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교보문고에서 만난 외국인이 있었습니다
그분과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는데
밥먹을때 기도(식고)하는것을 보고 "크리스챤?"
그러거니 손에 찬 단주를 보고서 "부디스트?"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_-..
10여년전의 계기로 인하여 증산도 강의를 하고 경전을 번역하는
쿠르바노프 교수의 건투를 빌어봅니다
“구한말은 한국 사상의 르네상스기”
증산도 <도전> 번역자 쿠르바노프 교수/“해외 한국학 엉터리 지원 많다”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증산도 <도전> 번역자 쿠르바노프 교수
‘증산도를 아십니까?’ 수년 전까지 시내를 걷다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교수(42·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동양학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93년 가을, 한국 여행 중 서울 교보문고에서 한국사 관련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그에게 말을 붙였다. ‘한국 상고사나 철학에 관심 있으십니까?’
쿠르바노프 교수는 그날 청년을 따라 증산도 도장을 처음 방문했다. 이후 증산도와 동학·천도교·원불교·대종교 등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출현한 한국의 민족종교들은 그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한국의 사상과 종교’라는 강좌를 10년째 개설하고 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주체사상과 한국의 전통 사상을 비교한 그의 논문을 보고 증산도 측에서 그에게 연락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7월 초 방한해 증산도 본부가 있는 대전에서 두 달간 머물렀다. 그는 빅토르 아크닌(53), 루스 블라디슬라브(35) 등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출신 학자들과 함께 증산도 <도전>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있다. 8월말 그가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대전에서 그를 만났다.
외국인 학자로서 증산도 경전을 번역하는 소감은?
=증산도는 무척 흥미로운 사상이다. 특히 사후관이 독특한데, 사람의 죽음이란 단지 육체라는 형체를 벗어버리는 것이며, 영혼은 새로운 육체로 다시 태어나고 또 죽는 고통을 겪으면서 성숙한다고 말한다. ‘상생’과 ‘해원’ ‘개벽’ 등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한국의 민족종교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들 종교의 공통점이 뭔가?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했다는 점이다. 증산도에서, 개벽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하늘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물론 유교 등 많은 동양 사상이 인간을 강조하지만, 한국의 민족종교만큼 인간과 남녀의 평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이들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지상에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민족종교가 종교 이전에 구한말의 시대 상황이 낳은 사상이라는 뜻인가?
=그런 면이 있다. 글로 씌어지고 전파되지 않는 사상은 의미가 없다. 한국에서 실학을 강조하는데, 실학은 일부 지식인들만의 것이었다. 반면 구한말 인쇄 기술과 교육이 보급되면서 등장한 민족종교는 어떤 시대의 사상보다 대중적인 설득력을 얻었고, 대중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나는 구한말이야말로 한국사에서 사상의 르네상스 시기였다고 본다.
-민족종교의 상당수가 한두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쇠락했다. 종교라기보다 민족 사상 측면이 강했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증산도는 차별성이 있다. 내가 처음 증산도를 접했던 10년 전과 비교해도 경전 체계가 풍부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도 다르다.
-번역 작업이 어렵지는 않나?
=<도전>은 19세기 말 강증산을 따랐던 신도들의 목격담을 모은 책이다. 입말과 사투리가 많다. 입말은 본래 문법적으로 틀린 경우도 많아서 옮기기가 까다롭다. 또 한글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한문투여서 애를 먹고 있다.
(한국사 연구자로서 그의 한국어 번역 실력은 고수급이다. 현대 한국어는 물론 16세기 한글본인 <효경언해>를 러시아어로 옮겼고, <휘찬여사(彙纂麗史)>(17세기 홍여하가 쓴 고려사) 한문 목판을 대학 박물관에서 찾아내 번역한 적도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발음을 잘못 알아듣는 듯싶으면 한글과 한자를 자연스럽게 적어가며 부연했다.)
-러시아의 한국학 연구 동향은 어떤가?
=우리 대학에 동양학부가 개설된 지 올해로 꼭 1백50년이 되지만, 중국·일본과 달리 한국학은 독립된 과가 없고 전공 과정만 개설되어 있다(귀화 러시아인 박노자 교수가 이곳 출신이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한국(조선)학 연구 수준이 꽤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 지원이 끊기고, 한국어를 전공해도 (한국 기업이나 한국에) 취업하기 어렵다. 반면 일본어나 중국어 전공자들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나?
=한국의 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면 미미하다. 한국의 기관 중에는 엉터리 프로젝트에 돈을 쓰는 곳도 많다. 한국학 연구자로서 한국 정부에 말하고 싶다. 지원하고 싶으면 우선 현지에 가서 무엇이 필요한지 조사하라. 그래야 엉터리 지원을 없애고 한국학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쿠르바노프 교수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수교 전인 1990년 4월, 볼쇼이 아이스발레단 한국 공연 때 통역자로서였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 정양옥씨(44). 한국무용 전공자인 부인이 러시아에 공연하러 왔을 때 통역을 맡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내 연구 주제와 관련된 분야여서 아르바이트 삼아 번역을 맡았다. 러시아에서는 교수 월급만으로 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번역은 그에게 부업이자 삶의 활력소인 셈. 그는 방학 중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장인의 묘비석을 세워준 뒤 러시아로 떠났다.
출처 : 시사저널 2005년 9월 6일자
참고 자료 : 교수님의 증산도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