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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끼전, 귀토지설(龜兎之說)의 용왕과 영약 이야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5. 12. 26. 11:15

토끼전, 귀토지설(龜兎之說)의 용왕과 영약 이야기

 

 

 

용왕(龍王)은 바다 용궁(龍宮)에 산다고 하였는데, 바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 바다가 아니라 기해(氣海)라는 단전(丹田)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이 기해(氣海) 단전(丹田)에 용궁(龍宮)이라는 기혈(氣穴)이 있고, 여기에 용왕(龍王)이 살고 있다. 이러한 용왕(龍王)은 다름이 아니라 선천원기(先天元氣)이다.

 

이 기혈(氣穴)이라는 용궁(龍宮)에 사는 용왕(龍王)이 어느 날 병이 들었는데,세 도사(,,)가 용왕의 병의 원인은 주색(酒色)이 원인이라고 하였다. 이는 주색(酒色)에 의해 인간이 원기(元氣)와 정()을 소모한 것을 이야기 하며, 따라서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토끼의 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거북이를 육지로 내보낸다. 하필 토끼의 간()영약(靈藥)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토끼는 달의 정수인 ()을 상징하고, ()은 해독작용을 하니, 용왕이 주색(酒色)으로 정()을 소비하고 간()을 상()한터라 정()과 간()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토끼의 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니, 이는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따라서 거북이는 육지에 나가 토끼에게 용궁에는 진수성찬이 가득하고 좋은 것들이 많다고 속여 토끼를 용궁으로 데리고 가는데, 이는 바로 소주천(小周天)을 말하는 것이다. 토끼가 용궁에 간 것은 바로 정()을 소비하지 않고 회복함을 상징하며, 진기(眞氣)가 임독맥을 한 바퀴 돌아 용궁으로 돌아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토끼는 정()을 상징하는데, 토끼의 간()영약(靈藥)이라 하였으나 토끼의 간 자체는 나중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바와 같이 영약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결국 용왕은 도인이 거북이에게 준 선약(仙藥)을 먹고 낫게 되는데, 이는 토끼의 ()이 간()과 함께 영약(靈藥)이 되지 못하고 이들을 바탕으로 결국 선약(仙藥)인 대약(大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며, 용왕은 이 대약(大藥)을 얻어 낫게 된다는 도가(道家)의 이야기이다. 마치 도가(道家)에서 ()을 보호하고 길러 영약(靈藥)인 소약(小藥)과 대약(大藥)을 얻는 것과 같다.

 

 

토끼전: 일명 별주부전(鼈主簿傳)

 

 

 

별주부전은 옛날부터 전하는 고구려의 설화(說話)인 《귀토지설(龜兎之說)》에 재미있고 우스운 익살을 가미한 내용으로 한글이 생기자 정착된 의인소설(擬人小說)이다. 《귀토지설》이 한국에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傳)>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에 잡혔을 때에 이 고지(故智)를 이용하였다는 설화이다.

처음 바다의 거북이의 이야기가 왜 민물에 사는 자라(민물 거북이)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다 용왕과 용궁이 등장하니 거북이가 맞는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민물에 용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주부전이 아니라, 자라가 바다에 살지 않으니 교육학적 입장에서도 토끼전이나 귀토지설(龜兎之說)이라 하길 바란다. 따라서 나는 자라는 민물로 보내고 여기에서 자라 대신 거북이라 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단순히 토기의 꾀라는 풍자와 해학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으나 이는 수박 안은 보지 못하고 수박 껍데기만을 본 것이다.

 

 

 

 

해인(海印)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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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海印)이란 무엇인가

 

삼풍(三豊) 해인(海印) 

해인(海印)이란 바다의 도장이란 말로, 본 뜻은 기()의 바다인 기해(氣海)와 우주의 모든 진리를 나타낼 수 있는 도장()인 선천원기(先天元氣)를 말함이다. 해인(海印)을 감로(甘露) 화우로(火雨露)라고 설명한 데서 잘 이해할 수 있다. 해인(海印), ()의 바다의 진리의 도장()은 달콤한 이슬과 같고, 뜨거운 불과 같으며, 비와 같다. 이는 모두 선천원기(先天元氣)인 진기(眞氣)의 변화 모습이다.

 

이러한 해인(海印)이 본래의 집인 인당(印堂)으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다.

해인(海印)불노초(不老草) 불사약(不死藥)이라 함은 대약(大藥)을 일컫는 말이고, 해인(海印)을 삼풍(三豊)이라 함은 3개의 풍성함을 말함이며, 이는 정기신(精氣神) 세 열매가 열리는 것을 말함이다.

 

해인(海印)은 진리의 도장()이며, 선천원기(先天元氣)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이며, 깨달음의 원인이다. 따라서 나 이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고 나에게서 찾는 것이다.

 

 

 

심청전, 수행과 깨달음 이야기

  

 

심청(沈淸)학규鶴奎를 눈뜨게 하기 위하여 즉, 깨닫게 하기 위하여 공양미 삼백석을 얻기 위해 인당수(印塘水)에 몸을 던지니, 이것은 진기(眞氣) 300주천(小周天)을 할 수 있도록 바다에 있는 인당수(印塘水)인 기혈(氣穴)에 온 몸과 마음을 던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스님이 심학규鶴奎에게 눈을 뜨려거든, 즉 깨달음을 얻으려거든 공양미 삼백석을 부처님께 바치라 하였는데, 이는 진기(眞氣) 300주천(小周天)을 하면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이를 심청(沈淸)이가 행하니, 기해(氣海)라는 바다에 있는 인당수(印塘水)라는 단전(丹田) 기혈(氣穴)에 깊이 물입하여 수행을 행함을 말한 것이다. 다시말해 깊고 맑고 맑은 정신을 기해(氣海) 바다에 있는 단전(丹田) 기혈(氣穴)던져 몰입함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당수(印塘水)가 연못을 이야기 한다고 바다에 연못이 나와 모순이라고 하기도 한다. 단전(丹田) 기해(氣海) 바다에는 해인(海印)이 있고, 이 해인(海印)이 있는 기혈(氣穴)이라 하여 연못 당()자를 썼고, ()는 진기(眞氣)를 말함이며, , 인당수(印塘水)는 해인(海印)이 있는 기혈(氣穴)의 진기(眞氣)라는 말로 단전(丹田) 기혈(氣穴)을 가르킨다.

 

그리하여 심청(沈淸)이는 기해(氣海)의 바다 용왕(龍王)을 만나니, 이는 300주천(小周天) 후에 대약(大藥)을 얻음을 이야기 한 것이니 이렇게 하여 바다에서 연꽃을 타고 육지로 나오게 된다. , 기해(氣海)의 바다에서 대약(大藥)이 더욱 수련의 정진을 통해 심청(沈淸)이라는 부처의 모습을 하고 연꽃 위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는 도가(道家)3년 유포(乳哺)의 과정에 들어 섰음을 설명한 것으로, 이후 심청이 황제를 만나고 아버지를 떠난지 3년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맹인잔치를 통해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심청이를 만난 아버지는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부처의 형상을 한 양신(陽神)이 출신(出神)을 하게 되고 세상과 우주를 이해한 후 심봉사가 눈을 뜨듯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수행 이야기이다.

 

 

심청전 이야기는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수행과정

 

 

심청전 이야기는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수행과정

 

심청전 이야기는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수행과정과 깨달음을 설명한 것이다.

심학규鶴奎심청(沈淸) 이름부터 도가(道家)적이다. 심학규鶴奎는 깊을 심()에 장수와 자유를 상징하는 () 28(宿) 중에 15번째 별자리인 호랑이 꼬리 부분(안드로메다 자리)에 해당하는 별자리 규()로 되어 있다. ()서방(西方)에 위치하며 문운(文運)을 맡아보며, 이 별이 밝게 빛나는 때는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했다. 따라서 후에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은 이 별이 빛나는 것과 같아 천하가 태평해짐을 상징한 것이다.

결국 깊게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학과 같이 호흡을 길게 하여 규성(奎星)이 빛나듯 빛나는 선천원기를 얻으니 깨달음과 함께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이름이다. 이름 자체에서 이야기 전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심청(沈淸)은 깊을 ()에 맑을 청()이니, 이 역시 도가(道家)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깊게 가라앉힌 마음에 그 마음 또한 순수하고 맑다는 뜻이다.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말이다. 심청(沈淸)은 깊고 맑고 맑은 정신을 상징한다.

 

심학규鶴奎가 사는 곳도 도인(道人)들이 산다고 하는 그 지명인 도화동(桃花洞) 무릉촌(武陵村)이 아닌가.

 

 

심청전, 심봉사와 심청이 이야기의 진실

 

 

 

 

 

봉사인 아버지 심학규鶴奎 모시고 사는 심청(沈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인당수(印塘水) 던졌습니다. 공양미 삼백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있다고 스님이 말했고 삼백석을 구하기 위해선 제물이 되어 바다에 몸을 던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심청은 옥황상제의 명으로 용왕의 도움을 받아 연꽃을 타고 지상에 올라가게 되었고 왕비가 되었습니다. 왕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이 전국의 봉사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심청이 몸을 팔아 아버지를 떠난 지가 3년이 되는데, 황후가 된 후 아버지를 그리워하여 근심하는 것을 보고 황제가 연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사실은 자신이 용궁사람이 아니라 황주 도화동(桃花洞) 무릉촌(武陵村)심학규沈鶴奎의 딸로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기 위해 팔려왔다는 자초지종을 고합니다.

그러자 황제가 황주로 관리를 보내어 심학규를 데려 오도록 명합니다. 그런데 장계(왕에게 보고하는 문서)가 올라와 "도화동에 맹인 심학규가 있었으나 1년 전 떠나 자취를 알 수 없다"는 내용을 전합니다.

이 장계를 통해서, 심봉사가 눈을 뜨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마을을 떠났다니 그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심청이가 낸 계책이 전국의 맹인을 위한 잔치를 벌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잔치를 벌여 결국 맹인들 속에서 심봉사를 만나고, 죽었다는 심청이가 죽지 않고 심봉사 앞에 서 있으니 심봉사가 놀라 눈을 뜨게 됩니다.

 

사람들은 심청전의 이야기가 다소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공양미 300석에도 심봉사가 눈을 뜨지 못한다든가. 심청이가 바다에서 연꽃을 타고 나온다든가. 심봉사가 심청이를 보고 눈을 뜬다든가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내면에 흐르는 교훈을 생각해 보면, 그러한 것들이 모순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토끼전, 귀토지설(龜兎之說)은 신선(神仙) 이야기

 

 

결국, 거북이는 북쪽 자() 방향의 현무(玄武)를 상징하고 바다()에서 나온 거북이가 육지에 느리게 올라간 것은 진기(眞氣)가 처음 자() 방향에서 시작하여 느리게 독맥(督脈)을 타고 백회(百會)까지 이른 것을 이야기 하며, 육지()에서 토끼를 만나 바다로 간 것은 백회에서 회음(會陰)까지 진기(眞氣)가 쉽게 내려가 토끼가 임맥(任脈)을 타고 바다 기해(氣海)로 간 것을 상징한다.

 

바다 기해(氣海)로 간 토끼는 속은 것을 알고,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청산녹수(靑山綠水) 맑은 물(腎臟)에 씻어 감추어 두고 왔다고 한다. 용왕은 토끼의 말을 믿고는 거북이에게 토끼를 육지에 데려다 주라고 한다. 육지에 도달하자 토끼는 ()을 빼어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느냐며 거북이를 놀리고는 숲속으로 달아나 버린다.

여기에서 청산녹수(靑山綠水) 맑은 물은 신장(腎臟)을 상징하고, 이러한 신장(腎臟)의 기운이 선약(仙藥)을 만드는데 중요한 재료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거북이는 자신이 토끼에게 속았음을 분해하며 토끼의 간을 용궁에 가지고 가지 못함을 한탄하며 자살을 결심하는데, 도인(道人)이 나타나서 거북이에게 선약(仙藥)인 대약(大藥)을 건네주니 용왕은 이 선약(仙藥)을 얻어 다시 건강을 회복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인간은 원래 신성한 존재인데, 본성(本性)을 잃어 병()이 든 존재와 같으니 소주천(小周天)을 거쳐 선약(仙藥)인 대약(大藥)을 얻은 후에 다시 신성한 본성(本性)을 회복한다는 이야기를 우화(寓話)로써 조상들이 자손들에게 전수한 것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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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 이야기

 

하늘에 한 왕이 있었다. 그에게는 예쁜 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베짜는 여인 "직녀(織女)" 이다.
그녀는 자라서 처녀가 되었다.
그래서 왕은 소치는 아이 "견우(牽牛)"라는 총각을 찾았다.
견우는 어릴 때부터 소를 좋아했다. 그는 항상 소의 등에 타고 다녔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성에서 살았다. 직녀와 견우는 계속 놀기만 하고, 일을 하지 않았다. 때때로 견우는 왕실의 정원에서 소를 타기도 했다.
이것은 정원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왕은 화가 났다. "너희 둘은 벌을 받아야 한다."
왕이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너희 둘은 놀기만 하고 있다.
"
견우, 넌 동쪽에서 살아야 한다. 직녀, 넌 서쪽에서 살아라."
화난 왕은 둘이 따로 살도록 했다.
직녀는 울며 왕에게 빌었다. 하지만 왕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들은 왕이 명령한 대로 해야 했다. 견우는 동쪽으로 떠나야 했다.
그리고 직녀는 서쪽으로 떠나야 했다.
"
너희는 일년에 단 한번만 서로를 볼 수 있다."
화난 왕이 말했다.
"
음력 7 7일에 은하수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견우와 직녀는 슬퍼하며 살았다.
그것은 그 둘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많이 사랑했었다. 일년이 지나고.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로 서둘러 갔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름을 외쳤다.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슬펐는지 서로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하수 강이 너무 넓었다. 그들은 겨우 서로의 얼굴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은하수 강을 사이에 두고 우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물이 은하수와 땅에 떨어졌다. 그 눈물이 큰 비와 폭풍으로 변했다.
땅의 새들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이런, 큰일이네."
"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떠내려갈 거야."
"
비를 멈추게 하는 덴 한가지 방법밖에 없어."
"
그래, 우리는 견우와 직녀가 강을 건너는 걸 도와야 해."
"
그럼 은하수 사이에 우리가 다리를 만들면 되겠다."
"
하지만 너무 높아."
현명한 비둘기가 말했다. "까마귀는 높이 날 수 있어."
현명한 비둘기가 말했다. "까마귀, 너희들이 은하수 사이에 다리를 만들지 않을래?" "그래, 노력해볼게."
까마귀가 말했다.
일년이 지나고 음력 7 7이 되었다. 모든 세상의 까마귀가 모였다. 그들은 높이 날아올라 은하수 강 사이에, 그들의 날개를 펼쳐 다리를 만들었다. 마침내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 강을 건넜다.
그 후 매년 음력 7 7, 까마귀들은 은하수 사이에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홍수가 나지도 않았다.
까마귀가 만든 이 다리는 "오작교"라고 불렸다.

 

7 7일 이후 까마귀의 머리가 벗어지는 이유는 견우와 직녀가 이때 서로가 만나기 위해 머리를 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날 비가 많이 온 경우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지 못해 슬프게 울었다는 뜻이며 비가 오지 않거나 적게 오는 경우는 만남의 기쁨의 눈물이라고 전해오는 설화이다.

  

까마귀는 동이족의 태양의 새이자 태양의 자식이다. 태양의 새 까마귀들이 다리를 놓았다는 것은 태양이 떴다는 의미이므로 비가 오지 않거나 적게 오는 것이 당연하다. 만일 비가 많이 오는 경우에는 까마귀가 다리를 놓지 못하고 태양이 뜨지 않았다는 것이니 따라서 비가 많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

 

 

 

귀토지설(龜兎之說)별주부전(鼈主簿傳)이 된 이유

  

하늘의 별자리를 보면, 원래 귀토지설이 어찌하여 별주부전이 되었는지 추측할 수 있다.

하늘에는 우주를 주관하고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북두칠성이 있다. 그리고이 북두칠성(北斗七星)과 함께 짝을 이루는 남쪽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이라는 별이 있다. 남두육성도 북두칠성을 닮은 모양인지라 인간의 수명과 장수를 관장한다.

이 남두육성이 있는 자리 바로 밑에 하늘의 연못인 천연(天淵)이 있고, 바로 그 옆에는 자라 별자리가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자라는 연못에 사는데, 바다 용궁에는 용왕이 아플 때, 남두육성의 빛이 약해져 즉, 수명이 다할 즈음에 연못에 사는 자라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고 수명을 회복한다는 그러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하필 바다에 자라가 나온 것은 용궁을 심청전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심청이가 빠지는 바다를 연못 당()자를 사용하여 인당수(印塘水)라 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소금이 많은 바다 속에 정화수와 같은 깨끗한 물이 있는 연못을 상상했던 것 같다. 결국, 이는 바다(氣海)에 있는 단전 기혈(氣穴)을 좀 더 잘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따라서 바다에 사는 거북이도 맞고, 연못에 사는 자라도 맞는 것 같다. 삼국시대에는 거북이라 하고, 삼국시대 이후 어느 순간부터는 자라라 하였으니, 이야기 상으로는 둘 다 그 뜻하는 바가 있어, 자라도 좋고 거북이도 좋다.

아무러면 어떠냐. 맘 가는데로 불러보리.

 

 

선녀와 나무꾼은 신선이 되지 못하고 죽는 안타까운 이야기

 

나무꾼은 인간을 상징하며,

사슴은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 고르고 긴 호흡인 조식(調息)을 상징하며,

아이 셋은 정기신(精氣神)을 상징하고,

연못은 단전(丹田)을 상징하고, 연못의 물은 진기(眞氣)를 상징한다.

칠선녀는 생사(生死)를 주관하는 북두칠성을 상징하고, 4번째는 문곡성(文曲星)으로 하늘의 권력을 상징한다.

날개 옷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의미하고,

두레박은 임독맥을 뜻한다.

용마(龍馬)는 용()을 상징하고,

어머니는 땅의 세계를,

호박죽은 땅의 세계에 있는 유혹하는 것들이다.

  

결국, 나무꾼 인간이 사슴이라는 조식(調息)에 의하여 연못 단전(丹田)에서 생사를 초탈한 북두칠성 중 하나인 선녀(仙女) 문곡성(文曲星) 즉 선천원기인 진기(眞氣)를 얻어 생사를 초탈할 기회를 만났으나, 단전에서 아들 셋인 정기신(精氣神)을 진기(眞氣)로 개발하여 생사(生死)를 초탈하고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하여야 하지만, 단전에서 아들 둘인 정기(精氣)만을 얻은 상태에서 선녀를 다 얻었다고 자만하니, 생사를 초탈하지 못하고 선녀가 본래의 자리인 하늘로 올라가 선녀와 헤어지게 된다.

 

결국 다시 사슴인 조식(調息)의 도움으로 두레박 소주천(小周天)을 통해 천상인 백회(百會)로 올라가 선녀를 다시 만나게 되어 잘 살다가 인간세계에 계시는 어머니가 그리워 선녀 진기(眞氣)의 도움으로 용마(龍馬:小藥)를 얻어 인간세계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으나 어머니가 주신 죽을 마다하지 못하고 결국 먹다가 뜨거운 죽을 용마(龍馬)의 등에 떨어트려 용마(龍馬)는 용(:大藥)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는 대약(大藥)을 얻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지화(止火)와도 관련이 있다.

결국 나무꾼은 미처 육신의 세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여 제대로 된 대약(大藥)을 얻지 못해 신선(神仙)이 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늙어 죽고 마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이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신의 세계인 정신세계도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은 신선이야기

  

옛날옛적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나무꾼이 있었는데, 하루는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도망가는 사슴을 숨겨주게 됩니다.

목숨을 구한 사슴은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일곱 선녀가 목욕을 하는 곳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날개옷을 하나 훔치라고 일러줍니다. 그리고 꼭, 아이를 셋 낳을때까지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나무꾼은 사슴이 알려준데로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에가서 몰래 네번째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고, 날개 옷이 없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러나 매일밤 날개옷을 보고싶다고 우는 선녀의 청을 이기지 못해 아이를 둘 낳던 해에 날개옷을 보여주게 되고 선녀는 두 아이를 양팔로 안은채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돌아가 버립니다.

  

나무꾼은 매일 눈물로 보내다가 다시 사슴에게 방법을 청하게 되고 이제는 내려오지 않고 두레박으로 선녀들이 물을 퍼 올려 목욕을 한다면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라고 알려줍니다. 나무꾼은 그 호수로 다시 찾아갑니다. 나무꾼은 다시 그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 선녀와 만나서 행복하게 삽니다. 그러나 나무꾼은 어머니가 그리워 선녀에게 어머니가 보고싶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선녀는 하늘을 나는 용마(龍馬)를 하나 주며, 이 말은 본래 용이기 때문에 말에서 내리면 바로 용으로 변해 날아가버리니까 절대로 내리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나무꾼은 용마(龍馬)를 타고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어머니는 내려서 밥 한끼만 먹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무꾼은 어머니에게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호박죽을 끓여주곤 말 위에서 먹으라고 합니다. 먹다가 말에 흘리자 말은 고함을 지르며 나무꾼은 말에서 떨어집니다. 그 뜨거운 죽을 흘리는 바람에 용마가 놀라 날뛰고, 나무꾼은 말에서 떨어지고, 용마는 용으로 변해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나무꾼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채 슬피 울다가 죽고 맙니다.  

 

 

해인십바라밀도(海印十爬羅密圖)가 해인(海印)인가

  

 

의상대사가 그린 해인십바라밀도(海印十爬羅密圖)는 해인(海印)과 무슨 관계인가. 어떤 사람들은 해인십바라밀도(海印十爬羅密圖)가 해인(海印)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찾는 해인(海印)이 아니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해인십바라밀도(海印十爬羅密圖)는 해인(海印)의 모습이지 해인(海印) 자체가 아니다. 해인(海印)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감로(甘露), 화우로(火雨露), 삼풍(三豊), 불노초(不老草), 불사약(不死藥)이며 여의주(如意珠)이다. 다시말해, 진리의 도장()이며, 선천원기(先天元氣)이고, 불성(佛性)이며, 깨달음의 원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해인십바라밀도(海印十爬羅密圖)는 깨달은 이가 찍은 해인(海印)의 한 모습이다. 진리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인십바라밀도(海印十爬羅密圖)는 깨달은 이가 남기고 간 자취이지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해인(海印)이 아니다.

깨달음의 원인 불성(佛性)은 모두 자신에게 있으며, 그것이 바로 해인(海印)이고, 여의주(如意珠)이며, 불사약(不死藥)이고, 진리의 도장()이고, 선천원기(先天元氣)이다.

 

해인(海印)이 하단전(下丹田)에서 상단전(上丹田)인 인당(印堂; 해인이 돌아가야 할 본래의 집) 부분에 이르렀을 때, 이자삼점(伊字三點: ) 을 얻으며, 깨달음을 얻고 십승지(十勝地)에 들어가게 된다. 십승지(十勝地)는 어느 장소가 아니요, 바로 깨달음의 세계가 십승지(十勝地)이다.

 

나 이외의 밖에서 찾는 이들은 모두 꿈 속에서 헤메이는 것이다. 이렇게 직설로 이야기 하여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출처 : 진리를 찾아서
글쓴이 : 무극진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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