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절(邵康節)의 명시(名詩)와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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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절(邵康節)의 명시(名詩)■
◇청야음(淸夜吟)-소강절(邵康節)
[밝은 날 밤-소강절(邵康節)]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
: 하늘 높이 솟은 달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
: 물 위를 스쳐오는 바람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
: 이러한 맑은 뜻의 맛을
料得少人知(요득소인지)
: 깨달아 아는 이가 드물구나.
◇인자음(仁者吟)-소강절(卲康節)
[인자를 노래함-소강절(卲康節)]
仁者難逢思有常(인자난봉사유상)
: 어진이도 일정함을 유지하기 어려워
平生愼勿恃無傷(평생신물시무상)
: 평생을 조심하여 상함이 없다고 믿지 말라.
爭先路徑機關惡(쟁선노경기관악)
: 앞을 다투는 길은 수레의 기계가 상하고
近後語言滋味長(근후어언자미장)
: 가까워진 후 하는 말은 재미가 있다.
爽口物多終作疾(상구물다종작질)
: 맛있어 많이 먹으면 병이 생기고
快心事過必爲殃(쾌심사과필위앙)
: 기쁜 일이 지나치면 재앙이 된다.
與其病後能求樂(여기병후능구낙)
: 병든 뒤에 약을 구하기보다
孰若病前能自防(숙약병전능자방)
: 병들기 전에 스스로 막는 것이 좋지 않은가.
◇관역음(觀易吟)-소강절(卲康節)
[주역을 보고 읊음-소강절(卲康節)]
一物由來有一身(일물유래유일신)
: 한 물건에 유래하여, 한 몸이 있나니
一身還有一乾坤(일신환유일건곤)
: 한 몸에는 다시, 한 천지가 있도다.
能知萬物備於我(능지만물비어아)
: 만물이 내 안에 갖추어 있는 것을 어찌 알까?
肯把三才別立根(긍파삼재별입근)
: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으로서,
존재의 근거를 구별한다.
天向一中分造化(천향일중분조화)
: 하늘은 하나의 중(中)을 향하여
조화를 나누고
人於心上起經綸(인어심상기경륜)
: 사람은 마음에서, 경륜을 세운다.
天人焉有兩般義(천인언유양반의)
: 하늘과 사람에 어찌,
다른 두 이치가 있을 것이며,
道不虛行只在人(도불허행지재인)
: 도는 헛되이 운행되지 않으니,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
◇모춘음(暮春吟)-소강절(邵康節)
[저문 저녁 시를 읊다-소강절(邵康節)]
林下居常睡起遲(림하거상수기지)
: 숲 아래 살며, 항상 늦잠 자는데
那堪車馬近來稀(나감거마근래희)
: 사람 발길 끊어져, 견딜 수 없다.
春深晝永簾垂地(춘심주영렴수지)
: 봄은 무르익고, 낮은 긴데
발은 땅에 드리워져,
庭院無風花自飛(정원무풍화자비)
: 바람도 없는 정원에 꽃잎이 날리는구나.
■소강절(1011~ 1077)은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이다.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선생은
송(宋)나라 때의 명현(名賢)으로서
역(易)의 상수(象數)원리를 밝히고,
점복(占卜)의 도(道)로써, 역의 진리를
확인하여, 역학의 새로운 장(章)을 연
학자이다. 소강절의 역이론은
서양에 소개되어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영향을 끼쳤다 한다. 저서로는
<황극경세서> <관물내외편> 등이 있다.
소강절은 나라에서 주는 벼슬도
여러 차례 마다하고, 학자로서 평생을
마친 사람이다. 소강절은 공부가
몹시 깊어 모르는 것이 없었다고 하며,
소강절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들이
많이 전해온다.
소강절은 자신의 공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음과 같은 싯구로서
자신의 호연지기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此天地外別有天地卽己
身生天地後心在天地先
此天地之內事吾無所不知
天地自我出其餘何足言
이 천지 바깥에 또다른
천지가 있으면 모르되,
비록 몸은 천지보다 뒤에 났으나,
내 마음은 천지보다 앞서도다.
이 천지 안의 일은
내가 모르는 게 없으리라.
천지가 나로부터 나왔으니,
그 나머지는 말해서 무엇하랴!
◇소강절의 이얼마나 호방한 소리인가..!
“천지 안의 일은 나한테 다 물어보라.‘는
그의 공부에 대한 자긍심과 배포가
한껏, 느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소강절은
역공부를 바탕으로 이룩한 자신감으로
다음과 같은 평생시(平生詩)를 내놓았다.
手探月屈(수탐월굴)하고
손으로는 달굴 구멍을 더듬고,
足踏天根(족답천근)이라
발로는 하늘 뿌리를 밟는다.
나 소강절의 손과 발로
이 세상, 우주를 다 만져보고
환~하게 모두 다 꿰뚫는다.
'이 세상일은 내 수족 안에 다 들어 있다.
세상에서 나만큼 많이 아는 자가 누가 있으랴..!
◇소강절은 그의 득도세계를
"청야음"이란 시로서 표현했다.
■청 야 음(淸夜吟)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요
: 달이 하늘 중심에 이른 곳이요.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라
: 바람이 수면으로 불어온 때라.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를
: 일반적인 맑은 의미를,
料得少人知(요득소인지)라
: 아는 이, 적음을 알았도다.
내 마음은 맑은 달밤처럼, 고요하고
내 도심은 수면을 스치는 바람처럼,
맑고 청명하도다.
◇소강절은 그의 "매화시" 첫머리에서
蕩蕩天門 萬古開
幾人歸去 幾人來
탕탕하게 천문이 만고에 열릴 때,
과연, 몇이나 오고 몇이나 가는가?"라고
읊어, 그가 득도한 사실을 표현하였다.
☆☆☆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중국 송대의 유학자. 이름은 옹(雍).
소강절의 '강절'은 시호(諡號)이고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중국 송대의 학자요, 대시인이다.
호(號)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상수(象數) 학설에 기초한
우주관과 자연철학에 독보적인 인물.
천지시간대의 1년 개벽수가
"12만 9천6백년"임을 처음으로 밝혔다.
☆☆☆
아래의 내용은 세상에 많이 알려진
꽤 유명한 일화입니다. 소강절의 예지력과
앎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소강절은
젊어서 과거 급제하여 이십대에
벌써 상서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문장이 빼어나고, 시를 잘 지었으며,
주역에 아주 밝았고, 학문이 높아
전국적으로 이름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공부하느라고 장가를 못가
벼슬이 높이 된 이십대 후반에 가서야
성취를 하게 되었다.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고 긴장한 탓인지 새벽에 너무 일찍
잠이 깨었다.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해서,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를 뽑아 점을 치게 되었다.
과연 하룻밤 잤지만,
아이가 생겼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날이 샐려면 멀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평생 운수를
점쳐보게 되었는데,
소강절 자기보다는 못해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팔자였다.
그러면, 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는
어떤 운명을 타고 살아갈까가 궁금해졌다.
그 아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한 대 한 대 점쳐 내려 가다가
5대손에 이르렀는데,
그는 중년에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사형 당할 운명이었다.
이러구러 날이 새고, 소강절은
평생 그 일을 고민하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소강절도
늙어 죽게 되었다. 아들 손자 며느리
손부 등을 모아 놓고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을
하나 내어 주면서, "살아가다가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거든
이 보자기를 풀어 보라.
만약, 너의 대에 큰 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며느리에게 물려 주고,
그 맏며느리 대에 아무 일이 없으면
다음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
대대로 이 함을 전하라." 고 하였다.
유언은 실행되었다.
맏며느리에게서 맏며느리에게로
함은 전달되었다. 그런데, 5대 손부에게
정말 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남편이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하옥되었던 것이다.
역적은 멸문지화를 입을 것이 뻔하므로
집안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다.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밤새 꽁꽁 앓던 5대 손부는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급히 벽장을 열고 함을 꺼내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 쓰였으되,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이 함을
형조 상서 집에 가져다 전하라.] 라고
씌어 있었다. 집사를 불러 급히
의관을 갖추라 한 후에 함을 들려 보냈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 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다.
형조 상서는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 입고
막 입궐하려던 참이었다.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
나으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습니다."
형조 상서는 그 말을 듣고
100여년 전에 작고했지만,
그 명망 높은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자,
큰 학자요,대 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털어 주역에 완전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을 받았다.
유품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삼풍백화점 같이, 통채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부 상서는 급히
함을 열어 보았다. 함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글자 열 자가 씌어진 하얀 창호지 한 장만
뎅그러니 들어 있었다. 상서는 재빨리
펼쳐 보았다. 그 글에 하였으되,
[活汝壓樑死 救我五代孫] 이라고
적혀 있었다.
'네가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니,
나의 오대손을 구해 달라.'라는 뜻이다.
재수사를 명한 상서는
오대손의 무죄함을 가려 내어
그를 살려 주었음은 물론이다.
묘하고 묘한 일이로다.
그는 평생 동안 자기 손자를 구하기 위해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 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부 상서의 운수를 알아 냈던 것이니,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예언자(預言者)의 후예(後裔)들
소강절(邵康節)이라면
앉아서 백 리 밖을 내다보고,
오늘에 살면서 천 년 뒤를 짐작하는
초인간적인 재주를 가진 분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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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절(邵康節)의 명시(名詩)■
◇청야음(淸夜吟)-소강절(邵康節)
[밝은 날 밤-소강절(邵康節)]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
: 하늘 높이 솟은 달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
: 물 위를 스쳐오는 바람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
: 이러한 맑은 뜻의 맛을
料得少人知(요득소인지)
: 깨달아 아는 이가 드물구나.
◇인자음(仁者吟)-소강절(卲康節)
[인자를 노래함-소강절(卲康節)]
仁者難逢思有常(인자난봉사유상)
: 어진이도 일정함을 유지하기 어려워
平生愼勿恃無傷(평생신물시무상)
: 평생을 조심하여 상함이 없다고 믿지 말라.
爭先路徑機關惡(쟁선노경기관악)
: 앞을 다투는 길은 수레의 기계가 상하고
近後語言滋味長(근후어언자미장)
: 가까워진 후 하는 말은 재미가 있다.
爽口物多終作疾(상구물다종작질)
: 맛있어 많이 먹으면 병이 생기고
快心事過必爲殃(쾌심사과필위앙)
: 기쁜 일이 지나치면 재앙이 된다.
與其病後能求樂(여기병후능구낙)
: 병든 뒤에 약을 구하기보다
孰若病前能自防(숙약병전능자방)
: 병들기 전에 스스로 막는 것이 좋지 않은가.
◇관역음(觀易吟)-소강절(卲康節)
[주역을 보고 읊음-소강절(卲康節)]
一物由來有一身(일물유래유일신)
: 한 물건에 유래하여, 한 몸이 있나니
一身還有一乾坤(일신환유일건곤)
: 한 몸에는 다시, 한 천지가 있도다.
能知萬物備於我(능지만물비어아)
: 만물이 내 안에 갖추어 있는 것을 어찌 알까?
肯把三才別立根(긍파삼재별입근)
: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으로서,
존재의 근거를 구별한다.
天向一中分造化(천향일중분조화)
: 하늘은 하나의 중(中)을 향하여
조화를 나누고
人於心上起經綸(인어심상기경륜)
: 사람은 마음에서, 경륜을 세운다.
天人焉有兩般義(천인언유양반의)
: 하늘과 사람에 어찌,
다른 두 이치가 있을 것이며,
道不虛行只在人(도불허행지재인)
: 도는 헛되이 운행되지 않으니,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
◇모춘음(暮春吟)-소강절(邵康節)
[저문 저녁 시를 읊다-소강절(邵康節)]
林下居常睡起遲(림하거상수기지)
: 숲 아래 살며, 항상 늦잠 자는데
那堪車馬近來稀(나감거마근래희)
: 사람 발길 끊어져, 견딜 수 없다.
春深晝永簾垂地(춘심주영렴수지)
: 봄은 무르익고, 낮은 긴데
발은 땅에 드리워져,
庭院無風花自飛(정원무풍화자비)
: 바람도 없는 정원에 꽃잎이 날리는구나.
■소강절(1011~ 1077)은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이다.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선생은
송(宋)나라 때의 명현(名賢)으로서
역(易)의 상수(象數)원리를 밝히고,
점복(占卜)의 도(道)로써, 역의 진리를
확인하여, 역학의 새로운 장(章)을 연
학자이다. 소강절의 역이론은
서양에 소개되어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영향을 끼쳤다 한다. 저서로는
<황극경세서> <관물내외편> 등이 있다.
소강절은 나라에서 주는 벼슬도
여러 차례 마다하고, 학자로서 평생을
마친 사람이다. 소강절은 공부가
몹시 깊어 모르는 것이 없었다고 하며,
소강절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들이
많이 전해온다.
소강절은 자신의 공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음과 같은 싯구로서
자신의 호연지기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此天地外別有天地卽己
身生天地後心在天地先
此天地之內事吾無所不知
天地自我出其餘何足言
이 천지 바깥에 또다른
천지가 있으면 모르되,
비록 몸은 천지보다 뒤에 났으나,
내 마음은 천지보다 앞서도다.
이 천지 안의 일은
내가 모르는 게 없으리라.
천지가 나로부터 나왔으니,
그 나머지는 말해서 무엇하랴!
◇소강절의 이얼마나 호방한 소리인가..!
“천지 안의 일은 나한테 다 물어보라.‘는
그의 공부에 대한 자긍심과 배포가
한껏, 느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소강절은
역공부를 바탕으로 이룩한 자신감으로
다음과 같은 평생시(平生詩)를 내놓았다.
手探月屈(수탐월굴)하고
손으로는 달굴 구멍을 더듬고,
足踏天根(족답천근)이라
발로는 하늘 뿌리를 밟는다.
나 소강절의 손과 발로
이 세상, 우주를 다 만져보고
환~하게 모두 다 꿰뚫는다.
'이 세상일은 내 수족 안에 다 들어 있다.
세상에서 나만큼 많이 아는 자가 누가 있으랴..!
◇소강절은 그의 득도세계를
"청야음"이란 시로서 표현했다.
■청 야 음(淸夜吟)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요
: 달이 하늘 중심에 이른 곳이요.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라
: 바람이 수면으로 불어온 때라.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를
: 일반적인 맑은 의미를,
料得少人知(요득소인지)라
: 아는 이, 적음을 알았도다.
내 마음은 맑은 달밤처럼, 고요하고
내 도심은 수면을 스치는 바람처럼,
맑고 청명하도다.
◇소강절은 그의 "매화시" 첫머리에서
蕩蕩天門 萬古開
幾人歸去 幾人來
탕탕하게 천문이 만고에 열릴 때,
과연, 몇이나 오고 몇이나 가는가?"라고
읊어, 그가 득도한 사실을 표현하였다.
☆☆☆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중국 송대의 유학자. 이름은 옹(雍).
소강절의 '강절'은 시호(諡號)이고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중국 송대의 학자요, 대시인이다.
호(號)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상수(象數) 학설에 기초한
우주관과 자연철학에 독보적인 인물.
천지시간대의 1년 개벽수가
"12만 9천6백년"임을 처음으로 밝혔다.
☆☆☆
아래의 내용은 세상에 많이 알려진
꽤 유명한 일화입니다. 소강절의 예지력과
앎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소강절은
젊어서 과거 급제하여 이십대에
벌써 상서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문장이 빼어나고, 시를 잘 지었으며,
주역에 아주 밝았고, 학문이 높아
전국적으로 이름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공부하느라고 장가를 못가
벼슬이 높이 된 이십대 후반에 가서야
성취를 하게 되었다.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고 긴장한 탓인지 새벽에 너무 일찍
잠이 깨었다.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해서,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를 뽑아 점을 치게 되었다.
과연 하룻밤 잤지만,
아이가 생겼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날이 샐려면 멀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평생 운수를
점쳐보게 되었는데,
소강절 자기보다는 못해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팔자였다.
그러면, 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는
어떤 운명을 타고 살아갈까가 궁금해졌다.
그 아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한 대 한 대 점쳐 내려 가다가
5대손에 이르렀는데,
그는 중년에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사형 당할 운명이었다.
이러구러 날이 새고, 소강절은
평생 그 일을 고민하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소강절도
늙어 죽게 되었다. 아들 손자 며느리
손부 등을 모아 놓고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을
하나 내어 주면서, "살아가다가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거든
이 보자기를 풀어 보라.
만약, 너의 대에 큰 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며느리에게 물려 주고,
그 맏며느리 대에 아무 일이 없으면
다음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
대대로 이 함을 전하라." 고 하였다.
유언은 실행되었다.
맏며느리에게서 맏며느리에게로
함은 전달되었다. 그런데, 5대 손부에게
정말 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남편이 역적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하옥되었던 것이다.
역적은 멸문지화를 입을 것이 뻔하므로
집안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다.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밤새 꽁꽁 앓던 5대 손부는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급히 벽장을 열고 함을 꺼내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 쓰였으되,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이 함을
형조 상서 집에 가져다 전하라.] 라고
씌어 있었다. 집사를 불러 급히
의관을 갖추라 한 후에 함을 들려 보냈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 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다.
형조 상서는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 입고
막 입궐하려던 참이었다.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
나으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습니다."
형조 상서는 그 말을 듣고
100여년 전에 작고했지만,
그 명망 높은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자,
큰 학자요,대 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털어 주역에 완전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을 받았다.
유품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삼풍백화점 같이, 통채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부 상서는 급히
함을 열어 보았다. 함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글자 열 자가 씌어진 하얀 창호지 한 장만
뎅그러니 들어 있었다. 상서는 재빨리
펼쳐 보았다. 그 글에 하였으되,
[活汝壓樑死 救我五代孫] 이라고
적혀 있었다.
'네가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니,
나의 오대손을 구해 달라.'라는 뜻이다.
재수사를 명한 상서는
오대손의 무죄함을 가려 내어
그를 살려 주었음은 물론이다.
묘하고 묘한 일이로다.
그는 평생 동안 자기 손자를 구하기 위해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 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부 상서의 운수를 알아 냈던 것이니,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예언자(預言者)의 후예(後裔)들
소강절(邵康節)이라면
앉아서 백 리 밖을 내다보고,
오늘에 살면서 천 년 뒤를 짐작하는
초인간적인 재주를 가진 분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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