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字는 한民族의 글이자 言語이다 6-1
카카오 환단원류사 박민우 카톡강의방에서 발췌
2017.10.06
㉡ 三讀法과 三味法
漢文字는 읽는 法을 모르면 연달아 글을 이어 썼기 때문에 싫증나게 되어있다. 옛 先祖들이 글을 쓸 때 띄지 않고 연결하여
책을 엮었기에 어려운 漢文字만 보면 보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漢文字에는 띄어쓰지는 않았지만 어조사의 글자에서
문장의 단락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王朝 때 어린아이들을 敎育시키기 위해서 十四世 宣祖에서二十三世 純祖에 이르기까지 무려 240餘年間 鄕校에서 가르쳐온 敎科書가 있다. 이 책에 보면 첫장에 역대제왕국호가(歷代帝王國號歌)와 역대세통가(歷代世統歌)로 되어있다. (幼學須知參考)
어린아이들이 쉽게 알고 외울 수 있도록 노래 가사식으로 古代 帝王들의 歷史를 記錄하고 있다.
本文만 全篇을 紹介하고 이어서 간략하게 說明하기로 한다.
天皇地皇人皇氏. 名曰三皇居上世.
太昊炎帝及軒轅. 唐虞紹之爲五帝.
夏商周秦東西漢. 後漢魏吳三國判.
漢亡於魏魏禪晉. 晉遂平吳天下定.
擾西晉者有五姓. 劉石慕容 姚競.
神州從此遂瓜分. 南北烽烟久不靜.
南爲東晉居江左. 宋齊梁陳踵其都.
北朝元魏倂五姓. 東魏西魏分爲二.
東傳北齊西禪周. 周又滅齊禪隋帝.
隋能平陳海宇一. 曾幾何時禪唐室.
唐祚終兮爲五季. 梁唐晉漢周相繼.
宋代周兮天下平. 中南渡兮迫於金.
倂金代宋祚歸元. 明祖承元十六傳.
軒轅甲子訖有明. 總揆歷數幾多春.
四千三百四十一. 神器萬年歸大淸.
三皇.
鑿開混沌分天地. 天地分從攝提歲.
是生萬物人最靈. 斯人之初盤古氏.
天皇兄弟十三人. 人各一萬八千歲.
地皇兄弟有十一. 亦各一萬八千歲.
人皇兄弟九人優. 兄弟九人分九州.
相傳一百五十世. 四萬五千六百秋.
三皇以後有巢出. 구木爲巢食木實.
有巢氏後燧人興. 鑽燧改火敎民食.
五帝.
奧自太昊伏羲氏. 首 八卦造書契.
女 共氏 無懷. 風姓相傳十五世.
後有神農號炎帝. 始嘗白草敎來 .
傳及楡岡姜姓終. 八世五百二十歲.
公孫軒轅爲黃帝. 垂裳而治法乾坤.
金天小昊是其子. 高陽顚頊是其孫.
曾孫帝 高辛氏. 玄孫伊祁放勳字.
放勳是爲陶唐堯. 禪于虞舜其姓姚.
夏.
禹啓太康與仲康. 帝相少康 槐芒.
泄不降 孔甲. 帝皐帝發履癸亡.
家天下者始夏禹. 取天下者始成湯.
商.
成湯太甲幷沃丁. 太甲小甲雍巳承.
太戊仲丁外壬立. 河亶甲兮祖乙興.
祖辛沃甲祖丁繼. 南庚陽甲與盤庚.
小辛小乙武丁續. 祖庚祖甲兼 辛.
庚丁武乙太丁嗣. 帝乙至紂國祚 垂.
盤庚以前爲商號. 盤庚以後號爲殷.
周.
文武成康與昭穆. 共懿孝夷 宣幽.
平桓莊釐惠襄頃. 匡定簡靈景悼 .
敬元貞哀思考烈. 安烈顯愼赦東周.
威烈以後爲戰國. 平王以後爲春秋.
春秋戰國.
成王以魯封伯禽. 齊與陳兮曹燕秦.
衛宋楚晉鄭吳國. 十二分據春秋成.
秦始 姓後滅周. 韓魏趙氏分晉都.
更有楚燕與齊國. 俱幷于秦六國休.
秦.
滅周之祀莊襄王. 幷呑六國始皇强.
高弑二世子 立. 項羽滅之秦乃亡.
得秦之號自非子. 滅秦之姓自始皇.
漢.
高惠呂后文景承. 武昭宣元成哀平.
光明章和 安繼. 順沖質桓靈獻更.
西漢高帝起 沛. 東漢光武起春陵.
後漢三國.
漢始昭烈終後主. 魏文明齊高貴公.
傳及陳留王已矣. 吳王旣逝會稽逢.
止於景帝及鳥程. 是爲三國相憑陵.
後漢討賊爲正統. 魏吳滅漢皆簒臣.
兩晉.
武惠懷愍元明成. 康穆哀奕井簡文.
孝武安帝及恭帝. 兩晉之時十五君.
武帝洛陽爲西晉. 建康元帝作東京.
南北朝宋齊梁陳隋.
宋武少文孝武至. 明蒼梧及順帝.
齊高武明東昏和. 梁武簡文元敬繼.
陳武文臨宣長城. 隋文煬帝恭帝畢.
五朝二十有五君. 共歷二百有八歲.
唐.
高太高武中睿玄. 肅代德順憲穆傳.
敬宗文武宣宗續. 懿僖昭 哀宗完.
高宗以後多女亂. 肅宗以後藩鎭叛.
更有奄宦竊大柄. 竟爲唐室之世患.
五代梁唐晉漢周.
梁有太祖及末帝. 唐莊明閔潞王締.
晉有高齊漢高隱. 周則太祖世恭繼.
五代相傳十三君. 僅曆五十餘三歲.
宋.
太祖太宗眞仁英. 神宗哲宗幷徽欽.
高孝光宗寧理繼. 度恭端兮帝昺 .
太祖太宗成帝業. 高宗南渡號中興.
元.
元之克宋始太祖. 大宗定憲蠶九有.
世祖混一滅宋君. 成宗繼以武仁英.
泰定明文寧順絶. 八十九年傳十葉.
明.
太祖首出大明君. 孫蒙祖號乃建文.
成祖燕藩入正位. 洪熙宣德正統配.
弟襲兄統景泰移. 天順復位干古奇.
成弘太平正德繼. 嘉隆萬歷稱盛治.
泰昌天啓逢否運. 崇禎殉國社稷正.
大淸.
帝心簡在大淸昌. 天明十一歸帝鄕.
天總十年崇德八. 順治十八遂陟方.
康熙垂拱六十一. 雍正十三宣重光.
富今卽位春常在. 南山萬壽永無疆.
天皇氏(B.C.8479 壬寅年), 地皇(B.C.8364 丁酉年), 人皇氏(B.C.8247 甲午年)를 말한다면 三皇은 上古時代 때 살았던 왕이다.
太昊伏羲氏.(태호복희씨 B.C.3512 己丑年), 炎帝神農氏(염제신농씨. B.C.3071 己丑年), 그리고 軒轅黃帝氏(헌원황제씨. B.C.2679 壬午年)와 唐氏唐虞陶堯王儉(B.C.2357 甲辰年), 有虞氏帝舜(B.C.2284 丁巳年) 등은 五帝이다. 즉 五帝란 다섯 사람의 帝王들이 이어왔음을 말한다.
夏(B.C.2224 丁巳年), 商(B.C.1766 乙未年), 周(B.C.1122 己卯年), 秦(B.C.221~207 庚辰年), 東西漢(B.C.206~A.D.8 乙未年), 後漢(A.D.25~220 乙酉年)을 거쳐왔다. 그리고 魏(A.D.220~265 庚子年), 蜀(A.D.221~263 辛丑年), 吳(A.D.222~280 壬寅年)의 三國은 전쟁으로 판을 벌려왔다.
漢나라와 魏나라가 망할 때 魏나라에서 禪을 통해 晋(A.D.265~420 乙酉年) 나라를 건국한 사람은 司馬炎이었다. 晋나라는 吳나라를 망하게 한 후 드디어 天下를 평정하였다.
西晉(A.D.265~317 乙酉年)은 五代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대단히 요란하고 시끄러웠다. 그 당시 劉石(유석)과 慕容(모용) 그리고 ?姚(부요) 등이 서로 힘을 겨루며 다투었다. 그때 神州를 한 울타리로 하여 나누어져 있었다.
여기서 神州를 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는 謂中國也. 詳赤縣神이라 했다. 즉 말한다면 神州는 中國이란 뜻이다. 더 상론하자면 赤縣이 神州라고 적고 있다. 赤縣 神州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742쪽 416쪽 參考)
史記孟子荀卿傳. 中國名曰赤縣神州. 赤縣神州內自有九州. 禹之序九州是也. 不得爲州數. 中國外如赤縣神州者九. 乃所謂九州也.
史記 孟子荀卿傳에는 中國이란 이름을 말할 때 赤縣神州라 한다. 赤縣神州內에 있는 것은 九州이다. 다시말해 현재 中國大陸을 夏나라 禹임금 때 아홉 고을로 나누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멸실공히 中國大陸은 아홉의 단위로 지경을 나눈 것을 말한다. 이것은 禹임금의 서문에 九州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中國大陸이 워낙 방대하므로 부득이 고을(州)의 수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中國大陸 밖에와 같이 赤縣神州는 아홉이다. 以上과 같이 中國大陸을 있는바 대로 설명하자면 九州라고 한다고 記錄하고 있다.
이와같은 관계상 南과 北은 붕화불의 연기처럼 오래도록 조용하지 못했다. 南쪽은 東晉(동쪽 진나라)이 강 왼편에 살았고, 宋(A.D.420~479 庚申年)·齊(A.D.479~502 己未年)·梁(A.D.502~557 壬午年)·陳(A.D.557~589 丁丑年)은 도읍지가 가까이 있었다.
北朝(A.D.386~581 丙戌年:北魏·東魏·西魏·北齊·北周等)는 본시 魏나라가 다섯 성(五性)으로 합한 것이었다. 특히 東魏(A.D.534~550 甲寅年)· 西魏(A.D.535~556 乙卯年)는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동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北齊(A.D.550~577 甲午年)는 서역에서 禪을 통해 北周(A.D.557~581 丁丑年)가 되었다. 周는 다시 北齊를 멸한 후 禪通을 하여 隋(A.D.589~618 己酉年)나라를 세우고 제왕이 되었다. 隋나라는 陳나라를 평정한 후 陳나라의 바다와 같은 넓은 땅을 하나로 만들었다.
A.D.618年 隋나라가 망할 당시 禪을 통한 李淵은 唐(A.D.618~626 戊寅年)나라를 세웠다. 唐나라는 A.D.684年에 武周(A.D.684~705 甲申年)에게 망하게 되었다. 唐나라 高祖인 李淵이 나라를 세운지 66年만에 武周에 의해 몰락하는 것이다. 그후 後唐(A.D.705~907 乙巳年)으로 이어졌으나 끝내 종말을 맞고 말았다.
뒤를 이어 梁(A.D.907~923 丁卯年), 唐(A.D.923~936 癸未年), 晋(A.D.936~946 丙申年), 漢(A.D.947~950 丁未年), 周(A.D.951~960 辛亥年)까지 서로 이어져왔다.
宋(A.D.960~1279 庚申年)나라 때 周(A.D.951~960년)나라는 끝나고 天下 태평시대가 되었다. 그후 北宋(A.D.960~1127 庚申年)과 南宋(A.D.1127~1279 丁未年)이 끝나고 글안(契丹. A.D.907~1211 丁卯年)과 遼(A.D.947~1211 丁未年)가 망한 후 金(A.D.1115~1234 乙未年)나라는 大陸의 中南인 河南省으로 건너와 세력을 넓혔다. 이때 宋나라는 金나라에 합병되었다. 다시말해 金나라 때 와서 宋나라를 굴복시키고 말았다.
元(A.D.1206~1363 丙寅年)나라에 이어 明(A.D.1368~1648 戊申年)나라는 16대까지 전해졌다.
軒轅黃帝(B.C.2679年)가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마친 것은 甲子年이었다. 총체적으로 軒轅 때부터 역사적으로 헤아려보면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따져보면 軒轅黃帝로부터 明나라가 망할 때까지 4341年간이다.
上古時代 天皇, 地皇, 人皇 때부터 大淸(A.D.1583~1908 戊戌年)까지 돌아보면 1만년의 세월이었다.
三皇
혼돈한 天地는 뚫리면서 열리게 되었다. 天地가 나누어지고 다스리는 과정에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萬物의 최고 영장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사람으로 말한다면 최초에 盤古氏(B.C.8937年)이다. 반고씨는 桓仁氏를 말하며 일명 渾沌氏 또는 有神氏라고 한다.
天皇의 兄弟는 13명이며 사람마다 각각 18.000세를 지냈다. 여기서 18,000세란 한 사람의 수명을 살아있는 동안을 말한 게 아니라 死後의 世界서 살았음을 意味하는 것 같다. 아니면 子孫이 18,000년까지 後世에 이어졌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이와같은 記錄은 李承休가 지은 帝王韻紀에 나타나있다. 帝王韻紀는 古代史書인 三五曆紀를 引用하고 있다.
地皇의 兄弟는 11명이 있었다. 역시 각각 18,000세를 지냈다. 人皇의 兄弟는 9명이 있었는데 兄弟 모두 뛰어났다. 아홉의 兄弟는 九州에서 나누어 살았다. 즉 九州란 현재 中國大陸 전체를 뜻한다. 그리하여 9명의 兄弟가 150世代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고로 45,600년 동안 세월을 겪어왔다.
三皇以後 有巢氏(B.C.3898 壬申年)가 나타났으며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열매를 먹었다. 有巢氏 이후 燧人氏(수인씨 B.C. 3739 壬寅年)에 의해 흥하게 되었으며, 燧人氏는 금광석을 개량하고 따라서 백성들을 불로 익혀 음식을 먹게 하였다.
五帝
사실 따지고보면 太昊伏羲氏(B.C.3512 己丑年)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복희씨는 밤낮을 가리지않고 八卦의 글을 문서로 만들었다.
女?氏(B.C.3419 壬戌年)와 共工氏(B.C.3394 丁亥年)에 이르러 생각할 수도 없이 편안하지 못했다. 풍씨(風氏) 성(姓)은 무려 15世 동안 전해져 내려왔다. 그후 신농씨(神農氏.B.C.3071 庚戌年)가 나타나 약초와 농사기구를 만들어 농경사회를 일구었다고 하여 별칭을 신농(神農)이라 하였고, 또한 호칭을 염제(炎帝)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神農氏, 炎帝氏라고도 한다. 또는 炎帝神農氏라고도 한다.
특히 神農氏는 1만 가지 약초를 처음 맛보았으며 논갈이 밭갈이를 가르쳤다. 농사짓는 밭갈이와 논갈이 기구로는 따비 끝나무로 만들었고, 약초를 맛보는 과정에서 하루에 열 몇 번의 毒에 감염되었다고 泰山神文化(山東大學 敎育出版社 刊)에서 밝히고 있다.
느릅나무처럼 강건한 강씨(姜氏)의 뿌리가 전해져 내려오던 것도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王들은 8世 동안 520年에 이르렀다.
헌원황제(軒轅黃帝)는 公孫이었으며 치마를 드리운 것처럼 하늘과 땅을 법으로 다스렸다.
金天小昊氏의 아들은 전욱(顚頊) 고양씨(高陽氏.B.C.2491 庚寅年)이다. 여기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B.C.2578 癸亥年)는 黃帝의 아들로서 新羅의 最初祖上이라고, 三國史記 義慈王 마지막 편에 記錄하고 있다.
고로 黃帝의 孫子가 전욱고양씨(?頊高陽氏)이다. 또한 黃帝의 曾孫子는 요왕검(堯王儉)의 아버지 제곡고신씨(帝?高辛氏.B.C.2482 己亥年)이며, 五代孫子는 이기씨(伊祁氏.B.C.2357 甲辰年)이다.
즉 伊祁氏는 도당씨(陶唐氏)이며 도당씨는 요왕검(堯王儉)이다. 요왕검은 단군(壇君)이었으며 요왕검의 이름은 방훈(放勳)이라 했다. 放勳 역시 도당씨(陶唐氏)로서 요왕검임을 뜻한다. 고로 요단군왕검(堯壇君王儉)에 이어 선(禪)을 통해 우순씨(虞舜氏.B.C.2284 丁巳年)로 이어지며, 우순씨는 순임금(舜壬儉)으로 요(姚)의 성씨이다.
하(夏).
우(禹.B.C.2224 丁巳年)임금 계(啓)에 이어 태강(太康.B.C.2188 癸巳年)과 더불어 중강(仲康.B.C.2159~2147 壬戌年), 그리고 소강(少康.B.C.2079~2068 壬午年), 저(?), 괴(槐), 망(芒)의 제상(帝相)들에 의해 왕통은 전해져갔다.
國史年表에 의하면 대우(大禹.B.C.2205 丙子年)는, 전욱고양씨(?頊高陽氏.B.C.2491 庚寅年)의 孫子이다. 즉 숭백(崇伯)이었던 곤(?)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歷史의 記錄에는高陽氏의 아들이 곤(?)이며, 곤의 아들은 禹임금이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禹임금은 高陽氏의 증손자가 아니라 孫子라 할 것이다. 그러나 國史年表 四種인 歷代帝王年表의 記錄에는 전욱(顚頊)의 증손이 숭백곤(崇伯?)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후 설(泄), 불강(不降), 경(?), 근(?), 공갑(孔甲)으로 이어지고 고(皐), 발(發)의 帝王을 거쳐 계(癸)를 끝으로 망하였다.
하(夏)나라 우(禹)임금은 天下의 가문으로 始作되었으나 상(商)나라인 성탕(成湯.B.C.1766~1754 乙未年)에 의해 天下를 빼앗기고 말았다.
상(商).
상(商)나라는 성탕(成湯.B.C.1766~1754 乙未年)이 태갑(太甲.B.C.1753~1721 戊申年)과 옥정(沃丁.B.C.1720~1692 辛巳年)을 합하였다. 그리고 태갑(太甲.B.C.1753~1721 戊申年), 소갑(小甲.B.C.1666~1650 乙亥年)과 옹사(雍巳.B.C.1649~1638 壬辰年)로 이어졌다. 그후 태무(太戊.B.C.1637~1563 甲辰年), 중정(仲丁.B.C.1562~1550 己未年), 외임(外壬.B.C.1549~1535 壬申年) 등이 왕위를 계승했다.
특히 하단갑(河亶甲.B.C.1534~1526 丁亥年)과 조을(祖乙.B.C.1525~1507 丙申年)에 이르러 商나라는 흥하게 되었다.
조신(祖辛.B.C.1506~1491 乙卯年), 옥갑(沃甲.B.C.1490~1466 辛未年), 조정(祖丁.B.C.1465~1434 丙申年)에 이어 남경(南庚.B.C.1433~1409 戊辰年), 양갑(陽甲.B.C.1408~1402 癸巳年)과 더불어 반경(盤庚.B.C.1401~1374 庚子年) 때 都邑地를 옮기면서 은(殷)나라로 고쳤다.
소신(小辛.B.C.1373~1353 戊辰年), 소을(小乙.B.C.1352~1325 己丑年), 무정(武丁.B.C.1324~1266 丁巳年)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조경(祖庚.B.C.1265~1259 丙辰年), 조갑(祖甲.B.C.1258~1226 癸亥年), 름신(?辛.B.C.1225~1220 丙申年)이 계속 겸하여 이었다.
경정(庚丁.B.C.1219~1199 壬寅年), 무을(武乙.B.C.1198~1195 癸亥年), 태정(太丁.B.C.1194~1192 丁卯年) 때까지 잘 이어져왔다. 그러나 제을(帝乙.B.C.1191~1155 庚午年)과 주신(紂辛.B.C.1154~1122 丁未年)에 와서 殷나라는 버려지게 되었다.
주(周).
文王이었던 무왕(武王.B.C.1122~1116 己卯年)과 成王, 康王, 그리고 昭王과 穆王과 더불어 周나라는 始作되었다. 共王과 의왕(懿王), 孝王, 夷王, 여왕(?王), 선왕(宣王), 유왕(幽王) 등은 善政을 베풀었다. 그후 平王, 桓王, 莊王, 이왕(釐王), 惠王, 양왕(襄王), 경왕(頃王)에 이어 광왕(匡王), 定王, 간왕(簡王), 영왕(靈王), 景王 등은 슬픔이 비등하였다.
敬王, 元王, 貞定王, 孝王, 威烈王 등은 생각하면 불쌍한 왕이었다.
安王, 烈王, 顯王, 신정왕(愼?王), 난왕(?王) 등은 東周의王이었다.
특히 위렬왕(威烈王.B.C.425~402 丙辰年) 이후부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접어들었고 평왕(平王.B.C.770~720 庚戌年) 때부터 春秋時代로 이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평왕(平王.B.C.770~720 庚戌年) 때부터 春秋時代이며, 威烈王 때 이르러 戰國時代인 B.C.221年까지 지속되었음을 말한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성왕(成王.B.C.1115~1079 丙戌年)은 周武王의 둘째 아들로 天子의 王位에 올랐다. 이후 백금(伯禽)을 노(魯.B.C.999~248 壬午年)나라의 제후왕(諸侯王)으로 봉(封)하였다.
成王이 天子에 등극하던 해(年)인 B.C. 1115年 11月에 殷나라 무을(武乙.B.C.1198~1195 癸亥年)왕의 차자(次子)로 기자(箕子)가 태어났다.
周武王의 큰아들은 大夫韓万이고, 成王이 둘째이며, 진당숙우(晉唐叔虞)는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大夫韓万인 韓과 晉唐叔虞의 晋은 각각 諸侯王으로 봉(封)하게 된다(史記辭典參考). 그후 제(齊.B.C.909 壬子年)나라의 여씨(呂氏)와 진(陳), 조(曹), 연(燕), 진(秦)과 더불어 각각 제후국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후 B.C.770~720년까지 위(魏)·송(宋)·초(楚)·진(晋)·정(鄭)·오(吳) 나라 등 열두 곳으로 나누어져 웅거하면서 春秋時代를 이루었다.
진(秦)나라는 처음 양공(襄公.B.C.778~776 癸亥年)으로부터 영씨(?氏)라는 성(姓)으로 출발(出發)했으나 그후 주(周)나라에 망하였다.
진(秦)나라가 생기게 되는 것은 黃帝의 손자인 전욱고양씨(?頊高陽氏,B.C.249 庚寅年)의 孫女인 여수(女脩)로부터 始作되었다. 女脩의 血統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계보(系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女脩, 非子, 秦仲, 莊公에 이어 양공(襄公.B.C.778~776 癸亥年) 때 와서 秦나라가 諸侯國으로 등극하게 된다.
2代가 文公, 3代 寧公, 4代 出子, 5代 武公, 6代 德公, 7代 宣公, 8代 成公, 9代 穆公에서 16代 도공(悼公.B.C.477 甲子年) 때까지 春秋時代는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후 七雄인 진(秦)·한(韓)·조(趙)·위(魏)·초(楚)·연(燕)·제(齊) 나라 이전까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가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秦나라는 六國을 統一한 후 秦王의 아들인 영(?.B.C.207 甲子年) 때 와서 亡하게 된다. 秦나라가 멸한 다음 韓·魏·趙와 함께 晋나라의 都邑地에서 나누어졌다. 다시 楚·燕 나라와 더불어 齊나라와 함께 갖추어졌으나 이미 秦나라는 끝나게 되었다.
진(秦).
秦나라는 30代 장양왕(莊襄王.B.C.250~247 辛亥年) 때 周나라에 의해 亡하였다. 그러나 秦나라는 다시 일어나 31代 진시왕(秦始王.B.C.221~207 庚辰年)은 六國을 統一한 强한 나라가 되었다.
秦나라의 二世였던 호해(胡亥.B.C.209 壬辰年)인 太子는 始皇帝인 아버지 政을 시해한 후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에서 都邑하였다. 호해(胡亥)의 아들인 영(?)이 王位에 올랐으나 秦나라는 끝내 항우(項羽)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항우(項羽.B.C.232~202 己巳年)는 秦나라 말기 農民 20만 명을 봉기시켜 秦王이었던 영(?)을 죽인 후 궁실(宮室)을 불태워버렸던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은 秦나라를 얻었지만 自己 스스로의 호(號)를 비자(非子)라 했다. 즉 非子란 秦나라가 亡한 후 다시 秦나라를 얻었음으로 秦나라의 아들이 아니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비록 秦나라는 멸망했지만 스스로 始皇이라는 이름을 가졌음을 말한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전욱고양씨의 孫女인 女脩로부터 뿌리로 내려온 것만은 否認할 수 없는 歷史的인記錄인 것이다.
한(漢).
한(漢)의 고조(高祖.B.C.202~195 己亥年)에 이어 혜제(惠帝.B.C.194~188 丁未年), 여후(呂后.B.C.187~180 甲寅年), 문제(文帝.B.C.179~164 壬戌年), 경제(景帝.B.C.156~150 乙酉年)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출처] 275. 漢文字는 한民族의 글이자 言語이다 6-1|작성자 집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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