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 카피가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지만, 지구 자기장도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잘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구 자기장의 북극(자북)은 현재 캐나다에서 러시아로 매년 평균 40km 속도로 ‘흐르고’ 있다.
현재 자북극은 캐나다 북단의 한 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지리적으로 북극에서 약 1,80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자남극 역시 지리적 남극과 일치하지 않으며 현재 호주 태즈메니아섬 남쪽 3,000km 지점에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 자북극과 자남극은 서로 지리적으로 정확한 지구 반대편 지점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자북극은 1831년에 영국의 탐험가인 로스가 처음 자북을 발견했을 때보다 북서쪽으로 약 1,000km가량 떨어져 있다. 그 동안 자북극이 그만큼 움직였다는 얘기다. 게다가 지금 캐나다 영토 안에 위치하고 있는 자북도 러시아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50여년 뒤면 자북은 시메리아에 위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렇듯 지구 자기장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는 오늘날 여러 가지가 발견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우리와 밀접한 내용도 있다. 바로 극지의 밤하늘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오로라가 그것이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자기장을 따라 극지 쪽으로 흘러가다가 상층 대기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옛 문헌들을 보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오로라가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무려 7백 여 건 가까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왜 요즘엔 한반도에서 오로라를 볼 수 없을까?
이는 대기오염 같은 환경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그 동안 자북극이 이동한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이 있다. 즉 옛날에는 자북극이 지금보다 한반도에 훨씬 가까이 위치했기 때문에 오로라도 그만큼 자주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 자기장이 이렇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없어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황당한 발상이지만 이런 설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코어>라는 영화가 지난 2003년에 개봉된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는 하늘을 날던 비둘기 떼가 갑자기 방향을 잃고 건물과 충돌하기도 하고 전자장치 들이 모두 먹통이 되는가 하면 강력한 태양광선이 내리 쪼이면서 다리의 철재 교각이 녹아 내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과연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지구 자기장이 갑자기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지자기의 발생 메커니즘은 어떤 것인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구의 내부에는 핵으로 불리는 유체 상태의 광물질들이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철이나 니켈처럼 전도성이 높은 성분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 지구 자전에 따라 서서히 회전하면 원래 있던 자기장에 의해 유도 전류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다시 새로운 자기장을 형성하는 순환 과정이 되풀이 된다. 이를 ‘다이나모’ 이론이라고 하며, 바로 발전기, 또는 전기 모터의 작동 원리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구 내부에는 거대한 영구자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발전기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코어> 영화에서처럼 지구 내부의 핵(코어)이 자전하는 것을 멈추어버리면 지자기장도 없어질까?
실질적으로는 영화에서처럼 핵폭탄 몇 개만으로 핵의 자전을 멈출 수도 없거니와, 설령 핵이 자전을 그만둔다고 해도 이미 형성된 지자기장이 그렇듯 순식간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자기는 워낙 거대한 규모이기 때문에 그 자력이 소멸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둘기를 비롯한 여러 조류들이나 두더지, 개미, 바다가재 등등에서 지자기의 감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으며, 또 태양에서 날아오는 자외선 등의 고에너지 광선들은 생물체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태양 전자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전기, 전자 장치들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그런데 <코어> 영화에서는 이 모든 영향들이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지만, 적어도 지구 자기장이 이런 위험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점에는 오류가 없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 자기장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자북극이 움직이는 속도가 연평균 15km정도였지만 지금은 40km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지자기 역전’ 현상이 임박한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는 지자기의 남극과 북극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인데 실제로 고지자기학(古地磁氣學:paleomagnetism)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도 지자기 역전 현상이 몇 번이나 있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75만 년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평균 25만년에 한번씩 일어났던 지자기 역전 현상이 지금은 75만년 째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자기 역전 현상은 대략 수천 년의 기간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생태계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아무튼 지구 자기장이 이렇듯 움직이는 이유는 지구의 외피가 고체인데 반해 내부의 핵은 유체 상태라는 점이 결정적인 요소일 것이다. 고체와 유체의 운동역학은 성질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 자전축이 똑바로 서 있지 않고 기울어져 있다는 점, 또 지구 자전축 자체가 세차운동주1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이 핵의 자전에 변수로 작용해서 지자기장의 복잡한 양상을 낳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구도 움직이고 지자기도 이렇듯 꿈틀대니,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역동적인 사회상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주1) 세차운동 - 수직 방향에서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이 달과 태양 인력의 영향을 받아 약 2만 5천8백년 주기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
* 'Kisti의 과학향기(http://scent.kisti.re.kr/scent/index.jsp)'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