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南村先生 詩書

백마역의 추억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4. 11. 15:11

 

백마역의 추억

                                남촌선생 자기 이야기 

1984년 - 내나이 35세

일산에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백마역은 넓은 들판 가운데

앙증맞게 예쁜 간이 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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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에서 바라본 백마역(중앙 힌점)달리는 기차                               

                                                                       

 

 그 들판에 나의집도

백마역처럼 멀리서 마주보고 있는

벌판의 외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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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올 때면 고무장화 신고

그 벌판을 가로 질러

백마역에 가다보면

나는 항상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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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맘때 봄이 오면 집 뒤 작은 언덕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불붙었습니다.

어린 내 아들 딸이 그 꽃 속으로

줄달음질칩니다.

한달 동안은 녀석들에게는 진달래축제 기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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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우리 집 마당에

고추. 쑥갓. 상추. 들깨. 씀바귀. 들나물

지천으로 자랄 때면

서울의 친구 녀석들은 막걸리 

돼지고기 사들고 주말마다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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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멍석 깔고

어름 물 같이 시원한 마당가 펌프

푸덕 푸덕 퍼다 가 

서로서로 등목을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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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으로 깔린 푸성귀 아름 따다가

삼겹살을 구어서 주먹만 하게

쌈을 싸서들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는

주먹 쌈 한보따리 아가리가 찢어져라

쳐 넣으면 눈알이 불뚝 튀어 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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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서울로 외출 할 때면

문은 다 열어 놓고 전기불도 켜 두고

라디오까지 틀어두고 간다.

나는 항상 좀 도둑을 속여 먹는다고 자랑 한다.

좀도둑은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사실은 가져갈 것이 없고

본래 도둑도 없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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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부턴가 이 순박한 시골 백마역에

민속주점 화 사랑이 들어오더니

종당에는 즐비한 민속주점 저자거리 되고

주말이면 신촌 대학가에서

수천 명의 대학생들 쌍쌍 파티가 열리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낭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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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온 날 집 뒤쪽 창문에서 바라본  설경-

 

 

어느 날 부턴가 갑자기 검은 안경

부자들 외제차가 줄지어 드나들더니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일산 신 도시 계획 발표되고

이름 없던 그린밸트 땅 白馬가

1990년 庚午年 백말띠의 해  白馬동네가

자기 이름그대로 發音을 하여

출세를 하셨다. 아니 해원(解寃)을 했다.

비싼 땅. 귀한 몸이 되셨단 말이지요

 

 큰비 내리고 한강 뚝 터져 동네가 물 속에 잠기니

본래 비싼 땅과는 인연이 없는 서민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정든 땅 버리고 속절없이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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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뚝이 터져 물에 잠긴 우리집-그대로 두고 이집을 떠났다.
 

백마 땅을 이별 하던 날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용기가 없어서

술에 취해서야 정든 곳을 떠날 수가 있었다.

백마역이야 지금도 매양 그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

그때의 천진난만한 백마역은 아니었다.

이제는 거만하고 도도한 땅이 되어

옛 주인을 몰라본다.

 

나도 내 집 자리 찾을 길 없어

빌딩의 틈새들을 삐끔 거리다

허전하게 돌아 선다.

지금의 저 빌딩 모퉁이 어딘가에

내 아이들 고향의 소중한 어린 추억들

너무도 생생히 아롱져

땅속에 묻혀 있는데

오늘도 저 빌딩 숲들은

오만 불손하고 도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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