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대사는 신통력이 남다른 도승(道僧)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또다른 일화는 스님이 봉서사 사미승으로 있을 때 어느마을 어린처녀가 스님을 사모하였으나,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죽고 말았다. 훗날 사내아이로 환생하여 진묵대사가 중창한 대원사의 시자(侍者)로 왔다. 대사는 그를 매우 귀여워 했으나, 다른 스님들이 시기하였다. 이에 하루는 대사가 국수를 삶게 한 뒤 스님들의 바리때를 내놓게 했다. 그리고 시자에게 대사의 바리때를 비롯해 한 가운데 바늘을 하나씩 꽂게 하고 '자 국수들 들자고!'하니 대사의 그릇은 어느새 국수로 변하고 나머지는 그대로였다고 한다.
대사가 봉서사의 산내 암자인 상운암(上雲庵)에 계실 때의 일이다. 공부하는 대중들이 결제(結制)를 앞두고 모두 탁발을 나갔다. 결제기간중에는 참선도량에서는 일체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한다. 그러므로 결제기간중에는 사람이 죽어도 그대로 두었다가 해제가 되어서야 다비식을 거행한다. 이렇게 엄한 것이 선방(禪扉)의 규율이었다.
상운암의 대중들도 그런 엄격한 규율 밑에서 진묵대사를 조실로 모시고 공부하고 있었으므로, 3개월 동안 참선을 하려면 그동안 먹을 양식을 미리 탁발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대사만 흔자 남아 집을 보시게 하고 대중들은 한 달 동안을 기약하고 멀리 떠나 갔다. 탁발 나갔던 사람들은 충분히 탁발을 해서 상운암으로 돌아왔다.
진묵대사는 석고처럼 우두커니 앉아서 사람이 돌아 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가까이 나가 가서 보니, 대사의 얼굴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고, 무릎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얼굴에 얽혀 있는 거미줄을 걷어내고, 무릎의 먼지를 털어내며, 이름을 대면서, "돌아왔습니다. "고 인사를 드리니, 대사는, "너는 왜 그렇게 속히 왔는냐"고 물으셨다. 탁발을 내보내고 대사는 홀로 남아 앉은채로 일심(一心)에 들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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