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선생 역리학/남촌선생 역리학강의

부적연구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6. 2. 6. 18:22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가정신앙 편)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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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종교 이전부터 존재한 신통력 있는 주물. 흉신(), 사귀()를 쫓고 재액()을 예방하는 그림이나 글씨를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주부() 또는 부주()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부적()이라고 한다. ‘부신 부()’자와 ‘서적 적()’자로 무엇인가로 표시한 문서나 물건이라는 뜻이다. 부적은 천상()의 원적을 이승의 현세에 맞추어 바꾸려는 장치로도 이해된다. 일부에서는 부작()이라고도 한다. 이는 부적을 비롯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입체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2 역사

액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는 제액초복()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면서 간절한 염원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유지 욕구와 의지가 하나의 상징적 도상(, 이미지)으로 표출된 것이 부적이다. 부적을 통해 한국인의 생활상과 종교적인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부적의 태동기 - 상고시대(), 고조선>
울주 반구대 암각화나 견갑형 동기에 묘사된 작살에 찔린 고래와 창에 찔린 사슴이 부적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어로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소망의 부적으로 판단된다.

고조선의 부적으로는 천부인()과 도부()가 있다. 『삼국유사()』 「기이()」편의 첫머리에는 고조선 단군()에 대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천부인’은 경(, 공명), 검(, 정의), 영(, 사랑)으로도 해석된다. 이는 국가를 세우는 데 기본이 되는 사상을 상징한다. 절대 권력자인 왕이 지니는 물건인 천부인은 제정일치() 사회의 특성상 종교적인 도구이자 정치적인 상징물로서 부적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오늘날 무속제의인 굿에서는 방울, 칼, 명두(거울)가 무구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풍속통의()』에서 도부가 고조선에서 비롯되었다고 그 기원을 밝히고 있다. 도부는 말 그대로 복숭아 부적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복숭아가 지닌 주력을 이용하려는 의지의 투영으로 해석된다. 복숭아는 대표적인 축귀() 주술도구로, 복숭아의 축귀력에 대해서는 여러 고전()에서도 나타나 있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도()는 백귀()를 제압하니 선목()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도 “궁중에서 세말()에 행하는 악귀 퇴치인 구나희()를 행할 때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로 비를 만들어 귀신을 때려 쫓아내는 행위를 한다.”고 기록하였다. 『숙종실록()』에는 임금이 상가를 방문할 때 도열(,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이삭)로 잡귀를 쫓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 여성종합백과사전인 『규합총서()』의 「소국주방문」에도 술을 담근 뒤 동도지()로 저어 술맛이 나빠지는 것을 막는다고 기록하고 동토를 잡을 때도 동도지를 잘라서 동토귀를 축출하였다고 한다.

<부적의 구체화 시기 -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시작된 처용의 화상()은 자생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부적의 역사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엄밀히 말해 벽병부()라 할 수 있는 처용의 화상은 부적 기원으로 삼을 수 있다.

『삼국유사』 권1 처용랑 망해사조에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부와 관련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신라 49대 헌강왕(875~886 재위) 대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이 그의 부인을 범한 역신을 가무()로 용서하자 이에 감복한 역신이 처용의 형용만 보아도 나타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귀()를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이게 되었다. 처용의 화상은 훗날 널리 사용된 천중적부(), 단오부()의 기원이 된다. 역병()이라는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해 낸 처용은 질병부()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처용 화상은 오늘날 전염병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염병불입부나 백살동토부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건축물이나 공예품에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귀면문은 벽사부이다. 귀면문은 중국의 은나라 이후 청동기 문양으로 된 도철문(, 두 개의 눈을 주체로 한 중국 고대의 기이한 무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귀면()의 모습은 흔히 치우()로 표현되는 신인()과 흡사하다. 치우는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인 황제 시대의 무장으로, 그의 용맹성 때문에 벽사의 신으로 모신다. 귀면문 와당은 삼국에서 모두 보이지만 그 가운데 신라의 귀면문 와당이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다음으로 주문부적이 있다. 신라시대의 주문부적으로 『삼국유사』에 제26대 진평왕(579~632 재위) 대에는 전 대왕인 진지왕의 혼백과 도화녀 사이에서 출생한 비형랑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비형랑과 연관되어 대문에 붙여져서 귀신을 물리친 문자부가 귀신불침부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때의 주문부적으로는 『구루신서()』[구루는 고구려의 성()을 지칭]의 ‘귀신 울음소리를 쫓는 방법’이 남아 있다. 부지깽이 한쪽을 깎아 신장이 귀신을 때리고 죽여서 쫓을 것이라는 내용의 주문을 주사()로 써서 상 밑에 넣어 두는 것이다.

신라 말엽에 밀교와 함께 밀교부적이 전래되었다. 대표적인 밀교부적으로는 석가탑 사리함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옴마니밧메훔 부적’, 즉 육자대명왕진언()이 있다.

이 밖에도 백제 때 저승으로 간 혼백을 이승으로 부르기 위해 지전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있다. 지전은 종이돈을 말하며, 혼을 부르는 데 이용되는 주물로서 부적의 일종이다. 이러한 유습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허난설헌()의 한시 <곡자()>에서도 나타난다.

또 통일신라 때의 분묘에서는 호석()의 벽사부 기능을 볼 수 있다. 김유신묘와 성덕왕릉에서의 십이지신상 및 호석이 그 예이다.

<부적의 정형화, 융성기 - 고려시대>
호국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팔만대장경에 수록된 부적과 용주사탑에서 나온 부적들을 통해 외침()의 극복과 개인의 발원이 부적으로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인쇄물의 발달로 오늘날 널리 알려진 종이부적이 등장하였으며, 종이부적의 가시화는 부적의 변화에 큰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고려는 호국 불교를 국교로 삼고 국가를 외침으로부터 보호하고 국태민안(), 재액소멸, 질병제거의 염원을 불법에 호소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과 불설팔만대장경목록판에 수록된 부적이다.

또한 12월이 되면 국가적으로 나례()를 베풀었다. 섣달그믐을 기해 궁궐에서 베풀어진 대나의()는 연극적인 요소가 추가된 축귀 의례이다. 이때 액을 막는 역할을 하는 존재는 방상시[]이다. 방상시는 잡귀 구축을 하는 주인공이다.

불가살이() 부적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격변기와 관련된 부적이다. 죽일 수 없다고 하여 ‘불가살()이’라고 불리는 상상의 동물이다. 이 동물 부적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불사()의 상징으로 쓰인다. 벽사()의 동물로 알려져 벽병부로 쓰였다.

고려 18대 의종(1146~1170 재위) 대에 닭 그림 부적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으며, 『동의보감()』에는 사내아이를 낳으려면 수탉 꽁지 3개를 뽑아 몰래 부인의 자리 속에 넣어 두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닭은 태양을 상징하여 밝음을 알려주고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음귀를 쫓아내는 벽사력이 있는 동물로 여긴 것이다.

<부적의 저변기, 확산기 -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왕실부터 사대부를 비롯하여 서민에 이르기까지 부적을 이용하였다. 특히 일상생활과 관련한 부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각종 종교에서도 다양하게 부적을 이용했다. 이전 시기와 달리 부적이 특정한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등장한다.

세시풍속()과 관련하여 세화()와 문배(), 입춘첩()과 단오첩이 있다. 세화가 한 해를 축하하기 위한 성향이 강하다면 문배는 액막이의 기능이 강하다. 설날에는 항간에서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비는 세화풍습을 행하였다. 도화서에서는 수성, 선녀, 직일신장 등의 그림을 임금에게 드리거나 서로 선물했다. 이것을 세화라고 하였다. 문배로는 다양한 형상을 사용하지만 그 가운데 처용과 중국의 축귀신인 종규, 중국의 문신인 울루와 신도가 대표적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매년 단오에 관상감에서 주사로 쓴 붉은 부적, 천중적부를 궁궐에 바치면 대내()에서는 문 윗중방에 붙여 살()을 없애고 상서로운 일이 있기를 바랐다는 기록이 있다. 단오부적, 즉 천중적부는 입춘첩으로도 쓰인다.

출산() 부적으로는 산모의 순산을 위한 조치로 『동의보감』에 실린 안산방위도, 최생부, 차지법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초기 망자복식에 나타난 불교 관련 부적들은 망자가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추도의 염원에 의한 불교신앙의 산물이다. 망자와 함께 관 안에 넣어 주는 탑다라니는 저승길을 열어 준다고 믿는다.

<근·현대 시대의 부적>
근대 시대는 구체적인 실물이 확인된 시기로, 부적의 실체에 접근하기에 용이하다.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일부 책자에는 다양한 부적이 소개되어 있다. 이들 부적은 대부분 질병과 관련되어 있다.

천도교의 「영부」나 증산교의 「현무경」에서 보듯 신흥종교에서는 부적을 포교의 수단이자 경전의 한 유형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고령 알터암각화에서 보이는 동심원이 도식화된 소용돌이 무늬는 소도와 영()을 상징하며, 성역을 의미한다. 천도교와 증산교는 이 소용돌이 무늬를 중심무늬로 하여 부적을 제작하였다. 요즘에는 이 무늬 안에 원하는 글자를 넣어 구체적으로 소원을 명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3 내용

부적은 복을 기원하는 길상()부적과 사악한 기운을 막고자 하는 벽사부적으로 나뉜다. 길상과 벽사는 서로 연관된 부분이 많아 더러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벽사부로는 귀신불침부, 질병부, 삼재부가 있다.

귀신불침부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 부적이다. 수원 용주사탑에서 나온 부적, 만연사()에서 간행된 용암 스님 진언집(1777년), 망월사에서 간행된 진언집(1800년)을 비롯하여 연화탑상다라니부에서 발견된 부적이 이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부적을 통해 귀신에 대한 민간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백귀불침부(), 악귀불침부(), 악귀불입부(), 축귀부(), 면고난재환부(), 귀명부() 등이 그것이다.

질병부는 질병을 악귀()가 일으키는 것으로 간주하여 병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 약효를 보지 못할 때 약과 관련된 부적을 주사로 써서 불태워 마신 뒤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으면 효과를 본다. 부적은 약의 효능을 돕는 보조 역할을 하며, 약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질병부로는 백약무효퇴병부(退), 복약효력부(), 백병치료부(), 백병불입부() 등이 있다. 병이 발생한 날의 일진()을 보아 사용하는 부적으로는 10일진() 천간부적(), 12일진() 지지부적(), 30일진() 부적 등이 있다.

질병총부()는 모든 질병이 물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용하며, 일일이 만병()을 열거하지 않고 질병()을 퇴치하기를 바라는 부적이다. 질병소제증보수부(), 질병소멸부(), 질병퇴치부(退), 만병통치부(), 퇴병부(退) 등이 있다.

삼재부는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부적이다. 삼재는 사람에게 닥치는 세 가지 재해로, 병난()·역질()·기근() 또는 수재()·화재()·풍재()를 말한다. 삼재부는 매우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삼두일족응부()이다. 머리가 셋 달린 매 그림은 조선시대 전기에 회화로 성립되었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부적그림으로 변형되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稿)』에서는 청대 실학자 왕사정()의 『지북우담()』에 실린 우화를 인용하면서 “옛날 중국 무창 장씨( )의 며느리가 휘종황제()의 친필 매 그림을 보고 마당에 나둥그러지면서 여우의 본색을 드러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매 그림이 액막이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진삼살(), 삼재소멸제살부(), 삼재소멸부(), 삼재팔난소멸부(), 자연원이삼재부(), 해오행구요부() 등이 있다.

길상부로는 불교진언집에 있는 소원성취부, 금은자래부귀부, 부부자손화합장수부, 선신수호부가 대표적이다.

4 의의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도 부적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다양화하는 이유는 의미가 있는 가상적 조작물을 몸에 지니면 그 염원이 현실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부적의 근원적 의의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부적에 거는 기대가 치유, 즉 카타르시스(catharsis)적 효과이기 때문이다.

집필

  • 김영자(金英子)/람아트바자

참고문헌

  • 만다라(윤열수, 대원사, 1992년)
  • 역사민속학연구(손진태, 민속원, 2003년)
  •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김융희, 책세상, 2000년)
  • 한국의 벽사부적(김영자, 대원사, 2008년)
  • 한국의 符作(김민기, 보림사, 1987년)
  •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80년)

관련이미지 (10)

[네이버 지식백과] 부적 [符籍]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