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字는 한民族의 글이자 言語이다 3
카카오 환단원류사 박민우 카톡강의방에서 발췌 2017.10.06
㉡ 漢字의 歷史 漢字가 만들어진 歷史는 前述한 바와 같이 오래 되었다. 『海東繹史』에 있는 것을 보면 기원전 8937년 上元甲子年에 漢字가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 누구에 의해 무슨 글자를 만들었는지 자세한 記錄은 남아있지 않다. 확실한 記錄으로는 桓檀古記 第三 神市本紀 본문 321쪽에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原文을 싣고 解說해보기로 한다.
反復審思廣察萬象不多日悟得創成文字是爲太古文字之始矣但後世年代邈遠而太古文字沒泯不存抑亦組成也猶有不便而然歟亦嘗聞南海島郞河里之溪谷及鏡珀湖先春嶺與夫烏蘇里以外巖石之間時或有發見彫刻非梵非篆人莫能曉此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於是而更恨吾國之未振吾族之不强也
반복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넓고 넓은 森羅萬象도 관찰하였다. 또한 깊이 있게 究明하려고 했다. 허구한날 많은 나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文字를 창시한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太古의 文字가 始作되었던 것을 말한다. 애써 만든 글자를 後世에 남기려고 하니 아득하고 막연했다. 왜냐하면 太古文字가 낡아빠지고 망가져 보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글자를 만들어 이룩하여야만 했다. 그렇다고 太古의文字와 똑같게 할 경우 불편할 것 같아 반드시 보고 느끼며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남해도 낭하리 계곡에 있는 경박호 앞 춘령이란 봉우리에도 있고, 그리고 그외 다른 바위와 돌 사이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었다. 조각이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며 西域에 있는 불경도 아니며 사람이 쓴 글이었다. 글씨는 똑똑하고 밝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이 쓴 글임을 능히 알 수 있었다. B.C.3000年頃 神誌氏(신지씨)가 있던 곳에서 옛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의문이라 했다. 太古때 文字가 있었던 것을 내 나라안에서 널리 백성들간에 알리지 못한 것이 다시 한번 통탄을 금할 길 없는 것은 나라가 强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적고 있다. 본문에서 南海島郎河里라고 하는 곳은 한반도의 경상도 남해가 아니고, 中國古今地名大辭典 590쪽에 보면 지금의 中國廣東省廣東灣에 있는 湖安縣(호안현) 남쪽이라고 되어 있다. 한반도 남해에는 鏡珀湖라든지 春嶺이 없으며 또한 夫蘇里란 곳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北崖老人이 著書한 揆園史話 本文 14쪽에도 桓檀古記와 똑같은 記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神市本紀편에 보면 桓雄天皇의 명을 받고 神誌氏와 赫德氏가 글자를 만들었다고 되어있다. 桓雄 때라면 B.C.3898년경이다. 이 당시부터 古代에 있었던 干支의 律呂法에 의해 漢字가 본격적으로 제정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正史에는 나와있지 않는 것이 흠이다.
한民族은 본래부터 天 . 人 . 地 思想으로 된 干支法으로 歷史年代와 節氣를 기준하였다. 12時의 표준을 정한 것도 역시 十二支法에 의한 것임을 볼 수 있다. 全世界 共産國家를 막론하고 日 .月 . 火 . 水 . 木 . 金 . 土의 요일은 陰陽五行法이며 한民族의 自然哲學 思想으로 엮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社會에서는 天地人, 天地人이라고 主張하는 學者들이 많은데 學問的으로 볼 때는 대단히 誤謬를 犯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數의槪念으로 보았을 때 1, 2, 3으로 되어있다. 물론 하늘이 먼저 생긴 다음 땅이 생긴 후 사람이 創造되었음을 否認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땅 위에서 살고 있으며, 사람 위에는 하늘이 있기 때문에 하늘?사람?땅의 순서인 1, 2, 3으로 되어있다는 事實이다. 다시 말해 哲學思想의 立場에서 보면 天은 일(一)이며, 人은 이(二)이고, 地는 삼(三)이 됨을 알 수 있다. 한民族의 言語體系와 글자인 漢字는 자연의 道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대단히 훌륭한 思想과 文化를 創出할 수 있었던 것이다. 日本만 보더라도 미음(ㅁ) 발음이 잘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범’이라고 하라하면 ‘벙’ 또는 ‘번’의 발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日本이나 中國은 漢字의 네 가지인 四聲音으로 使用하기 때문에 放言으로 흘러 正確한 發音의 구사가 어렵게 되어있다는 事實이다. 日本이나 中國뿐만 아니라 全世界人들은 한국어를 똑바로 말하기란 대단히 어렵게 되어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民族의 後孫인 한국인은 前述한 바와 같이 天孫族이며 倍達의 子孫이자 白衣民族이므로 自然의 法則에 의해 만들어진 漢字의 言語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正確性의 音을 지닌 民族이기 때문이다. 21世紀는 知識의 時代이다. 고로 智慧를 겸비하지 않고는 文化의 發達은 期待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高度의 情報化時代나 文化時代에 들어서려면 高度의 知識이 쌓인 智慧의 문이 열려야 可能한 것이다. 歷史學者 토인비나, 詩人 타골, 哲學者 임어당, 그리고 小說家 게오르기 등은 21世紀는 東邦이 主導한다고 말하였다. 古代社會는 戰亂의 時代였다면 20世紀는 物質的 戰爭의 時代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1世紀는 尖端的인 知識의 競爭時代이다. 그러므로 高度의 學問을 터득하지 않는다면 情報化時代에 발맞출 수 없을 것이다. 故로 敎育의 革命이 要求되고 있다. 오늘날 西歐 物質文明은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高度의 學問의 길잡이는 바로 漢文字이다. 漢文字에는 歷史? 哲學思想은 勿論 人間의 最高智慧를 제공하는 學問의 産室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러기에 漢文字를 熟讀하지 않고는 高度의 知識과 智慧를 創出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고로 漢字의 思想까지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漢字의思想편을 參考)
漢字의 歷史는 以上과 같이 大自然의 思想觀에서 出發했기 때문에 正史에 나타난 年代別로 整理해 보기로 한다. ① B.C.8364년 地?(지갱)에 의해 干支와 五行 등을 律呂의 법으로 제정되었다. ② B.C.4796년 有蠶氏(유잠씨)는 누에에 關하여 蠶業에 대한 象形文字를 만들었다. ③ B.C.4055년 史皇氏(사황씨)는 일명 倉?(창힐)로서 六書之法을 硏究했다고 되어있다. ④ B.C.3386년 帝鴻氏(제홍씨) 역시 일명 倉?로서 思想的인 文字를 만들었다. ⑤ B.C.3071년 神農氏(신농씨)도 一名倉?로서 벼 화(禾)자와 구름 운(구름)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 특히 神農氏는 藥草를 알아내기 위해 하루에 열두 번이나 毒에 취한 일이 있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신농씨의 부인은 聽으로서 신농씨를 도와 藥草를 손질했으며, 신농씨가 農耕社會를 開發하는데 헌신적으로 協助했다는 記錄이, 泰山神文化(山東大學出版)와 歷代神仙通鑑(1673년 淸나라康熙 때 著述한 책임, 參考), 그리고 史記辭典(山東大學出刊), 炎黃源流史(江西敎育出版社. 河光岳著), 幼學須知(程允升?程錫山共著) 등에 잘 記錄되어있다. ⑥ B.C.2978년 有?氏(유모씨)는 一名倉?로서 ‘새 조(鳥)’자와 ‘고기 어(魚)’자에 대한 思想的인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⑦ B.C.2679년 黃帝有熊氏(유웅씨)는 一名倉힐로서 思想的인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자면 글자와 글자를 연결하여 의미가 있는 글자를 만든 것을 뜻한다. ⑧ B.C.2563년 蒼?氏는 黃帝의 어머니인 附寶의 要請에 의해 ‘계집 여(女)’자로서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中山經 第五 本文 36쪽의 윗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河圖曰倉?. 爲帝南巡狩. 登陽虛之山臨. 于玄扈洛?. 靈龜負書丹. 甲靑文以授之出此水中也라고 적고 있다. 河圖를 말한다면 倉?이다. 즉 倉?이 河圖를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황제가 남쪽으로 사냥을 가기 위함에서였다는 것이다. 陽虛의 山에 다다라 올랐다. 검은 물줄기가 굽이쳐 도는 것이 흡사 불길이 솟는 듯했다. 그곳에는 영험한 거북 등에서 붉은 글이 있었고 푸른 글자와 같은 것이 물 가운데 나타나 주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竹書紀年 第二卷의 위쪽 本文 36쪽을 참고해 보기로 한다. 聖人帝曰. 已問天老力收容成矣. 史北面拜曰. 龜不違聖智. 故?之天乃甚雨. 七日七夜魚流. 於海得圖書焉. 龍圖出河. 龜書出洛. 赤文篆字. 以授軒轅接萬神於明庭. 今塞門谷口是也라고 적고 있다.
聖人이나 帝王을 말할 것 같으면 하늘에서 어른의 힘으로 분부했을 때 수용하여야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즉 하늘에서 능력이나 힘을 주지않으면 聖人도 帝王도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선비는 얼굴을 돌리지말고 절하며 말하여야 한다고 했다. 성인의 지혜는 거북과 틀리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북처럼 묵묵히 행하여야 하며 敬天愛人地의 自然을 우직하리만치 거북처럼 증진해야 한다는 뜻을 말하고 있다. 고로 초지일관 불꽃처럼 학문에 임한다면 하늘에서 심한 비가 쏟아지듯 너에게 줄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하늘에서 智慧의 문을 열어 줄 것임을 말한다. 7일 낮 7일 밤 고기가 흘러 바다를 얻은 듯 글 그림으로 대신해 보여줄 것임을 뜻한다. 바로 그것이 물에서 낙수 물에서 거북의 글과 붉은 글 그리고 전자체의 글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헌원(軒轅)인 黃帝는 萬의神으로부터 밝은 뜰에서 받았음을 말한다. 이제부터 골문이 막혀있던 입에서 옳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記錄하고 있다. 또한 高麗 때 忠臣이었던 李承休가 지은 帝王韻紀에도 少典氏의 아들 黃帝有熊氏의 어머니 附寶의 명령으로 倉?은 女字를 받아 글을 지었다는 記錄이 있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漢字의 歷史는上古代社會 때 道를 通한 聖君들에 의해 끊임없이 制定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특히 黃帝는 舊唐書와 新唐書에 記錄되어 있는 것을 보면 141권의 著書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著書目錄을 적어보기로 한다.
구당서(舊唐書) 서록(書錄):황제명당경(黃帝明堂經)3권· 黃帝81 難經1권· 黃帝12經 五藏圖1권·황제침경(黃帝針經)10권·黃帝12經明堂偃側人圖12권·황제구령경(黃帝九靈經)12권·황제침자경(黃帝鍼炙經)12권· 황제소문(黃帝素問)8권· 황제내경태소(黃帝內經太素)30권 (舊唐書 2046쪽 參考)
신당서(新唐書) 서록(書錄):황제내경명당류(黃帝內經明堂類)13권· 황제문현녀법(黃帝問玄女法)3권· 황제용병법결(黃帝用兵法決)1권·황제병법고허추기(黃帝兵法孤虛推記)1권·황제태일병력(黃帝太一兵曆)1권·황제태공삼궁법요결(黃帝太公三宮法要決)1권·황제식용상양경(黃帝式用常陽經)1권·황제용수경(黃帝龍首經)1권·황제집령(黃帝集靈)3권 등 (新唐書 1550~1556쪽 參考)
보는 바와 같이 黃帝가 많은 책을 지었다는 것은 上古代부터 漢文字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黃帝는 本作品 끝머리에 ‘中國의 祖上은 四夷이다’에서 밝힌 것이다. 漢字의 歷史는 正史에 記錄된 사람 외에도 오랜 歲月을 거쳐 끊임없이 제정되어 왔다. 特히 漢字의 創造를 倉힐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本文에서 보듯이 倉힐 한 사람이 漢字를 만든 것은 아니다. 漢字를 만든 사람은 앞에서 記錄한 8명 외에도 더 있었을 것이다. 고로 倉힐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官職의 이름이었다. 앞에서 기록된 8명 중에 6명이 倉힐임을 볼 수 있다. 8명 중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은 蒼힐氏로 되어있다. 즉 氏자가 붙은 것은 諸侯王이거나 帝王에 해당된다. 官職名이 後世에 내려오면서 諸侯王의 이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漢字를 만든 사람이 官名을 갖고 있다가 諸侯王이 되면서 蒼힐氏라는 官職名을 그대로 쓴 것으로 보아진다. 漢字는 時代의 變化에도 不拘하고 면면이 創造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漢字玉篇을 보면, 唐나라 때까지 글자가 만들어진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漢字의 歷史에 對하여 보다 더 깊은 硏究가 있어야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행해야 할 것은 漢字의 思想을整理하고 幼兒敎育에서 初等學校는 물론 中高大學에서 時急히漢 字敎育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漢字敎育을 하지 않는다면 한民族의 思想은 勿論 歷史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民族의 魂과 情神마저 저버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社會는現在 混沌속에 彷徨하고 있다. 그리고 民族正氣는 땅에 떨어져 亡國의 지경에 이르고 있는 實情이다. 고로 漢字의 歷史를 찾아 歷史와 思想을 바로 하고 敎育하는 것이 急先務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출처] 272. 漢文字는 한民族의 글이자 言語이다 3 |작성자 집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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