습, 형상, 얼굴, 생김새는 앞서 말한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추하기 짝이 없어 도저히 같은 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떤 자는 얼굴이 검고 추하며, 또 어떤 자는 얼굴에 온통 더러운 곰보자국이 나있고, 어떤 자는 무서운 이빨을 들이 내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역시 영들의 집과 마을 그리고 나무 등.........영계에 있는 것은 전부 있는 것 같았으나, 이것 역시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한데다가 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악취는 코를 찌를 듯이 풍겨오고 있었다.
나는 이 이상한 세계를 희미한 불빛 한 가닥에 의지해서 그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보아도 이 세계의 모습은 하나같이 기분 나쁜 것이었다. 어느 거리인지 꺽이는 곳에 다다르자 느닷없이 하나의 영이 뛰쳐나왔다. 그는 무엇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큰 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러자 그를 쫓아온 듯 다른 흉령이 뛰어 나와서 역시 같은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놀란 내가 멍하니 보고 있을 틈도 없이 이번에는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한결같이 추하고 괴상한 얼굴의 흉령(凶靈)들이 몇 백 몇 천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추악한 얼굴을 더한층 추하게 일그러트리고 큰소리로 무엇인가를 외치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물론 나로서는 그들의 떠벌리는 말뜻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속에는 노여움과 미움과 복수의 집념과 거짓이 깔려 있었고, 그 말투도 차마 듣고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빳빳해졌다.
그러나 이어서 벌어진 사건은 나로 하여금 한층 더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그들 전원이 제일 먼저 길모퉁이에서 뛰어 나왔던 흉령에게로 덤벼들었다. 어떤 자는 그를 구타하고, 어떤 자는 돌을 던지고, 어떤 자는 밀어붙이고, 심지어는 눈이나 이 사이에 막대기나 손가락을 쑤셔 넣어 못살게 구는 자도 있었다. 고통에 못 이겨 내지르는 그의 비명소리와 그 괴로운 표정은 나에게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주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흉령들은 그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신이 난다는 듯이 더욱더 잔악한 행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끔찍한 참상에 눈을 가리고 그 곳을 벗어나 또 다른 조그마한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그 곳에서도 역시 앞서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이 세계 전체를 흝어 보았다. 그리하여 내가 발견한 것은 이 광대한 세계 도처에서 같은 사건이 몇 천, 몇 만이나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지옥의 업보(業報)요 고통이라는 것을 이 때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얼마동안 걸어가던 나는 또 계단이 있는 곳에 다달았다. 이 추악한 세계에서 견디기 어려운 충격을 받은 나는 이 곳을 빨리 빠져나가려고 급히 걸음을 재촉하여 층계를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목격한 것은 아까 보던 세계보다도 더 한층 추악하고 기괴한 세계여서 나는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흉령들의 얼굴, 몰골, 외형이 더욱 추하고 무서웠으며,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이 아까 본 세계보다도 더욱 괴상하고 추하였으며 코를 찌르는 악취마저도 더욱 심한 곳이었다.
나는 이 추악한 세계로부터 어디를 어떻게 해서 빠져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본 것을 좀더 소개하고, 지옥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간단히 추려서 설명하기로 한다.
지옥의 세계도 영계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세계는 위에서 굽어보면 밑바닥이 없는 늪처럼 시커먼 안개 속에 펼쳐 있으며, 밑으로 내려 갈수록 흉악한 영이 사는 무서운 세계가 된다. 그러므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세계는 그야말로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공할 지옥과 비슷한 공포에 싸인 곳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 마디로 지옥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지옥의 세계는 천차만별의 차이점을 가졌고,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그 어느 세계나 추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과 흉악한 영들이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증오, 경멸, 보복 따위의 분위기와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내가 본 바로는 지옥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떤 지옥에서는 쓰레기와 분뇨들만이 있었고, 또 음탕한 방만 있는 지옥도 있었으며, 화재를 만나 타다 남은 폐허와도 같은 인상을 주는 지옥도 있었다. 무섭게 보이는 우거진 숲 같은 지옥에서는 흉령들이 맹수처럼 숲 속을 방황하고 있기도 했다.
또한 지옥의 흉령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흉악스럽고, 흉악한 행동을 자행한다고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생기를 잃고 마치 시체에서 느끼는 것처럼 “죽음”의 인상을 강하게 풍겨주는 점이다. 이것은 영계의 참다운 근원인 영계의 태양과 연관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말해둘 일이 있다. 그것은 지옥계에서 본 희미한 빛의 정체인데 이 빛은 실은 인간계, 즉 자연계 태양의 빛이었다. 아직도 물질계에 대한 욕망이나 집념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흉령인지라 물질계의 태양 빛과 연관을 갖고 살아가려는 태도를 죽은지 몇 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태양이 영의 세계에서는 빛도 힘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자연계의 태양뿐임을 알 수 있다. 영계에서는 이 관계는 정반대로 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역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A와 B의 두 힘의 크기는 같고 힘의 방향이 정반대라고 하자. 이 때의 두 힘은 각자의 힘으로써 존재하고 있지만, 두 힘을 중앙에서 하나로 이어 버린다고 하면 결과는 제로가 되어 아무런 힘도 작용하고 있지 않는 것과 같게 된다.
이것이 즉 힘의 평형인 것이다. 이 때 중간에 C라고 하는 힘을 개입시킨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C라고 하는 힘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그 C의 힘의 크기와 방향이 A, B, C 전체의 힘의 크기와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즉 A, B가 아무리 C에 비해서 그 힘이 크다 할 지라도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은 C이며, 여기서 C는 자유의사를 작용시킬 수 있는 여지를 지니게 된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지옥계에서 영계을 보면, 영계의 태양과 지옥계 사이에는 항상 일종의 시커먼 구름이 떠 있다. 이 검은 구름이 영계의 태양 빛과 영류가 지옥으로 뻗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 검은 구름의 정체는 실은 지옥의 흉령들이 지닌 상념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계에 살고 있는 영의 작은 단체 위에 뒤덮여 있는 검은 구름은 그 단체를 덮을 만큼 큰 것이며, 또 큰 단체 위에 덮여있는 검은 구름 역시 그 단체의 크기만큼 큰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영계에 있는 태양 빛과 영류는 항상 검은 구름을 모아 흩어지게 하고 빛과 영류를 지옥계까지도 작용하게 한다. 여기서는 언제나 이와 같은 투쟁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때로 영계의 태양의 힘이 우세할 경우는 빛과 영류가 지옥계에 도달하여 흉령들로 하여금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 흉령들은 이 고통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검은 구름의 힘을 강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영계의 땅이 표면에서 특히 산이나 바위가 있는 곳, 초원의 웅덩이와 같은 여기저기 그늘진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그 갈라진 틈에는 기괴한 모양의 동굴 입구처럼 생긴 것이 있다. 어떤 곳은 진흙의 진창 같기도 하고 썩은 물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는 소용돌이 같기도 하여 제각기 다른데, 이런 곳에서는 때때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나 불길이 솟아오른다. 이것은 그 밑에 있는 지옥계가 영계를 침식하려고 덤비는 모습인 것이다. 이에 대항하여 영계는 산사태를 일으키기도 하고 바위를 굴러 떨어뜨려서 이를 막아버린다.
영계의 상, 중, 하의 세 세계가 있는 것처럼 지옥계에도 세 개의 세계가 그 흉폭성을 달리한 체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영계와 지옥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영계와 지옥계는 평행을 유지한 속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평행이 무너져서 영계가 없어진다면 지옥계가 존재하지 못한다. 반대로 지옥계가 없으면 영계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형의 원칙인 것이다.
또 각기 다른 이 두 개의 세계가 평행을 유지하고 있는 한, 인간의 사후(死後)의 첫 관문인 정령계에 있는 정령들에게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정령의 자유는 결국 인간의 자유와 같은 것이므로 인간의 자유도 이러한 형태로 보증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은 내가 앞에서 말한 역학의 예에서 작은 힘 “C"에 해당된다. 인간이 그 마음에 따라서 A, B 어느 쪽으로 방향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자유이다.
영계에 사는 영들이 생기에 넘치고 영적 이성에 마음이 열려 있는데 비해, 지옥계의 흉령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풍기고 있는 것도 두 세계의 평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덧붙여 말해 둘 것이 있다. 영계에서 영들에게 참다운 생명과 이성과 행복을 주는 근원은 영계의 태양 하나 밖에 없다. 또 참다운 권위나 힘의 근원도 이 태양뿐이다. 지옥의 불빛(자연계의 태양)은 영계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힘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영계의 영과 지옥계의 흉령의 차이도 결국 이들 영과 흉령이 두 개의 태양 중 어느 쪽의 빛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생기는 셈이다.
어떤 영계로 가는가
영계에는 상, 중, 하의 3세계가 있고, 그 외에도 “지하의 영계”라고 할 수 있는 지옥계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영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마당에 나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기로 한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계에서 우리의 생애와 죽은 뒤에 우리가 가야할 영계의 세계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또 있다면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인간 시절의 생애가 그대로 죽은 후에 그가 영원한 삶을 보내게 될 세계를 거의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이미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귀가 아프도록 들은 것 또는 종교의 교의처럼 종교상의 한 방편이며 가공적인 것을 반복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비슷한 점이 있고, 또 결과에 있어서 종교에서 설교하는 것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종교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앞에서 지옥계를 소개할 때에 언급했으므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즉, 종교가 말하는 요점은 그 교의에 맞는 생애를 올바르게 보내면 죽은 후에 그 보수로서 행복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반면, 그 종교의 교의에 어긋나는 잘못된 생활을 하면 그 벌로서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영들이 행복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또 반대로 지옥계로 들어가는 것도 결코 인간계에서의 생애에 대한 보수나 벌로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었을 때의 생애에 있어서 영적인 내심(內心)이 영계의 어느 세계에 가장 알맞게 대응할 수 있는 상태였던가에 따라서 사후의 그의 영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서 자유로이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좀더 간단히 알기 쉽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영계의 상 세계는 중 세계보다 밝은 빛으로 가득한 세계다. 그러나 밝은 세계에서 살자면 인간의 경우로 따진다면 그의 눈이 그 빛에 견딜 수 있고, 그 빛에 맞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만약 그의 눈이 그처럼 밝은 빛의 강도에 견딜 수 없는 것이라면 그는 좀더 어두운 세계를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 세계에서 살자면 영의 영적인 마음의 창, 즉 영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창이 그만큼 열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중 세계나 하 세계의 영류에 알맞은 창을 가진 영이 상 세계로 들어간다면, 그는 영류의 강도나 빛의 밝음에 견딜 수가 없어 고통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영적인 영원한 생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영적인 영류의 창이 어느 정도로 열려 있는가에 따라서 그의 사후의 세계가 결정되는 것인데, 바로 그 창의 개방 정도는 인간으로 말하면 생애를 통해 얼마나 영적인 마음의 창을 열고 살았는가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인간의 생애가 영적인 창을 활짝 연 생애이며, 어떠한 생애가 창을 열지 않는 생애인가? 여기에 이르러선 누구나가 하나의 의문점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영이라든가 영적인 창이라든가, 영적으로 눈이 뜬 인간의 생애라든가 하는 것은 어려운 말만 써서, 영에 관한 것은 너무나 깊고 지나치게 높은 경지이므로 인간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는 바로서는 이러한 생각 자체가 이미 “곧바른 마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잘못된 감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가 육체를 가진 물질계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계와 물질계의 양쪽에 속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조금도 곤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마음의 창이 열린 생애란 쉽게 말해서 영계의 질서를 알고, 이에 유순하게 따르는 생애를 보낸다는 것이다. 영계의 질서는 인간에게 유순한 마음만 있다면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고, 또 그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지성에 의해서 깨닫는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계와 영계 사이는 상응의 이치에 따라 많은 사물에 있어 상응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계 즉 자연계에 있는 것은 그에 상응 하는 것이 영계에도 빠짐없이 있는 것이다. 쉬운 예로 영 그 자체가 인간의 육체와 너무나도 닮은 존재, 인간의 상응물(相應物)임은 이미 이제까지의 설명으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마음을 유순히 하고 자연계를 바라보자. 새나 짐승 그리고 곤충들의 동물계, 나무와 같은 식물계 등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는 불가사의한 자연의 질서를 따라 생활하고 있다. 이 불가사의한 질서에 솔직히 감탄하고 그 질서에 순응해서 유순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인간은 이미 그 마음속에 영계의 질서를 어느 정도 감지한 사람들이다.
영계의 질서가 자연계의 질서와 다른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질서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인간적 사고를 초월한 통일적 세계라는 점에서는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질서를 가령 희미하게나마 자기의 마음속에 느끼고, 이 질서에 따라 생애를 보내는 사람들은 영적인 마음의 창이 열려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죽어서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즉시 영계의 질서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이에 따른 영으로서의 생활을 실천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 영으로서의 마음의 창이 그다지 열려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정도에 따라서 중 세계 또는 하 세계로 가게 되고, 그 창이 전혀 열려 있지 않는 사람들은 영계의 빛을 견뎌내지를 못하기 때문에 지옥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는 그 교리가 진정한 것이라면 이를 따른다는 것은 곧 영적인 마음의 창을 여는 데에 필요한 요건이 된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마음의 창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몇 번이나 말했듯이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인 것이다.
또 표면적, 외면적, 세속적 지식이 영으로서의 마음의 창을 열게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고, 대개의 경우 그와는 반대로 마음의 창을 닫아버리는 일조차도 있다. 나는 영계에서 인간계 시절에 학자, 현인(賢人)으로서 숭앙받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이성에 있어서는 사회적 지식이 없었던 사람보다도 오히려 뒤진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그것은 지식이나 학문을 영적인 마음의 창을 열기위한 방법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인간계를 살아가는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그들의 “곧바른 마음”을 잃음으로써 빚어진 결과라 하겠다.
(계속, 다음은 3. 영계와 인간계의 관계 / 다시 태어난 병사, 되살아난 처녀, 증발의 수수께끼와 그 진상, 죽음의 통지는 정령계에서 전달된다.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