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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설창작 방법론15 / 이승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3. 1. 10:30

15. 문학적 체질에 대하여 (2004-05-01)

 


한방에서는 사람의 체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태어날 때 자기 체질을 타고 난다고 하고, 타고 난 체질은 바꾸기가 어렵다고도 한다. 타고 난 체질은 용모와 성격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태양인은 목덜미가 굵고 실하며 머리가 크고 엉덩이가 작다. 태음인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며 목덜미의 기세가 약하다. 소양인은 비위(췌장과 위장)의 기능이 좋고 신장의 기능이 약하다. 태음인은 간의 기능이 좋고 폐, 심장, 대장, 피부의 기능이 약하다. 또한 각각의 체질에 이로운 음식이 있고 해로운 음식이 따로 있다고 사상의학자들은 말한다. 예컨대 쇠고기가 모든 체질에 이로운 것이 아니고, 인삼 역시 모든 체질에 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엉뚱하게 사상의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문학에 있어서의 체질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목소리만 듣고도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맞춘다. 사람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목소리도 다르다.


음정과 박자가 정확하다고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으려면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소설가 역시 그러하다. 누구나 하는 말을 누구나 하는 방식으로 늘어놓는 것은 음정 박자 정확히 맞추는 데 급급한 노래 부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선 곤란하다. 모든 작가들이 똑같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이청준과 조세희는 얼마나 다른가. 이제하와 오정희는? 즐겨 다루는 주제도 같지 않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다루는 방식이 영 딴판이다. 어떤 작가는 무겁고 어떤 작가는 경쾌하다. 어떤 작가는 관념적이고 어떤 작가는 구체적이다. 어떤 작가는 입심을 앞세우고 어떤 작가는 추리를 내세운다.


유행이란 언제나 있는 것이지만, 그런 것에 휩쓸려 다니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한단(邯鄲)의 걸음을 배우지 못하고 수릉(壽陵)의 보행법도 잃어버린 한 소년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장자』에 나온다. 당시에 유행하는 한단의 걸음걸이가 멋있어 보여서 무작정 따라하다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걸음걸이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고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한방에서는 체질을 변화시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까 타고 난 체질에 맞춰서 살고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라고 한다. 체질을 변화시키는 게 어렵다면 체질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한단의 걸음걸이에 매혹될 것이 아니라, 자기 체질에 맞는 걸음걸이를 익히고 다듬고 개발하는 방법. 자신의 고유한 문학적 체질을 인식하고 자기에게 맞는 소설 세계를 전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자기의 체질을 알아내는 일이다. 한방에서도 체질을 알아내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오진도 많다고 한다. 체질을 측정하는 비교적 정확한 방법으로 오링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고 정확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링 테스트는 한쪽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자기의 체질과 부합하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이로운 식품은 힘을 강하게 하고 해로운 식품은 힘을 약하게 한다는 원리를 이용한 이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샘플이 되는 식품의 선별이다
.


이 테스트에 사용되는 식품은 특정한 체질에만 반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령 다른 체질에는 다 해로운데 특정한 한 체질에만 이로운 식품이 있다면, 그것이 샘플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그런 식의 조건을 갖춰 오링 테스트에 권장되는 식품 샘플은 오이와 당근과 감자와 가지이다.


문학적 체질을 알아낼 수 있는 샘플이 될 만한 작품들, 개성적인 자기 세계를 갖춘 소설들이 있다. 이것저것 고루 갖춘 소설이 아니라 특정한 경향성을 강하게 내세우는 개성 강한 소설들. 우리는 그런 소설들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문학적 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청준에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오정희에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최고의 책이라며 감탄하는 작품을 어떤 사람은 도무지 읽기가 힘든 지루한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 않던가.


교양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소설 습작을 위해서라면, 도무지 읽기 힘든, 체질에 맞지 않는 작품을 억지로 읽어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흥분시키는 책, 흥분시키는 작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작가를 만나는 것이 소설 습작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그 소설, 그 작가야말로 참된 문학적 스승이다. 아니, 그 이상의 스승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시를 사랑하는 서정마당
글쓴이 : 같은세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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