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고려국본기( 高 麗 國 本 紀 第 八 )
太 祖 神 聖 太 王 天 授 二 年 에 定 都 于 松 岳 之 陽 하고
:태조 신성대왕의 천수 2년 서울을 송악의 남쪽으로 정하다.
二 十 六 年 에 御 製 訓 要 하니 其 畧 曰 惟 我 東 方 이 舊 慕 唐 風 하여
:25년 어제훈요를 발표했다. 그 대략을 보면 이렇다.‘생각컨대 우리 동방이 옛부터 당풍을 사모하여
文 物 禮 樂 이 悉 遵 其 制 나
:문물 예악이 빠짐없이 당나라의 제도를 따랐다.
殊 方 異 土 에 人 性 各 異 하니 苟 必 不 同 이라.
:방을 달리하고 땅을 달리하는 사람은 성품 또한 각각 다르기 마련이고 적어도 반드시 같을 순 없는 것 아닐까?’
泰 封 國 王 弓 裔 는 其 先 이 平 壤 人 이니 本 報 德 王 安 勝 之 遠 裔 也 라.
:태봉국의 왕 궁예는 그 선조가 평양사람이라 본래 보덕왕 안승의 먼 후예이다.
其 父 剛 이 從 術 家 言 하여 從 母 姓 하여 爲 弓 氏 하다.
:그의 아비는 강직하여 술가의 말에 따라 어머니의 성씨를 따서 궁씨가 되었다.
先 是 에 高 句 麗 水 臨 城 人 牟 岑 大 兄 이 收 合 殘 民 하고 奉 安 勝 하고 爲 後 高 句 麗 王 하여 請 援 於 新 羅 한대
:이보다 앞서 고구려의 수임성 사암 모잠 대형은 남은 백성들을 모아 후고구려왕으로 삼고 원조를 신라에 청하였다.
新 羅 王 이 處 之 國 西 金 馬 渚 라가 後 에 改 爲 報 德 王 하다.
:신라왕은 이를 나라의 서쪽 금마저에 두었다가 뒤에 개명하여 보덕왕이라 했다.
神 文 王 이 立 하여 徵 報 德 王 하여 爲 蘇 判 하니
:신문왕은 즉위하더니 보덕왕을 거두어 소판을 삼고
其 族 子 大 文 이 留 金 馬 渚 하여 謀 叛 稱 王 이라가 被 誅 하고
:그의 족자 대문을 금마저에 살게하였는데 모반하여 왕을 칭했기 때문에 주살되었다.
餘 衆 이 殺 官 吏 하고 據 報 德 城 하여 又 叛 이라가
:나머지 무리들은 관리를 죽이고 보덕성에 근거하다가 다시 반역을 꾀하였으므로
爲 新 羅 所 平 하고 徙 其 人 於國南州郡하다.
:신라의 평정을 받게 되었고 그곳 사람들은 남쪽의 주와 군으로 옮겼다.
大 震 國 明 宗 景 皇 帝 天 福 九 年 五 月 五 日 에 弓 裔 가 生 於 外 家 하니
:대진국 명종 경황제의 천복 9년 5월 5일, 궁예가 외가에서 태어났다.
其 屋 上 에 有 素 光 이 若 長 虹 하여 上 屬 天 이라.
:그 옥상에는 흰빛이 비추이고 긴 무지개의 끝은 하늘에 다은듯 보였다.
新 羅 日 官 이 望 之 하고 以 爲 將 不 利 於 國 家 라하여
:신라 일관이 이를 보고 머지 않아 나라에 이롭지 못한일이 있을 것이라 했다.
以 聞 한대 王 이 嫌 之 하여 使 人 抵 其 家 하여 殺 之 러니
:이 소식이 들리자 왕은 이를 미워하여 사람을 시켜 그 집을 파괴하고 그를 죽이려 했다.
其 母 가 賂 珍 寶 하고 請 抱 而 逃 竄 하여 劬 勞 養 育 하고
:그 어미는 진귀한 보물로 뇌물을 쓴 후에 애를 끌어안고 도망가 숨어 살며 고생하며 양육했다.
年 十 餘 歲 에 祝 髮 爲 僧 하여 號 善 宗 하고
:나이 10세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선종이라 했다.
及 壯 에 放 逸 如 故 하여 不 拘 檢 僧 律 하고 軒 輊 有 膽 氣 러니
:장년이 되자 방일하여 원래부터 계율에 따르지 않으머 크고 작은 일에 담이 컸다.
嘗 持 鉢 赴 齋 라가 有 烏 啣 牙 籤 이 落 鉢 中 이라.
:어느 때 바루를 들고 재를 모시러 가는데 까치가 부적 하나를 물어서 바루 속에 떨어뜨렸다.
視 之 하니 有 王 字 어늘 秘 不 言 하고 頗 自 負 러라.
:이를 펴본즉 왕이라는 글자가 있는지라, 이를 숨기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매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先 自 安 勝 으로 有 勞 王 事 로대 而 新 羅 는 不 報 하고
:앞서 안승 때부터 왕을 모시는데 고생이 많았거늘, 신라는 이에 보답은 하지 않고
反 收 其 土 地 人 民 而 盡 奪 하여 只 以 王 妹 로 妻 之 而 已 라.
:도리어 고 땅과 백성들을 뺏고 다만 왕의 누이 하나를 아내로 삼게 하였을 뿐이었다.
高 句 麗 遺 民 이 以 故 로 累 世 積 怨 하여 怏 怏 起 變 而 屢 敗 라가
:고구려의 유민들은 이 때문에 대를 물려서 원망을 갖고 불만을 품고 있다가 변을 일으켰는데 번번히 패했었다.
至 弓 裔 하여 見 國 家 衰 亂 하고 乘 欲 聚 衆 하여
:고궁예 때에 이르러 나라가 어지럽고 쇠약함을 보고 이를 틈타 무리를 모아
復 祖 宗 之 舊 土 하고 洗 積 世 之 仇 하여
:조상의 옛 땅을 회복하고 싸여왔던 원한을 씻으려 했다.
乃 投 竹 州 賊 箕 萱 하니 萱 이 侮 慢 不 禮 라.
:곧 궁예는 죽주의 도적이었던 기훤에게 투항했는데, 훤이 업신여겨 이를 예로써 대하지 않았다.
弓 裔 가 鬱 悒 不 自 安 하여 潛 結 萱 麾 下 의 元 會 申 烜 等 하여
:궁예는 울분을 터뜨리고 스스로 편치 못하더니, 몰래 훤의 휘하의 원회 신훤등과 결탁하여
爲 友 하고 投 北 原 賊 梁 吉 하니
:친구가 되어 북원의 적, 양길에게 투항했다.
吉 이 善 遇 之 하여 委 之 以 事 하고
:양길은 이들을 잘 대우하여 이들에게 일을 맞겼다.
分 兵 百 騎 하여 使 東 畧 州 郡 하니 皆 降 之 라.
:병력 100기를 나누어 주고 동쪽을 공략하게 하니 주와 군이 모두 항복했다.
又 攻 阿 瑟 那 하니 衆 至 六 百 이라. 自 稱 將 軍 하고
:또 아슬라를 공략하여 무리가 600이 되자 스스로 장군이라 부르게 했다.
: 與 士 卒 로 同 甘 苦 하고 予 奪 을 不 以 私 하니
:힘들고 쉬운 일들을 모두 사졸과 함께 하고 뺏은 것을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함께 나누니,
衆 心 이 皆 畏 之 라.
:무리들이 마음으로부터 두려워하며 따르게 되었다.
天 福 二 十 七 年 에 太 守 王 隆 이 以 松 岳 郡 으로 歸 弓 裔 하여 說 之 曰
:천복 27년 태수 왕륭은 궁예에게 귀순하며 그에게 설명하기를,
大 王 이 若 欲 王 朝 鮮 肅 愼 卞 韓 之 地 인대 莫 如 先 占 松 岳 이니
:‘대왕께서 만약 조선 숙신 변한의 왕노릇 하고자 한다면 먼저 송악을 점령하고
以 吾 長 子 建 으로 爲 其 主 라한대 從 之 하다.
:나의 장자 건으로 하여금 그 주인이 되게 하는 것보다 상책은 없을 것입니다.’하니 그 말에 따랐다.
時 에 李 萱 이 起 兵 武 珍 州 하고 乃 聲 言 於 衆 曰
:때에 이훤은 병을 무진주에서 일으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吾 原 三 國 之 始 컨대 馬 韓 先 起 에 赫 居 世 가 後 興 하고 弁 韓 이 從 之 에
:‘내가 삼국의 근원을 상고해 본즉 마한이 먼저 건국하고, 혁거세가 뒤에 일어나고 변진이 그 뒤를 따랐다.
百 濟 開 國 하여 傳 世 六 百 이러니 新 羅 가 與 唐 으로 合 攻 滅 之 하니
:백제가 개국하여 600년을 전했는데 신라가 당나라와 합쳐 공격함으로써 멸망시켰다.
今 에 予 雖 不 德 이나 欲 雪 義 慈 之 憤 이라.
:이제 나는 덕이 없지만 의자왕의 분을 풀려고 한다.’
遂 都 完 山 하여 稱 王 하고 國 號 曰 後 百 濟 라.
:마침내 완산에 도읍하고 왕을 칭하며 국호를 후백제라 하였다.
弓 裔 가 亦 以 明 年 에 稱 王 하고 謂 曰
:궁예도 역시 그 이듬해 왕이라고 칭하면서 말하기를,
新 羅 가 請 兵 於 唐 하여 滅 高 句 麗 하니 是 可 耻 也 라.
:‘신라는 당나라에 군대를 청하여 고구려를 멸했다. 이는 치욕스런 일야.
吾 必 爲 高 句 麗 하여 報 讐 라하고 立 國 號 曰 後 高 句 麗 요 建 元 曰 武 泰 라.
:내 반드시 고구려를 위하여 그 원수를 갚을 터’라고 했다. 국호를 후 고구려라 하고 건원하여 무태라 하였다.
嘗 南 行 하여 至 興 州 寺 하여 見 壁 掛 新 羅 前 王 畵 像 하고 拔 劒 擊 之 하니
:남쪽으로 나아가 흥주사에 이르렀을 때 벽에 신라 전 왕의 화상이 걸려있음을 보고 칼을 뽑아 이를 쳤다.
弓 裔 가 意 欲 倂 呑 新 羅 하여 呼 爲 滅 都 하고
:궁예는 마음 속으로 신라를 합치고자 그 서울을 멸망시키겠다고 외치며
自 新 羅 歸 附 者 를 幷 皆 殺 之 라.
:신라로부터 귀순해 오는 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自 是 로 弓 裔 는 自 稱 彌 勒 佛 이라하여 頭 戴 金 幘 하고
:이 때부터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하고 머리에 금책을 썼다.
又 自 述 經 二 十 卷 하여 或 正 坐 講 說 이러니
:또 경 20권을 저술하고는 때때로 정좌하여 강설하였는데
僧 釋 聰 이 謂 曰 皆 邪 說 怪 談 이니 不 可 以 訓 이라한대 弓 裔 가 怒 하여 以 鐵 椎 로 打 殺 之 라.
:승 석총은 말하기를 ‘모두 사설괴담으로 이를 들어 논할 가치도 없다’하니 궁예가 듣고는 철퇴로 때려서 죽였다.
天 授 元 年 戊 寅 夏 六 月 에 王 建 이 爲 洪 儒 裵 玄 慶 申 崇 謙 卜 智 謙 等 諸 將 軍 之 所 推 戴 하여
:천수 원년 무인 6월, 왕건은 홍유 배현경 신승겸 복지겸 등의 제장에게 추대되어
黎 明 에 坐 於 積 穀 之 上 하여 行 君 臣 之 禮 하고
:새벽에 곡식더미 위에 앉아 군신의 예를 행하고,
令 人 馳 且 呼 曰 王 公 이 己 擧 義 旗 矣 라. 奔 走 來 赴 者 가 衆 이요
:사람을 시켜 뛰어다니면서 ‘왕건이 마침내 의거를 들었다’하고 외치게 하니, 달려와 모이는 무리가 많았다.
先 至 宮 門 하여 鼓 譟 以 待 者 가 亦 萬 餘 人 이라.
:먼저 궁문에 이르니 북치며 기다리는 자 역시 만여 명이라
遂 卽 位 於 布 政 殿 하고 建 元 天 授 라.
:마침내 포정전에서 즉위하고 연호를 정하여 천수라 했다.
於 是 에 泰 封 王 弓 裔가 聞 變 하고 以 微 服 出 門 하여 亡 去 라가 尋 爲 斧 壤 民 所 害 하다.
:여기에서 태봉왕 궁예는 변을 듣고 평복을 한채 문을 나서 도망하다가, 얼마 못가서 부양의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契 丹 聖 宗 이 遣 將 蕭 遜 寧 하여 侵 破 蓬 山 하고 獲 我 先 鋒 하니
:거란의 성종은 장군 소손녕을 보내 침략하니 봉산을 격파하여 우리의 선봉을 몰아 부쳤다.
成 宗 文 懿 大 王 이 會 群 臣 議 할새 或 言 乞 降 하며 或 言 割 地 與 之 라하야늘
:성종 문의왕은 군신을 모아 의논하니 어떤이는 항복을, 어떤이는 땅을 갈라 거란에게 주자고 하는데,
中 軍 徐 熙 가 獨 曰
:중군의 서희만이 홀로 말한다.
今 見 其 勢 大 盛 하고 遽 割 西 京 以 北 하여 與 之 는 非 計 也 라.
:‘지금 적군의 기세가 크다는 것만을 보고 즉시 서경이북을 적에게 준다는 것은 계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且 三 角 山 以 北 이 亦 高 句 麗 舊 址 也 니
:또 삼각산 이북도 역시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
彼 以 谿 壑 之 慾 으로 責 之 無 厭 이면 可 盡 與 乎 아.
;저들이 끝없는 욕심으로 이를 가지려 한다면 막지도 못할 것이라 하여 모조리 줄 것입니까?
況 今 割 地 는 則 誠 萬 古 之 耻 也 라.
:항차 지금 땅을 잘라서 준다면 실로 만고의 치욕입니다.
願 駕 還 都 城 하시고 使 臣 等 으로 一 與 之 戰
:원컨대 어가를 돌려 돌아가시고 신 등으로 하여금 한 차례의 싸움을 하게 해 주십시오.
然 後 에 議 之 라도 未 晩 也 니이다.
:그런 후에 이런 의논을 한다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熙 奉 國 書 하고 赴 契 丹 營 하여 問 相 見 之 禮 한대 遜 寧 이 曰
:서희는 국서를 가지고 거란의 진영으로 가 상견의 예를 청하니 손녕이 말하기를,
我 는 大 朝 貴 人 이니 宜 拜 於 庭 이니라.
:‘나는 대조의 귀인이다. 마땅히 마당에서 절을 하라’하니
熙 曰 兩 國 大 臣 이 何 得 如 是 리오.
:서희는, ‘양국의 대인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하니
遜 寧 이 謂 熙 曰 汝 國 은 興 新 羅 地 하니
:손녕이 또 말하기를,‘너희 나라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다.
高 句 麗 之 地 는 我 所 有 也 어늘 而 汝 侵 蝕 之 하고 又 與 我 連 壤 이어늘
:고구려 땅은 우리가 갖고 있는 바라. 그런데 그대들이 이를 침략하더니 우리와 땅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而 越 海 事 宋 故 로 有 今 日 之 師 라.
:바다를 넘어 송나라를 섬기고 있다. 때문에 오늘의 전란이 있게 된 것이다.
若 割 地 以 獻 而 修 朝 聘 이며 可 無 事 矣 리라. 熙 曰
:만약 땅을 쪼개어 이를 바치고 조공을 올린다면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니 서희 말하기를,
非 也 라. 我 國 은 卽 高 句 麗 之 舊 也 니 故 로 號 高 麗 하고 都 平 壤 하니
:‘아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선조로 한다. 때문에 고려라고 이름하고 평양에 도읍했다.
若 論 地 界 면 則 貴 國 之 東 京 이 皆 在 我 境 이어늘 何 得 謂 之 侵 蝕 乎 아.
:만약 국경을 논한다면 곧 귀국의 동경은 모두 우리의 땅이다. 어찌 이를 침식이라 할 수 있으랴.
若 逐 女 眞 하고 還 我 舊 地 則 敢 不 修 聘 이리오.
:만약 여진을 쫓아 우리 옛땅을 되돌려 주면 곧 감히 교류하지 않을손가’하니
辭 氣 慷 慨 어늘 遜 寧 이 知 不 可 强 하고.
:말 솜씨가 강개한지라 손녕은 강변함이 쓸모 없음을 알고,
遂 決 罷 兵 하고 宴 慰 以 送 하다
:병을 파할 것을 결정하고 연회를 베풀고 위로한 뒤 서희를 송별했다.
都 元 帥 尹 瓘 이 攻 罷 女 眞 하고 立 碑 于 先 春 嶺 하여 以 爲 界 하고
:도원수 윤관은 여진을 공격하고 격파하여 비를 선춘령에 세워 경계를 삼았다.
遣 子 彦 頤 하여 奉 表 하하니
:아들 언이를 보내 표를 올리고 축하하게 하였다.
平 章 事 崔 弘 嗣 金 景 庸 과 參 知 政 事 任 懿 와 樞 密 院 事 李 瑋 等 이 入 對 宣 政 殿 할새
:평장사 최홍사 김경숙, 참지정사 임의, 추밀원사 이위 등은 선정전에 들어가
極 論 尹 瓘 吳 延 寵 林 彦 等 이 妄 興 無 名 之 兵 하여
:이에 대하여 극론했다. ‘윤관과 오연농과 임언 등은 함부로 명분 없는 군대를 일으켜
敗 軍 害 國 하니 罪 不 可 赦 야라하고
:군을 파하고 나라를 해롭게 한죄 용서할 수 없습니다.’
諫 官 金 緣 李 載 等 이 亦 相 繼 劾 之 하여 曰
:간관 김연과 이재등 역시 계속하여 탄핵하기를,
人 主 之 取 土 地 는 本 欲 育 民 也 어늘 今 爭 城 而 殺 人 하니
:‘임금이 토지를 취하는 것은 본래 백성을 키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을 다투며 사람을 죽였는데,
莫 如 還 其 地 而 息 民 이라.
:그 땅을 돌려주고 백성을 쉬게함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今 不 與 면 必 與 契 丹 으로 生 釁 이니라.
:지금 주지 않으면 반드시 거란과 말썽이 생길 것이옵니다.’라고했다.
上 曰 何 也 오. 緣 曰
:제 가로대 ‘무슨 말썽인가’ 하시니 김연이 아뢰기를
國 家 初 築 九 城 할새 使 告 契 丹 호대 表 稱 女 眞 弓 漢 里 는 乃 我 舊 地 요
:‘국가에서 처음 9성을 쌓았습니다. 거란에 표징을 고함에,<여진의 궁한리는 곧 우리의 옛 땅이다.
其 居 民 이 亦 我 編 氓 이어늘 近 來 에 寇 邊 不 已 故 로 收 復 而 築 其 城 이라.
:그 백성도 역시 우리의 편맹이다. 근래 변두리를 노략질 함이 끊이질 않기 때문에 수복하여 그 성을 쌓는다.>고 하였습니다.
表 辭 如 是 로대 而 弓 漢 里 酋 長 은 多 受 契 丹 官 職 者 니
;표사가 그렇다면 궁한리의 추장은 거란의 관직을 받은 자일 것이니
契 丹 이 以 我 爲 妄 言 하여 以 加 責 讓 하리니
:거란을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망언을 하며 우리를 책양할 것입니다.
我 若 東 備 女 眞 하고 北 備 契 丹 에
:만약 동쪽을 여진에 대비하고 북쪽을 거란에 대비한다면
臣 恐 九 城 이 非 三 韓 之 福 也 니이다.
:신은 9성이 삼한의 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옵니다.’라고 했다.
諫 議 大 夫 金 仁 存 이 亦 請 還 舊 地 라.
;간의 대부 김인존도 역시 옛땅을 돌려줄 것을 청했다.
上 이 宣 諭 曰 兩 元 帥 之 伐 女 眞 은 受 先 帝 之 遺 志 하고
:제는 선유하여 가로대 '양원수는 여진을 정벌하여 선제의 유지를 받은바라,
軆 朕 躬 之 述 事 하여 身 冒 鋒 鏑 하고 深 入 賊 壘 하여 斬 馘 俘 虜 를 不 可 勝 計 라.
:짐이 몸소 말하는것을 행하여 몸은 활과 창을 무릅쓰고 깊숙이 적진에 들어가서 포로로 잡고 죽인자가 이루 다 셀수 없으며
而 闢 千 里 之 地 하고 築 九 州 之 城 하여 以 雪 國 家 之 耻 하니 則 其 功 이 可 謂 多 矣 라.
:1000리의 땅을 열고 9주의 성을 쌓아 국가의 치욕을 갚았다면 그 공은 크다고 할 만한 일이다.
然 이나 女 眞 은 人 面 獸 心 이라. 反 復 無 常 하고 厥 有 餘 醜 하여 無 所 依 處 故 로
:그렇지만 여진은 인면수심으로 변덕이 몹시 심하다. 저 남은 무리들이 있지만 의지할 곳은 없다.
酋 腸 이 納 降 請 和 하니 群 臣 이 皆 以 爲 便 하고
:고로 추장이 항복해 오며 평화를 청해오매, 군신이 모두 좋다고 하므로
朕 이 亦 不 忍 이러니 有 司 守 法 에 頗 有 論 劾 하여
:짐도 역시 차마 어쩌지 못하겠다. 유사가 법에 따라 여러차례 탄핵을 논하는바 있어서
遽 奪 其 職 이나 朕 이 終 不 以 此 로 爲 咎 라.
:갑자기 그 직을 빼앗으려 한다. 짐은 종내 이를 허물로 여기진 않는다.
庶 幾 有 孟 明 之 復 濟 也 로다.
:바라건대 속히 다시 복직하게 되기를 비노라'고 하였다.
睿 宗 文 孝 大 王 四 年 秋 七 月 에 撤 九 城 하여 還 女 眞 舊 地 하다.
:예종 문효대왕4년 가을 7월, 9성에서 철수하여 여진의 옛땅의 돌려줬다.
先 是 에 女 眞 이 使 褭 弗 史 顯 等 하여
:이보다 앞서 여진은 요불과 사현등을 보내 상주하여 가로대,
入 朝 奏 曰 昔 에 我 太 師 盈 歌 가 嘗 言 我 祖 宗 이 出 自 大 邦 하니 至 于 子 孫 하여
:'옛날 우리태사 영가는 말하기를 <우리 조종은 대방(고려)에서 나와 자손에 이르렀다>라고 하였으니,
義 當 歸 附 가 可 也 라하더니
:마땅히 귀부하여야 옳을 것입니다.
今 太 師 烏 雅 束 이 亦 以 大 邦 으로 爲 父 母 之 國 이러니
:지금 태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至 甲 午 年 間 하여 弓 漢 村 人 이 自 作 不 靖 이나 本 非 太 師 之 指 揮 라.
:갑오 연간에 궁한리 사람들이 스스로 안정하려 들지 않았는데 이는 본래 태사의 지위 밑에 있던바가 아니었습니다.
國 朝 鳴 罪 討 之 나 復 許 修 好 故 我 信 之 하여 不 絶 朝 貢 이러니
:국조가 죄를 앞세워 이들을 토벌하시더니 다시 수교를 허락하셨으므로 우리는 이를 믿고 조공을 끊이지 않았는데,
去 年 에 大 擧 하여 殺 我 耄 倪 하여 築 置 九 城 하여
:작년엔 크게 일어나서 우리의 모아를 죽이고 9성을 쌓아
使 子 遺 之 民 으로 靡 所 止 歸 하시니
:외로이 남은 백성들로 하여금 떨게하고 말려서 돌아가게 했습니다
太 師 遣 我 하여 來 請 還 地 云 云 이라.
:이에 태사는 우리를 보내어 땅을 되돌려 줄 것을 청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又 會 宰 樞 臺 省 知 製 誥 侍 臣 都 兵 馬 判 官 과 及 文 武 三 品 以 上 하여
:또 재상 추밀원 대성 지재고 시신 병마판관 및 문무의 3품이상을 만나
更 議 還 九 城 可 否 한대 皆 曰 可 라.
:다시 9성을 돌려 주는 일의 가부를 의논하니 모두가'�다'고 했다.
舊 史 에 云 兩 將 軍 이 立 碑 於 先 春 嶺 曰 至 此 爲 高 麗 之 境 이라하니
:옛사서에선 말한다. '두 장군은 비를 선춘령에 세우고 이곳에 이르러 고려의 국경이라고 했다.
先 春 嶺 은 在 豆 滿 江 七 百 里 外 松 花 江 近 地 云 이라.
:선춘령은 두만강으로부터 700리 밖 송화강의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한다.'
廣 州 牧 尹 彦 頤 自 解 表 에 云 及 睹 中 軍 所 奏 하니 曰
:광주목 윤언이는 자해표에서 말한다..중군 금부식이 상주한 것을 보건대,
彦 頤 가 與 鄭 知 常 으로 結 爲 死 黨 하여 大 小 之 事 를 實 同 商 議 라하고
:'<언이가 정지상과 결탁하여 결사당을 만들어 크고 작은 일들을 상세히 의논하더니
在 壬 子 年 西 幸 時 에 請 立 元 稱 號 하고
:임자년에 서경으로 행차하셨을 때에는 건원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又 諷 誘 國 學 生 하여 奏 前 件 事 하니 蓋 欲 激 大 金 하여 生 事 乘 間 하여
:또 국학생들을 유혹하여 앞의 일을 상주하도록 하였으니, 대저 대금국을 격동시키려고 일을 벌리고는 틈을 타서
恣 意 處 置 하여 朋 黨 外 人 하여 謀 爲 不 軌 하니 非 人 臣 意 라하니
:제 멋대로 처리해 버렸고 다른 사람들을 당파로 몰아 공모하여 법도에 맞지 않는 짓을 함은 신하된 도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臣 이 讀 過 再 三 然 後 에 心 乃 安 繄 하니이다.
:신은 재삼 거듭하여 읽고난 후에야 겨우 마음에 안정을 찾았습니다.
是 立 元 之 請 은 本 乎 尊 主 之 誠 이니
:건원칭제를 청한 근본은 임금을 높이자는 정성입니다.
在 我 本 朝 하여 有 太 祖 光 宗 之 故 事 하고
:우리나라에도 태조와 광종의 고사가 있습니다.
稽 其 往 牒 에 雖 新 羅 渤 海 라도 以 得 爲 之 하니
:지난 기록을 살펴 보더라도 비록 신라와 발해가 황제를 칭했어도
大 國 이 未 嘗 加 兵 하고 小 國 이 無 敢 議 其 失 이어늘
:대국은 군대를 동원하지 못했고 작은 나라들은 의논도 끄집어 낼 수 없었으니, 잘못될 바가 어찌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奈 何 聖 世 에 反 爲 僭 行 이리오. 臣 嘗 議 之 컨대 罪 則 然 矣 나
:좋은 때에 오히려 쩔쩔매는 셈이니 신은 일찌기 이를 논했습니다. 죄라면 그것입니다.
若 夫 結 爲 死 黨 하여 激 怒 大 金 하여늘 語 言 이 雖 甚 大 焉 이나
:지금 결사당을 만들었다거나 대금을 격노하도록 만들었다는 말 등이 매우 크지만
本 末 이 不 相 坐 하니 何 則 고.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假 使 强 敵 이 來 侵 我 疆 이면 夫 惟 禦 之 未 遑 이오 安 得 乘 間 而 用 事 이리오.
;왜냐하면 강한적이 우리의 땅에 쳐들어 오면 이를 막아내기에도 벅찰텐데 어찌 그 틈을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其 指 朋 黨 者 는 誰 氏 며 其 欲 處 置 者 는 何 人 고.
;당파를 만들었다고 하는 자는 누구이며, 누구를 가리켜 당파라고 하는지요?
衆 若 不 和 면 戰 之 則 敗 하여 且 容 身 之 無 地 어늘
:만약 무리가 화합하지 못한다면 싸워봤자 패하여 오히려 몸둘 곳조차 없어질텐데
何 恣 意 以 爲 謀 리오. 有 賴 知 하여 重 念 臣 以 至 弱 之 質 로 從 西 征 之 役 하여
:어찌 멋대로 모반하겠습니까?생각하고 생각해 보아도 신은 지극히 자질이 약하나 서쪽으로 정벌의 전장에 나아가서
忘 身 以 衛 其 國 하니 乃 義 分 之 當 然 이요
:몸을 잊고 나라를 지켰으니 의로써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成 事 는 皆 因 於 人 하니 何 勤 勞 之 足 道 리오.
;일의 이룸은 모두가 사람에게 달린 것인데 어찌 도에 맞도록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까?'
金 史 에 曰 世 宗 大 定 十 五 年 九 月 에
:<<금사>>에 말하기를 '세종은 대정 15년(1175)9월,
高 麗 西 京 留 守 趙 位 寵 이 遣 徐 彦 等 하여 進 表 하고
:고려의 서경유수 조위총이 서언등을 파견하여 표문을 올려
欲 以 慈 悲 嶺 以 西 와 鴨 綠 江 以 東 으로 內 附 한대 不 許 라.
:자비령 이서와 압록강 이동을 가지고 내부코자 하였으나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있다.
高 麗 史 에 曰 睿 宗 十 一 年 三 月 乙 未 朔 에
:<<고려사>>에 말하기를 '예종 11년(1115) 3월 을미에
上 이 聞 遼 의 來 遠 抱 州 二 城 이 爲 女 眞 所 攻 하여 城 中 食 盡 이어늘
:상은 요의 내원과 포주의 두 성이 여진에게 공격을 받아 성중에 양곡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遣 都 兵 馬 錄 事 邵 億 하여 送 米 一 千 石 한대 來 遠 統 軍 이 辭 不 受 라.
:도병마록사 소억을 보내 쌀 1000석을 보냈으나, 내원은 통군이 이를 사절하고 받지 않았다.
八 月 庚 辰 에 金 將 撤 喝 이 攻 遼 來 遠 抱 州 二 城 하여 幾 陷 이어늘
:8월 경진에 금나라 장수 철갈이 요나라의 내원 포주 두성을 공격하여 거의 함락하게 되었는데,
其 統 軍 耶 律 寧 이 欲 帥 衆 而 逃 라.
:통군 야율령은 무리를 데리고 도망치려 했다.
上 이 遣 樞 密 院 知 奏 事 韓 皦 如 하여 招 諭 러니 寧 이 以 無 王 旨 로 辭 라.
:상은 추밀원 지주사 한교여를 파견하여 초유하니 야율령은 왕의 어지가 없다 하여 사양했다.
皦 如 馳 奏 한대 上 이 欲 令 樞 密 院 으로 具 箚 子 送 之 하니
:교여는 달려와 이를 주상했다. 상이 <추밀원으로 하여금 공문을 갖춰 이를 보내고자 한다>고 하였다.
宰 臣 諫 官 이 奏 曰 彼 求 王 旨 하니 其 意 難 測 이라.
:재신과 간관은 말하기를 <저가 왕의 어지를 요구하지만 그 뜻을 알기 어렵다.
請 止 之 라한대 上 이 乃 遣 使 如 金 하여 請 曰
:고로 이를 말리도록 요청한다>고 하니, 상은 곧 사신을 보내 금나라에 가서 청하기를
抱 州 는 本 吾 舊 地 니 願 以 見 遼 라한대
:포주는 본래 우리의 옛 땅이다. 바라건대 요나라를 이 때문에 만나 뵙고자 한다>하니,
金 主 謂 使 者 曰 爾 其 自 取 之 하라하다.
:금나라 왕이 사자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그땅 내원성을 직접 취하라>고 하였다.
厚 庵 李 尊 庇 는 高 麗 景 孝 王 時 人 也 라.
:후암 이존비(-1287)는 고려 경효왕 때의 인물이다.
嘗 在 書 筵 하여 論 自 主 富 强 之 策 이러니 仍 奏 曰
:한 때 서연에 있으면서 자주부강론을 상주하였다.
本 國 이 自 桓 檀 朝 鮮 北 夫 餘 高 句 麗 以 來 로 皆 富 强 自 主 하고
:'우리나라는 한단조선 북부여 고구려 때부터 모두 부강자주해 왔다.
且 建 元 稱 帝 之 事 는 至 我 太 祖 初 하여
:또 원을 세우며 칭제하는 일은 우리태조 때에 처음으로 시작했다.
亦 嘗 行 之 나 而 今 則 事 大 之 論 이 定 爲 國 是 하여 君 臣 上 下 가 甘 受 屈 辱 하고
:그런데 지금 사대의 논은 정해져서 국시가 되고, 군신상하가 굴욕을 감수하고
不 圖 所 以 自 新 하니 其 畏 天 保 國 則 誠 美 矣 어니와
:스스로 혁신할 기도를 하지 않음은 하늘이 두려운 바라. 나라를 보전함을 진실로 옳은 것입니다.
奈 天 下 後 世 之 笑 에 何 며 且 與 倭 搆 怨 하니 萬 一 元 室 이 有 變 이면
:어찌하여 천하 후세에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워하는가? 바햐흐로 왜와 원한을 사려 하다가 원실에 변고가 생기면
將 焉 所 恃 而 爲 國 이리오. 稱 帝 之 事 는 爲 時 忌 諱 하니
:장차 무었에 기댈 것인가? 그리고 나라를 위해 칭제하는 일이 시기를 핑계로 기피하는 바 된다면
則 固 難 卒 復 이로대 而 自 强 之 策 은 不 可 不 講 也 니이다.
:참으로 회복할 수 없는 나라일 것이니, 자강책을 강구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奏 雖 寢 이나 聞 者 莫 不 韙 之 러라.
:상주하는 바가 비록 채택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듣는자 이를 이를 그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後 에 又 陳 備 倭 五 事 하니
:뒤에 또 왜에 대비한 5사를 말했는데
一 曰 詳 備 戶 口 하여 悉 民 爲 兵 이요 첫째, 호구를 잘 파악하여 병사로 삼을 것.
二 曰 兵 農 一 作 하여 水 陸 共 守 요 둘째, 군대와 농사일을 하나로 하여 수륙 공히 나라를 지킬 것.
三 曰 積 置 兵 糧 하여 修 造 戰 艦 이요 세째, 군량을 비축하고 전함을 수조하는 일.
四 曰 擴 張 水 軍 하여 兼 習 陸 操 요 네째, 수군을 확장하며 겸하여 육전도 익혀둘 일.
五 曰 詳 悉 地 理 하여 確 保 人 和 라. 다섯째, 지리를 상세히 익히고 인화를 확보할 일등을 말했다.
嘗 有 寄 晦 堂 上 人 詩 曰
:일찌기 회당상인에게 보낸 시 한 수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物 無 美 惡 終 歸 用 하니 사물은 아름답고 더러움을 떠나서 쓰임이 있는데
苦 李 誰 嫌 着 子 多 리오 누가 있어 쓴 오얏이 씨까지 많다고 싫다고 하는가?
長 息 久 朝 天 子 所 요 맏아들은 천자가 되어 조정에 남지만
次 兒 新 付 法 王 家 라. 둘째부터는 새로 법왕의 가문을 이룬다네.
移 忠 固 是 爲 臣 分 이요 충성을 바침은 진실로 신하의 본분이고
割 愛 其 如 出 世 何 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남은 그게 바로 출세가 아니련가.
還 笑 老 翁 猶 滯 念 하니 돌아보며 웃는 늙은이 상념에 빠지면
有 時 魂 夢 杳 天 涯 라. 때로 꿈속에 들어 하늘 끝까지 아득해라.
上 在 燕 京 하사 惑 於 蓮 女 러니
:상께서 일찌기 연경에 계실 때에 연나라 여인의 유혹을 받았다.
臨 別 에 手 贈 蓮 花 一 朶 曰
:헤어질 무렵 손에 연꽃을 한개 쥐어주며
上 이 歸 路 에 視 此 花 若 凋 면 此 命 將 盡 이라하더니
:'상께서 돌아가시는데 이 꽃을 보시고 혹시 시들면, 이 목숨 막상 다하는 것으로 아십시오'하다.
數 日 後 에 視 花 하니 花 欲 憔 悴 라.
:며칠뒤 꽃을 보니 꽃이 초췌하여 죽으려 하는지라,
上 이 恐 蓮 女 死 하여 復 欲 如 燕 이어늘 尊 庇 가 請 往 探 而 回 라.
:상은 여인의 죽음을 염려하여 다시 연나라로 가려하니, 존비가 청하여 연나라로 가서 여인을 찾아 보았다.
蓮 女 가 泣 而 獻 詩 曰
:연나라 여인은 울며 시를 바쳐 가로대,
相 贈 蓮 花 香 하니 서로 바친 연꽃의 향기여
初 來 綽 約 紅 이라. 처음에는 붉은 빛 싱싱하였지.
移 叢 問 幾 日 고 가지를 잘라 며칠이 지나니
憔 悴 與 君 同 이라. 초췌하기 님과 같아라.라 했다.
尊 庇 가 恐 上 見 詩 增 懷 하고 代 蓮 女 而 製 進 曰
:존비는 임금이 시를 보고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커질까 염려하여 그녀를 대신하여 시를 지어 바쳤다.
這 痴 漢 這 痴 漢 아 어리석은 사람아, 어리석은 사람아,
勿 留 輦 勿 留 輦 하라. 수레를 멈출 것 없다오, 수레를 멈출것 없다오.
此 身 便 如 蓮 葉 珠 하니 이몸이야 연잎에 이슬 같아
彼 邊 轉 處 此 邊 圓 이라. 거기서 구르면 여기서 둥글다오
上 이 見 詩 大 怒 하여 遂 還 國 하시다.
:임금의 이 시를 보고 크게 노하여 마침내 귀국했다.
後 에 上 이 恨 蓮 女 不 已 어늘 尊 庇 가 乃 奏 曰
:뒤에도 임금은 연나라 여인을 원망하기를 끊이지 않는지라 존비는 상주하여
臣 於 伊 時 에 急 於 奉 還 하여 不 得 已 權 辭 하니 請 伏 欺 罔 之 誅 하노이다.
'신은 그 때에 임금님의 봉환을 서두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권사를 했사오니 임금님을 속인 죄를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上 怒 削 官 하여 謫 文 義 러니 太 子 及 朝 臣 이 反 復 啓 解 之 하고
:임금의 화가 나서 그의 관직을 뺏고 유배시켰다. 문의 태자와 조신이 반복하여 유배를 풀 것을 장계한 고로
上 이 亦 悔 悟 하여 復 官 召 還 이나 使 者 未 至 에 尊 庇 卒 이라.
:임금은 다시 후회하며 깨달은 바가 있어 관직을 회복하여 소환했다. 그러나 사자가 채 미치기 전에 존비는 숨졌다.
訃 聞 에 上 이 震 悼 輟 朝 하시고 太 子 臨 喪 曰
:부음이 임금에게 전해지자 크게 슬퍼하며 조회를 폐하였다. 태자가 상을 치룸에 말하였다.
李 尊 庇 는 正 直 하여 邦 家 司 直 이러니 何 夭 如 是 乎 아.
:'이존비의 정직은 방가의 사직이다.어찌하여 요절함이 이 같을까?'라고.
仍 命 葬 用 王 禮 하고 遂 以 荊 江 之 上 으로
:곧 장사를 왕명으로 왕례를 써 행하고 마침내 형강의 변두리에,
環 其 山 四 里 하여 奉 之 하니 至 今 이라.
:그 산을 에워싼 4리로써 그를 봉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洞 曰 王 墓 요 里 曰 山 四 라.
:동을 왕묘라 하고 리를 산사라 한다.
杏 村 李 侍 中 嵒 이 嘗 疏 沮 權 臣 輩 가 欲 廢 國 號 而 請 立 行 省 之 議 하니
:행촌이시중 암(1297-1364)은 일찌기 권신은 무리가 국호를 폐하려 하자, 이를 말려 청하여 행성의 의를 세웠으니,
其 疏 畧 에 曰 天 下 之 人 이 各 以 其 國 하고 爲 國 各 以 其 俗 爲 俗 하니
:그 소의 략에 이르기를 '하늘아래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나라를 가지고 나라를 삼고 또 각각 그 풍속을 가지고 풍속을 삼는다.
國 界 를 不 可 破 也 며 民 俗 을 亦 不 可 混 也 라.
:국계를 서물지 말라 민속 역시 섞지말라.
況 我 國 이 自 桓 檀 以 來 로 皆 稱 天 帝 之 子 하고 行 祭 天 之 事 하니
:하물며 우리나라는 한단이래로 모두 천제의 아들을 칭하고, 제천을 행하는 일 있어,
自 與 分 封 諸 侯 로 元 不 相 同 이라.
:절로 분봉하는 제후와 근본이 서로 같지 않다.
今 雖 一 時 爲 人 轅 下 나 旣 有 魂 精 血 肉 하여
:지금 일시 다른 사람의 발 밑에 있기는 하나 이미 혼과 정신과 피와 살이 있어
而 得 一 源 之 祖 하니 是 乃 神 市 開 天 과
:한 근원의 조상을 갖게 되었으니, 이게 곧 신시개천으로부터
三 韓 管 境 之 爲 大 名 邦 於 天 下 萬 世 者 也 라.
:이를 삼한관경으로 하고 크고 이름난 나라를 하늘아래 만세에 만들게 된 연고이다.
我 天 授 大 祖 는 以 創 業 之 資 로 承 高 句 麗 多 勿 立 國 之 餘 風 하여 平 定 宇 內 하시고
:우리 천수태조께서 창업의 바탕으로 고구려가 다물국을 세우신 풍습을 계승하사 온세상을 평정하시고,
國 聲 大 振 也 러니 間 有 强 隣 이 乘 以 作 暴 하여
:나라의 명성을 크게 떨치었었다. 때로 강한 이웃이 생겨 틈을 타 휭포를 일삼았으니,
幽 營 以 東 이 尙 未 歸 我 하니
:유영의 동쪽이 아직도 우리의 것이 되지 못했다.
則 此 君 臣 이 日 夜 奮 振 하여 謀 所 以 自 主 富 强 之 策 이어늘
:이것이 곧 군신이 낮밤으로 떨치고 나서서 도모하고 자주부강의 게책을 감히 세우고 있는 이유인데,
敢 有 潛 淸 輩 之 大 姦 慝 하여 逞 能 陰 謀 하니
:잠청과 같은 간사한 무리가 있어 기량을 자랑하며 남몰래 꾀하고 있다.
我 國 雖 小 나 國 號 를 何 可 廢 也 며 主 勢 雖 弱 이나 位 號 를 何 其 降 也 리오
:우리나라가 작다고하지만 국호를 어찌 폐하려 하는가?세력이 비록 약하다 한들 위호를 어째서 깎고 낮추려 하는가?
今 此 之 擧 는 皆 奸 小 之 輩 之 出 於 逋 逃 요
:이제 그러한 행동거지는 모두 간사한 소인배의 포도에서 나온 바요
而 非 國 人 之 公 言 也 니 宜 請 都 堂 하여 嚴 治 其 罪 하소서.
:국민이 아니자의 공언일 뿐, 마땅히 도당에 청하여 그 죄를 엄히 다스릴진저'라고 하였다.
杏 村 侍 中 이 有 著 書 三 種 하니 其 著 檀 君 世 紀 하여 以 明 原 始 國 家 之 軆 統 하고
:행촌시중은 저서가 세가지 있으니 <단군세기>는 원시국가의 체통을 밝힌 바 현저하고,
又 著 太 白 眞 訓 하여 紹 述 桓 檀 相 傳 之 道 學 心 法 이요
:태백진훈>은 도학심법을 소개한 것이요,
農 桑 輯 要 는 乃 經 世 實 務 之 學 也 라.
:<<농상집요>는 경제실무의 학문이다.
文 靖 公 李 牧 隱 穡 이 序 之 曰
:문정공 목은선생 이색은 이에 서문을 붙여 가로대
凡 衣 食 之 所 由 足 과 貲 財 之 所 由 豊 과
:'대저 의식에 말미암아 족하게 되는 것, 재물을 쫓아서 풍부해지는 것,
種 蒔 孼 息 之 所 由 周 備 者 가 莫 不 分 門 類 聚 하여
:자식 후손들이 의지하여 두루 갖춰야 할 것에 이르기까지 문을 가르고 비슷한 것을 모아
縷 析 燭 照 하니 實 理 生 之 良 書 也 라.
:자세하게 나누어 밝히고 비추지 않음이 없다 할지니 실로 이치를 살리는 좋은 책이라'라고 하였다.
杏 村 先 生 이 嘗 遊 於 天 寶 山 이라가 夜 宿 太 素 庵 할새 有 一 居 士 曰
:행촌선생이 일찌 천보산에 노닐 때에는 태소암에 묵었던 바 한 거사가 있어 말하기를
素 佺 이니 多 藏 奇 古 之 書 라. 乃 與 李 茗 范 樟 으로 同 得 神 書 하니 皆 古 桓 檀 傳 授 之 眞 訣 也 라.
:'소전은 많은 기이한 옛날 책을 가지고 있다.'이에 이명 범장처럼 신서를 얻으니 모두 옛 한단의 진결이라.
其 通 脫 博 古 之 學 에 卓 然 有 所 可 稱 이요
:그 통달박고의 학문은 탁연하다고 칭찬할 만한 바가 있었다.
而 其 參 佺 修 戒 之 法 이 盖 凝 性 作 慧 하고 凝 命 作 德 하고
:게다가 그 참전수계의 법은 대저 성을 엉기게 하여 지혜를 만들고, 명을 엉기어 덕을 이루고,
凝 精 作 力 하여 其 在 宇 宙 而 三 神 長 存 하고
;정을 엉기어 힘을 이루게 한다.그래서 우주에 있으며 삼신은 오래도록 존재한다.
其 在 人 物 而 三 眞 不 滅 者 는 當 與 天 下 萬 世 之 大 精 神 이요
:저 사람과 사물에 있어 삼진이 멸하지 않음은 마땅히 천하만세의 대정신과
混 然 同 其 軆 而 生 化 無 窮 也 라.
:혼연히 그 체를 같이하고 생화하여 무궁한 때문이라'고 했다.
先 生 曰 道 在 天 也 에 是 爲 三 神 이요 在 人 也 에 是 爲 三 眞 이니
:선생은 가로대 '도는 하늘에 있을 땐 삼신이요, 도는 사람에 있을 때 삼진이라고 한다.
言 其 本 則 爲 一 而 已 라. 惟 一 之 爲 道 요 不 二 之 爲 法 也 니 大 哉 라.
:그 본을 말한다면 곧 일이 된다. 유일을 도로하고 불이를 법이라 한다. 클지로다.
桓 雄 이여 首 出 庶 物 하사 得 道 天 源 하시며 立 敎 太 白 하시니
:한웅은 우두머리로서 서물에 나오셔서 길을 천원에 얻으시고 가르침을 태백에 세웠도다.
神 市 開 天 之 義 가 始 大 明 於 世 矣 라.
:신시개천은 뜻을 처음으로 크게 세상에 밝혔노라.
今 吾 輩 가 因 文 求 道 하고 參 佺 受 戒 하여
:지금 우리들 곧 글로 도를 구하고 참전하야 계를 받는다.
尊 吾 敎 而 未 發 하고 又 聞 百 途 而 難 會 하니
:나의 가르침을 높이는 일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 또 듣는 일은 백가지라 하나 만나기 어렵고,
老 將 及 矣 라. 可 恨 哉 로다.
:나이들어 어느덧 백발이 발치예 이르렀으니 한스럽기 짝이 없어라'고 했다.
先 生 이 以 侍 中 致 仕 하고 退 居 江 都 之 紅 杏 村 하여
:선생은 시중 벼슬을 하시다가 강도이 흥행촌으로 퇴거하시고,
自 號 爲 紅 杏 村 叟 하고 遂 著 杏 村 三 書하여 藏 于 家 라.
:스스로를 흥행촌의 늙은이라고 부르시며 마침내 행촌삼서를 쓰시어 집예 간직하셨다.
獻 孝 王 後 五 年 三 月 에 杏 村 李 嵒 이 以 命 으로 祭 天 于 塹 城 壇 할새
:현효왕의 뒤 5년 3월에 행촌 이암은 명을 받들어 참성단에서 제천하시고
謂 白 文 寶 曰 賴 德 護 神 이 一 存 信 念 이요 養 英 衛 國 이 功 在 發 願 이라.
:백문보에게 말씀하시기를 '덕을 믿고 신을 수호함은 첫째로 신념에 달려 있고, 영재를 기르고 나라를 지킴은 공이며 발원이다.
乃 神 依 人 하고 人 亦 依 神 하여 而 民 而 國 이 永 得 安 康 이요
:곧 신은 사람에 의존하고 사람은 신에 의존해서 백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나라는 영원토록 안강을 얻으리라.
祭 天 之 誠 을 竟 歸 報 本 하여 其 求 人 世 에 敢 可 忽 諸 아.
:제천의 성은 보본으로 필경 돌아가는 것이니, 사람의 세상에서 그것을 구해 봐야 갑자기 사라질 거품과 같은 것을'이라 했다.
鄭 之 祥 은 河 東 人 也 라. 因 其 妹 하여 往 來 于 元 이러니
:정지상은 하동사람이다. 일찌기 그의 누이로 안해서 원나라에 왕래하다가
値 敬 孝 王 入 侍 하여 隨 從 有 勞 라. 及 王 卽 位 하여
:경효왕을 만나 입시하여 수종함에 공이 있었으므로, 왕이 즉위하게 되자
驟 選 至 監 察 持 平 이나 不 錯 (말씀언변) 事 理 라.
:즉시 뽑히어 감찰 지평에 이르렀는데, 일을 처리함에 큰소리를 치지 않았다.
嘗 爲 全 羅 道 按 廉 使 하여 入 境 하여 遇 勢 家 所 使 하여
:일찌기 전라도의 안염사가 되어 암지에 가서는 세도가를 만나보더니
輒 搒 掠 侚 示 諸 郡 하니 一 道 寒 心 이라.
:별안간 그를 사로잡아 문초하고 여러 고을에 이를 공시하니, 온 도가 다 가슴이 써늘했다.
埜 思 不 花 는 本 國 人 也 라.
:야사불화라는 자는 본국사람이다.
在 元 에 有 寵 於 順 帝 요 其 兄 徐 臣 桂 는 爲 六 宰 하고
:원에 있으면서 순제(1332-1370)의 총애를 받았는데 그의 형 서신주는 육재가 되고,
弟 應 呂 는 爲 上 護 軍 하여 依 勢 作 威 福 하니 國 人 이 畏 之 라.
:동생 응여는 상호군이 되었다. 세력을 믿고 위복을 갖춰 국인이 그를 꺼렸다.
不 花 가 降 香 으로 至 本 國 하여 所 至 縱 暴 하니
:불화는 향사로서 본국에 이르러 이르는 곳마다 휭포를 멋대로 하였으니,
存 撫 按 廉 에 多 被 辱 罵 하여 莫 不 違 忤 라. 至 全 州 어늘
:존무사나 안림사들이 대개 욕지거리를 얻어먹거나 망신을 당했다. 이렇계 거칠게 굴다가 전주에 이르렀다.
之 祥 이 迎 候 恭 謹 이로대 不 花 가 待 遇 甚 倨 하고
:정지상이 그를 맞아 근신하며 대접했는데 불화는 매우 거만하게 대했다.
伴 接 使 洪 元 哲 이 有 求 於 之 祥 이나 之 祥 이 不 聽 하니
:반접사 홍원철은 지상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었지만 지상이 듣지 않았다.
元 哲 이 激 怒 不 花 曰 之 祥 이 慢 天 使 라하여
:원철이 격노하고 불화는 말하기를 '지상이 천사를 없신여긴다'고 했다.
不 花 가 縶 縛 之 라. 之 祥 이 忿 恚 大 叫 하여 紿 州 吏 曰
:불화가 지상을 결박하니 지상은 성을 내며 크게 주의 관리를 속여 외쳐 말하길,
國 家 已 誅 諸 奇 하고 不 復 事 元 이요
:'국가 이미 기씨를 주살하고 다시는 워나라를 섬기지 않는다.
若 等 이 何 畏 而 不 我 救 요 將 見 爾 州 가 降 爲 小 縣 也 요.
:너희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나를 구하지 못하는가? 장치 서의 주가 강등되어 작은 현이 되는 꼴을 보려 하느냐?'
邑 吏 가 呼 譟 而 入 하여 解 縛 扶 出 하니
:했다. 읍리들이 소리지르며 달려들어 결박을 풀고 도와 주었다.
之 祥 이 遂 率 衆 하여 執 不 花 元 哲 等 하여 囚 之 하고
:지상은 마침내 무리들을 이끌고 불화 원철등을 사로잡았다.
奪 不 花 所 佩 之 金 牌 하여 馳 還 京 할새
:이들을 가두고는 불화가 차고 있는 금패를 뺏아 서울로 달려 돌아왔는데,
京 過 公 州 라가 執 應 呂 하여 以 鐵 椎 로 撾 之 하니 數 日 而 死 라.
:공주를 지나면서 응여를 체포하고 철퇴로써 이를 치니 며칠 만에 죽어 버렸다.
之 祥 이 來 白 于 王 한대 王 이 驚 愕 하여 下 巡 軍 하고
:지상은 달려와서 왕께 고했다. 왕은 경악하여 순군을 내리고
命 行 省 員 外 鄭 暉 하여 捕 全 州 牧 使 崔 英 起 와 及 邑 吏 等 하고
:행성원외랑 정휘에게 명하여 전주목사 최영기및 읍리 등을 체포하고,
又 遣 車 蒲 溫 하여 賚 內 醞 慰 不 花 하고 還 其 牌 라.
:또 차포온을 보내 내온을 주고 불화를 위로하며 그 패를 돌려주었다.
元 이 遣 斷 事 官 買 住 하여 來 鞠 之 祥 이러니
:원나라는 단사관 매주를 보내와 지상을 국문케 하였다.
王 이 誅 諸 奇 하고 釋 之 祥 하여 爲 巡 軍 提 控 하고
:왕은 뭇 기씨를 주살하고는 지상을 석방하여 순굿제공을 삼았다.
再 轉 戶 部 侍 郞 御 史 中 丞 하여 官 至 判 事 에 卒 하니
:다시 호부시랑 어사중승를 거쳐 벼슬이 판사에 이르러 죽었다.
性 嚴 하여 凡 戮 死 罪 에 必 遣 之 라.
:성품은 엄격하여 대개 큰죄를 다스릴 때에는 그를 보내었다.
之 祥 妻 는 寡 居 潭 陽 이라가 爲 倭 所 害 하고
:지상의 과부로 담양에 살다가 왜인은 해를 입어 죽으니
子 從 이 隨 朴 葳 하여 擊 對 馬 島 하다.
:아들이 박위를 따라 대마도를 정벌했다.
文 大 는 高 宗 安 孝 大 王 十 八 年 에 以 郞 將 으로 在 瑞 昌 縣 이라가 爲 蒙 古 兵 所 虜 라.
:문대는 고종 안효대왕 18년, 낭장으로 서창현에 있다가 몽고병에게 잡혔다.
蒙 古 兵 이 至 鐵 山 城 下 하여 令 文 大 로 呼 喩 州 人 曰
:몽고병이 철산성 밑에 이르러 문대로 하여금 성안의 사람을을 설득하계 하였다. 말을 시키기를
眞 蒙 古 兵 이 來 矣 니 可 速 出 降 이라한대
:'진짜몽고병이 왔다. 재빨리 나와서 항복하라'고,
文 大 乃 呼 曰 假 蒙 古 兵 也 니 且 勿 降 하라.
:그러나 문대는 '가짜 몽고병이다. 그러니 나와서 항복하지 말라'고 하니
蒙 古 人 이 欲 斬 之 라가 使 更 呼 한대 復 如 前 하니 遂 斬 之 라.
:몽고인은 그를 죽이려 하다가 다시 한번 더 시켜 보았다. 다시 해도 전과 같이 하므로 마침내 그를 죽였다.
蒙 古 가 攻 城 甚 急 하니 城 中 이 糧 盡 하여 不 克 守 라. 將 陷 에
:몽고병이 성을 공격하는데 아주 급하게 하였다. 성에는 양곡이 떨어지니 마침내 지키지 못하고 함락되려고 했다.
判 官 李 希 績 이 聚 城 中 婦 女 小 兒 하여
:판관 이희적은 성중의 부녀자와 어린이들을 모아서
納 倉 中 火 之 하고 率 丁 壯 하여 自 刎 而 死 하다.
:창고에 들어가게 한다음 창고에 불을 지르고는 장정들을 인솔하여 모두 자결했다.
敬 孝 王 十 二 年 癸 卯 三 月 에 密 直 使 李 岡 이 以 命 으로
:경순왕12년(1351)신묘 3월에 은밀히 직사 이강은 명을 받고
祭 塹 城 壇 하고 仍 刻 板 題 詩 하니 其 詩 曰
:참성단에 제지내고 나무판에 글을 새겨 시를 읊었다.
春 風 景 物 富 年 華 하니 봄바람에 풍경은 풍션인냥 화사롭고
承 命 來 遊 道 里 賖 로다. 명을 받고 오는 길은 멀기도 해라.
鞭 馹 朝 辭 丹 鳳 闕 이요 날쌘 말에 채찍을 더해 아침에 궁궐을 떠났는데
棹 舟 暮 趁 白 鷗 波 로다. 배 띄운 저녁엔 하얀 갈매기 파도만 쫓네.
半 空 蒼 翠 山 浮 色 이요 창공은 푸른 빛에 비취빛 산 색갈 묻어나고
滿 壑 氛 氳 草 自 花 로다. 골짜기엔 가득 기운이 차서 풀잎 절로 꽃피우지.
借 問 蓬 萊 何 處 是 오 묻노라 봉래산은 어디라 할꼬
人 言 此 地 卽 仙 家 로다. 사람들은 이땅을 선가라 한다네.
心 靜 身 閒 骨 欲 仙 하니 마음 고요하고 몸이 한가로우면 뼈는 절로 신선이 되려 하는데
遙 思 人 事 正 茫 然 이로다. 사람세상 여러가지 일은 참으로 정신없지
薦 蘋 秘 席 中 興 後 오 부평초 가득한 신비의 자리 중흥한 뒤에나
累 石 靈 壇 太 古 前 이로다. 돌 쌓은 제단은 옛날로 돌아갈까.
已 得 眼 着 千 里 地 요 이미 순으로 천리 땅을 바라보는데
況 疑 身 在 九 重 天 이로다. 어찌 몸이 구중 하늘에 있음을 의심할까.
此 行 無 耦 如 相 托 이면 이길은 짝도 없는 길이지만 있는 것만 같아
須 値 還 都 第 一 年 이로다. 모름지기 서울의 일년과도 같아라.
江 陵 王 禑 五 年 三 月 辛 未 에 命 遣 使 致 祭 于 塹 城 壇 하실새
:강능왕 우의 5년((1391)3월 신미, 사자를 보내 참성단에 제사를 올리도록 하고
大 提 學 權 近 이 製 誓 告 文 以 進 하니 其 文 曰
:대제학 권근(1352-1409)이 서고문을 지어 바치니 그글에 가로대,
初 獻 에 海 上 山 高 하니 逈 隔 人 寰 之 煩 擾 로다.
:'초헌에, 비다위에 산은 높고 멀리 뜬세상의 번요를 끊었노라.
壇 中 天 近 하니 可 邀 仙 馭 之 降 臨 이로다.
:단은 가운데는 하늘에 가까와 선어의 강림을 맞을 지며,
薄 奠 斯 陳 하니 明 神 如 在 로다.
:조촐한 공물을 진열하니 명신은 있느나 싶네.
二 獻 에 神 聽 不 惑 하시니 庇 貺 斯 人 이로다.
:재배에, 신이 들으심은 미혹하지 않으사 사람의 소원을 들으시며,
天 覆 無 私 하시니 照 臨 下 土 로다. 事 之 以 禮 하오니 感 而 遂 通 이로다.
:하늘의 덮으심은 삿됨이 없어 땅을 다 덮으시니, 이를 예로써 섬기면 마침내 트일지니.
窃 念 컨대 摩 利 山 은 檀 君 攸 祀 라.
:그윽히 생각하니 마리산은 단군이 제사하신 곳.
自 聖 祖 로 爲 民 立 極 하여 俾 纘 舊 而 垂 休 하시고
:성조로 부터 백성들을 위해 극을 세우시고 옛 것을 이어 휴식을 드리우셨네.
曁 後 王 이 避 狄 遷 都 하여 亦 賴 玆 而 保 本 이로다.
;후왕에 이르러 오랑캐를 피하여 도읍을 옮기셨지만, 역시 여기를 의지하사 근본에 보답하시었고,
故 로 我 家 守 之 不 墜 요 而 朕 小 子 承 之 益 虔 이로다.
:때문에 우리 가문은 이를 지켜 끊이지 않았도다. 그래서 짐은 작은 자식으로 이를 계승하여 더욱더 경건하였다.
天 何 外 寇 之 狗 偸 오 而 以 致 我 民 之 魚 爛 이시며
:하늘이시어, 어찌 왜구의 개같은 도둑떼에 의해서 우리 백성을 어란으로 하시겠는가?
雖 遠 疆 之 受 侮 나 尙 許 表 聞 이온.
:먼 나라의 수모를 받는다 하더라도(하늘은)아직도 우리의 표문의 길을 막지 않으시고 들으시노라.
況 厥 邑 之 被 侵 으로 胡 然 忍 視 리오.
:하물며 저 읍민들이 오랑캐에 침략되는 것을 옳다고 참고 게시겠는가?
其 明 威 之 不 驗 이리오만 寔 否 德 之 無 良 이로다.
:어째서 이름 떨칠 효험이 없을까보냐? 그럴리 없다. 덕의 좋음이 없음이로다.
實 難 求 他 오 惟 在 自 責 이로다.
:참말로 남을 책하기 어렵고 오직 스스로를 책하는 데 있나니.
然 이나 人 若 不 安 其 業 이면 則 神 將 無 所 於 歸 리니
:그렇지만 사람이 만일 그 업에 주저않지 않는다면 신이 마상 돌려주려고 해도 줄곳이 없을지며,
玆 因 舊 典 之 遵 하여 敢 告 當 時 之 患 이오니
:이에 구전의 준법을 쫓아 감히 당시의 우환을 고하노라.
卑 忱 款 款 이요 寶 鑑 明 明 이삿다.
:진실은 관관하며 보감은 명명이라.
致 令 海 不 揚 波 하여 丕 亨 梯 航 之 幅 湊 로다.
:
天 其 申 命 하시사 光 膺 社 稷 之 安 磐 이로다.
:하늘이시여, 명을 밝히시옵고 크게 사직의 반석을 이루도록 빛을 받게 하소서'라고 하다.
天 授 紀 元 四 百 三 十 九 年 은 敬 孝 王 五 年 이니
:천수기원 439년은 경효왕 5년(1357)이다.
是 歲 夏 四 月 丁 酉 에 奇 轍 權 謙 盧 頉 等 이 謀 叛 伏 誅 하고
:이해 여름 4월 정유예 기철 권겸 노이등이 모반하다가 주살되었다.
釋 鄭 之 祥 하여 爲 巡 軍 提 控 하고 罷 征 東 行 省 理 問 所 하다.
:정지상을 석방하여 순군제공을 삼고 정동행성의 이문소를 물리치게 하였다.
時 에 元 室 이 極 爲 衰 弊 하여 吳 王 張 士 誠 이 起 於 江 蘇 하여 事 多 騷 亂 矣 러니
:때에 원나라는 매우 쇠폐하여 오왕 장사성은 강소에서 기병하였고, 여러가지 일로 소란하였다.
崔 瑩 等 이 及 自 高 郵 로 歸 하니
:최영등은 이 때 고우로부터 돌아왔다.
上 이 始 從 瑩 等 議 하고 遂 定 西 北 恢 收 之 計 하여 先 罷 征 東 行 省 하고
:상께서는 처음 최영등과 의논하시사 서북지방 회복의 계획을 정하시고 먼저 정동행성을 격파하였다.
繼 遣 印 璫 崔 瑩 等 諸 將 하여 攻 鴨 綠 江 以 西 八 站 하여 破 之 하고
:이어서 인당 최영등 여러 장수들을 보내사 압록강 이서의 8첩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又 遣 柳 仁 雨 貢 天 甫 金 元 鳳 等 하여 收 復 雙 城 等 地 하다.
:또 유인우 공천보 김원봉 등을 보내어 쌍성등의 땅을 수복하도록 하였다.
十 年 冬 十 月 에 紅 頭 賊 潘 誠 沙 劉 朱 元 璋 等 十 萬 餘 衆 이 渡 鴨 綠 江 하여 寇 朔 州 하고
:10년 겨울 10월, 홍두적 번성 사유 주원장 등 10만의 무리가 압록강을 건너 삭주를 침략해왔다.
十 一 年 에 賊 襲 安 州 하니 上 將 軍 李 蔭 趙 天 柱 가 死 之 하다.
:11년 적은 안주를 습격하니 상장군 이름과 조천주가 이 싸움에서 죽었다.
十 二 月 에 上 이 至 福 州 하여 以 鄭 世 雲 으로 爲 總 兵 官 하니
:12월 상께서는 복주에 이르러 정세운으로 총병관을 삼으니,
世 雲 이 性 忠 淸 하여 自 播 遷 以 來 로 日 夜 憂 憤 하여 以 掃 盪 紅 賊 하여
:정세운은 성품이 충성스럽고 깨끗하여 파천이래 낮밤으로 울분하며 우려하며 홍두적을 소탕하여
恢 復 京 城 으로 爲 己 任 하니 上 이 亦 倚 信 하다.
:경성을 회복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하였으니 상께서도 그를 신임하셨다.
世 雲 이 屢 請 亟 下 哀 痛 之 詔 하여 以 慰 民 心 하고
:세운은 종종 애통의 뜻을 조서로 내리시고 민심을 가엾이 여기실 것을 청하여
遣 使 諸 道 하여 以 督 徵 兵 하소서한대 上 遂 下 詔 할새
:사신을 각도에 보내 병력을 독려하도록 청하였다. 상께서는 마침내 조서를 내리시니
守 門 下 侍 中 李 嵒 이 傳 曰
:수문하시중 이암은 전하여 말하기를
天 下 安 에 注 意 相 하고 天 下 亂 에 注 意 將 하니
:'천하가 편안하면 뜻을 쏟아 백성을 다스리고 천하가 어지러우면 뜻을 쏟아 장수를 따라야 하리니,
予 는 文 臣 이라 懦 不 能 軍 하니 子 其 勉 之 어다.
:나는 문신이기에 약해 빠져서 군에 몸담지는 못한다.그대는 내 뜻을 알고 힘을 다하라!'라고 했다.
世 雲 이 詣 都 堂 하여 憤 言 揚 聲 으로 謂 柳 淑
:세운은 도당을 뵙고 분언양성하여 유숙에게
以 簽 軍 後 期 로 爲 責 하고 將 行 에 嵒 이 謂 世 雲 曰
':군대를 점검하라. 뒤로 미루었다가는 문책을 당하리라'라고 했다. 막 떠나려는데 이암이 세운에게 말하였다.
今 에 强 寇 猝 至 하여 皇 城 失 守 하고
:'지금 강력한 적들이 갑자기 황성에 밀어닥쳐 이를 지키지 못하고
乘 輿 播 遷 하여 爲 天 下 之 笑 三 韓 之 恥 어늘
:수레를 타고 파천하였으니 천하의 웃음거리요 삼한의 치욕이라 할 것이다.
而 公 이 首 唱 大 義 하여 仗 鉞 行 師 하니
:공은 대의를 부리짖어 무장하고 군을 통솔한다.
社 稷 之 再 安 과 王 業 之 中 興 이 在 此 一擧라.
:사직의 안녕과 왕업의 중흥은 이번 공의 일거에 달려있으니
吾 君 臣 이 日 夜 로 望 公 之 凱 旋 也 로다.
:우리의 임금과 신하들은 밤낮으로 공의 개선만을 빌 것이오' 라고 했다.
獎 諭 遣 之 하고 每 日 督 勵 諸 將
:이렇게 격려하여 이를 내보내고 매일 제장을 독려케 하였다.
倡 義 하여 出 謀 授 計 하여 安 祐 하니
:의를 부르짖으며 모의에 나아가서 계책을 주어 이를 도왔다.
李 珣 ( 改 名 希 泌 , 李 嵒 從 侄 ) 韓 方 信 等 諸 將 이 皆 從 之 有 功 하다.
:이암의 종질 순과 한방신 등의 장수들이 이에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二 十 年 辛 亥 二 月 甲 戌 에 女 眞 千 戶 李 豆 蘭 帖 木 兒 가 遣 百 戶 甫 介 하여 以 一 百 戶 로 來 投 하다.
:20년 신해 2월 갑술에 여진의 천호 이두란 첩목아는 백호 보개에게 백가구를 보내어 투항해왔다.
閏 三 月 己 未 에 北 元 遼 陽 省 平 章 事 劉 益 王 右 丞 等 이 以 遼 陽 으로 本 高 麗 地 라하여
:윤3월 기미 북원 요양성의 평장사 유익과 왕우승 등은 요양이 본래 고려의 땅이라는 뜻에서
欲 歸 附 我 國 하여 遣 人 來 請 이어늘 時 廷 議 不 一 하고 國 事 多 難 이라.
:우리나라에 투항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이를 청해왔다. 이에 조정의 의견은 통일 되지 못하였고 국사는 다난했다.
然 이나 上 이 遣 鄭 夢 周 하여 如 明 하여 賀 平 蜀 하고
:그렇지만 임금은 정몽주를 명나라에 파견하여 촉을 평정함을 축하하도록 하였다.
金 義 는 殺 明 使 蔡 斌 하니 朝 野 騷 然 하여 其 欲 言 事 者 가 幾 希 라.
:김의는 명나라 사신 채빈을 죽여 버렸지만 조야가 모두 조용할 뿐, 이일을 말하려는 자 거의 없었다.
以 故 로 未 卽 回 報 하니
:이 때문에 이 사실을 명나라에 회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劉 益 等 이 遂 以 金 州 復 州 蓋 平 海 城 遼 陽 等 地 로 歸 附 于 明 하다.
:유익등은 마침내 금주 복주 개평 해성 요양등지를 가지고 명나라에 투항하였다.
嗚 呼 라 當 時 淸 論 이 徒 因 循 是 務 하여
:오호라 청론을 떠드는 자들의 무기력함이여,
自 失 好 機 하여 竟 不 恢 收 舊 疆 하니 志 士 之 恨 이 於 斯 爲 深 矣 로다.
:스스로 좋은 기회를 잃고는 미침내 옛강토를 회수하지 못하였고나. 뜻있는 이의 원한 이처럼 깊은 것을!
江 陵 王 이 以 先 帝 命 으로 卽 位 하시니
:강능왕이 선제의 명을 받아 즉위하였다.
時 에 遼 東 都 司 가 遣 承 差 李 思 敬 等 하여 到 鴨 綠 江 張 榜 하니 曰
:이 때에 요동도사가 승차 이사경등 을 보내 압록강에 이르러 방을 붙여 가로대,
鐵 嶺 迤 北 迤 東 迤 西 는 元 屬 開 元 하니
;'철령 이북 이동 이서는 본래 개원의 소관에 속한다.
所 管 軍 人 漢 人 女 眞 達 達 高 麗 는 仍 屬 遼 東 云 云 이라.
:군인 한안 여진 달달 고려는 곧 요동에 속한다'운운하니
朝 議 紛 紛 不 一 이라가 竟 以 督 戰 決 定 하고
:조의는 분분하여 하나같지 않더니 마침내 전쟁을 결정하여
大 發 中 外 兵 馬 하여 以 崔 瑩 으로 爲 八 道 都 統 使 하다.
:사방에 병마를 징발하고 최영을 팔도 도통사로 삼았다.
--- 한단고기 끝 ---
태백일사 발
세는 갑자년, 괴산에 유배되어 적소에서 마땅히 근신하니 매우 무료한 터라, 집에 간직한 여러 상자들을 취하여 조사해 본즉 사전으로 가칙 있는 것과 또 평소에 여러 고로들에게 들은 것들을 합쳐서 채록하였는데 책으로는 채 만들지 못했던 바라. 뒤 16년(1340)경진에 내가 찬수관으로 뽑혔기 때문에 열심히 내각의 비밀의 서적들을 얻을 수 있어 이를 읽고 이를 앞의 원고에 곁들여 편찬하고, 이름지어 <태백일사>라 하였다.
그렇지만 감히 세상에 내지 못하고 이를 비장하였다. 때문에 이 글은 문밖을 나서지 못했던 글들이다.
일십당 주인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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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발
기축년 봄, 나는 강도의 마리산에 들어가, 때마침 대영절을 맞아 대시전에서 이정산 유립씨를 뵈니, <한단고기>의 정서의 역할을 나에게 위촉했다. 나는 붓이 거칠고 그 중임을 감당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조의 옛 역사를 알고자 하여 이를 승락했다. <환단고기>에는 <삼성기 상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하> <태백일사>가 있었으니 옮겨 쓰기에 한 달이상이 걸렸다. 환인은 7세까지 전하였다고 했으나 상세한 연대는 모르고, 환웅은 개천하여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지났으며 ,단군은 47세를 전하여 2096년이 지났으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개 5846년이라 기자 어찌 그 사이에 끼어들 틈이 있으리요. 오호라, 천부경 홍익훈 신고 전계가 오히려 남아서 명명하게 나를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심법이 되고, 당당히 경세제민의 대전이 되는 구나. 때문에 천하는 모두 감복하여 이를 존숭하며 신성하다고 일컫는다. 그런데 동토의 유생은 불가와 함께 고전에 어둡고 작은 성취 달콤함에 빠져서 서토에 무릎 꿇고도 이를 수치스레 여기지도 않는다. 아, 뒤에 이 책을 보는 자 반드시 숙연히 일어서 공경하리니, 청하여 이 글을 써 이 책의 뒤에 붙인다.
신시개천 5846년 기축 5월 상순, 동복 오형기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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