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대진국본기
들어가는 말
대진국본기의 의의
1. 대조영의 부친 대중상의 후고구려 건국
2. 대중상의 아들 대조영의 옛 고구려 영토 회복과 대진국 건설
-주변의 모든 나라로부터 조공 받은 강대국
3. 한국사의 남북국시대를 연 대진국
- 나․당 연합군의 침략 격퇴
4. 신교문명의 대제국, 대진국의 강성한 모습
5. 4대 문황제의 민족사 교육과 신교의 대부흥시대
6. 대제국 발해의 통치영역과 전 국민의 신교 생활화
7. 역대 임금의 연호와 주요 통치 지명
8. 의려국 왕자(의라)미8일본에 건너가 오진(應神) 천황이 됨
9. 당시 일본의 국가 구성과 한국과의 관계 마무리
⑴대조영의 부친 대중상의 후고구려 건국
①조대기 왈
朝代記에 曰
:조대기에서 말하기를
②개화 이십칠년 구월 이십일일 평양성 함락시
開化 二十七年 九月 二十一日에 平壤城이 陷落時에
:개화 27년 9월 21일 평양성 함락 때
③진국장군 대중상 수서압록하
振國將軍 大仲象이 守西鴨綠河라가
:진국장군 대중상은 서압록하를 지키다가
④문변 수솔중주험 노경개원
聞變하고 遂率衆走險하여 路經開原하니
:변을 듣고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험한길을 달려 개원을 지나니
⑤문풍원종자 팔천인
聞風願從者가 八千人이라.
:소문을 듣고 따르겠다고 재빨리 모여들은 자가 팔천명이라
⑵대중상의 아들 대조영의 옛 고구려 영토 회복과 대진국 건설
①내동귀이동 지동모산이거
乃同歸而東하여 至東麰山而據하고
:이어 동쪽으로 동모산에 이르러 웅거하고
②견벽자보 칭국후고구려
堅壁自保하여 稱國後高句麗오
:성벽을 굳게하여 스스로 보존하고 나라를 후고구려라 칭하고
③건원중광 전격소도 원근제성 귀부자중
建元重光이라 傳檄所到에 遠近諸城이 歸附者衆이라
:기원을 중광이라 하였다. 이르는 곳마다 격문을 전하니 원근의 뭇 성들은 귀속해 오는 곳이 많아
④유이복구토 위기임
惟以復舊土로 爲己任이라가
:다만 옛 땅을 회복함을 자기의 임무로 삼다가
⑤중광 삼십이년 오월 붕
重光 三十二年 五月에 崩하시니
:중광 32년 5월 대중상은 붕어하시니
⑥묘호왈세조 시호왈진국열황제
廟號曰世祖오 諡號曰振國烈皇帝라
:묘호를 세조라 하고 시호를 진숙열황제라 하다.
⑦태자 조영 종부사
太子 祚榮이 從訃使하여
:태자 조영은 부사를 따라
⑧자영주계성 솔중지 즉제위
自營州薊城으로 率衆至하여 卽帝位하시고
:영주 계성으로부터 무리를 이끌고 당도하여 제위에 오르시고
⑨축홀한성 천도 모군십만 위성대진
築忽汗城하여 遷都하고 募軍十萬하니 威聲大振이라
:홀한성을 쌓아 도읍을 옮기고 군 10만을 모집하여 위세를 크게 떨치었다.
⑩내정책입제 항당위적 복수자서
乃定策立制하여 抗唐爲敵하고 復讐自誓할새
:곧 계책을 세우고 제도를 세워 당나라에 대항하여 적에 복수할것을 스스로 맹세했다.
⑪여말갈장 걸사비우 계란장 이진영 악수연병
與靺鞨將 乞四比羽와 契丹將 李盡榮으로 握手聯兵하여
:말갈의 장수 걸사비우와 거란의 장수 이진영과 손을 잡고
⑫대파당장 이해고어천문령 분제장 치수군현
大破唐將 李楷固於天門嶺하고 分諸將하여 置守郡縣하며
:병력을 연합하여 크게 당나라 장군 이해고를 천문령에서 격파했다.뭇 장수들을 나누어 군현을 두고 지키며
⑬초무유망 주호정착 대득민망 만강유신
招撫流亡하여 周護定着하니 大得民望하여 萬綱維新이라
:유망민을 초무하고 정착을 널리 보호하고 크게 백성의 신망을 얻어 모든 기강을 새롭게 했다.
⑭국호 정위대진 연호 왈천통
國號를 定爲大震하고 年號를 曰天統이오
:국호를 정하여 대진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이라 하고
⑮거유고구려구강 척지육천리
據有高句麗舊彊하여 拓地六千里라.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니,땅은 6,00리가 개척 되었다
⑶주변의 모든 나라로부터 조공받은 강대국
①천통이십일년춘 붕우대안전
天統二十一年春에 崩于大安殿하시니
:천통 21년 봄 대안전에서 돌아가시니
②묘호왈태조 시호왈성무고황제
廟號曰太祖오 諡號曰聲武高皇帝라
: 묘호를 태조리하고 시호를 성무고황제라 하다
③태자무예 입 개원왈인안 서여계란
太子武藝가 立하니 改元曰仁安이오 西與契丹으로
:태자 무예가 즉위하니 개원하여 인안이라 하고 서쪽으로 거란과 경계를 정하니
④정계오주목 동십리 임황수
定界烏珠牧하니 東十里에 臨潢水라
:오주목의 동쪽 십리에서 황수를 굽어 본다
⑤시세 개마 구다 흑수제국 개칭신납공
是歲에 蓋馬 句茶 黑水諸國이 皆稱臣納貢하고
:이해 개마 구다 흑수의 여러 나라가 모두 신하 될 것을 청하며 공물을 바치고
⑥우견대장 장문휴 살자사 위준
又遣大將 張文休하여 殺刺史 韋俊하고
:또 대장 장문휴를 보내 자사 위준을 죽이고
⑦취등래 위성읍
取登萊하여 爲城邑하니
;등주와 동래를 취하여 성읍으로 삼으니
⑧당주 융기 노견병래 토불리
唐主 隆基가 怒遣兵來하여 討不利라.
:당나라 왕 융기가 노하여 병사를 보냈으나 이기지 못했다.
⑷한국사의 남북국시대를 연 대진국
- 나․당 연합군의 침략 격퇴 -
①명년 수장 연충린 여말갈
明年에 守將 淵忠麟이 與靺鞨로
:이듬해 수비장수 연충린이 말갈병과 함께
②대파당노어요서대산지양
大破唐奴於遼西帶山之陽하니
:요서의 대산의 남쪽에서 크게 당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
③당 밀여신라약 급습동남제군 지천정군
唐이 密與新羅約하여 急襲東南諸郡하여 至泉井郡하니
:당나라는 비밀히 신라와 약속하여 동남의 여러 군과 읍을 급습하여 천정군에 이르니
④제조견보기이만 격파지
帝詔遣步騎二萬하여 擊破之라
:제는 조서를 내려 보병과 기병 2만을 보내 이를 격파케하다
⑤회 대설 나당군 동사자 심다
會에 大雪하여 羅唐軍이 凍死者가 甚多라.
:이 때 눈이 크게 내려 신라와 당의 군사는 동사자가 아주 많았다
⑥어시 추지하서니하 위계
於是에 追至河西泥河하여 爲界하니
:이에 추격하여 하서의 이하에 이르러 국계를 정하니
⑦금강릉 북니천 시야
今江陵 北泥川이 是也라
:지금 강릉의 북이하가 그것이다.
⑧해주 암연현 동계신라
海州 岩淵縣은 東界新羅하니
: 해주 암연현은 동쪽으로 신라와 접했는데
⑨암연 금옹진 시야 자차
岩淵은 今瓮津이 是也라 自此로
: 암연은 지금의 옹진이다.이로부터
⑩신라 세시입공 임진강이북제성 진귀아
新羅가 歲時入貢하니 臨津江以北諸城이 盡歸我라
:신라는 해마다 입공하고 임진강 이북의 제성은 모조리 우리에게 속했다
⑪우명년 당 여신라 연병래침
又明年에 唐이 與新羅로 聯兵來侵이라가
:다시 이듬해 당나라는 신라의 병사와 연합하여 침입하였으나
⑫경무공이퇴
竟無功而退하다.
:결국은 아무 공도 없이 물러났다.
**의문점
※주: 임승국님의 주해에 따르면 <요사 권 38 지리지>에 ‘암연현은 동쪽으로 신라와 경계하고 옛 평양성은 암연현의 서남쪽에 있으며 동북으로 120리 지점에 해주가 있다.’
평양 ----- 암연현------------------- 해주
신라
만약 옹진을 암연이라 한다면 평양은 어디 있어야 하고 해주가 어디 있어야 하느냐?'라고 하며 이는 한반도의 지명일 수 없다'고 하였다.
요사의 해주는- 단군세기나 북부여기 가섭원부여기에 나오는 해두가 아닐까? 또는 오늘날 연해주라는 지명의 어원이 된 것은 아닐지?
⑸신교문명의 대제국, 대진국의 강성한 모습
①인안 십육년 구다 개마 흑수제국
仁安 十六年에 句茶 蓋馬 黑水諸國이
:인안 16년 구다 개마 흑수의 여러 나라들이
②이기국 내항 취위성읍
以其國으로 來降하니 取爲城邑하다
:항복해 오니 이들을 성읍으로 삼았다.
③명년 축송막십이성 우축요서육성
明年에 築松漠十二城하고 又築遼西六城하여
:이듬해 송막 12성을 쌓고 또 요서 6성을 쌓다.
④수유오경 육십주 일군 삼십팔현
遂有五京 六十州 一郡 三十八縣하니
:마침내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니
⑤원폭 구천여리 가운성의
圓幅이 九千餘里니 可云盛矣라.
:그 원폭이 9,000리니 성대한 나라였다.
⑥시세 당왜 급신라 병견사입공
是歲에 唐倭 及新羅가 並遣使入貢하니
:이 해 당나라 신라 및 왜도 나란히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니
⑦천하칭위해동성국 지유발해삼인당일호지어
天下稱爲海東盛國이오 至有渤海三人當一虎之語라
:천하는 해동성국이라고 칭송하고 이에 발해사람 셋이면 한마리 호랑이를 당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⑧시 군민화락 논사락의 오곡풍등
時에 君民和樂하고 論史樂義하며 五穀豐登하고
:때의 군민은 화락하고 역사를 논하며 의를 즐기며 오곡은 풍성하고
⑨사해안연 유대진육덕지가 이미지
四海晏然하여 有大震六德之歌하여 以美之라.
;사해는 안락하여 대진육덕의 노래라는 것이 있어 이러한 대진국을 찬미했다
⑩익년삼월 안민현 감로 강
翌年三月에 安民縣에 甘露가 降하니
:다음해 3월 안민현에 감로가 내리니
⑪예관 계청하의 종지
禮官이 啓請賀儀한대 從之라
:예관은 계장을 올려 하의할 것을 청하여 이에 따랐다
⑫시월십육일 제삼신일체상제우서압록하지상
是月十六日에 祭三神一體上帝于西鴨綠河之上하니
:이달 16일 삼신일체의 상제를 서압록하의 강변에서 제사하니
⑬서압록 고리고국지야
西鴨綠은 槀離古國地也라.
;서압록하는 고리의 옛 나라의 땅이다.
⑹4대 문황제의 민족사 교육과 신교의 대부흥시대
①십구년 제붕
十九年에 帝崩하시니
: 19년 제께서 붕어하시니
②묘호왈광종 시호왈무황제
廟號曰光宗이오 諡號曰武皇帝라
; 묘호를 광종이라 하고 시호는 무황제라 했다.
③태자흠무 입 개원왈대흥
太子欽茂가 立하니 改元曰大興이오
:태자 흠무가 즉위하니 개원하여 대흥이라 하고
④자동경용원부 이도우상경용천부
自東京龍原府로 移都于上京龍泉府하고
:도읍을 동경의 용원부로부터 상경의 용천부로 옮기고
⑤명년 입태학 교이천경 신고
明年에 立太學하여 敎以天經 神誥하며
: 이듬해엔 태학을 세우고 천경신고를 가르치며
⑥강이환단고사 우명문사
講以桓檀古史하고 又命文士하여
:한단고사를 강하고 또 문사에 명하여
⑦수국사일백이십오권
修國史一百二十五券하니
:국사 25권을 편찬케 하니
⑧문치 흥예악 무위 복제이
文治는 興禮樂하고 武威는 服諸夷하여
:문치는 예악을 일으키고 인간의 홍익하는 교화는 이로써 만방에 미치게 되었다.
**대흥
※주: 1949년 길림성 돈화현 현성 근처의 우정산 고분에서 문황제의 둘째 딸인 정혜공주의 묘비가 출토 되었다. 그 비문 2행은 ‘대흥’으로 시작된다. 대흥을 연호로 적는 유일한 기록이 태백일사.
⑨태백현묘지도 흡어백성
太白玄玅之道가 洽於百姓하고
:
⑩홍익인간지화 뇌급만방
弘益人間之化가 賴及萬方이러라.
:
⑪대흥 사십오년 치청 절도사 이정기
大興 四十五年에 淄靑 節度使 李正己가
:대흥 45년 치정의 절도사 이정기는
⑫거병 거당군 제견장조전
擧兵하여 拒唐軍하니 帝遣將助戰하다
:군사를 이끌고 당나라 군대에 항거하니 제는 장수를 보내 싸움을 도웁게 하더라
⑬이정기 고구려인야 생어평로
李正己는 高句麗人也니 生於平盧라
:이정기는 고구려 사람이요, 평로에서 태어났다
⑭이십이년 사중 축군수이희일
二十二年에 師衆이 逐軍帥李希逸하고
:22년 장수들은 군사 이희일을 쫓고
⑮입정기 졸 자 납 통부중
立正己러니 卒에 子 納이 統父衆하고
;정기를 즉위시켰으나 죽었고 아들인 납이 아버지의 백성들을 통솔하고
⑯오십육년 납 졸
五十六年에 納이 卒하니
:56년 납도 죽고
⑰자사고 대기위 급졸 기가인 불발상
子師古가 代其位하고 及卒에 其家人이 不發喪하고
:아들 사고가 그 자리를 이고 사고가 죽었을 때 가인들은 상을 발하지 않고
⑱잠사영사도어밀이봉지
潛使迎師道於密而奉之라.
:은밀히 사람을 보내 사도를 맞아 고를 모셨다.
⑲대흥 오십칠년 제붕
大興 五十七年에 帝崩하시니
:대흥 57년 황제께서 붕어하시니
⑳묘호왈세종 호왈광성문황제
廟號曰世宗이오 諡號曰光聖文皇帝라
:묘호를 세종 시호를 광성문황제라하다.
ⓐ국인 입기족제 원의 성포악 불능리국
國人이 立其族弟 元義러니 性暴惡하여 不能理國이라
:국인은 그의 족제 원의를 즉위시켰으나 성품이 포악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다.
ⓑ갑술 국인 폐지
甲戌에 國人이 廢之하고
;갑술년 국인은 이를 폐하고
ⓒ영입선제지손 화흥 개원왈중흥
迎立先帝之孫 華興하니 改元曰中興이오
;선제의 손자 화흥을 맞아 즉위시키고 개원하여 중흥이라 하였다
ⓓ명년 붕 묘호왈인종 시호왈성황제
明年에 崩하시니 廟號曰仁宗이오 諡號曰成皇帝라.
:이듬해에 붕어하시니 묘호를 인종 시호를 성황제라 하였다
ⓔ황숙 숭린 입 시위목종 강황제
皇叔 崇璘이 立하시니 是爲穆宗 康皇帝라
:황숙인 승린이 즉위하니 이를 목종 강황제라 한다
ⓕ역의종 정황제 원유 강종 희황제 언의
歷毅宗 定皇帝 元瑜와 康宗 僖皇帝 言義와
:의종 정황제 원유, 강종 희황제 언희,
ⓖ철종 간황제 명충 지성종 선황제 인수
哲宗 簡皇帝 明忠하여 至聖宗 宣皇帝 仁秀하니
:철종 간황제 명충을 지나 선황제 인수에 이르다
ⓗ천자영명 덕기여신
天資英明하시고 德氣如神하시며
:타고난 모습이 영명하시고 덕은 신과 같고
ⓘ재겸문무 내유태조지풍
才兼文武하사 乃有太祖之風이라.
:재능은 문무를 겸비하였으니 곧 태조의 풍채가 있었다
⑺대제국 발해의 통치영역과 전국민의 신교 생활화
①남정신라 치니물 철원 사불 암연등칠주
南定新羅하여 置泥勿 鐵圓 沙弗 岩淵等七州하고
:남쪽으론 신라를 평정하여 이물 철원 사불 암연 등의 7주를 두고
②북략염해 나산 갈사 조나 석혁 급남북우루
北略鹽海 羅珊 曷思 藻那 錫赫과 及南北虞婁하여
:북은 염해 나산 갈사 조나 석혁 및 남북 우루를 공략하여 제부를 두고
③치제부 장백지동왈안변
置諸部하니 長白之東曰安邊이오
:장백의 동쪽을 안변이라 하고
④압강지남왈안원 목단지동왈철리
鴨江之南曰安遠이오 牧丹之東曰鐵利오
;압록강의 남쪽을 안원이라 하고 모란의 동쪽을 철리라 하고
⑤흑수지상왈회원 난하지동왈장령
黑水之上曰懷遠이오 灤河之東曰長嶺이오
:흑수의 강변을 회원 난하의 동쪽을 장령
⑥장령지동왈동평
長嶺之東曰東平이오
:장령의 동쪽을 동평이라 하며
⑦우루 재북대개마지남북
虞婁는 在北大蓋馬之南北하니
:우루는 북쪽에 있다
⑧지광 구천리 경우대개 문치희흡
地廣이 九千里라 境宇大開하여 文治熙洽하니
;대개마의 남북에 자리잡고 땅의 넓이 9,000리 영토는 크게 열리고 문치는 널리 가득 퍼졌다
⑨상자국도 하지주현 개유학 구서오계
上自國都로 下至州縣히 皆有學하여 九書五戒를
:위론 국도로부터 밑으론 주현에 이르기 까지 모두 학식 있고 구서 오계를
⑩조석송습 춘추고적 중의천공
朝夕誦習하며 春秋考績하여 衆議薦貢하니
:아침저녁으로 읽고 익히며 춘추에 공적을 생각하여 뭇사람이 의논하여 인재를 추천하며 공물을 바쳤다.
⑪인기축력 가진대용
人旣畜力하고 家盡待用이라.
:사람들은 이미 힘을 길렀고 집집마다 모조리 나라에 쓰임을 기다리니
⑫자시 국세부강
自是로 國勢富强하고
:이로부터 국세는 부강하어
⑬내외안열 자무도절간모지단
內外安悅하여 自無盜竊姦謀之端이오
:나라의 안팎이 모두 편안하게 즐거웠으니 절로 도둑질이나 모사의 폐단이 없어졌다.
⑭당왜신라 급거란 막불외복
唐倭新羅와 及契丹이 莫不畏服하여
:당나라,왜,신라,거란 할것 없이 두려워하며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⑮천하만방 개이성인흥치지해동성국 흠송지
天下萬邦이 皆以聖人興治之海東盛國으로 欽頌之라
:천하만방은 이로써 성인흥취의 해동성국이라고 흠송하였다.
⑯갱오대 야율 수빈수가병 종불능복야
更五代하여 耶律이 雖頻數加兵이나 終不能服也라
:오대가 바뀌었을 때 야율은 빈번하게 몇차례나 싸움을 일으켜 왔으나 종내 굴복 시키지는 못했고
⑰후 경장종 화황제 이진 순종 안황제 건황
後에 經莊宗 和皇帝 彛震과 順宗 安皇帝 虔晃과
:뒤에 장종 화황제 이진, 순종 안황제 건황,
⑱명종 경황제 현석 지애제인선 위거란소멸
明宗 景皇帝 玄錫하여 至哀帝諲譔하여 爲契丹所滅하니
:명종 경황제 현석을 지나 애제인 청태에 이르러 거란에게 멸망되니
⑲자세조 전십오세 공이백오십구년
自世祖로 傳十五世하여 共二百五十九年이러라.
:세조로부터 15세를 전하여 259년을 누렸다.
⑻역대 임금의 연호와 주요 통치 지명
①목종 개원왈정력 의종 개원왈영덕
穆宗이 改元曰正曆이오 毅宗이 改元曰永德이오.
:목종은 개원하여 정력이라 했고 의종은 영덕
②강종 개원왈주작 철종 개원왈태시
康宗이 改元曰朱雀이오 哲宗이 改元曰太始오.
:강종은 주작 철종은 태시
③성종 개원왈건흥 장종 개원왈함화
聖宗이 改元曰建興이오 莊宗이 改元曰咸和오.
;성종은 건흥이라 히고 장종은 함화
④순종 개원왈대정 명종 개원왈천복
順宗이 改元曰大定이오 明宗이 改元曰天福이오.
:순종은 대정 명종은 천복
⑤애제 개원왈청태
哀帝가 改元曰淸泰라.
:애제는 청태라고 개원하였다.
⑥대진국 남경 남해부 본남옥저고국
大震國 南京 南海府는 本南沃沮古國이니
:대진국의 남경인 남해부는 본래 남옥저의 옛 땅이다
⑦금해성현 시야
今海城縣이 是也오
:지금의 해성현이 그것이다
⑧서경 압록부 본 고리고국 금임황
西京 鴨綠府는 本 槀離古國이니 今臨潢이오
:서경인 압록부는 본래 고리국이요, 지금의 임황이다.
⑨금서요하 즉고지서압록하야
今西遼河가 卽古之西鴨綠河也라
:지금의 서요하는 곧 옛날의 서압록하였다
⑩고 구지 안민현 재동 이기서 임황현
故로 舊志에 安民縣은 在東하고 而其西는 臨潢縣이니
:로 옛 책에서의 안민현은 동쪽에 있으며, 그 서는 임황현이다
⑪임황 후 위요상경 임황부야
臨潢은 後에 爲遼上京 臨潢府也오
:임황은 뒤에 요나라의 상경 임황부가 된다
⑫급고지서안평 시야
及古之西安平이 是也라.
:곧 옛날의 서안평이다.
⑼의려국 왕자(의라)미8일본에 건너가 오진(應神) 천황이 됨
①정주 의려국소도
正州는 依慮國所都니
:정주는 의려국이 도읍한 땅이다
②위선비 모용외소패 우박욕자재
爲鮮卑 慕容廆所敗하여 憂迫欲自裁라가
:선비 모용괴에게 패하여 핍박 받을 것을 걱정하다가
③홀염아혼상미민 즉하왕불성호
忽念我魂尙未泯하니 則何往不成乎아
:재빨리 생각하기를 ‘나의 혼이 아직도 오히려 망하지 않았오니 어디간들 이루지 못 할 것인가?’라고 했다
④밀촉우자부라 유백랑산
密囑于子扶羅하고 踰白狼山하여
:은밀하게 아들 부(의)라에게 맡겨서 백랑산을 넘어
⑤야도해구 종자 수천
夜渡海口하니 從者가 數千이라
:밤에 해구를 건너게 하였더니 따르는 자 수천이라,
⑥수도 정왜인위왕
遂渡하여 定倭人爲王하니
:마침내 바다를 건너 왜인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
⑦자이위응삼신부명 사군신헌하의
自以爲應三神符命이라하고 使群臣獻賀儀하다.
:자칭 삼신의 부명에 응한다고 하여 군신으로 하여금 하례의 의식을 올리게 하였다.
⑧혹운 의려왕 위선비소패 도입해이불환
或云호대 依慮王이 爲鮮卑所敗하여 逃入海而不還하니
:혹은 말한다. ‘의려왕은 선비 때문에 패하여 도망쳐서 바다에 든 후 돌아오지 않았다
⑨자제 주보북옥저 명연 자의라 입
子弟가 走保北沃沮라가 明年에 子依羅가 立하다
:자제들은 도망쳐서 북옥저를 보젼하고 이듬해 아들 의라가 즉위하니
⑩자후 모용외 우부침략국인
自後로 慕容廆가 又復侵掠國人하니
:이 때부터 모용괴가 또다시 국인을 침략하였다.
⑪의라 솔중수천 월해 수정왜인위왕
依羅가 率衆數千하고 越海하여 遂定倭人爲王이라〉하다.
:이에 의라는 무리 수천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마침내 왜인을 평정해서 왕이 되다.’라고 하다
⑽당시 일본의 국가 구성과 한국과의 관계
①일본 구유이국 역왈이세 여왜동린
日本에 舊有伊國하니 亦曰伊勢라 與倭同隣이오
;일본은 옛날에 이국에 있었나니 역시 이세라고도 한다. 왜와 이웃하였다.
②이도국 재축자 역즉일향국야
伊都國은 在筑紫하니 亦卽日向國也라
:이도국은 축자에 있으며 곧 일향국이다
③자시이동 속어왜 기남동 속어안라
自是以東은 屬於倭하고 其南東은 屬於安羅하니
:여기서부터 동쪽은 왜에 속하며 그 남쪽은 안라에 속한다
④안라 본홀본인야
安羅는 本忽本人也라.
:안라는 본래 홀본 사람이다.
⑤북유아소산 안라 후 입임나
北有阿蘇山하고 安羅는 後에 入任那하니
;북쪽에 아소산이 있다. 안라는 뒤에 임나에 들어갔는데
⑥여고구려 조이정친
與高句麗로 早已定親이오
:고구려와 이미 친교를 맺었다.
⑦말로국지남 왈대우국 유시라군
末盧國之南 曰大隅國이니 有始羅郡이오
:말로국의 남쪽을 대우국이라하니 시라군이 있었으니
⑧본남옥저인소취
本南沃沮人所聚라
:본래 남옥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남만 도침미 완하 비자체의 무리는 모두 조공했다.
:남만은 구려의 유종으로서 산월로부터 온 자들이다.
:비자체는 변진의 비사벌 사람의 취락이다. 완하는 고구려 속노들이다.
:때에 왜인들은 갈리어서 산도에 근거하여 살며 각각 100여국이 있었다.
:그가운데 구야한국이 가장 크니 본래 구야본국 사람이 다스렸던 곳이다.
:해상 선박은 모두가 종도에 모여 교역했으니 오 위 만 월의 무리들 모두 통상했다.
:처음 바다를 건너 천여리에 대마국에 이르는데 사방이 400여리쯤 된다.
:또 다시 바다를 건너 천여리쯤 가면 일기국에 이르는데 여기는 사방 300여리쯤이다.
:본래 사이기국이라 했다. 여러 작은 섬들이 모두 조공했다.
:또 바다를 건너면 말로국에 이른다. 본래 읍루 사람아 모이는 곳이다.
:동남쪽 육지로 500리 쯤 가면 이도국에 이른다. 곧 반여언의 옛읍이다.
:<<신당서>>에서는,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붙어 있던 자로 성은 대 씨이다.
:걸걸중상이라는 자가 말갈의 추장 걸사비우 및 고구려의 여중과 함께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수를 건너 태백산의 동북을 확보하여 오루하에 근거 하였다.
:중상이 죽고 아들 조영은 나머지 무리를 이끌고 도망쳐 갔다.
: 곧 비우의 무리를 합쳐 거칠고 멀다는 것을 믿고 곧 건국하여
:스스로 진국왕이라 이름하고 부여 옥저 변한 해북의 뭇 나라를 모조리 었었다.’고 하였다.
:사씨는 말하기를 ‘걸걸중상은 패망의 나머지 무리를 데리고 험한 곳에 달려가 스스로 보젼하였다.’라고 한다.
:태왕이 빈을 떠난 것과 같이 고왕 조영은 창업의 뜻을 갖고 가시밭을 갈아 다시 나라의 기초를 이룸은
:구천이 월나라를 세움과 같다. 대저 폭원은 이미 설만하니, 곧 문덕을 가지고 이를 닦고 제도를 제정하여
:관작을 세우고 군현을 늘어놓아 대국에 저항하였다. 나라의 영역은 5,000리에 이르고
:역사는 300년에 이르다. 당시 사방에 대진국을 넘볼 자가 없었고 역시 크게 성했던 나라라 할만하다.
:고려 현종 원문대왕의 20년 거란의 동경장군 대연림은 태조 고황제의 7세손이다.
:유수부마 소효원과 남양공주를 사로잡고, 호부사 한소윤 등을 죽이고 즉위하여
:요를 세운다고 하고 천경이라고 개원했다.
:고길덕을 파견하여 와서 건국을 알리고 겸하여 원조를 청했다.
:요동의 유보 수보는 정치를 함에 혹독하였다.
:고려의 예종 문효대왕의 11년 정월, 동경의 비장이요, 발해 사람인 고영창은 수십인과
:술김에 용기를 내어 칼을 들고 울타리 담장흘 넘어 부위에 들어갔다.
:등청해서 유수가 있는 곳을 묻고 거짓으로 외부의 군대가 쳐들어 왔다고 하며 대비를 해야 겠다고 청하였다.
:수보는 먼져 나오다가 무리에게 죽임을 당하고, 가유수 대공정과 부유수 고정신은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서쪽 문을 뚫고 나와서 요나라로 도망했다. 영창은 스스로 대 발해국 황제라 칭하고
:융기라고 개원하니 요동 50여 주를 거느렸다.
:<<송사>>에 가로대, 정안국은 본래 마한의 종자들인데 요나라에 망하니
:그 족장은 남은 무리를 규합하여 그 서쪽 변두리 땅을 확보하여 나라를 세우고 개원하여 스스로 장안국이라 했다.
:개보 3년, 왕 열만화는 입공하는 여진에게 부탁하여 표문을 올리고 공물을 바쳤다.
:태종 때 그 왕 오현명은 다시 여진에게 부탁하여 표문을 올리고 공물을 바쳤다.
:거기서 요약하여 말하기를 ‘신은 본래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고 있는 터로 발해의 유민으로서 이 한쪽 구석을 보전하는바’라고 하였다.
:태종은 답장에서 요약하여 이르기를 ‘경은 마한의 땅을 남김없이 모두 남김없이 보전하고 경파의 표를 올리니 운운’이라고 했다.
:단공(988-989)으로부터 순화(990-994) 사이에 다시 여진을 통해 표를 올리더니 그 뒤에는 소식이 없다고 하였다.
:대진국은 애제의 청태 26년 봄 정월 야율배는 동생 요골과 선봉이 되어
:밤에 홀한성을 포위하자 애제가 성밖에 나가 항복함으로써 대진국은 망했다.
:2월 병오 요의 태조가 동단국을 세우고 장자 배를 인왕황으로 삼다.
:왕은 감로라고 개원하고 홀한성을 천복성이라 개칭하였다. 천자의 관복을 준용하고
:12류의 면류관을 쓰고 모두 용의 형상을 그렸으니 바로 대진국의 옛날 제도이다.
:숙부 질자를 좌대상으로 삼고 대진의 노상(이름은 확실치 않음)을 우대상으로 삼으며,
:대진국의 사도 대소현을 좌차상으로 삼고, 야율우지를 우차상으로 삼다.
:나라 안의 사형이하 죄인을 사면하고 해마다 포 10만단, 말 천필을 할 것을 약속케 했다.
:감로 27년 겨울 경진에 요는 동경 중대성을 쳐서 동단국도 없앴다.
- 대진국 본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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