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수행·전생·영혼

영계의 수기(手記)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11. 24. 23:29

영계의 수기(手記)

 

 

 

 

IMG_0647-c-web.gif

四次元 世界의 영계의 手記

스웨덴보르그 저 / 청화    


본서는 세계 최대의 기서의 하나로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현재도 관심을 끌고 있는 스웨덴보르그의 靈書를 우리나라 독자가 알기 쉽도록 편역한 것이다. 여기서는 이 원저를 저술한 수수께끼의 인물, 스웨덴보르그의 인물과 본서가 이루어진 유래, 그리고 기타 알려드려야 할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스웨덴보르그의 인물과 업적

스웨덴보르그는 유럽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신비스러운 수수께끼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백과사전에는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 신비사상가. 등으로 간단히 분류하고 소개되고 있으나 그리 간단히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며, 실제에 있어서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이다. 스웨덴보르그에 관심을 쏟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과 미국 사람들도 이런 면에서는 동감인 듯하며 결국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위대한 인물이며 불가사의한 사람으로 다루는 모양이다.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스톡홀름에 있는 경건한 그리스도 교도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비적인 경향을 지닌 듯하여, 열 살도 채 되지 않아서 교회의 목사들과 신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기를 좋아했고 또 그 언행에는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요소가 많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 소년의 입을 빌어 말을 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우프살라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오래도록 스웨덴 광산국 기사로 근무했고, 1719년에는 귀족(貴族)에 서임되어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귀족원(貴族院) 의원으로 정계에서도 활약한 것으로 보아 실제가 실무가로서 활동하는 한편 과학자, 수학자. 발명가로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학문상의 업적이 얼마나 폭넓은 것이고 위대한 것이며 또한 그 시대를 훨씬 앞지르는 수준이었던가를 보려면 다음 한 가지 일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가 죽은 것은 1772년, 체류 중이던 영국 런던에서였지만, 그의 사후 140년이 지난 1908년에 모국인 스웨덴 학술원(學術院)은 국왕에게 청하여 군함을 보내서 이 위인의 유해(런던 교외에 매장되었다)를 모시러 간다는 유래 없는 장례를 거행했다. 그의 학문상의 업적이 그 시대를 앞선 것이었고 20세기에서도 가치가 높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까닭이다. 또한 1910년,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 스웨덴보르그 회의에서는 세계 각국의 학자, 종교가 등 400여 명이 출석한 가운데 각기 전문 분야별 20부분으로 잘라서 그의 업적을 20세기의 학술 수준에 입각해서 토의 검토한바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학술상의 업적이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를 알 수 있지만 그의 저술 중에는 현대 수준으로 분석해도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 적지 않다. 일일이 그 예를 들 수는 없으나 발명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더라도 제염기(製鹽機), 피아노라, 잠수정에서 비행기까지 발명하는 등 거인다운 힘을 과시했다. 그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는 르네상스기의 거인으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능가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저 업적에 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가 그림을 통해 사람의 눈을 쉽게 끌었음에 비하여 그는 너무나 수준이 높은 서적을 그것도 방대한 량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의 동 년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크며, 온 유럽에 걸친 것이었으나, 특히 유명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괴테의 유명한 파우스트는 만약 스웨덴보르그가 없었던들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파우스트주인공인 파우스트는 스웨덴보르 그의 생애 바로 그것이라 해도 좋으리만큼 비슷하다.]

                   신비가 영매로서의 스웨덴보르그

스웨덴보르그가 거장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사람으로서 알려진 것은 그의 후반기의 생활과 그 시절에 남긴 방대한
靈界 著述
의 내용이 수수께끼에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으나 그 후 반생의 30년이란 모든 학문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하늘의 계시에 따라 영적 생애적(生涯的) 생활을 보냈으며, 영의 세계와 교신하는 영매로서 유럽에 큰 화제를 던졌던 것이다.

스웨덴보르그의 교령 능력이라든가 천리안(千里眼)의 능력이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철학자 칸트가 직접 저서
Traume eines Geister Sehers"를 펴서 이를 보증할 정도였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칸트는 스웨덴보르그의 비상한 능력에 관하여 인류 사상에 이러한 인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장래에 있어서도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며 그 수수께끼 같은 능력에 대해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라고 경탄한 바 있다.
      
                    스웨덴보르그의 영계의 저술


스웨덴보르그의
영계의 저술은 몇 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것인데 그 대부분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지금도 소중히 보존되고 있다. 그의 영계의 저술이 다른 작품과는 비교가 안 되는 특이한 점은 그가 이 모두를  스스로 영계에 들어가서 보고 들었으며, 혹은 영들과 사귀면서 깨달은 지식을 토대로 했다고 공언하고 있는 점이다. 이처럼 보통사람으로서는 좀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서로 취급되고 있지만, 단순히 믿기 어려운 기서라고만 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끌리는 없을 것이다. 그 비밀은 역시 보통 사람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점을 근거로 삼은 저술이라는 데도 있겠으나, 그 내용을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단순히 부정만 할 수 없는 진실의 측면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계의 저술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영국 시인 엘리지베드 브라우닝(1806-1861)이나 일본의 스스키 다이쎄스(禪學子 1870-1966)를 비롯하여 호의적인 비평이 많았고, 브라우닝은 영계의 일을 분명히 밝힌 저술은 스웨덴보르그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없다라고 말하였다. 저자인 콜린 윌슨(1931-    )도 스웨덴보르그의 저서에서 받은 인상은 틀림없는 듯한 신빙성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그 인물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외국에서는 그의 사후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영국 스웨덴보르그 협회(Sweenborg House, 20 Bloomsbury Way London W. C. 1) 등이 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의 저술과 인물에 대한 평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고 할 것이다.

초인(超人) 스웨덴보르그는 그 경력부터가 복잡하다. 처음에는 과학자. 광산기사로 활약하고 뒤에는 종신의 상원의원이 되었으나, 마침내 심령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세계적으로는 철학자. 신비주의자로서 알려졌다.

2세기에 걸친 긴 생애를 통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1688-1772년에 걸친 시기였을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로서 유럽 대륙 특히 영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떨쳤고, 라틴어로 씌어진 저서는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서에 대한 해석은 이론이 분분한 바 있다. 과학방면의 저서는 그대로 비교적 용이한 편이라고 하지만, 그의 종교 철학을 이해하려고 하면 우선 30권 이상에 달하는 그의 신학관계 저서를 통독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저작들은 뉴욕의 스웨덴보르그 재단이나 기타의 공공 도서관에서 영문 번역서로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전기의 하나인 지그스뎃트 저작의
스웨덴보르그의 서사시 : 이마뉴엘 스웨덴보르그의 생애와 업적이 그의 영능적 경험을 잘 설명하고 있다.  


스웨덴보르그의 생애를 논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남과 다른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영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영능력자라는 말에서 연상되듯이 신경 과민한 성격은 결코 없었다. 그의 건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같은 시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항상 자신의 안팎에 충실했으므로 모든 면에서 매우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으나 장년이 되기 전까지는 결혼하여 가정을 가져야겠다는 희망이 없지 않아 가끔 결혼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가 분명히 독신으로 지내고자 결심한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들은 후부터였다.

스웨덴보르그는 영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다른 영능력자들과는 달라서 모든 면에 천분을 발휘했다. 그는 루터 교회파의 목사
예스텔 스웨덴보르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종교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과학자가 되고자 결심했다. 그는 매우 우수한 학생이어서 21세에 우프살라 대학의 지질학과 학위를 땄다. 얼마 동안을 스웨덴 국외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나 귀국하자 스웨덴 광산 대학의 특별 보좌역으로 임명되었고 얼마 안 가서 일류 야금 학자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1719년에는 발명을 통해 국가에 공헌했다는 공적으로 작위를 받아 이름을 바꾸어 스웨덴보르그 남작이 되었다. 다음에는 스웨덴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경제 방면의 권위자로서 여기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었다. 다시 파리로 가서 2년 동안 해부학을 수업함으로써 그의 학문적 분야를 더욱 넓혀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천거되었다.

이처럼 다망한 사회적, 문화적 활동을 계속하는 가운데, 그 다방면에 걸친 전문 분야에서 각기 대작인 저서를 내 놓았다. 그의 많은 저서의 내용을 분석한 20세기 학자들은, 스웨덴보르그는 과학자로서 시대를 훨씬 앞지른 곳을 걸어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비엔나의 어느 대학교수는 1910년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스웨덴보르그의 시대에 공통된 결점, 오류, 불완전한 증명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개념이나 미래를 멀리 예견한 그의 사고방식은 스웨덴보르그의 정신적 특성을 형성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이 현대 과학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인체의 임파선이나 뇌의 기능에 관한 그의 추론은 현대 과학에 의해서 비로소 알려진 학설과 매우 공통된 점이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해부학 관계의 저작을 가명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비판에 관한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만일에 그가 자기의 연구 및 고찰한 바를 모조리 발표했더라면, 당장에 논란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 틀림없다. 1740년대에 이미 그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논문을 발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음은 확실했다. 그는 몇 가지 중요한 연구의 공표를 망설였다. 그 가운데에는 뇌, 감각기관, 생식기관에 관한 연구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심리학에 관한 이론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출판되지 않았다. 아마 스웨덴보르그는 그러한 혁명적인 학설을 동료 학자에게 귀뜸조차 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래의 학설을 초월한 인식방법을 동료들이 따라오지 못할
  
뿐 아니라 공감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영혼을 연구한다는 유일한 목적으로 이 해부를 실시했다. 이 작업이 해부학 또는 의학의 분야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이 나는 만족스럽겠다. 하지만 만약에 영혼의 연구에 어떠한 광명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로서는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약 10년 동안에 걸쳐 스웨덴보르그는 자기의 연구 자료로서 자신이 꾼 꿈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해부를 하려고 집도했을 때 그는 정신을 잃고 깊은 혼수상태로 빠졌는데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믿었다. 1744년에는 꿈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대는 약속한 바를 수행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1745년 4월에는 사람의 환영을 보고 자기의 사명을 역력히 깨달았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말하였다. 자기는 우주의 지배자요 만물의 창조주, 구세주인 하나님이라고. 그리고 성서의 영적인 취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나를 선택했다.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글을 나에게 쓰라고 하셨다........ . 이윽고 그날 밤 영의 세계가 뚜렷하게 내 앞에 전개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생명에 관한 모든 상황에 대해서 인식할 수가 있었다. 그 날부터 나는 현세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적인 것에 모든 노력을 바치기로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 스웨덴보르그는 57세였다. 이후 84세로 죽음에 이르기
  까지 그는 저작 활동의 전부를 종교 관계의 주제에다 쏟았다. 그의 성서의 해설 전부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자동필기로 쓰여 진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멸망한 뒤에도 영혼은 생존한다는 현상을 구명한 결과 저승을 가끔 방문하게 되었다. 정령계란 사자(死者)의 영혼이 영계 혹은 지옥계로 가기 위해 대기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아올린 종교적 신념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리라고 그가 바라던
뉴 예루살렘의 관념이라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카토릭을 불문코 종래의 그리스도교의 교의와는 극단적으로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와 같은 시대 사람들은 그를 이교도라고 보기보다는 미친 사람이 아닌가 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뛰어난 정신과 인품에 다른 의심을 품을 수가 없었다.
      
삼위일체 설을 부정하는 스웨덴보르그의 대담한 종교 이론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또한 영계에서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를 만나 신앙에 의해서만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루터의 교리에는 승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 스웨덴보르그의 설에 의하면, 인간이 구제 받기 위해서는 선행을 필요로 하며, 악을 회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사자(死者)의 영이 지옥으로 가는 것은 신(神)의 재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죄로 더럽혀진 영혼 스스로가 자신의 뜻으로 그곳에 간다는 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구원이 되었다. 영계에서도 결혼할 수 있고 이승에서 배우자의 선택을 잘못한 자는 저승에 가서 새로이 배우자를 고를 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한 사람들도 많다.

생애 최고의 저작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탈고했을 때 스웨덴보르그는 82세의 고령이었으나, 암스테르담의 인쇄업자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네델란드까지 여행할만한 여력이 있었다. 더구나 그의 가장 충실한 신봉자들을 만나기 위하여 영국 런던에 여정을 연장하는 정력을 보였다. 그는 조국인 스웨덴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런던에서 죽는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1771년 크리스마스가 가까왔을 때 스웨덴보르그는 중풍으로 쓰러져 의식불명이 되었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는 착한 영혼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오랜 세월동안 교회에는 간 적이 없었지만 스웨덴인 목사가 방문하는 것을 거절은 하지 않았다. 목사가 그의 저작물 가운데 그 진실성을 부정할 것은 없느냐고 묻자 스웨덴보르그는 벌떡 몸을 일으켜 앉더니 격하고 열렬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의 눈앞에 내가 있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내가 쓴 것은 모든 것이 진실이오. 허락한다면 더 할말이 있소. 당신이 저승으로 들어올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니. 그 때는 좀더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1772년 3월 29일 스웨덴보르그는 죽었다. 유해는 런던의 스웨덴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1908년에 스웨덴 정부는 순양함을 영국으로 파견하여 그 유해를 모국으로 맞아들여 우프살라 대성당에 안장했다. 1910년 구스타프 5세의 후원으로 스웨덴보르그의 국제회의가 영국에서 개최되어 각국 학계인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이 스웨덴의 위대한 철학자의 영예를 찬양했다.

그의 교리를 신봉하는 뉴 예루살렘 교파에 속하는 교도는 스웨덴, 기타의 나라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자만 꼽아도 3,000명을 웃돈다고 한다. 저 미국의 삼중고의 여성 헬렌 켈러는 이 교리의 열렬한 대변자의 한 사람으로 그의 저서
나의 신앙에서 스웨덴보르그 주의에서 비상한 영감과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눈, 귀, 입의 삼중고의 세계에서 스웨덴의 위대한 예언자의 가르침을 궁리한 그녀는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들의 문명은 스웨덴보르그와 같은 철학자의 교리,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선견지명에 무관심하다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천사들이 그의 교사요 인도자였다. 그는 그의 영혼을 천상에 머물게 했다. 그는 끝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영원한 생명의 가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하늘 나라를 원을 그리는 별들의 길을 걷도록 허락 받았다. 이 여성의 위대한 처세훈에 어떠한 시사를 던져 준 인간 스웨덴보르그를 우리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



1. 영계로 가는 사자(死者)의 길


              영계와 이승은 동전의 안팎이다.

나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이 수기(手記)를 써 내려가기 전에,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 두어 가지를 전제 삼아 소개하기로 한다.

기가르트라고 하는 이름의 이 사나이는 17xx년 어느 날 암스테르담에 있는 시장 안에서 부산하게 일을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의 중매인이 없으므로 장터의 소란과 법석쯤은 매일의 일과여서 예사로 여기는 터였다. 그는 이 틈바구니에서 큰 소리로 외치며 손을 들어 시장 특유의 손짓을 하며 다른 중매인과 거래하고 있었다.

삥 둘러 서있는 중매인들 가운데 바로 마주 보이는 건너편 중매인이 꼽는 손짓에 따라서 그도 손가락을 꼽으려는 순간이었다. 상대하던 중매인의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의 광경을 그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졌을 뿐 아니라, 술렁거리던 시장의 소음도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그의 놀라움은 어떠했으랴? 그러나 그의 놀라움도 그 다음에 펼쳐진 광경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시장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그의 시야에는 다음과 같은 광경이 나타났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요. 온통 시뻘건 광채였지요. 그것이 눈앞에 가득히 피어올랐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에 그 빨간 놈이 .......... . 말문을 닫는 그는 슬픔을 못 이겨서 흐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가르트는 그 시뻘건 빛깔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차츰 모습을 드러낸 그 바다에는 이제 막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려는 난파선이 보였으며, 그 배에는 몇 만 명을 헤아리는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최후의 안간힘을 다하여 바둥거리고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 바로 그것이지요. 몇 만 명을 헤아리는 그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보이질 않아 도무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죠. 다만 우리 집 아들놈은 겨우 일곱 살밖에 안되었습니다만, 이 녀석의 얼굴만은 또렷이 보였고 그 얼굴은 슬픔에 젖어 나에게 구조를 애원하고 있었지요...........  .”          


가가르트의 장남이 바다에서 익사한 것은 그가 시장 안에서 이 환영(幻影)------ 필자에게는 결코 이것이 환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아직 여기서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좇아 환영이라고 말하여 둔다.------을 본 바로 그 시간이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이렇다.
약 10년 전에 영국의 농촌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직도 젊디젊은 청년이 죽었다. 부모는 물론 마을 사람들도 한창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가엾게 여겼다. 이틀 후 그의 시체는 마을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장사를 치른 뒤 사흘이 지나자 젊은이를 잃은 어머니는 남편과 마을 사람들에게 터무니없이 놀라운 일을 알렸다. 어머니는 미친 듯이 이렇게 외쳤다.

내 아들이 살아있어! 이제 막 되살아나고 있어. 무덤을 파헤쳐 구해 내야 해요! 남편과 마을 사람들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어머니가 실성해서 발광하는 것이려니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무덤을 파기로 작정했다. 막상 무덤을 파헤치자 사람들은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에는 파헤쳐진 무덤 속에서 어머니의 말대로 이제 막 되살아나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아직 그 젊은이의 모습에는 살아있는 인간의 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죽음의 심연, 그 어둠 속에서 차츰 소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젊은이의 얼굴에 감도는 생기만으로도 분명히 알 수가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일 것이다.
------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 아들의 소생을 알았을 것일까? -----

여기서 소개한 두 가지 예는 흔히 있는 이야기이므로 세상 사람들도 이러한 이야기의 하나 둘쯤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이 지니고 있는 참다운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인류 역사상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앞에서 든 예는 모두가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와 이승이라는 두 세계가 접촉되는 경계 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이러한 사건이 지니고 있는 참된 뜻을 설명함과 더불어 내가 어떻게 해서 영(靈)의 세계, 사후의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는가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주고자 한다.

기가르트는 어떻게 해서 난파선에 매달려 구조를 애원하는 아들의 모습을 느닷없이 보게 되었는가? 영국의 어느 마을에 사는 어머니는 어찌하여 죽음의 수령에서 아들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았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알아둘 일이 있다. 아직 영계(靈界), 즉 사후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지만 , 영계에 있는 영들은 상념(想念)의 교류를 자유자제로 하고 있다.
상념의 교류란 어떤 영이 다른 영에 대하여 자기의 생각과 느낀 바를 알린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두 영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또 벽이나 장애물이 있건 없건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거침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것은 영과 영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과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 사이에서는 행하여 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영과 영계의 존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죽음의 통지라든가, 기가르트나 영국의 한 마을의 어머니의 경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머니의 경우, 그리고 인간이 죽음의 통지를 받는 경우는 그 모두가 죽어가는 사자의 영이 상대할 수 있는 인간에게 상년의 교류로써 알려주는 것이다
라고

여기서 우리들은 큰 의문을 품게 된다. 그것은 영들끼리의 상념 교류가 어찌하여 영과 인간의 사이에서도 행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렇다.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느 어머니는 실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죽어서 영이 되어 있었다..........  .

기가르트의 경우나, 영국의 어머니의 경우도 사실을 말한다면 육체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 죽어서 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기가르트가 난파선에서 아들의 모습을 본다거나, 어머니가 아들의 소생을 알게 된 순간에는 두 사람 다같이 죽어서 영으로 되어 있었던 까닭에 자식들의 영으로부터 통지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아들의 영들은 가장 친한 기가르트나 어머니의 육체에 깃든 영에 대하여 상념의 상통(想通)을 구하였으며, 기가르트나 어머니는 그 순간 영의 세계에 눈뜨면서 육체의 인간은 순간적인 죽음을 경험했던 것이다.
  

나는 한 가지 더 거론하고 나서
죽음의 기술(技術) 죽을 수 있는 기술
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 어쩐지 등 뒤에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고 뒤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다만 돌아다 본 공간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그 무엇인가가 느껴져서 잠시 눈여겨보았다 ------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가 겪었을 것으로 안다. 너무나 순간적이고 막연한 경험이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나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바로 이때 당신의 등 뒤에는 영이나 영계 혹은 사후세계가 땅거미처럼 자취 없이 다가와 모습을 드려내려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은 당신도 기가르트나 앞서 말한 어머니의 경우처럼 순간적으로 죽어서 영계를 어렴풋이나마 엿본 것이다.
          

영계가 이승의 하늘을 날아가는 참새처럼 지상에 드리우는 순간적인 그림자는 너무나도 미미하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아무리 엷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그곳을 날아간 참새가 실존(實存)하는 이상 영계는 이승의 뒤안길에 찰싹 붙은 채 실재(實在)하고 있다. 영계와 이승은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동전 한 닢의 안팎과 같은 것이다.

나는 스스로의 육체를 자신의 의지로 죽음의 상태로 끌어들임으로써 영의 세계로 들어가 영계 또는 영들의 소식을 알아냈다. 마치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머니가 격은 그 순간처럼 말이다. 이 일을 표현하는 데 우선은
죽음의 기술, 죽는 기술이라고만 말하겠다. 내가 말하는 죽음의 기술이나 죽음의 상태가 어떤 것인가는 이 수기를 읽어 나가는 동안 차츰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의 기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서 영계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를 말하겠으나, 이에 앞서 나를 영의 세계로 이끌어 준 최초의 계기가 된 이상한 경험을 소개하기로 한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20여 년 전 여름날 어는 저녁때 일이다. 그 무렵 나는 볼일이 있어 고국인 스웨덴을 떠나 바다 건너 영국의 한 객사(客舍)에서 40에 접어든 몸으로 혼자 씁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거리로 나온 나는 늘 다니던 음식점에 들러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 때 가게에는 다른 손님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좀 과식
  
했구나 생각하면서 포오크를 놓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괴상한 경험은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났다.

내가 식사를 하던 방안 마루바닥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뱀과 두꺼비가 득실거리며 갑자기 땅에서 솟은 듯이 수없이 나타났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이 아찔했으나 잠시 후 기분 나쁜 그 생물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곳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인물이 이상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대여! 과식(過食)하지 말지어다 그 인물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서 홀연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섰던 곳에는 구름이나 안개처럼 희미한 것이 떠돌아 나 자신도 그 속에 감싸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곧 안개는 걷히고 방안에 혼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급히 숙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집주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박혀 방금 격은 그 기괴한 경험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엔 심신(心身)의 피로나
  
그런 류의 어떠한 변화에서 온 환각(幻覺)인가 생각했으나,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나 자신 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건강했을 뿐더러 일에 쫓기어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의 일인지라 심각히 생각한다든지 고민할 나위도 없이 곧 잠이 들었다. 이튿날 밤에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곤 꿈에도 모르고 .......
  .

이튿날 밤 내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에 또 다시 그 괴상한 인물이 이번에는 내 침대 머리에 현신(現身)한 것이다. 나의 놀라움과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나에게 더욱더 기막힌 말이 떨어졌다.

나는 그대를 인간 사후의 세계, 영의 세계로 동반하리라. 그대는 그곳에서 영들과 사귀고, 그 세계에서 듣고 본 바를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


이 불가사의한 인물과는 그 뒤 이승에서는 물론 영계나 사후의 세계에서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그 인물이 세상에서 말하는 신(神)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한 마음속에 숨어 있던 영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어떤 것이라고 집히지가 않았다. 다만 확신한 것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 영의 세계를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예가 없는 이 저서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나는 죽음의 기술을 스스로의 육체에 베풀어 육체를 죽음의 상태에 둔 채 인간 사후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제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서 적어 보기로 한다.

우리가 죽음을 통지를 받았을 때,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사람은 영의 존재나 영계의 존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은 원래 육체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보다도 더 깊고 보다 본질적인 영과 그 영의 도구로서 활동하는 육체가 서로 둘로 갈라진 것처럼 보여준다. 이 점은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예를 보아도 누구나 곧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육체에 깃들고 있을 때의 영은 육체라는 기둥에 묶여 있으므로 해서 영이 지니고 있는 가장 영다운 성질이나 작용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으로서의 원래의 면모를 나타낼 수 있다면 극히 한정된 경우뿐이다. 앞에서 예를 든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머니처럼
죽음과 경계를 마주칠 때
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때 사람들은 비록 순간적이긴 하지만 죽음의 상태로 들어가 그의 영은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영계의 문안을 넘보게 된다.

내가 영계에 들어가 영들과 사귀게 된 것은 나 스스로의 의지로 나의 영을 나 자신의 육체로부터 벗어나게 한 까닭이었다. 나는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영들과 어울린 것이 아니라, 육체를 지니지 않은 하나의 영으로서 어울린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또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영들이 보이지 않듯이 영들에게는 인간의 육체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으로서의 나를 보았고 나를 영으로서 대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와 영을 분리하여 영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나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소개함으로써 대신 하겠다.

영이 육체로부터 이탈하는 초기에는 실상 잠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또렷하게 깨어있는 상태도 아닌 특이한 감각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때 나 스스로는 자신이 완전히 깨어 있다는 의식이 뚜렷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이 깨어 있다는 감각은 육체적인 인간이 흔히 느끼는 그러한 각성(覺醒)이 아니라 영으로서의 감각차원에서 느끼는 각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사로운 눈과 귀, 코를 통한 외형적인 육체적 감각은 모두 잠들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가 육체로서의 인간에 속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앞서 말한 영혼으로서의 감각은 더욱더 밝아져서 뚜렷해진다. 영으로서의 의식 속에서 느끼는 시각과 청각 더구나 촉각에 이르러서는 보통 때의 50배 1백배나 날카로워진다는 것을 나 자신이 알아차린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러한 감각은 젼혀 육체적인 감각에서 느끼는 깨달은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 설명한 그대로이다. 만약 이러할 때의 나를 누가 본다면, 나는 인간으로서의 의식을 완전히 잃고 죽은 것이라고 밖에는 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심장의 고동이나 맥박도 멎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태를 가리켜 나는 죽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같은 말이 되겠지만 다음에서 서술하려는 이유로 말미암아 영의 상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죽음의 상태, 즉 영의 상태에 들어가면 자기 자신의 영이 자기의 육체 속에 있는 것도 또 육체 밖에 있는 것도 그 어느 쪽도 아닌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들의 모습이나 영계의 분위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더군다나 영들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을 이해 할 수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영들을 만질 수 있을 듯한 촉각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영과 나 사이에 육체라고 하는 방해물이 없어진 까닭에 직접 영들과 어울리게 되었다는 증거이다.

이런 상태가 더욱 길어지면 영의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다른 영들과 마치 인간을 사귀는 것처럼 사귈 수 있게 되는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단계가 놓여 있다.

육체를 이탈한 뒤 아직 그 육체와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는 단계에서는 나의 영은 방금 이탈한 스스로의 육체를 역력히 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육체에 대한 지배력을 지속한다. 그 상태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서 20-30미터 가량의 높이로 나직이 떠 있었다. 아래를 굽어보니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육체가 보였다. 내가 육체적 시각에서가 아니라 영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이 사실 만으로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육체적 시각이었다면 지붕 밑에 있는 나의 육체나 침대는 볼 수가 없었을 게 아닌가?) 나의 육체는 그때 침대 모서리에 목덜미가 닿아 있었다. 영으로서의 나는 허공에서 생각했다.

저래 가지고는 목이 아플 텐데, 혹시 질식이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몸이 틀어져 바로 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나의 영이 그렇게 생각하자 나의 육체는 몸을 틀어 목덜미를 침대 모서리에서 벗어나도록 움직였다. 이 순간의 나의 육체는 누구의 눈에도 죽은 시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혹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죽은 시체로밖에 보이지 않던 육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대경실색하여 심장이라도 얼어붙을 지경이었으리라.
이 상태로부터 다시금 더 나아가서 나의 영이 나의 육체를 거의 의식할 수 없게 되면 나의 영은 완전히 육체에서 이탈하여 영계의 어는 곳이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많은 영과 자유로이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들과 사귀고 영계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일들을 보고 듣고 해서 돌아오게 된 것도 이러한 방법으로서였다.

<역자주> 스웨덴보르그가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고 자기 방에 들어박힌 채 며칠씩 식사를 걸렀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런던에 머물고 있을 때 그의 하숙집 주인은 그러한 그를 무척 수상하게 생각했음인지 그 기록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또 그가 방에 들어 박혔던 기간은 2-3일에서 10일에 걸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순서를 밟아 영계나 영들에 관한 일을 적어 나가기로 한다. 


              죽은 사람도 생각은 한다.

영원히 잠든 사자(死者),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모든 활동을 마치고 고요히 죽음의 자리에 몸을 뉜 죽은 사람, 사자라고 하면 모든 것이 끝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자도 실은 고요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면 누구나 나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디인지 잘 모르지만 자기를 부르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것이 어디에서 부르는 것인지 왜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웠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부르는 인기척은 계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세차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그 부름은 그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그가 기묘한 인기척에 이끌리어 찾아간 곳은 어떤 집 방안이었다. 그는 그 자신도 까닭을 모른 채 찾아간 그 방안을 둘러보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에는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 명쯤 모여 있었다. 다만 그가 알아차린 것은 방안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깊은 슬픔에 잠긴 표정이었다는 점이다. 침울하고 구슬픈 분위기로 꽉 차있었다. 누구한사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것은 사람들의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꾹 참으려는 듯한 흐느낌뿐이다.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그는 더욱 불안하기만 했으나, 그래도 그 이상한 모임의 진상을 알아보려고 차분히 방안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둘러싼 한 복판에 침대 하나가 놓여 있고 거기에는 한 인간이. 즉 죽은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사정을 겨우 알아차린 그는 이번에는 침착하게 다시금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가 알만한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이때서야 그는 겨우 깨달았다. 자기가 하나의 영으로서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그렇게 깨닫자 새로운 불안에 휩싸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나 않을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방안에 바람이 스쳐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그때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람의 그림자가 희미하나마 방안에 떠올랐다. 다음 순간 그 그림자처럼 생긴 희미한 것은 소리도 없이 시체가 있는 침대의 머리에 다가 앉았다. 그는 놀란 나머지 어안이 벙벙하여 꼼짝도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그림자처럼 엷은 침입자의 출현은 아가부터 마음에 걸렸던 한 사실에 대한 의미를 꼭 꼬집어서 얘기할 것은 못되지만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는 이방에 처음 들어 왔을 때부터 가느다란 숨소리가 마음에 걸려 의아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사자(死者)의 가슴 언저리에서 새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물론 그것만으로 의문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사자의 숨결인가하고 여겼으나 곧 자신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부정했다.
사자가 호흡을 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은 그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가 처음에 생각한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의 숨결, 다시 말해서 사자의 호흡이었던 것이다. 이상한 사람의 그림자가 방안에 들어 왔을 때
  그의 뇌리엔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저것이 사자의 호흡이라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잖은가?

이윽고 더욱 놀라운 사태가 일어났다. 그것은 사자의 몸에서 아까 침대 머리에 다가 앉았던 이상한 그림자와 같은 것이 문득 일어나 앉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순간에는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사자의 몸에서 빠져 나온 그림자와 먼저의 그림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은 것이다. 그 모양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밖에는 느껴지질 않았다.

잇달아 일어난 이 무서운 사태의 진전으로 그는 자신의 존재조차 잊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그의 머릿속은 혼란하기만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나 약간 마음이 안정되는 듯하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있고, 두 그림자의 대화도 계속되고 있는 듯했으나, 그 순간 그가 비로소 깨닫고 놀란 일이 있으니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두 그림자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며, 두 그림자 역시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상식을 초월한 현상이었다.

시간은 다시 흘러 두 그림자는 사라지고 사람들도 죽은 사람을 밖으로 운구(運柩)하여 옮겼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육체의 죽음은 곧 모든 것의 끝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승, 물질계요 자연계의 광명 속에서 사물을 보고 느끼고 하는 이상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나 스스로 영이 되어 영계에 들어가 영의 세계를 보고 오는 나로서는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 것인가를 일일이 사실을 들어 지적해 보일 수가 있다. 이제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전에 우선 인간의 죽음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말해보기로 한다.

앞에서도 잠깐 말한바와 같이 인간의 육체의 죽음이란 이승에서 모든 일에 대한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은 물질계와 자연계의 관념으로 본다면 분명히 옳은 일이다. 그러나 죽음은 영의 입장이나 영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단지 육체 속에 깃 들고 있던 영, 즉 육체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구로써 사용해온 영이 육체의 사용을 그치고, 육체를 지배한 힘을 잃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영은 그 뒤에 영계를 향해 여행길에 오른다. 죽음이란 영으로 볼 때에는 영계에 오르는 여로(旅路)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이런 견해에 대한 예를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해 보기로 하자. 인간이 죽으면 그 육체에 살고 있던 영은 영계로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보통 이승의 시간으로 따진다면 보통 2-3일이란 시간이 걸린다. 죽음과 동시에 육체 속의 영은 비로소 눈을 뜨는데, 이 일을 알아차리고 영계로부터는 다른 영(안내 역할을 하는 영)이 사자의 영을 찾아온다. 이는 영끼리의 감응(感應)에 따라 일어나는 결과이다. 그리하여 영계로부터 찾아온 인도하는 영과 사자의 영은 죽은 사람의 육체가 있는 장소에서 서로의 상념(생각)의 교환을 시작한다. 이 교환에 관한 일은 따로 자세히 말하겠으나 어쨌든 이 교환은 죽은 사람의 새 영이 장차 영원한 삶을 보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준비의 한 단계를 이룬다.

앞에서 말한 사후 2-3일간은 죽은 사람의 영이 아직 육체에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상념의 교환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 죽은 사람의 영은 죽은 육체 속에서 조용히 소리 없이 영의 호흡을 지속하며 또한 영으로서의 생각에 잠기게 된다.
죽은 자도 생각을 한!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과 인도하는 영과의 상념의 교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말하기로 한다. 

 

               죽은 뒤에 시작되는 영광의 대화
                      

제프는 가족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저승길로 떠났다. 슬픔에 한숨짓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의 시체는 이승에서 모든 일을 마쳤다는 듯이 고요히 영면(永眠)하였다. 제프가 이 세상을 하직한지 몇 시간이 지났다. 제프의 둘레에는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여 눈물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제프 ---- 죽은 자가 된 제프는 이 때 불현듯 무엇인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조금 전에 죽었을 것인데........ ? 사람들이 내 손을 잡고 마지막 이별이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 그것은 꿈이었단 말인가.......... ?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가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의 모습도, 그가 오래 살아오던 낯익은 방도 그의 눈에는 보일 까닭이 없었다. 분명히 방에는 사람들이 함께 있건만 제프는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죽은 자로서 누워 있어 이미 별개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프의 의식 속에 이러한 마음이 솟아난다는 것은 제프의 영으로서의 깨달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프는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는 그 육체의 눈을 뜨고 둘레에 서있는 사람들을 본다든지 입을 열어 말을 건다든지 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가 영으로부터의 조용한 호흡을 소리 없이 계속하고 심장도 고동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

이윽고 제프는 영으로서의 의식 속에서 놀라움의 소리를 지르고 숨막히는 일을 겪었다. 그는 눈앞에서 아직 희미하나마 그 때까지 보기는커녕 상상조차도 못했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지금까지의 세계와는 전혀 별도의 세계로구나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바로 사후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는 죽음의 수렁에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시야에는 희미하지만 넓은 평원처럼 보이는 경치 그리고 건너편 기슭이 보이지 않는 큰 강, 엷게 하늘에 빛나고 있는 태양 같은 것, 어쩐지 인간을 방불케 하는 생물 ----- 그러나 아지랑이처럼 희미한 모습이지만 ----- 이 자유롭게 그 세계의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그런 불가사의한 세계가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얼마 후 제프는 몽상이라고 할까, 환상이라고 할까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기 바로 앞에 그 때까지도 상상도 못했던 두 그림자가 나타나 바로 앞에 다가앉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계로부터 인도하는 영이 나타난 것이다.

이끌어주는 영은 제프가 자기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을 알자 제프의 얼굴을 지그시 눈 여겨 보았다. 이에 응해서 제프 안에서 눈을 뜬 영(정확히는 아직 정령(精靈)이지만)도 제프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인도하는 영에게 얼굴을 돌렸다. 영끼리의 사이에서는 얼굴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념의 교류가 되는 법이지만, 제프의 정령은 아직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인도하는 영은 제프의 정령을 영으로서의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제프의 정령은 왼쪽 눈 위의 엷은 천이 천천히 벗겨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왼쪽 눈에 희미하게나마 조금씩 빛이 비쳐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그것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려고 할 때에 가느다랗게 뜬 눈까풀 사이로 바깥세상을 보는 때처럼 매우 어렴풋하고 희미한 상태였다. 다음에 제프의 정령은 얼굴 전체를 뒤덮였던 부드러운 엷은 천이 차차 말려 올라가는 듯함을 느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영으로서 눈을 뜨기 시작한
  제프의 정령은 그 마음속에 여지껏 육체의 인간이었을 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영으로서의 상념이 한꺼번에 밀려 스며온다.

왼쪽 눈 위에서 혹은 얼굴 전체에서 차츰 말리어 걷히는 얇은 천은 인도하는 영의 손으로 말려 올려지는 것은 물론 아니며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까닭이 없다. 이것은 제프의 정령으로서의 생각이 육체의 정령으로 있었을 때의 생각에서 벗어나 영의 상념으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상징이요 표시인 것이다.

영으로서의 상념을 스스로 받아들인 제프의 정령은 이 때에 분명히 자기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인도하는 영은 이 때에 제프의 정령에게 영계의 말을 전했다
그대는 이제 정령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영으로서의 영원한 삶을 영위하라 이제는 제프의 정령도 자기를 안내하러 온 영의 말뜻을 역력히 알아듣게끔 되었다. 인도하는 영과 제프의 정령 사이에 상념의 교환이 이루어진 것은 이 때부터였다.

인도하려온 영이 물었다.
그대는 인간으로 있을 때에 어떠한 생애를 보냈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제프의 정령은 육체를 가진 인간 시절의 생애를 더듬어 두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족했다.

영계에는 허다한 단체가 있다. 지금 그대에게 이를 보여 주리라
안내를 맡은 인도하는 영은 이렇게 말하자 지금까지 제프의 영이 볼 수 없었던 영계라든가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보내고 있는 많은 영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인도하는 영은 제프의 정령이 짓는 얼굴의 표정을 응시하고 조그마한 얼굴의 변화도 놓치지 않을 세라 눈여겨보고 있었다.

영계에는 뒤에 언급하겠지만 수없이 많은 단체가 있다. 영들은 빠짐없이 자기에게 가장 알맞은 단체에 소속되어 영원한 삶을 누린다. 인도하는 영이 나타나 사자의 영과 상념의 교환을 갖는 것도 실은 그 사자의 영이 인도해 주는 영과 같은 단체에 속할만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가를 알고자 함에서였다.

그러므로 이 상념의 교환을 통해서 동일한 단체에 속할 성질을 지녔다고 판단이 되면 인도하는 영 스스로의 손으로 사자의 영을 영계(단 최초의 정령계이다)로 이끌어 간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그 사자의 영이 다른 영계의 단체에 속해야 옳다고 생각되면 곧 사자의 영을 육체 속에 둔 채로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되면 사자의 영은 그 뒤를 이어 잇달아 나타나는 안내하는 영에 의해서 자기가 장차 소속할 만한 단체를 결정할 때까지 육체 속에 남아서 영으로서의 삶을 보내게 된다. 따라서 이 동안에는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사자도 생각하고 있다
고 말 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제프의 예에서 말한
사자의 영과 인도하는 영과 상념의 교환에 관해서 설명을 보충해 보기로 한다.

우선 우리가 첫째로 의문을 품게되는 것은 영계의 말을 익혔을 까닭이 없는 제프의 정령과 영들 사이에 이미 말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비밀은 다름이 아니라 영계의 말은 영들이 배워 익히지 않더라도 마음에 생각이 떠오르면 저절로 말이 되어 상대방에게 통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하는 영이 인간으로서의 제프의 생애에 대해서 질문한 것은 인간세계에서의 생애 속에는 영이 된 제프의 성질을 알 수 있는 많은 열쇠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인도하는 영은 그것을 알아야만 장차 제프의 영이 속해야 할 영계의 단체를 판단할 수 있는 참고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또 우리가 가장 괴상하다고 느낀 것은 앞의 예를 든 가운데 두 번 정도 나온 표상(表像), 즉 심볼이라고 생각한다. 표상이라고 하면 한 가지 일을 무엇인가 공통점을 암시하는 다른 심볼로 나타내는 것이며, 가령 붉은 색은 정열을, 흰색은 순결이라고 하듯이, 표상은 이승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또 제프의 얼굴에 덮여 있던 엷은 천을 벗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함으로써 제프의 정령이 이미 인간계를 벗어나 그 생각이 영적인 것으로 바뀌었다고 가르쳐준 인도하는 영이 취한 표상 등은 아직도 이승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상 방법이다.

그러나 영계의 표상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표상이 많다. 방금 든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제프의 정령에게 영계의 모습이나 영계 단체가 뚜렷이 보인 것도 인도하는 영이 표상이라는 방법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지만 영계의 놀랄만한 표상에 관해서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제프의 영은 이렇게 하여 어느 영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어느 영에 의해서 인도되어 간다. 사자의 영(정령)은 영원히 삶을 보내게 될 영계로 떠나기 전에 우선 정령계로 안내되는데 그 정령계로 인도되는 과정에 대해선 다음에서 말하기로 한다. 


               정령계(精靈界)로 가는 길

나는 방금 죽은 사자의 정령이 인도하는 영의 안내로 정령계로 인도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이제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이 무렵 인도하는 영과 정령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어떤 교외의 흐르는 강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강변에는 포도밭과 보리밭
  
그리고 목장과 축사(畜舍) 등, 그리고 갖가지 모양을 한 집들, 게다가 언덕 위에는 섬이 보이고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이승의 것이어서 그들의 눈에는 뛸 리가 없다. 그들의 대화를 드문드문 들었다.

그대는 저 건너편에 펼쳐진 빙원(氷原)이 보이는가? 그대가 이제부터 가려는 정령게는 저 빙원 너머 아득히 먼 저쪽 산골짜기에 있다. 영이 말하는 빙원 같은 것은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이 세상의 풍경에는 전혀 없는 존재이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같은 공간에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모두 이승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 즉 영계의 그것이다.

정령은 의아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소? 또한 정령계라는 것도 나에게는 어떠한 곳이라는 개념조차 분명치 않소. 그대의 말은 모두가 어둠과 같아서 나로서는 하나도 없는 거나 같으니 어떻게 할 것이요?


인도하는 영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는 듯이 보였다.
아직은 좋소. 그대는 염려하지 마시오. 멀지 않아 그대도 우리의 말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오.


정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 빙원은 보이질 않으나 다른 것은 눈에 보입니다. 그것은 바다처럼 보이며, 그 해변엔 큰 바위가 있고 거암(巨巖)위에는 마치 사람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것이 수없이 보입니다. 또 큰 바위 옆에는 큰 고래와 같은 물고기가 있어 큰 입을 벌리고 바위를 삼키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

여기까지 말하자 인도하는 영은 정령의 말을 가로막고 말했다.
그대는 정령으로서의 눈이 차츰 뜨이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그 바다라고 하는 것을 잠시 눈여겨보시오.

그들은 여전히 강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보리밭 언저리까지 가자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강 건너편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다리가 놓여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공중을 보이지 않는 다리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걸어간 것이다. 강 건너편으로 걸어가자 마치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을 때처럼 서슴지 않고 성 안으로 들어가 곧장 성벽을 아랑곳없이 통과하여 빠져나와서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영에 의해서 인도되었던 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지난날 어떤 시가지를 지나 교외로 걸어가고 있었다. 도중에 나는 눈을 뜨고 있었으며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감각을 가진 것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눈을 뜨고 각성한 상태였다고 생각한 그 자체가 환상이었다. 나는 걷고 있는 도중에 숲이라든가 집, 강, 사람 등 늘 보던 인간계의 풍경을 모두 다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은 인간계에 있는 숲이나 가옥이 아니라 영계에 속한 것이었다. 나는 실상 그때에 영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육체로 되돌아 왔다. 그러자 내 주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지금까지 보고 온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고 아찔했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영의 인도를 받아 걸어가고 걷고 있던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혹은 얼마나 날짜가 지났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과 내가 인간계로 돌아온 순간 서 잇던 자리가 전혀 낮선 고장이었다는 두 가지 사실 뿐이었다.

인도하는 영에 의해 인도를 받는 이 새로운 정령은 멀지 않아 정령의 세계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때까지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상상 조차도 하지 못했던 정령의 세계, 즉 정령계를 직접 눈여겨보게 되는 동시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에는 나는 영계 중에서도 가장 흥미 있는 세계, 즉 이 세상의 인간과도 관련이 깊은 세계인 정령계의 여러 가지 일을 말해 보기로 한다. 

 

             정령의 세계 '정령계'

이 세상의 인간이 죽어서 가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정령계(精靈界)이다. 인간은 죽은 후 즉시 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령이 되어 정령계로 들어간 후 다시 영계로 올라가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보내는 영이 된다. 정령이 인간과 영과의 중간적인 존재인 것처럼 정령계도 인간 세계인 이승의 물질계, 즉 자연계와 영계사이의 중간이 되는 세계이다.

정령계는 얼마나 넓고 큰 것인지 그곳을 드나든 나 자신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넓고 큰 것이어서 매일 매일 몇 만 아니 몇 십만이라는 인간이 육체의 삶을 끝마치고 정령계를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그 광대함을 가히 짐작할 것이다.

정령계는 그 둘레를 둘러싼 거대한 산맥 곳곳에 영계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이 통로는 정령계에 살고 있는 정령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법이다. 다만 그들이 정령계에서 영계로 옮겨갈 준비가 끝났을 경우에만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령계에서 사는 정령들은 영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으며, 이 세상 사람들이 마치 이승만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정령계만을 온 세계인 것으로 알고 생활한다.

그렇다면 정령계에서 정령들이 어떠한 과정과 준비를 거쳐서 영계로 갈 수 있게 되는지 또 그 영계로 가기위한 준비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 설명을 하기 전에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려한다.

정령계는 영계임은 틀림없으나 아직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이승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흘 전에 정령계로 들어온 정령과 죽기 전에 그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으로서 이날 처음으로 정령계로 들어온 정령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새로 온 정령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의 장례 준비를 보고 왔다. 그대의 육체는 곧 땅에 묻힐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또 하나의 정령은 나자빠질 듯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 채 말했다.
내 육체가 파묻히다니 무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미친 모양이로군. 장사를 지내는 것을 곧 중지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휘저어 미친 듯이 외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해 나는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하여 떠들어대는 정령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이제 정령이오. 육체를 가진 인간이 아니란 말이오. 그대는 이 사실을 잊어선 안 되오. 그대는 정령계로 인도될 때에 이 말을 못 들었단 말이오? 그런 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오.”                  

내 말은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게 해주었는지 그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깜박 잊었었소. 이젠 내가 정령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소. 그렇다면 나의 볼일을 다 마친 육체의 매장은 추호도 관여할 일이 못되오.

정령계는 적어도 정령들의 의식 속에서는 인간계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엇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령의 경우처럼 아직 자기가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정령은 상당한 수에 이르며, 정령계로 안내되기 전에 인도하는 영으로부터 정령이 되었음을 통고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일단 정령계로 들어서자 잊기 일쑤인 것이다.

정령계가 너무나 인간계와 비슷한 까닭에 자기가 죽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시 인간계에서처럼 살아 있는 데 놀라는 정령도 매우 많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정령계와 인간계가 비슷함에 놀라는 자와 죽었다고 생각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와하는 자의 두 가지가 있다.
나는 죽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처럼 살아 있구나, 이 어이된 일일까?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살아있는 이 자체가 환상이란 말인가? 이러한 정령은 영락없이 이러한 자문자답에 스스로 괴로워했다. 이러한 정령에게는 영계로부터 온 지도하는 영(말하자면 정령의 입장으로 볼 때 이들은 영계의 경험이 풍부한 선배가 된다)이 가르쳐 준다.

그대는 정령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음이라는 것은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죽은 것이다. 그러나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죽은 그대는 이제 정령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대가 죽었음은 사실이요 그대가 이제 살아 있음도 또한 진실이다. 불필요한 망상으로 헤매지 말라 그대는 정령으로 살아 있음이니 이는 만에 하나라도 거짓이 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령에게 알려주었다. 인간은 원래 영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음으로 육체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가 죽으면 영은 정령이 되어 정령계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영이 되어 영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영원히 영의 삶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그 때를 위한 준비 기간이라는 사실 등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시하는 정령이 많다.

나는 인간 세계에 있을 때 그런 얘기를 전혀 들은 바 없고 또한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처음 듣는 말들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 듣고 보니 눈앞이 어둠으로 덮인 듯한 생각과 눈앞이 훤히 열리는 듯한 생각이 엇갈리어 마음만 어지럽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는 어리석었던가?

말하자면 인간은 육체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영계라든가 영이라든가 하는 것은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자기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면 어차피 자기의 종전까지 생각이 단순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으로 있을 때엔 상상조차도 못했던 일이 잇달아 일어나므로 마음과 정신은 혼란할 뿐이라는 것이 이 정령들의 솔직한 감상이다.

이러한 정령들도 정령계에서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 정령들로서의 삶에 차츰 확신을 갖게된다. 내가 만난 많은 정령들은 내가 이승의 육체를 지닌 채 찾아온 이상한 나그네임을 알자, 너 나 없이 이승에 남겨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갈을 부탁했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다. 정령으로서 살아 있으니 이 사실을 가족에게 전해 달라 거의가 이러한 부탁이었다.

나는 이 기회에 인간 세계의 학자들과 종교 관계자에게 한 마디 충고하고자 한다. 정령계에 들어간 정령들이 자신은 죽은 것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이 그토록 놀라움과 의혹에 휩싸여 괴롭게 번민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학자나 교회의 목사로 불리는 사람들이 인간의 본체(本體) 및 영이나 영계에 관한 일을 하나도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릇된 생각마저 부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 ----- 내가 말하는 자연계와 물질계의 태양 아래서만 물체를 보고 또한 자연계와 물질계에 뿌리를 둔 사고 방식만을 고집한다. 그리하여 자연계의 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물체나 자연계적인 사고방식으로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은 모조리 존재하지 않는다고 제멋대로 단정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인 양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영계의 빛에 의해서 영계의 사고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 전부를 부정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정령계는 인간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정령들은 모두가 하나의 인체(人體)(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의 인간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으나)를 갖고 있고, 얼굴의 생김새도 정령이 된 얼마동안은 이 세상의 인간이었을 때나 별다른 점이 없다. 또 정령계에는 이승에 있는 모든 것, 예를 들면 산이나 강 그리고 숲과 집 등 무엇이든지 있다. 게다가 정령들은 인간이 지닌 온갖 감각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다만 감각상으로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영으로서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 영적인 성격이 차츰 정화되어 물질계의 티가 사라지면 영적인 면이 들어나 영계로 갈 자격이 생긴다. 정령계는 이러한 과정을 위한 시련과 수양의 광장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정령들의 영적인 감각이 뛰어난 예로서 그들의 놀라운 기억의 능력을 들어보기로 한다. 영계에서 찾아온 검사(檢査)의 영 앞에 한 사람의 정령이 서 있다. 검사의 영은 우선 정령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이윽고 시선을 옮겨 가슴과 배 그리고 다리와 손끝까지 정령의 전신을 훑어본다. 정령계에 있는 다른 영들도 주위를 둘러싸고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어떻게 된 셈인지 기묘한 일이 일어나 다른 정령들을 놀라게 했다. 검사의 영 앞에 서있는 정령의 머리 위에 안개처럼 엷은 구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구름은 차츰 모양을 가다듬어 한 채의 집으로 변했다. 그 집 입구에는 한 사나이가 나타나 주변을 살펴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정령 (즉 지금 검사를 받고 있는 정령)은 나쁜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정령들이 놀란 것은 다음에 일어난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그 정령의 머리 위에 빚어진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던 다른 정령들은 땅위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 지면에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검사하는 영 앞에 서있던 정령의 발 앞에 한 권의 비망록처럼 생긴 수첩이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 한 장 한 장 넘겨지고 있었다. 이 비망록이 언제 나타났는지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이 비망록에는 그 정령이 인간계에 있을 때 저지른 죄상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거기엔 뇌물을 받고 부정행위를 한 그의 인간계 시절의 상세한 행동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놀라웁게도 그 기록 속에는 그 자신이 인간계에 있을 때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일까지도 적혀 있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 책은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저술한 것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여기에 나타났단 말이요? 한 정령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외쳤다. 검사하는 영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그대의 기억 속에서 이 저술을 끌어내어 여기에 재현 시켰다. 그대는 조금도 놀랄 것 없다. 그러자 그 정령의 놀라움과 흥분은 더할 뿐이어서 다시 이렇게 외쳤다. 이 불가사의한 일을 어찌 이해할 수가 있겠소? 이 저술은 분명히 내가 인간계에 있을 때 쓴 것이오. 그러나 이토록 세밀한 대목은 미처 기억하질 못하오. 그런데 내가 잊고 있는 일까지 적혀 있음은 어찌된 조화요?

이 정령은 인간 시절에는 학자였다. 그런데 그가 쓴 책이 정령계인 이 곳에서 다른 정령들의 눈앞에 재현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가 외친 것처럼 그 자신이 인간이었을 때에 잊고 있던 자세한 대목까지도 나타나 있어 한 자 한 획도 틀림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검사의 영도 말하고 있듯이 검사의 영이 학자인 정령의 기억 속에서 이끌어내어 정령들이 보는 앞에다 재현시킨 것인데,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간계의 학자일 때 잊고 있었던 일도 정령이 되면서부터는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령이 되면 인간 시절과 같은 육체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기억, 이성, 지혜 등 영적인 능력이 인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나게 발달한다는 좋은 일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든 예에 덧붙여 말할 것이 있다. 검사의 영은 정령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을 그의 얼굴과 온몸을 훑어보고서 이끌어 냈다. 이것이야말로 영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능력이며,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정령의 기억 속에서 이끌어 낸 것을 다른 정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현시킨 것이다. 다만 나타내는 방법은 인간세계에서처럼 저작이나 비망록이나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른 정령들의 영적인 시력으로만 볼 수 있는 형태로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영적인 시력의 발달 없이는 정령들이라 할지라도 보지를 못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했을 때에 가족들이 한꺼번에 정령계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가족들은 얼굴이 닮은데다가 정령계에서도 한 곳에 뭉쳐 있으므로 얼른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정령계에서 나날을 보내게 되면 날이 갈수록 조금씩 얼굴 모양에 변화가 생기고 그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친구나 아는 사람 사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서는 한 가족이었을망정 지금에 와서는 이미 얼굴 모습이 서로 갈수록 달라지는 이들 정령들의 대화를 들어 보기로 한다.

인간이었을 때 아버지였으리라 짐작되는 정령의 말이다.
당신은 어느 단체로 가겠소? 어머니였으리라 짐작되는 정령의 대답이다. 내가 가려는 단체는 당신의 단체와는 다른 것이오. 정령계를 졸업한 정령은 영이 되어 영계로 간다는 것은 이미 말한바 있으나, 어떤 영이든 가장 자기의 본성에 맞는 영계의 단체에 들어가 그 후의 영원한 영의 생활을 보내게 된다. 영계에는 영의 성격이 다양함에 따라 수없이 많은 단체가 있으나, 지금 얘기를 나눈 두 정령이 지적한 단체 역시 이 영계의 단체를 말한 것이다. 아들로 짐작되는 정령의 답은 이렇다. 저의 희망은 아버지와 같은 단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저의 희망이 영계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불안입니다. 딸의 정령도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도 떨어져 전혀 다른 단체를 희망해요. 그 까닭은 제가 인간으로 있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오빠보다는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그 사람은 아직도 인간 세계에 있으나 언젠가는 영계로 와서 제가 기다리고 있는 단체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아직 몇 살 안 되는 어린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갈래요. 어느 단체이건 어머니가 가고파 하는 단체라면 다라 갈래요.

이 세상에 있을 때 설사 가족이었다 하더라도 정령계에서는 모르되 영계에서는 일단 별도의 단체에 속하게 되면 그로부터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가족의 경우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어린이 그리고 딸은 장차 영계로 오게 될 애인과 함께 같은 단체에 속할 것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기 다른 영계의 단체로 가고 말았다.

이상의 얘기를 인간 세계의 인정이나 상식으로 비추어 본다면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영계의 규정이다. 나는 영계의 율법을 설명하기위해 조금 더 인간과 영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원래 인간이란 영계에 속하는 영과 자연계에 속하는 육체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은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인간을 두 부분으로 분리할 경우, 어느 부분이 영이고 어느 부분이 자연계에 속하는 육체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일까? 이러한 구분은 다음과 같이 밝힐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마음의 본성, 즉 마음 그것 속에서도 가장 내면적인 것, 진실한 뜻에서의 지혜, 이성, 지성, 내심의 요구 등 그 인간은 가식 없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영의 영역이며,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영의 작용이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육체는 말할 나위도 없이 눈, 귀, 코, 혀, 몸의 감각 따위의 육체적이고 표면적인 감각은 모두가 물질계 및 자연계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은 뒤 정령이 되어 정령계로 가거나 영이 되어 영계로 가거나 그 영은 차츰 원래의 영 그 자체로 되돌아간다. 정령이라고 할지라도 처음엔 아직 외부적 감각의 잔재나 외부적 기억을 떨치지 못하나 차츰 이에서 벗어나 원래의 영의 모습으로 돌아가 영적인 감각이 두드러지게 빼어난다.

원래의 영의 모습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나 비근한 예를 든다면 만약 우리가 사회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털어버리고 한밤중에 자기 방에서 명상에 잠기고 자신의 진정한 마음속을 들여다본다고 하면, 바로 그것이 우리가 원래 지니고 있던 마음의 본바탕이요, 영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항간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도덕, 법률, 예의, 타인에 대한 배려, 습관 그리고 이해타산 등 그물코처럼 외면적인 것에 얽히게 되고, 혹은 지식이라고 하는 표면적인 기억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이러한 번잡한 것은 일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차차 뿌리치고 영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령계가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가족의 경우도 정령계에 들어간 무렵에는 서로가 얼굴도 닮아 있었다. 그러나 정령계에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인간 세계에 있었을 때의 가족의 혈연 관계 같은 외면적인 인연을 차츰 불식하고 자기 자신의 참된 영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이제는 먼저처럼 얼굴 생김새도 닮은 데가 없다, 그리하여 제각기 단체가 다른 영계로 들어가 마침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어린이가 아무리 같은 영계의 단체를 희망했을 지라도 정령계에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갈수록 멀어져 가는 것은 뻔한 일이다.

정령들은 이렇게 해서 처음 정령계에 들어간 상태(이를 제1 상태라고 한다)로부터 차츰 영에 가까운 상태(제2 상태)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 정령은 풀밭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나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게다가 쉴 사이 없이 무엇인가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미쳤는지도 몰라. 그렇잖으면 내 지성과 두뇌가 모조리 파괴되었나봐. 아무리 해도 세상에 있었을 때의 지식을 생각해 낼 수가 없으니 이제 나의 장래는 완전히 암흑으로 뒤덮었어. 아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러자 영계의 영이 나타나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그렇게 슬퍼하오? 그대의 슬픈 까닭을 들어 충고하리다.

이에 정령이 슬퍼하는 까닭을 설명해 들려주자 듣고 있던 영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정령은 웃고 있는 영을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았으나 그래도 아직 의혹에 싸인 표정은 가시지를 않았다.

영은 말했다.
그대는 그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소. 그대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시절의 표면적인 지식에 불과하오. 예컨대 학자의 지식과 같은 것은 영계에서는 모두 불순물이라고 부르오. 그대가 상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정령으로서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오. 그러한 표면적인 지식은 단 한 가지도 영계에서는 쓸모가 없는 것이오. 따라서 그대가 슬퍼할 까닭이 없지 앉소?

정령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듣고 있었으나 불현듯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말을 듣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오. 지식에 대한 기억이 쇠퇴 되면서부터 나에겐 이상한 다른 능력이 주어지는 듯한 느낌이 가끔 들었소. 이는 곧 육체적 인간이 퇴보인 동시에 영적인 성격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란 말이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소.

그는 요즈음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영계의 모습과 영계의 움직임이 때때로 보게 되었고 또한 다른 정령들의 얼굴에서 그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 것 같은 짐작이 들었으며, 때로는 인간 시절의 친구를 생각하면 그 친구의 영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는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가 인간이었을 때의 지식은 점차로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설명했다.

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시종 미소를 짓고 듣고 있더니, 이윽고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그대는 정령으로서의 제1상태를 거쳐 제2상태로 들어간 것이오. 그대가 영계로 떠날 날은 그리 멀지 않으리라

다음 얘기는 정령에게서 들은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정령계의 광장 비슷한 곳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홀연히 몸에 탄환이 박힌 듯한 아픔을 느끼고 주춤 걸음을 멈췄다. 무심코 왼쪽을 바라보자 그가 세상에 있을 때, 잘 아는 사이었던 한 사나이의 정령이 그 당시와는 많이 변모한 얼굴을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원한을 살만한 기억이 없으므로 이상히 여기면서 이번에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왼쪽 사나이의 아내였던 정령이 역시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몹시 무서운 생각이 들어 곧 그 자리를 빠져 나왔는데, 뒤를 돌아보자 그 두 정령은 이 세상의 척도로 따져서 10만 미터나 떨어진 간격을 두고 아직도 눈을 뒤집어 깐 채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은 서로 노려보고 있으리라. 그러나 그 이유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는 방금 보고 온 해괴한 광경에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이 부부는 세상에 있었을 때 무척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세계에서의 부부란 도시 세상의 관습, 평판, 이해타산 등 외면상의 끊기 어려운 정분과 인연 때문에 맺어지고는 있으나, 마음속으로는 서로 미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령계에 들어선 당초에는 아직도 그러한 인간계의 기억이 남아 있어 정령계에 와서도 서로 같은 곳에 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정령계 제2상태로 들어갈 무렵에는 두 사람의 영적인 본성이 종래의 외면상의 본성에서 벗어나 감추고 참던 미움이 노골적으로 들어난다. 아미 이 부부의 경우도 그런 예가 아닌가 한다. 하여간 이러한 예는 정령계에서는 그다지 신기한 예가 못된다.

이러한 예는 그 영적 본성이 흉악한 정령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인간 세계에서의 타산이나 법률에 얽매이지 않는 탓인지 제2상태로 들어갈 무렵이면 흔히 이승에서의 흉악범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흉악해져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기로 한다. 

               정령계에서 영계로

정령계에서 영계로 가는 길목은 참으로 기괴한 현상이 기다리고 있다. 나 자신이 경험한 바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 날은 인간 세계의 표현을 빌린다면 산들바람이 부는 화장한 봄날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정령계에 있는 어느 들녘의 나무 그늘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들판과 그곳에 있는 정령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상도 못할 기묘한 생각이 들게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바로 화창한 날씨가 무르익을 때였다.

갑자기 나의 시야에서 들판도 정령들도 그 모두가 순식간에 사라져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어디서 광대한 정령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산봉우리의 연봉(連峰)이 어느 때보다 무서울 정도로 뚜렷하게 시야 가득히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그 산맥은 평소에 보던 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가깝게 보였으며, 마치 산봉우리들이 사방에서 발걸음을 맞추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산봉우리 틈에 눌려 죽는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산맥 가운데서도 뛰어나게 높이 솟은 두 봉우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좌우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문짝이 좌우로 조금씩 열리는 형상이었다. 다음 순간 그 곳에 산맥 너머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런 ..... . 산이 움직이다니 ........ ? 나는 목이 바짝 말라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나는 기절을 했는지 혹은 정령으로 죽었음이 분명했다. 흡사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진 인간이 죽듯이...... . 그 뒤로는 아무 것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에게는 몇 만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가 온통 붉은 흙처럼 적갈색으로 싸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움직이는 산과 산맥 사이에 길이 열렸던 으스스한 광경을 생각해 냈다. 그런 뒤로 현재까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었다.

...... 나는 그 산맥 사이에 있는 거대한 통로를 통과한 성싶다. 웬일인지 내 몸 전체가 공중에 떠올라 어떤 방향으로 비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비행 속도는 매우 느린 것 같기도 했고 또 반대로 맹렬한 속도로 날아간 것 같기도 하였다.

처음 나는 큰 강 위를 날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강은 동양의 성스러운 갠지스 강이나 중국의 양자강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은 강폭이었고 물줄기는 유유히 흐르고 있는 듯 했다.

강 위를 지나자 눈 아래에 넓은 바다가 보였다. 바다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아니 상상도 못할 짐승과 물고기가 눈에 띄었다. 바다 위를 날으며 나는 내 자신이 가는 방향 저쪽 캄캄한 하늘에 반짝이는 하나의 조그마한 별과 같은 것을 보았다. 바다 위를 한동안 날았을
  때 조금 전까지도 작게 빛나던 별이 느닷없이 거대한 불빛의 덩어리가 되어 나를 불살라 버리려는 것을 느끼고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나는 여기서 또 한번 기절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적갈색의 세계에서 두렵긴 했지만 눈을 떠보았다.
나는 살아있지. 틀림없이 살아있구나! 이것이 내가 최초로 느낀 감회였다. 눈을 뜬 뒤에 비로소 적갈색에 휩싸인 듯했던 느낌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내 앞에 눈익은 정령계의 광경이란 흔적도 없었으며 보이는 것은 끝간데를 알 수 없는 적갈색의 광막한 세계 ---- 그것은 사막 같기도 했으나 분명히 사막과는 다른 것이었다. ---- 가 펼쳐져 있고 나 홀로 그 어슴프레한 공간에 서 있었다. 이 세계에는 전혀 아무런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 듯 그 흔적 도처히 찾을 길이 없었다. 그야말로 영원한 죽음의 세계였다.

그러나 이윽고 묘한 일이 일어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적갈색으로 뒤덮힌 죽음의 사막 같은 광막한 세계 저편에 희미한 빛을 발하는 태양 비슷한 것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 태양이 뜬 높이가 나의 가슴 높이 밖에는 되지 않을 정도여서 이상야릇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 태양의 희미한 빛을 통해서 보니, 사막의 끝인 시계(視界)선상에 모나고 딱딱한 바위가 드러난 산들이 보였고, 그 산들의 주위에는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피라밋 내부 현실의 벽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은 전설적인 기사(騎士)라든가 사람들 그리고 환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 비슷한 것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공중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영계(이곳이 영계라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에 들어가 최초로 영의 소리를 들은 것은 이 때였다.
그대는 영원한 영이다. 여기는 영계이다 나는 그 소리가 아득히 먼 사막 저쪽에 보이는 바위산으로부터 들려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소리는 되풀이하여 들려왔다 그대는 이제 영원한 영이다. 여기는 영계이니라 그러자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하나의 그림자처럼 희미한 것이 나를 향하여 서 있었다. 그 순간의 놀라움이 어떠했는가는 상상에 맡긴다. 나의 기억은 놀라움 속에서 소용돌이처 주마등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사막과도 같은 적갈색의 광막한 세계 그리고 태양처럼 생긴 광채의 출현, 사막의 지평선에 늘어선 험한 바위산, 전설에 나올 듯한 인물이나 동물의 움직임 게다가 이제는 이상한 소리와 느닷없이 나타난 그 소리의 임자.........
  . 내 마음은 잇달아 벌어진 기묘한 사건의 연속으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러한 사건과 주위의 상황이 지닌 의미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의미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얼핏 깨달았다. 험한 바위산과 환상 속의 인물이나 동물들 그리고 죽음의 사막 같은 세계마저도 어느새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없어진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알아내려고 하던 노력을 잠시 그치고, 앞서 나타난 소리의 임자에게 이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는 아직 영계에 익숙하지 않았소. 영계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얼마든지 있소. 그러나 머지않아 영계에 익숙해지리라. 그 영의 말은 나의 놀라움이나 흥분 따위와는 관계없는 듯이 차분하였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아까 보던 광경이 시야에 나타났다.

이상은 처음으로 영계에 갔을 때의 경험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나는 그 뒤 다른 영들에게 들은 바, 어느 정령이라도 처음으로 영이 되어 영계로 갈 때에 겪은 일은 매우 사소한 점을 빼 놓고는 대략 나의 경험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경험은 모든 정령이 영계로 들어갈 때 다 같이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처음 영계를 경험할 때 만난 영계에서 들은 영계의 예비지식에 관한 대략을 다음에 소개함으로써 영의 안내를 가름할까 한다. 앞서 말한 그 영은 대체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우선 영계의 태양 ----- 그는 이에 대비해서 이 세상의 태양을 자연계의 태양이라고 말했다.----- 아래에 존재하는 영원한 세계가 영계라는 것. 그리고 그 태양은 바로 내가 처음 보았던 가슴 높이 밖에는 안 되는 태양이 그것이라는 것이었다. 영계의 태양은 영계의 전체에 비치어 태양처럼 빛과 열을 뿜어서 생명을 유지시킬 뿐 아니라 자연계의 태양에서는 볼 수 없는 영류(靈流)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수한 흐름을 영계에 방사한다는 것이다. 또한 영계가 이 세상과 특히 다른 점은 표상(表像)의 세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불가사의한 체험도 표상의 세계인 영계에서는 극히 평범한 일상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은 계속 된다.

먼저 내가 최초로 본 적갈색의 사막과 같은 세계라든가 아득히 보이던 바위산, 환상 속에 나오는 듯한 인물과 동물들은 어는 것이나 내 스스로가 무의식중에 그것을 보고자 희망했기 때문에 보이게 된 것이며,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보고자 하는 의사가 있고 볼 수 있는 능력(그는 이를 영시력(靈視力)이라고 했다)이 없는 영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 눈에도 사막 비슷한 세계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다음에 바위산 들이 보이게 된 것은 조금이나마 나의 영시력이 영계에 다소 익숙해졌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또 도중에 이러한 광경이 한번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내가 다른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 발달하지 못한 영시력이 흐려져서 그렇게 된 것이니, 별로 이상히 생각할 것은 없으며, 마지막으로 이 광경을 다시금 보게 된 것은 실상 자기가 보게 해준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그 까닭을 말해 주었다.

영은 상대방 영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 상념(想念)을 마치 자기의 생각처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는 내가 보고 있었던 광경을 자기 시야에 복사해 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시야에서 이러한 여러 가지 광경이 사라진 뒤에는 또다시 자기의 시야에 간직하였던 광경을 나의 상념 속에 투사하여 나로 하여금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라고 말하였다.

거기다가 그는 영계의 태양만은 변함없이 나의 시야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것은 영계의 태양만은 다른 사물과 다른 존재이어서 표상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영계에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의 설명 전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의 설명을 듣고 있을 때엔 반쯤은 알 듯 했고, 반쯤은 이해하지 못한 채 머릿속이 혼란하고 초조해질 뿐이었다. 나는 이 일이 있는 뒤 바야흐로 영계의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속에 깊이 말려들게 된 셈인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계속)
  

[출처] [영계의 수기] 1. 영계로 가는 사자(死者)의 길|작성자 빛과사랑

악성 위장병 고치기

http://cafe.daum.net/skachstj  

문의 010 5775 5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