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역사인물

고주몽 의 바른 역사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6. 12. 12. 19:04

 

 



 

 

 

우리는 드라마에서 해모수가 주몽의 아버지로 나와서 부여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는 다들 그렇구나...하고 인식해 왔습니다. 하지만 진실된 역사로 제작된 드라마가 아닙니다. 작가의 생각이 50%반영된 드라마입니다.

 

우리나라 상고사 역사책인 환단고기에는 단군세기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 으로 역사의 흐름을 잘알수있다.

 

그 많던 우리나라 역사책들은 거의 일본에 의해 불살라졌으며, 나머진 일본 황실도서관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략히 말하면, 해모수는 주몽의 고조할아버지이며...고조선은 삼한체제의 진한 번한 마한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으로 삼한 삼조선으로 변경이 되고 ... 진조선(bc1285~1237 22대색불루 단군)는 43대 까지 유지 하다가 44대 단군에 이르러서 구물단군이 국호를 대부여로 바꿉니다.그리고 44대~46대

까지 유지 하다가 47대 고열가단군에서 진조선이 망합니다. 나머지 번조선과 막조선은 좀 유지되어 내려오다가 흩어지게 됩니다. 자세한건 생략^^

 

그래서 5가 공화정 6년(우,마,저,구,양가) 했다가 BC232년 5가로 부터 단군 추대를 받는데 이분이 바로 "해모수"입니다.

 

그러니 다물군의 대장의 해모수와 실제 역사와는 완전히 다르죠.이 해모수단군이 북부여를 세웁니다.그리고 여기서 부터 부여역사가 시작되는겁니다 ^^

아시겠지요? 자..그러면 해모수의 아들은 누구일까요? 두명의 자식이 있었고

첫째는 BC194모수리와 고리군왕 고진입니다. 이 고진의 아들이 있는데..이 아들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ㅠㅠ 그리고 이분이 낳은 아들이 바로 옥저후 고모수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백의 유화를 만나 고주몽을 낳습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건 바로 예씨부인과 해부루에 대해서 입니다.

 

 

해모수의 첫째아들 모수리의 혈통의 3대 고해사 4대 고우루 여기서 고우루 동생이 바로 "해부루"입니다!!

 

지금 드라마에서는 해부루가 부여의 황제폐하로 나오죠;;;하지만 이 해부루는 북부여에서 인정받지못합니다. 해부루가 아닌 47대고열가 단군의 혈통의 고두막한(bc108년동명성왕)이 백성의 민심을 얻습니다. 이에 소외된 해부루는 건너가 동부여를 세웁니다.

 

 

동부여는 해부루-->금와-->대소(AD 22 멸망)됩니다.. 금와와 대소는 동부여 사람인것이죠..드라마와 전혀 다르죠...

약간 정리하자면 1대 해모수->2대 모수리->3대 고해사-->4대 고우루->5대 해부루가 되야 정상인데...고두막한이 이음 해부루는 동부여를 세웠다고 앞서 말햇습니다.고두막한 과거의 47대 고열가단군의 혈통의 자손입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거 또 나갑니다. 이 고두막한의 자손이 "6대 고무서"입니다.

그런데!!! 7대에서 고무서의 혈통이 아닌 해모수의 둘째아들 고진->?->고모수-->고주몽에서 고모수와 유화의 아들인 고주몽에거 모든걸 물려주고(내용 생략) 뒤를 잇습니다!사실상 부여의역사는 멸망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고주몽은 북부여 7대를 계승함과 동시에 국호를 고구려라고 변경을하고 고구려의 역

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주몽의 아들 유리는 예시부인과 주몽의 아들입니다. 예씨부인은 동부여의 사람입니다. 동부여의 높은 귀족집딸인것으로 보는데 정확한건 모르겠군요. 드라마에서 나오는 한백족 딸???이건 아니라고 보지만 비슷한 귀족의딸입니다. 이 예씨부인이 주몽을 만나 아들을 갖게 되는데...주몽은 고무서단

군의 손녀딸인 소서노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럼 예씨부인은 ;;; 불쌍하죠...

 

아들이 없는 고무서 단군은 주몽을 데릴사위로 삼은것이다. 그러나 훗날 고주몽은 소서노의 혈통을 고구려를 물려주지 않고 예씨부인의 아들인 유리에게 고구려를 물려주고 소서노는 친자인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하하였다. 원래 비류와 온조는 우태의 소생이라고 한다. 비류는 나라 건국에 실패하고 온조의 백제에 흡수되었다.

 

 

 

 

 

 

 

 

<다시 살펴보기>

고조선의 뒤를 이어 해모수 단군이 북부여를 건국하였다. 남쪽은 통일하지 못했기 때문에 북부여라 했다. 남쪽에는 남삼한, 최씨 낙랑국등이 세워졌다.

* 고진은 해모수 단군의 둘째 아들이며 고리군왕이다.

* 유화부인은 해모수의 부인이 아니고 고불리지의 부인이다.

* 따라서  해모수는 고주몽의 아버지가 아니고 고조 할아버지다.

* 그리고 해부루 단군때 한나라 무제가 침략을 해왔는데 마음이 유약하여 막아내지 못하였다. 이에 고두막한이 군사를 일으켜 완전히 몰아냈다. 이 분이 바로 동명성왕(고두막한 단군)으로 나라이름을 졸본부여로 바꾸었다. 해부루 단군은 ?i기다시피 동쪽으로 가서 동부여를 열었다. 지금의 주몽 사극은 이곳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극은 너무나 잘못된 것이 많다. 이 모든 왜곡은 중국이 역사를 왜곡한 사대주의 사관 때문이고, 그 후 일제의 식민사관이 이를 따랐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잃어버린 우리의 부여사를 제대로 찾아야 할 것이다.

* 주몽은 동부여에서 크다가 왕자들이 죽일려고 하니까 송하강을 건너 원래 부여인 졸본부여로 갔다. 그리고 고두막한 단군의 손녀딸인 소서노와 결혼을 하였다. 아들이 없는 고무서 단군은 사실상 주몽을 데릴사위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주몽은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꾸고 새왕조를 열었다.  

* 고주몽이 동부여에 원래 부인인 예씨부인 소생의 유리를 태자로 세우자, 소서노는 친자인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하하였다. 원래 비류와 온조는 우태의 소생이라고 한다. 비류는 나라 건국에 실패하고 온조의 백제에 흡수되었다.

 

 

<동명성왕 제대로 알기>

 조선 역사를 부활시킨 동명성왕, 고두막한

  한 무제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온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高于婁) 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다.
  
  고두막한은 기원전 108년, 졸본(卒本)에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東明 : 동명부여, 또는 졸본부여)’이라 바꾸고 동명왕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기원전 87년에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조선 역사 부활의 푯대를 다시 세우니,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이 때 본래 북부여 4대 단군의 승계자인 해부루(解夫婁)가 동쪽으로 가서 가섭원(迦葉原) 땅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동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동부여(東夫餘)라 했다. 해부루는 북부여 4대 단군의 동생이다.
  
  그리하여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고두막 단군이 되는데, 그때부터 북부여의 후기시대[後北夫餘]라고 한다.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으로부터 6대 만인 고무서(高無胥) 단군 때에 막을 내린다.
  
  6대 고무서 단군은 딸만 셋이었다. 그 둘째딸이 소서노(召西弩)인데, 고주몽과 혼인을 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토록 한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었으며, 그 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변경하여 고구려 700년 역사의 창업 시조가 된 것이다.
  
  이것이 고조선이 멸망한 후 열국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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