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역사인물

[스크랩] [사명대사] 바다 건너 일본으로 건너가 도술로 왜왕을 굴복시키다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6. 7. 26. 17:37
 

바다를 건너 대마도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쟁이 끝난 뒤에 일본에서는 여러 번 화친을 요구하여 왔다.

그 때 일본에서는 풍신수길이

 죽고 덕천가강이 정권을 잡고 있으면서 강화를 할 것을 제의해 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다시 침략해 올 수작으로 생각하여 상대하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는 계속

화친하기를 바라는 사신을 보내오므로 그들의 참뜻을 알아보고 진실로 원한다면 응해

주자는 의견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왜적과 싸움이 끝난 뒤 5~6년만에 새로 나라 일을 의논하게 되는 만큼 그 중요성을

생각하여 나라의 위신을 세우고, 모든 일에 의리와 바른 뜻을 세울 수 있는 인물을 보내기로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어려운 일을 해 낼 사람은 사명대사가 가장 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임금님께 추천하였다.

  사명대사는 이 때 스승인 서산대사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묘향산으로 가는 중 양근

오빈역에서 임금님의 부름을 받게 되어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1604년 6월 8일 대마도까지 다녀오라는 명을 받아 6월 22일 떠난다는 인사를 임금님께

올리고 7월1일 서울을 떠나 8월 20일 다대포에서 대마도로 출발하였다.

  며칠 수  사명대사 일행이 대마도에 도착하자 유천 조신과  현소가 접빈사로 맞아 주었다

 

일본 본토로 건너감

 

  대마도에 도착한 며칠 후 대사는 대마도 주종 의지를 만나게 되었다.
  대마도는 우리 나라와 서로 사귀어 관계를 맺지 않으면 물자가 부족하여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라 하루 빨리 화친이 되어 서로 물건을 사고 팔고 싶어 그 뜻을 사명대사에게

이야기했다.

  대사는 그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우선 대마도만은 세금을 받아 들이는

배를 보내고 또 통상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말했다. 그 대신 우리 나라 포로만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돌려 보내주는 조건이었다.

  이러한 조건으로 찾아낸 동포가 1393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대사는 대마도만 사신을 보내어 대마도 특산물인 귤, 유자, 목재, 진주, 대모,

해표피, 기타 물건들을 싣고 와서 쌀을 받아 가도록 조정에 전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마도로서는 일본 본토가 조선과 사귀어 관계를 맺지 않는 한 일본국의 허락없이

 조선과 사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대마도주는 일본 본국과 조선이 화친하도록 일본 조정에 아뢰니, 덕천가강에게

하루 속히 조선 통신사를 인도하여 일본 본토에 모셔오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졌다.

  1604년 10월 15일, 사명대사 일행은 대마도 포구에서 일본 본국으로 향하였다.
  이때 일본 조정에서는 조선 통신사를 맞기 위해 영접관을 보내어 맞게 하였다.

  나고야에서 내린 사명대사 일행의 사절단이 경도까지 가는 도중에 조선 칙사를 보기 위해

일본인들이 수백명씩 무리지어 구경을 하였다.

  특히 금강산에서 수도한 '설보화상'이 오신다고 온 장안이 떠들썩하며 굉장하였다.

   

설보화상 도술의 힘

 


  사명대사 일행이 11월 초순 일본에 도착하자 덕천가강은 약 500명의 영접단을 보내어

사명대사 일행을 모시니 그 규모가 굉장하였다.

  일본인을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훌륭한 중이 온다 하여 가마가 지날 때 마다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며 두 손을 모으며 합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덕천가강은 회담이전에 사명대사의 기세를 꺾어 놓을 마음으로 몇 가지 도술의

 힘을 시험해 보고자 하였다.

  사절단 일행이 경도 가까이 오자 30리에서부터 중간 중간에 장막을 치고 그 앞에 병풍을

 둘러치고 병풍에는 일본 사람이 지은 시를 써 놓았다. 대사는 가마를 타고 지나면서 미리

보이는 시를 모두 외워 두었다.

  경도에 도착하니 일본에서 가장 학문이 뛰어난 두 사람의 중이
  "우리 일본의 시를 평해 주십시요."
  하는 것이었다.

  대사는 길가에 세운 병풍의 시를 한 수 두 수 외워가며 그 형식과 내용의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을 평 하니, 깜짝 놀라며 귀신같은 재주라고 감탄하였다.

  또한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는데 수백 수의 시를 다 외우니, 그만 신승이라고 감탄하고

말았으며 이 사실을 덕천가강에게 보고하니 가강도 놀라며 좀 더 시험해 볼 궁리를 하였다.

<<뱀의 설화>>

 하루는 사명대사에게 목욕을 권하므로 목욕탕에 들어가 보니 목욕탕 밑에 구렁이와 독사

수십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대사는 놀라는 기색없이 들고 있던 염주를 물에 던지니 "찰삭"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염주가

있는 곳에는 뱀이 들어가지도 않은지라, 사명대사는 천천히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였다.

  이것을 본 일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라며, 덕천가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가강도 몰라며
  "과연 신승이다. 좀 더 시험해 보자."
  하고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또 시험을 해 보았다.

  
<<사초방>>

  하루는 사명대사를 방바닥이 철판으로 된 조그만 방에 모시는 것이었다.
  " 아하, 이 놈들이 무슨 딴 흉계를 꾸미는 것이구나."
  마음속으로만 짐작하고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얼마 후 방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이번에는 아무리 도가 높아도 견디지 못하겠지."
  하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사명대사는 품고 온 과일 세 개를 꺼내어 하나는 자리 밑에 깔고, 두 개는 양손에

갈라 쥐고 서리 상(霜)자와 눈 설(雪)자를 네 벽에 써 붙이고 정신을 통일하여 자기만

 알고 부처님의 말씀을 외우며 앉아 있었다.

  이튿날 아침, 일본인들이 문을 열고 보니 사명대사는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 채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방바닥도 싸늘하였다.

  사명대사는 놀라는 왜인들을 보고
  " 너희 나라가 우리 나라보다 따뜻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난 밤에 어찌 그리고

추우냐? 사람 대접을 어찌 그렇데 하느냐?"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외에도 무쇠말 시험이 있었으며, 그 시험 역시 슬기롭게 이겨내었다고 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사명대사는 일본의 산과 마을을 구경한다는 구실로 전국의 중요한 곳을 두루

돌아보고 일본인들의 정세를 살폈다. 거기서 왜인들이나 덕천가강이 조선을

침략할 뜻이 없음을 알았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있는 동안 일본 조정의 대신들과 장수들 그리고 승려와 불교

신도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부처님처럼 우러러 보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왔다고 한다.

  회담을 통해 대사는 두 나라가 화친하여 전쟁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과 일본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우리 동포들을 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사명대사는 강화의 조건으로
  첫째, 조선을 침략한 주요 인물을 처단할 것이며,
  둘째, 전쟁으로 죽은 우리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상해 줄 것,
  셋째, 포로가 되어 일본에 온 사람을 돌려 보낼 것,
  넷째, 가져간 보물을 찾아 돌려 보낼 것,
  다섯째, 다시는 조선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천황이 직접 글을 써 줄 것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덕천가강은 사명대사의 조리있고, 이치에 맞는 말과 높은 인격에 눌리어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다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사명대사는 정식 강화를 자기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일본이 약속한 조건을

모두 지킨 뒤 맺기로 하였다.

  대사가 이렇게 큰 외교 성과를 거두고, 다음해 1605년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동포 3천명을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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