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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字는 한民族의 글이자 言語이다 3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8. 3. 25. 22:35

                                                                 

漢文字民族 글이자 言語이다 3

 

카카오 환단원류사 박민우 카톡강의방에서 발췌

2017.10.06

 

漢字歷史


漢字 만들어진 歷史前述 바와 같이 오래 되었다.

海東繹史』에 있는 것을 보면 기원전 8937上元甲子年漢字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

누구에 의해 무슨 글자를 만들었는지 자세한 記錄 남아있지 않다.

확실한 記錄으로는 桓檀古記 第三 神市本紀 본문 321쪽에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原文 싣고 解說해보기로 한다.

 

反復審思廣察萬象不多日悟得創成文字是爲太古文字之始矣但後世年代邈遠而太古文字沒泯不存抑亦組成也猶有不便而然歟亦嘗聞南海島郞河里之溪谷及鏡珀湖先春嶺與夫烏蘇里以外巖石之間時或有發見彫刻非梵非篆人莫能曉此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於是而更恨吾國之未振吾族之不强也

 

반복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넓고 넓은 森羅萬象 관찰하였다. 또한 깊이 있게 究明하려고 했다. 허구한날 많은

나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文字 창시한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太古文字

始作되었던 것을 말한다. 애써 만든 글자를 後世 남기려고 하니 아득하고 막연했다. 왜냐하면 太古文字 낡아빠지고

망가져 보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글자를 만들어 이룩하여야만 했다. 그렇다고 太古文字 똑같게 할 경우 불편할 것 같아 반드시 보고 느끼며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남해도 낭하리 계곡에 있는 경박호 앞 춘령이란 봉우리에도 있고,

그리고 그외 다른 바위와 돌 사이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었다. 조각이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며 西域 있는 불경도 아니며 사람이 쓴 글이었다.

글씨는 똑똑하고 밝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이 쓴 글임을 능히 알 수 있었다.

B.C.3000年頃 神誌氏(신지씨)가 있던 곳에서 옛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의문이라 했다.

太古文字 있었던 것을 내 나라안에서 널리 백성들간에 알리지 못한 것이 다시 한번 통탄을 금할 길 없는 것은

나라가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적고 있다.

본문에서 南海島郎河里라고 하는 곳은 한반도의 경상도 남해가 아니고, 中國古今地名大辭典 590쪽에 보면 지금의

中國廣東省廣東灣 있는 湖安縣(호안현) 남쪽이라고 되어 있다. 한반도 남해에는 鏡珀湖라든지 春嶺 없으며

또한 夫蘇里 곳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北崖老人著書揆園史話 本文 14쪽에도 桓檀古記 똑같은 記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神市本紀편에 보면 桓雄天皇 명을 받고 神誌氏赫德氏 글자를 만들었다고 되어있다.

桓雄 때라면 B.C.3898년경이다. 이 당시부터 古代 있었던 干支律呂法 의해 漢字 본격적으로 제정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正史에는 나와있지 않는 것이 흠이다.

 

民族 본래부터 . . 思想으로干支法으로 歷史年代節氣 기준하였다. 12 표준을 정한 것도

역시 十二支法 의한 것임을 볼 수 있다. 全世界 共産國家 막론하고 . . . . . . 요일은 陰陽五行法이며民族自然哲學 思想으로 엮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社會에서는 天地人, 天地人이라고 主張하는 學者들이 많은데 學問的으로 볼 때는 대단히 誤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槪念으로 보았을 때 1, 2, 3으로 되어있다. 물론 하늘이 먼저 생긴 다음 땅이 생긴 후 사람이

創造되었음을 否認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땅 위에서 살고 있으며, 사람 위에는 하늘이 있기 때문에 하늘?사람?땅의 순서인 1, 2, 3으로 되어있다는

事實이다. 다시 말해 哲學思想立場에서 보면 ()이며, ()이고, ()이 됨을 알 수 있다.

民族言語體系 글자인 漢字 자연의 道法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대단히 훌륭한 思想文化創出 수 있었던 것이다.

日本 보더라도 미음() 발음이 잘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이라고 하라하면또는의 발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日本이나 中國漢字 네 가지인 四聲音으로 使用하기 때문에 放言으로 흘러 正確發音 구사가 어렵게 되어있다는 事實이다.

日本이나 中國뿐만 아니라 全世界人들은 한국어를 똑바로 말하기란 대단히 어렵게 되어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民族

後孫 한국인은 前述한 바와 같이 天孫族이며 倍達子孫이자 白衣民族이므로 自然法則 의해 만들어진 漢字言語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正確性 지닌 民族이기 때문이다.

21世紀知識時代이다. 고로 智慧 겸비하지 않고는 文化發達期待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高度情報化時代文化時代 들어서려면 高度知識 쌓인 智慧 문이 열려야 可能 것이다.

歷史學者 토인비나, 詩人 타골, 哲學者 임어당, 그리고 小說家 게오르기 등은 21世紀東邦主導한다고 말하였다.


古代社會戰亂時代였다면 20世紀物質的 戰爭時代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1世紀尖端的知識競爭時代이다. 그러므로 高度學問 터득하지 않는다면 情報化時代 발맞출 수 없을 것이다. 敎育革命要求되고 있다. 오늘날 西歐 物質文明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高度學問 길잡이는 바로 漢文字이다.

漢文字에는 歷史? 哲學思想勿論 人間最高智慧 제공하는 學問産室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러기에 漢文字熟讀하지 않고는 高度知識智慧創出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고로 漢字思想까지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漢字思想편을 參考)

 

漢字歷史以上 같이 大自然思想觀에서 出發했기 때문에 正史 나타난 年代別整理 보기로 한다.

B.C.8364?(지갱)에 의해 干支五行 등을 律呂 법으로 제정되었다.

B.C.4796有蠶氏(유잠씨)는 누에에 하여 蠶業 대한 象形文字 만들었다.

B.C.4055史皇氏(사황씨)는 일명 ?(창힐)로서 六書之法硏究했다고 되어있다.

B.C.3386帝鴻氏(제홍씨) 역시 일명 ?로서 思想的文字 만들었다.

B.C.3071神農氏(신농씨)一名?로서 벼 화()자와 구름 운(구름)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

특히 神農氏藥草 알아내기 위해 하루에 열두 번이나 취한 일이 있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신농씨의 부인은

으로서 신농씨를 도와 藥草 손질했으며, 신농씨가 農耕社會開發하는데 헌신적으로 協助했다는 記錄,

泰山神文化(山東大學出版)歷代神仙通鑑(1673나라康熙著述 책임, 參考), 그리고 史記辭典(山東大學出刊),

炎黃源流史(江西敎育出版社. 河光岳著), 幼學須知(程允升?程錫山共著) 등에 잘 記錄되어있다.

B.C.2978?(유모씨)一名?로서새 조()’자와고기 어()’자에 대한 思想的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B.C.2679黃帝有熊氏(유웅씨)一名倉힐로서 思想的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자면 글자와 글자를 연결하여 의미가 있는 글자를 만든 것을 뜻한다.

B.C.2563?黃帝 어머니인 附寶要請 의해계집 여()’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中山經 第五 本文 36쪽의 윗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河圖曰倉?. 爲帝南巡狩. 登陽虛之山臨. 于玄扈洛?. 靈龜負書丹. 甲靑文以授之出此水中也라고 적고 있다.

 河 말한다면 ?이다. ?河圖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황제가 남쪽으로 사냥을 가기 위함에서였다는

것이다. 陽虛 다다라 올랐다. 검은 물줄기가 굽이쳐 도는 것이 흡사 불길이 솟는 듯했다.

그곳에는 영험한 거북 등에서 붉은 글이 있었고 푸른 글자와 같은 것이 물 가운데 나타나 주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竹書紀年 第二卷 위쪽 本文 36쪽을 참고해 보기로 한다.

 聖人帝曰. 已問天老力收容成矣. 史北面拜曰. 龜不違聖智. ?之天乃甚雨. 七日七夜魚流. 於海得圖書焉. 龍圖出河. 龜書出洛.

赤文篆字. 以授軒轅接萬神於明庭. 今塞門谷口是也라고 적고 있다.

 

聖人이나 帝王 말할 것 같으면 하늘에서 어른의 힘으로 분부했을 때 수용하여야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즉 하늘에서 능력이나 힘을 주지않으면 聖人帝王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선비는 얼굴을 돌리지말고 절하며 말하여야 한다고 했다.

성인의 지혜는 거북과 틀리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북처럼 묵묵히 행하여야 하며 敬天愛人地自然

우직하리만치 거북처럼 증진해야 한다는 뜻을 말하고 있다. 고로 초지일관 불꽃처럼 학문에 임한다면 하늘에서

심한 비가 쏟아지듯 너에게 줄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하늘에서 智慧 문을 열어 줄 것임을 말한다.

7일 낮 7일 밤 고기가 흘러 바다를 얻은 듯 글 그림으로 대신해 보여줄 것임을 뜻한다. 바로 그것이 물에서 낙수 물에서

거북의 글과 붉은 글 그리고 전자체의 글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헌원(軒轅)黃帝으로부터

밝은 뜰에서 받았음을 말한다.

이제부터 골문이 막혀있던 입에서 옳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또한 高麗忠臣이었던 李承休 지은

帝王韻紀에도 少典氏 아들 黃帝有熊氏 어머니 附寶 명령으로 ?女字 받아 글을 지었다는 記錄 있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漢字歷史上古代社會聖君들에 의해 끊임없이 制定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특히 黃帝舊唐書新唐書記錄되어 있는 것을 보면 141권의 著書 한 것으로 되어있다.

著書目錄 적어보기로 한다.

 

구당서(舊唐書) 서록(書錄):황제명당경(黃帝明堂經)3· 黃帝81 難經1· 黃帝12

五藏圖1·황제침경(黃帝針經)10·黃帝12經明堂偃側人圖12·황제구령경(黃帝九靈經)12·황제침자경(黃帝鍼炙經)12·

황제소문(黃帝素問)8· 황제내경태소(黃帝內經太素)30

 (舊唐書 2046參考)

 

신당서(新唐書) 서록(書錄):황제내경명당류(黃帝內經明堂類)13· 황제문현녀법(黃帝問玄女法)3·

황제용병법결(黃帝用兵法決)1·황제병법고허추기(黃帝兵法孤虛推記)1·황제태일병력(黃帝太一兵曆)1·황제태공삼궁법요결(黃帝太公三宮法要決)1·황제식용상양경(黃帝式用常陽經)1·황제용수경(黃帝龍首經)1·황제집령(黃帝集靈)3권 등

(新唐書 15501556參考)

 

보는 바와 같이 黃帝 많은 책을 지었다는 것은 上古代부터 漢文字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黃帝本作品 끝머리에 中國祖上四夷이다에서 밝힌 것이다.

漢字歷史正史記錄 사람 외에도 오랜 歲月 거쳐 끊임없이 제정되어 왔다.

漢字創造힐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本文에서 보듯이 한 사람이 漢字 만든 것은 아니다.

漢字 만든 사람은 앞에서 記錄 8명 외에도 더 있었을 것이다. 고로 힐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官職 이름이었다. 앞에서 기록된 8명 중에 6명이 힐임을 볼 수 있다.

8명 중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은 되어있다. 자가 붙은 것은 諸侯王이거나 帝王 해당된다.

官職名後世 내려오면서 諸侯王 이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漢字 만든 사람이 官名 갖고 있다가

 諸侯王 되면서 라는 官職名 그대로 쓴 것으로 보아진다.

漢字時代變化에도 不拘하고 면면이 創造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漢字玉篇 보면, 나라 때까지 글자가 만들어진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漢字歷史하여 보다 더 깊은 硏究 있어야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행해야 할 것은 漢字思想整理하고 幼兒敎育에서 初等學校 물론 大學에서 時急漢 字敎育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漢字敎育 하지

않는다면 한民族思想勿論 歷史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民族情神마저 저버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社會現在 混沌속에 彷徨하고 있다. 그리고 民族正氣 땅에 떨어져 亡國의 지경에 이르고 있는 實情이다.

고로 漢字歷史 찾아 歷史思想 바로 하고 敎育하는 것이 急先務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