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고구려국본기
⑴고구려국통의 뿌리-북부여 해모수
①고구려지선 출자해모수
高句麗之先이 出自解慕漱하시니
: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오나니
②해모수지모향 역기지야
解慕漱之母鄕이 亦其地也라
:해모수의 어머니의 고향 역시 그곳이다.
③조대기 왈 해모수 종천이강
朝代記에 曰 〈解慕漱는 從天而降하사
;<조대기>>에선 이렇게 말한다 <해모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④상거우웅심산 기병어부여고도
嘗居于熊心山이라가 起兵於夫餘古都하고
; 웅심산에서 일찌기 살다가 부여의 옛서울에서
⑤위중소추 수입국칭왕 시위부여시조야
爲衆所推하여 遂立國稱王하시니 是謂夫餘始祖也시니라.
:군대를 일으켜 무리에게 추대외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니 이를 부여의 시조라고 한다.
⑥착오우관 패용광검 승오룡거
着烏羽冠하시고 佩龍光劍하시고 乘五龍車하시니
:까마귀 깃털로 만든 관을 쓰고 용광의 검을 차고 오룡의 수레를 탔다
⑦종자 백여인 조즉청사 모즉등천
從者 百餘人이오 朝則聽事하시고 暮則登天하시니
:따르는 시종이 오백여명이 있었는데 아침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니
⑧무소령이관경 자화
無所令而管境이 自化하고
:호령하지 않아도 절로 관경이 교화되었다
⑨산무도적 화곡만야 국무사이민역무사
山無盜賊하고 禾穀滿野하니 國無事而民亦無事라
:산에는 도적이 없고 벼와 곡식이 들에 그득하니 나라에 큰 일 없고 백성 또한 일 없었다
⑩단군 해모수지초강 재어임술 사월 초팔일
檀君 解慕漱之初降이 在於壬戌 四月 初八日하니
:단군해모수가 처음 하늘에서 내려오심은 임술(BC )4월 초 여드레로서
⑪내진왕 정 팔년야
乃秦王 政 八年也라〉
:곧 진시황 정의 8년이다>
⑵고주몽(해모수의 4대직계왕손)의 혈통과 북부여의 계승
①고리군왕 고진 해모수지이자야
槀離郡王 高辰은 解慕漱之二子也오
:고리군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며
②옥저후 불리지 고진지손야
沃沮侯 弗離支는 高辰之孫也니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이다
③개이토적만공 득봉야
皆以討賊滿功으로 得封也라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을 세워 봉함을 받은 바라
④불리지 상과서압록 우하백녀 유화
弗離支가 嘗過西鴨綠이라가 遇河伯女 柳花하여
:불리지는 일찌기 서쪽 압록강변을 지나다가 하백녀 유화를 만나
⑤열이취지 생고주몽
悅而娶之하고 生高朱蒙하시니
:그녀를 맞아 들여 고주몽을 낳게 하였다
⑥시즉임인 오월오일야
時則壬寅 五月五日也오
:때는 곧 임인(BC 79) 5월 5일이라
⑦내한주 불릉 원봉 이년야
乃漢主 弗陵 元鳳 二年也라.
:곧 한나라왕 불능의 원봉2년이다
⑧불리지 훙
弗離支가 薨하고
:불리지가 죽으니
⑨유화 솔자 주몽 귀우웅심산 금서란야
柳花 率子 朱蒙하여 歸于熊心山하니 今舒蘭也라
:유화는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돌아왔으니 지금의 서란이다
⑩기장 주유사방 택가섭원이거지
旣長에 周遊四方할새 擇迦葉原而居之러니
:주몽이 성장하여 사방을 주유하다가 가섭원을 택하여 거기서 살다가
⑪선어관가 위목마
選於官家하여 爲牧馬라
:관가에 뽑혀 말지기로 임명되었다
⑫미기 위관가소기
未幾에 爲官家所忌하여
:얼마 안되어 관가의 미움을 사서
⑬여오이 마리 협보 도지졸본
與烏伊 摩離 陝父로 逃至卒本하시니
:오이와 마리외 협보와 함께 도망하여 졸본으로 왔다
⑭적 부여왕 무사
適에 夫餘王이 無嗣라
:때마침 부여왕은 후사가 없었다
⑮주몽 수이왕서 입승대통
朱蒙이 遂以王婿로 入承大統하시니
:주몽이 마침내 사위가 되어서 대통을 이으니
⑯시위고구려 시조야
是謂高句麗 始祖也시니라.
:이를 고구려의 시조라 한다
⑶고주몽성제때의 통치영역과 대도말씀
-고구려 천도과정
①삼십이년 갑오 십월 벌북옥저 멸지
三十二年 甲午 十月에 伐北沃沮하여 滅之하고
: 32년 갑오(BC 27)10월 북옥저를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켰다
②명년 을미 자졸본 이도눌견
明年 乙未에 自卒本으로 移都訥見하니
:을미년에 졸본으로부터 서울을 눌현으로 옮겼다
③눌견 금상춘 주가성자야
訥見은 今常春 朱家城子也라
:눌현은 지금의 상춘 주가 성자이다
④유리명제 십구년 우자눌견
琉璃明帝 十九年에 又自訥見으로
:유리명제의 19년 또 눌현으로부터
⑤이도우국내성 역왈황성
移都于國內城하니 亦曰皇城이오
:국내성으로 옮겼으니 또한 황성이라고도 한다
⑥내유환도산 산상축성 유사즉거지
內有丸都山하여 山上築城하니 有事則居之라.
:성안에 환도산이 있는데 산 위에 성을 쌓고 일이 있으면 여기에 머물렀다
⑦대무신열제 이십년 제 습낙랑국
大武神烈帝 二十年에 帝 襲樂浪國하여
:대무신열제의 20년, 제는 낙랑국을 습격하여
⑧멸지 동압록이남 속아
滅之하니 東鴨綠以南이 屬我하고
: 멸망시켰으니, 동압록 이남이 우리에 속했는데
⑨독해성이남 근해제성 미하
獨海城以南 近海諸城이 未下라
:애오라지 해성의 남쪽, 바다근처의 여러 성들만은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
⑩산상제 원년 견제기수
山上帝 元年에 遣弟罽須하여
:산상제의 원년 동생 계수를 파견하여
⑪공파공손도 벌현도낙랑 멸지
攻破公孫度하고 伐玄菟樂浪하여 滅之하니
:공손탁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현도와 낙랑을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키니
⑫요동 실평
遼東이 悉平하다.
:요동이 실평했다
⑷대인의 길을 가르침
①대변경 왈 고주몽성제 조왈천신
大辯經에 曰 〈高朱蒙聖帝가 詔曰天神이
:대변경에서 말한다 <‘고주몽성제는 조서를 내려 가로대,
②조만인일상 균부삼진
造萬人一像하사 均賦三眞하시니
:천신께서 만인을 만드실 때에 하나의 상으로서 균등하게 삼진을 주시었으니
③어시 인기대천 이능립어세야
於是에 人其代天 而能立於世也라
:이에 사람은 저 하늘을 대신하여 능히 세상에 서게 되었다>라고 하셨다
④황아국지선 출자북부여 위천제지자호
況我國之先이 出自北夫餘하여 爲天帝之子乎아.
;하물며 우리나라의 선조는 북부여에서 나와 천제의 아들이 되었다
⑤철인 허정계율 영절사기
哲人은 虛靜戒律하여 永絶邪氣하나니
:밝은 이의 마음이 비어 고요함은 계율에 뿌리를 두는 것이니 오래도록 사특한 기운을 눌러
⑥기심안태 자여중인 사사득의
其心安泰하면 自與衆人으로 事事得宜라.
:그 마음이 안락하고 태평하다. 이에 뭇 사람과 함께 일하면 항상 잘되는 것이라
⑦용병 소이완침벌
用兵은 所以緩侵伐이며
:병력을 쓰는 까닭은 침범을 느슨하게 하려함이요
⑧행형 소이기무죄악
行刑은 所以期無罪惡이니라.
:형을 행함은 죄악을 없앨 것을 기하기 때문이다
⑨고 허극정생 정극지만 지극덕융야
故로 虛極靜生하고 靜極知滿하고 知極德隆也라
:그러므로 허가 지극하면 정이 생기며, 정이 지극하면 지혜가 가득하며,지혜가 지극하면 덕이 융성하다
⑩고 허이청교 정이혈구
故로 虛以聽敎하고 靜以絜矩하고
:때문에 마음을 비워 가르침을 듣고 고요한 가운데 헤아리며
⑪지이리물 덕이제인
知以理物하고 德以濟人하나니
:지혜로써 사물을 이치대로 하고 덕으로써 사람을 다스린다
⑫차내신시지개물교화
此乃神市之開物敎化하여
:이것이 곧 신시의 개물교화이다.
⑬위천신 통성 위중생 입법 위선왕 완공
爲天神 通性하며 爲衆生 立法하며 爲先王 完功하며
:천신을 위해서는 성품을 열고 중생을 위해서는 법을 세우고 선왕을 위해서는 공을 다하고
⑭위천하만세 성지생쌍수지화야
爲天下萬世하여 成智生雙修之化也시니라
:천하만세를 위해서는 지와 생을 나란히 닦는 교화를 이룸이라.'
⑸을파소의 가르침
①을파소 위국상 선년소영준
乙巴素가 爲國相에 選年少英俊하여
:을파소는 국상이 되더니 나이어린 준걸들을 뽑아서
②위선인도랑 장교화자
爲仙人徒郞하니 掌敎化者를
: 선인도랑이라 하였다. 요화를 관장함을
③왈참전 중선수계 위신고탁
曰參佺이니 衆選守戒하여 爲神顧托하며
:참전이라 하였으니 무리들을 선택하여 계를 지키고 신을 위하는 일을 맡겼다
④장무예자 왈유의
掌武藝者를 曰瑜衣니
:무예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라 하였으니
⑤겸조성율 위공정신야
兼操成律하여 爲公挺身也라.
:바른 행동을 거듭하여 규율을 만들고 공동을 애하여 몸을 바친다.
⑥상언어중 왈 신시이화지세
嘗言於衆 曰 〈神市理化之世에
: 일찌기 무리들에게 말하기를, '신시이화의 세상은
⑦유민개지 일부지치
由民開智하여 日赴至治하니
:백성들의 지혜가 열림에 따라서 날로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게 되었다.
⑧즉유소이긍만세 불가역지표준야
則有所以亘萬世 不可易之標準也라
:이에 만세에 걸쳐서 바꿀 수 없는 표준이 되는 이유가 되다
⑨고 참전유계 청신이화중
故로 參佺有戒하여 聽神以化衆하며
: 때문에 참전엑 계가 있으니, 신의 계시에 따라 무리를 교화하고,
⑩한맹유율 대천행공야
寒盟攸律하여 代天行功也니
:한맹에 율이 있으니 하늘을 대신하여 공을 행한다.
⑪개자립심작력 이비후공야
皆自立心作力하여 以備後功也니라〉
:모두가 스스로 마음을 써서 힘을 모아 뒤에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라고 했다.
⑹을지문덕의 호쾌한 심법세계
①을지문덕 왈
乙支文德이 曰
;을지문덕이 이렇게 말하였다
②도이사천신 덕이비민방 오지기유사천하야
道以事天神하고 德以庇民邦이니 吾知其有辭天下也라
:도로써 천신을 섬기고,덕으로 백성과 국가를 비호하여라.나는 이 말씀이 천하에 있음을 아노라
③수삼신일체기 분득성명정
受三神一體氣하여 分得性命精하니
:인간이 삼신일체의 생명을 받을때, 성품과 목숨과 정기를 나누어 받으니
④자재광명 앙연부동
自在光明이 昻然不動이라가
:우리 몸 속에 본래부터 잠겨있는 조화의 대광명이 환히 빛나고 고요히 있다
⑤ 有 時 以 感 하며 發 而 道 乃 通 하나니라.
:때가 되면 감응하니, 이를 발현시키면 도를 통하게 되느니라
ⓕ시내소이체행삼물 덕혜력
是乃所以体行三物 德慧力하여
:그 까닭은 삼물(덕혜력)인 덕과 지혜와 창조력을 몸으로 잘 실행하고
ⓖ화성삼가 심기신 열만삼도감식촉
化成三家 心氣身하며 悅滿三途感息觸하나니
:삼가인 마음과 기운과 육신(심기신)이 조화를 성취하고 삼도인 느낌과 호흡과 촉감을 언제나 기쁨으로 가득
채운 결과라고할것이니
ⓗ요재일구염표 재세이화
要在日求念標하여 在世理化하며
:도를 통하는 요체는,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날마다 한시도 잊지 않고 진심으로 구하는데 있나니,세상을 신교의 진리로 교화하고(제세이화)
ⓘ정수경도 홍익인간야
靜修境途하여 弘益人間也라.
:고요히 이러한 경계를 잘 닦아 사람을 널리 건지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천하는데 그 관건이 있느니라
ⓙ환국왈오훈 신시왈오사
桓國曰五訓이오 神市曰五事오
:환국시대에 5훈이 있었고 신시시대에는 5사
ⓚ조선왈오행육정 부여왈구서
朝鮮曰五行六政이오 夫餘曰九誓라
:고조선시대에는 5행6정,부여에는 9서가 이었다
ⓛ삼한통속 역유오계
三韓通俗이 亦有五戒하니
:삼한의 공통도니 풍속에도 또한 5계가 있었는데
ⓜ왈효충신용인 개교민이정평
曰孝忠信勇仁이니 皆敎民以正平이오
;이는 곧 효도,충성,신의,용맹,어짐(효충신용인)이다.(이렇게 각 시대마다 계율을 둔 이유는) 백성을 교화시킴에 있어
ⓝ이직군지의 존언
而織群之意가 存焉이니라
:바르고 공정한 기준을 세워 세상사람에게 널리 알리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니라
*오계 또는 다물5계
㉠사친이효,사군이충,교우이신,임전무퇴,살생유택
㉡고구려 비롯한 삼국시대에는 일반대중의 실천덕목 효충신용인의 5계가 있었다
㉢유불선 3교가 들어오기 이전 환국5훈,부여구서,흥방오게니 하는 잠훈계율이 있어 백성을 교화
조대기 왈 동천제 역칭단군
朝代記에 曰 〈東川帝를 亦稱檀君이시니
:<<조대기>>에 가로대 ‘동천제도 역시 단군이라 한다.
⑨매당한맹 제영삼신우평양
每當寒盟이면 祭迎三神于平壤하시니
:한맹의 절기가 될 때마다 삼신을 평양에서 제사하여 맞이한다
⑩금기림굴 즉기제소야
今箕林窟이 卽其祭所也라
:지금의 기림굴은 즉 그 제사지내던 곳이다’라고 했다.
⑪대영예전 시행수혈 유구제궁 조천석
大迎禮典이 始行隧穴하여 有九梯宮 朝天石하니
:크게 맞이하는 의식은 처음에는 수혈에서 행해지니 구제궁에 조천석이 있었으니
⑫행로지인 개가지점야
行路之人이 皆可指點也라
:길을가는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었다
⑬우유삼륜구덕지가 이장지
又有三倫九德之歌하여 以獎之하시니
:또 삼륜구덕의 노래가 있어 이를 권장하였다.
①조의선인 개기선야
皂衣仙人이 皆其選也오
:조의선인은 모두 선택되었으니
②국인소긍식자야
國人所矜式者也라
:국인이 그 선출됨을 긍지로 여기는 바였다.
③불연 하이가영 여지위등어왕사자호
不然이면 何以加榮하여 與之爲等於王使者乎아.
:그렇지 않다면 영광으로써 왕의 사자와 동등하게 여겼겠는가?‘
④광개토경호태황 융공성덕 탁월백왕
廣開土境好太皇은 隆功聖德이 卓越百王하사
:광개토경호태왕은 융공성덕하여 어느 왕보다 탁월했다
⑤사해지내 함칭열제
四海之內에 咸稱烈帝라
:사해안에서는 모두 열제라고 칭한다.
⑥연십팔 등극우광명전 예진천악
年十八에 登極于光明殿하시니 禮陳天樂하시고
:나이 18세에 광명전에서 등극하고 하늘의 음악을 예로써 연주했다.
⑦매어임진 사사졸 가차어아지가 이조사기
每於臨陣에 使士卒로 歌此於阿之歌하여 以助士氣하시며
:지에 나아갈 때마다 병사들로 하여금 어아의 노래를 부르게 하고
⑧이조사기
以助士氣하시며
:이로써 사기를 돋우었다.
⑨순기지마리산 등참성단
巡騎至摩利山하사 登塹城壇하사
:말을 타고 순수하여 마리산에 이르러 참성단에 올라
⑩친제삼신 역용천악
親祭三神하실새 亦用天樂하시니라.
: 친히 삼신에게 제사지냈는데 역시 천악을 사용하였다.
一 自 渡 海 로 所 至 에 擊 破 倭 人 하니 倭 人 은 百 濟 之 介 也 라.
:일단 스스로 바다를 건너서는 이르는 곳마다 왜국사람들일 격파하였다. 왜인은 백제의 보좌였다.
百 濟 가 先 與 倭 로 密 通 하여 使 之 聯 侵 新 羅 之 境 하니
:백제가 먼저 왜와 밀통하여 왜로 하여금 신라의 경계를 계속해서 침범하게 하였다.
帝 躬 率 水 軍 하여 攻 取 熊 津 , 林 川 , 蛙 山 , 槐 口 , 伏 斯 買 , 雨 述 山 , 進 乙 禮 , 奴 斯 只 等 城 하시고
:제는 몸소 수군을 이끌고 웅진 임천 와산 괴구 복사매 우슬산 진을례 노사지 등의 성을 공격하여 차지하고
路 次 俗 離 山 이라. 期 早 朝 祭 天 而 還 하시니
:도중에 속리산에서 이른아침 제천하고 돌아오다.
時 則 百 濟 新 羅 駕 洛 諸 國 이 皆 入 貢 不 絶 하고
:때에 곧 백제 신라 가락의 여러나라가 모두 조공을 끊임없이 바쳤고
契 丹 平 凉 이 皆 平 服 하고 任 那 伊 倭 之 屬 이 莫 不 稱 臣 하니 海 東 之 盛 이 於 斯 爲 最 矣 라.
:거란 평량도 모두 평정 굴복시켰다. 임나와 이왜의 무리는 모두 신하로써 따르지 않는자가 없었다. 해동의 번성함은 이때가 그 극성기이다.
先 是 에 陜 父 가 奔 南 韓 하여 居 馬 韓 山 中 하니
:이보다 앞서 협보는 남한으로 도망쳐 마한의 산중에 살았다.
從 而 出 居 者 가 數 百 餘 家 라. 未 幾 에 歲 連 大 歉 하여 流 離 遍 路 어늘
:그를 따라온 자도 수백가였는데 몇해 지나지 않아 큰 흉년에 시달려 유리하고 방황했다.
陜 父 가 乃 知 將 革 하고 誘 衆 裏 糧 하여 舟 從 浿 水 而 下 하고
:협보는 장혁을 알고 무리를 유혹하여 양곡을 도둑질하여 배에 싣고 패수를 따라 내려와
由 海 浦 而 潛 航 하여 直 到 拘 耶 韓 國 하니 乃 加 羅 海 北 岸 也 라.
:해포로부터 몰래 항해하여 곧바로 구야한국에 이르니 곧 가라해의 북안이다.
居 數 月 에 轉 徙 于 阿 蘇 山 而 居 之 하니 是 爲 多 婆 羅 國 之 始 祖 也 라.
:여기서 수개월 동안 살다가 아소산으로 옮겨가서 기거했다. 이를 다파라국의 시조라한다.
後 에 倂 于 任 那 하여 聯 政 以 治 하니 三 國 은 在 海 하고 七 國 은 在 陸 이라.
:뒤에 임나를 병합하여 연정을 세워 이를 통치케하다. 3국은 바다에 있고 7국은 뭍에 있었다.
初 에 弁 辰 九 耶 國 人 이 先 在 團 聚 하여 是 爲 狗 耶 韓 國 이요
:처음 변진구야국의 사람들이 한때 모여 산적이 있었는데, 이를 구야한국이라 한다.
多 婆 羅 는 一 稱 多 羅 韓 國 이니
:다파라를 다라한국이라고도 한다.
自 忽 本 而 來 하여 與 高 句 麗 로 早 已 定 親 故 로 常 爲 烈 帝 所 制 라.
:홀본으로부터 와서 고구려와 일찌감치 친교를 갖고 있었으스로 늘 열제의 통치를 받았다.
多 羅 國 은 與 安 羅 國 으로 同 隣 而 同 姓 이오
:다라국은 안라국과 함께 이웃하여 성이 같다.
舊 有 熊 襲 城 하니 今 九 州 熊 本 城 이 是 也 라.
:본래 웅습성을 갖고 있으니 지금 구주의 웅본성(구마모또 시로)이 그것이다.
倭 在 會 稽 郡 東 東 冶 縣 之 東 하니 舟 渡 九 千 里 하여 至 那 覇 하고
:왜는 회계군의 동쪽 동야현의 동쪽에 있으며 배로 9000리를 건너 나패에 이르른다.
而 又 渡 一 千 里 하여 至 根 島 하니 根 島 는 亦 曰 柢 島 라.
:또다시 1000리를 건너서 네시마에 이르른다. 네시마는 도시마라고도 한다.
時 狗 奴 人 이 與 女 王 으로 相 爭 하여 索 路 甚 嚴 일새
:때에 구노인은 여왕과 서로 싸워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其 欲 往 狗 耶 韓 者 는 盖 由 津 島 加 羅 山 志 加 島 하여 始 得 到 末 盧 戶 資 之 境 하니
:구야한국으로 가고자 하는자는 쯔시마,가라산,지가도로부터 비로소 말로호자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其 東 界 則 乃 狗 耶 韓 國 地 也 라.
:그 동쪽 경계는 곧 구야한국의 땅이다.
會 稽 山 은 本 神 市 中 經 所 藏 處 요 而 司 空 禹 가 齊 戒 三 月 而 得 하여
:회계산은 본래 신시의 중경이 간직된 곳이다. 사공 우가 재계하기 사흘만에야 겨우 치수의 비결을 얻어
乃 有 功 於 治 水 故 로 禹 伐 石 하여 刻 扶 婁 功 於 山 之 高 處 云 하니
:공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우는 돌을 벌채하여 부루태자의 공을 산의 높은 곳에 새겼다고 한다.
則 吳 越 은 本 九 黎 舊 邑 이요 山 越 左 越 이 皆 其 遺 裔 分 遷 之 地 也 라.
:즉 오월은 본래 구려의 옛 읍이며 산월 과 좌월은 모두 그 후예가 옮겨 산 땅이다.
常 與 倭 로 往 來 貿 販 하여 得 利 者 漸 多 라.
:항상 왜와 왕래하며 무역하여 이익을 얻는자가 매우 많았다.
秦 時 에 徐 巿 이 自 東 冶 海 上 으로 直 至 那 覇 하여
:진 때 서불은 동야현의 해상으로부터 곧바로 나패에 이르러
經 種 島 而 沿 瀨 戶 內 海 하여 始 到 紀 伊 하니
:다네시마를 거쳐 세도나이까이를 따라 처음으로 기이에 이르렀다.
伊 勢 에 舊 有 徐 福 墓 祠 라. 或 曰 亶 洲 는 徐 福 所 居 云 이라.
:이세에 옛날 서복의 무덤이 있었다. 어떤이는 말한다. ‘단주는 서복이 있던 곳’이라고도.
長 壽 弘 濟 好 太 烈 帝 는 改 元 建 興 하사
:장수홍제호태열제는 건흥이라고 연호를 바꿨다.
仁 義 治 하시고 國 恢 拓 疆 宇 하시니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려서 강역을 널리 넓혔다.
熊 津 江 以 北 屬 我 하고 北 燕 室 韋 諸 國 이 皆 入 敍 族 焉 이요
:이에 웅진강 이북이 모두 고구려에 속하게 되어 북연 시위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족속의 서열에 들어오게 되었다.
又 與 新 羅 寐 錦 과 百 濟 於 瑕 羅 로 會 于 南 平 壤 하여 約 定 納 貢 戍 兵 之 數 하다.
:또 신라 매금 백제 어하라와 남쪽 평양에서 만나 납공과 수비 군사의 수를 정했다.
文 咨 好 太 烈 帝 는 改 元 明 治 하시고
:문자호태열제는 명치라고 개원하였다.
十 一 年 에 齊 魯 吳 越 之 地 가 屬 我 하니 至 是 하여 國 疆 漸 大 라.
:11년 제노오월의 땅은 고구려에 속했다. 이에 이르러 나라의 강토는 더욱 커졌다.
平 岡 上 好 太 烈 帝 는 有 膽 力 하시며 善 騎 射 하사 乃 有 朱 蒙 之 風 이러니
:‘평강상호태열제는 담력이 있고 말을 타고 활쏘는 것을 잘 했으니, 곧 주몽의 풍이 있었다.
改 元 大 德 하시고 治 敎 体 明 하시니라.
;대덕으로 개원 하더니 잘 다스려 밝게 교화했다.
大 德 十 八 年 丙 申 에 帝 率 大 將 溫 達 하여 往 討 碣 石 山 拜 察 山 하고
:대덕 18년 병신 제는 대장 온달을 보내 갈석산 배찰산을 토벌하고 추격하여
追 至 楡 林 關 하여 大 破 北 周 하니 楡 林 鎭 以 東 이 悉 平 하다. 楡 林 은 今 山 西 境 이라.
:유림관에 이르러 북주를 크게 격파하니, 유림진 동쪽은 모두 평정되었다. 유림은 지금 산서성의 경계이다.
嬰 陽 武 元 好 太 烈 帝 時 에 天 下 大 理 하여 國 富 民 殷 이러니
:영양무원호태열제때 천하는 크게 다스려져 나라는 부하고 백성은 성했다.
隋 主 楊 廣 이 本 鮮 卑 遺 種 으로 統 合 南 北 之 域 하고
:수나라왕 양광은 본래 선비의 유종족인바, 남북의 땅을 통합하여
以 其 餘 勢 로 侮 我 高 句 麗 하여 以 爲 小 虜 가 侮 上 國 이라하여 頻 加 大 兵 이나
:그 여세를 모아 우리 고구려를 모욕하고 업신여기더니, 상국을 업신여기고 자주 대병을 일으켰으나
我 旣 有 備 하여 而 未 嘗 一 敗 也 라.
;고구려는 이미 대비가 있어 한번도 패한적이 없었다.
弘 武 二 十 五 年 에 廣 이 又 復 東 侵 할새 先 遣 將 兵 하여
:홍무 25년 양광은 또다시 동쪽으로 침략해와서 먼저 장병을 보내
重 圍 卑 奢 城 하니 官 兵 이 戰 不 利 라. 將 襲 平 壤 이어늘
: 비사성을 여러겹으로 포위케했다. 관병은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니 바햐흐로 평양을 습격하려 했다.
帝 聞 之 하시고 欲 圖 緩 兵 하여 執 遣 斛 斯 政 할새
:제께서는 이를 듣고 완병술을 쓰려 했다. 계략을 꾸며 곡사정을 보냈다.
適 有 皂 衣 一 仁 者 하여 自 願 請 從 而 偕 到 하고 獻 表 於 楊 廣 할새
:때마침 조의 가운데 일인이라는 자가 있어 자원하여 따라가기를 청한 끝에 함께 표를 양광에게 바쳤다.
廣 이 於 船 中 에 手 表 而 讀 未 半 이요 遽 發 袖 中 小 弩 하여
:양공이 배에서 표를 손에 들고 읽는데 절반도 채 읽기 전에 갑자기 소매 속에서 작은 활을 꺼내 쏘아
中 其 胸 하니 廣 이 驚 倒 失 神 이라.
:그의 뇌를 맞혔다. 양광은 놀라 자빠지고 실신했다.
右 相 羊 皿 이 使 負 之 하여 急 移 於 小 船 而 退 하고
:우상 양명은 서둘러 양광을 업게하여 작은 배로 갈아타고 후퇴하여
命 懷 遠 鎭 撤 兵 하고
:회원진에 명을 내려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하였다.
廣 이 謂 左 右 曰 予 爲 天 下 主 하여 親 伐 小 國 而 不 利 하니
:양광은 좌우에 말하여 가로대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몸소 작은 나라를 쳐도 승리하지 못하니
是 非 萬 世 之 所 嗤 乎 아한대
:이는 만세의 웃음거리가 아니겼는가?’라고 했다.
羊 皿 等 이 面 黑 無 答 이러라. 後 人 이 歌 之 하여 曰
:양명 등은 얼굴색이 검게 변하여 대답 못하고 말았다. 후인들은 이를 노래로 불러 가로대,
嗟 汝 蠢 蠢 漢 家 兒 :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애들아
莫 向 遼 東 浪 死 歌 로다.: 요동은 향하지 마라.개죽음이 부른다.
文 武 我 先 號 桓 雄 이니: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綿 亘 血 胤 英 傑 多 로다.: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朱 蒙 太 祖 廣 開 土 는: 주몽 태조 광개토님
威 振 四 海 功 莫 加 로다.: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나위 없었고」
紐 由 一 仁 楊 萬 春 은: 유유 일인 양만춘은
爲 他 變 色 自 靡 踒 로다.: 나라 위해 못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世 界 文 明 吾 最 古 하여: 세상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攘 斥 外 寇 保 平 和 로다.: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劉 徹 楊 廣 李 世 民 은: 유철 양광 이세민도
望 風 潰 走 作 駒 過 로다.: 보기만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永 樂 紀 功 碑 는 千 尺 이니 :영락기공비는 천 척
萬 旗 一 色 太 白 峨 로다.:만가지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라고 하였다.
乙 支 文 德 은 高 句 麗 國 石 多 山 人 也 라.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석다산 사람이다. 제천은 곧 신시의 옛 풍속이다.
嘗 入 山 修 道 하여 得 夢 天 神 而 大 悟 하시고
:일찌기 입산하여 수도하고 꿈에 천신을 보고 크게 깨닫다.
每 當 三 月 十 六 日 則 馳 往 摩 利 山 하여 供 物 敬 拜 而 歸 하시며
:3월 16일 마리산으로 달려가 공물하며 경배하고 돌아오고,
十 月 三 日 則 登 白 頭 山 祭 天 하시니 祭 天 은 乃 神 市 古 俗 也 라.
:10월 3일이면 백두산에 올라가 제천했다.
弘 武 二 十 三 年 에 隋 軍 一 百 三 十 餘 萬 이 並 水 陸 而 來 攻 이어늘
:홍무 23년 수군 130여만이 바다와 산으로 나란히 공격해왔다.
文 德 이 能 以 奇 計 로 出 兵 鈔 擊 之 하고 追 至 薩 水 하여 遂 大 破 之 하니
:을지문덕은 능히 기이한 계책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서 이를 초적하고 추격하여 살수에 이르러 마침내 수를
대파혀였다.
隋 軍 이 水 陸 俱 潰 하여 生 歸 遼 東 城 ( 今 昌 黎 ) 者 가 僅 二 千 七 百 人 이라.
:수나라 군사는 무륙 양군이 무너져 살아서 요동성(오늘의 창려성)까지 돌아간 자가 겨우 2700인이었다.
廣 이 遣 使 乞 和 한대 文 德 이 不 聽 하고 帝 亦 嚴 命 追 之 라.
:양광은 사신을 보내 화해를 구걸했으나 문덕은 듣지 않고 영양제도 또한 엄명하여 이를 추격케하였다.
文 德 이 與 諸 將 으로 乘 勝 直 驅 할새 一 自 玄 菟 道 로 至 太 原 하고
:문덕은 제장과 더불어 승승장구하여 똑바로 밀어붙여 한쪽은 현도도로부터 태원까지 추격하고
一 自 樂 浪 道 로 至 幽 州 하여 入 其 州 縣 而 治 之 하며 招 其 流 民 而 安 之 라.
:한쪽은 낙랑도로부터 유주에 이르렀다. 그 주군에 쳐들어가 이를 다스리고 그 백성들을 불러다가 이를 안무하였다.
於 是 에 建 安 建 昌 白 岩 昌 黎 諸 鎭 은 屬 於 安 市 하고
:여기에서 건안 건창 백암 창려의 제진은 안시에 속하고
昌 平 涿 城 新 昌 桶 道 諸 鎭 은 屬 於 如 祈 하고 孤 奴 平 谷 造 陽 樓 城 沙 溝 乙 은 屬 於 上 谷 하고
:창평 탁성 신창 용도의 제진은 여기에 속하고 고노 평곡 조양 누성 사구을은 상곡에 속하고
和 龍 汾 州 桓 州 豊 城 鴨 綠 은 屬 於 臨 潢 하니 皆 仍 舊 而 置 吏 라.
:화룡 분주 환주 풍성 압록은 임황에 속했다. 무두 옘처럿 관리를 두고 다므렸다.
至 是 하여 强 兵 百 萬 이요 境 土 가 益 大 라.
:이에 이르러 강병백만으로 강토는 더욱 더 커졌다.
楊 廣 壬 申 之 寇 也 에 出 師 之 盛 이 前 古 未 之 有 也 로대
:양광은 임신의 오랑캐라고 한다. 출사가 성대하기로는 예전에는 그 예가 없었다.
以 我 皂 衣 二 十 萬 으로 滅 其 軍 幾 盡 하니 此 非 乙 支 文 德 將 軍 으로 一 人 之 力 乎 아.
:그런데 조의 20만인을 가지고 모조리 그 군을 멸망시켰는데 이는 을지문덕 장군 한 사람의 힘이 아니겠는가?
若 乙 支 公 者 는 乃 萬 古 造 時 勢 之 一 聖 傑 也 哉 로다.
:을지공과 같은 분은 곧 만고에 세상의 흐름을 만드는 한 성걸이다.
文 忠 公 趙 浚 이 與 明 使 祝 孟 으로 共 登 百 祥 樓 하여 賦 詩 曰
:문충공 조준이 명나라 사신과 더불어 축배하고 함께 백상루에 올라 이렇게 시를 읊었다.
薩 水 湯 湯 漾 碧 虛 하니 :살수는 탕탕하게 흘러 프르고 허하고나,
隋 兵 百 萬 化 爲 魚 로다. :수나라 병사 백산은 물고기 밥이 되었지.
至 今 留 得 漁 樵 하니 :이제 가던 길 멈춰 어부에게 그 때 얘기 듣나니
語 不 滿 征 夫 一 哂 餘 로다. :정부이 한마디 웃음 남기기엔 오히려 모자라네.
舊 史 에 曰 嬰 陽 武 元 好 太 烈 帝 弘 武 九 年 에
:옛 역사에서 말하기를, ‘영양수원호태열제의 홍무 9년에
帝 遣 西 部 大 人 淵 太 祚 하여 往 討 登 州 하고 擒 殺 摠 管 韋 冲 하다.
:서부대인 연태조를 보내 등주를 토벌하고 총관위충을 잡아 죽이게 하다’라고 하였다.
先 是 에 百 濟 以 兵 으로 平 定 齊 魯 吳 越 之 地 하고
:제는 이보다 앞서 백제는 병럭으로써 제나라 노나라 오나라 월나라 등지를 평정한 후
設 官 署 하여 索 籍 民 戶 하며 分 封 王 爵 하여
:관서를 설치하여 호적을 정리하고, 왕작을 분봉하여
屯 戍 險 塞 하며 軍 征 賦 調 하여 悉 準 內 地 러니
:험난한 요새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정벌한 곳의 세금을 고르게 부과하여 모든 것을 내지에 준하게 하였다.
明 治 年 間 에 百 濟 軍 政 이 衰 頹 不 振 하고 權 益 執 行 이 盡 歸 聖 朝 하여
:명치연간에 백제의 군정이 쇠퇴하고 진흥치 못하매 권익의 집행이 모두 성조로 돌아왔다.
劃 定 城 邑 하고 文 武 置 吏 라. 及 隋 作 兵 하여
:성읍을 구획짓고 문무의 관리를 두었는데 수나라가 또 군대를 일으켜 말썽이 났다
有 事 南 北 하고 騷 擾 四 起 하여 害 及 生 民 일새
:남북이 소요하여 사방이 온통 시끄러워지니 해독은 백성들에게 시치게 된지라.
帝 威 赫 怒 하사 恭 行 天 討 하시니 四 海 之 內 에 莫 不 聽 命 也 라.
:제는 몹시 화를 내어 삼가 하늘의 뜻을 행하여 이들을 토벌하니, 사해에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다.
然 隋 主 楊 堅 이 陰 藏 禍 心 하고 敢 出 讐 兵 하여
:그런데 수나라 왕 양견은 은밀하게 모반의 뜻을 품고 감히 복수의 군대를 내어
密 遣 韋 冲 하여 摠 管 爲 名 하고 潰 破 官 家 하여 焚 掠 邑 落 하니
:몰래 위충 총관을 파견하여 공명을 위해 관가를 부수고 읍락에 불지르고 노략질하게 하였다,
乃 遣 將 兵 하여 擒 殺 賊 魁 하니 山 東 平 服 하고 海 城 謐 然 이라.
:이에 제는 곧장 장병을 보내 적의 괴수를 사로잡아 죽이니,산동지방은 이에 다시 평정되고 해역은 조용해졌다.
是 歲 에 堅 又 遣 楊 諒 王 世 績 等 三 十 萬 하여 來 與 戰 할새
:이 해에 양견은 또 양량왕세적등 30만을 파견하여 싸우도록 했으나
纔 發 定 州 하고 未 至 遼 澤 하여 値 水 亂 而 饋 轉 杜 絶 하고 癘 疫 幷 熾 라
:겨우 정주를 출발하여 아직 요택에도 이르지 못하였을 때 물난리를 만나서 식량은 떨어져 배고픔은 심하고 전염병마저 크게 돌았다.
周 羅 緱 以 兵 據 登 州 하고 徵 集 戰 艦 數 百 하여
:주라구는 병력을 모아 등주에 웅거하여 전함 수백척을 징집시켜
自 東 萊 로 泛 航 하여 趣 平 壤 이라가
:동래로부터 배를 띄워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爲 我 所 覺 하여 展 而 拒 之 以 進 이라가
:고구려가 이를 알아차리고는 후군으로써 이를 방어하도록 내보냈는데,
忽 遭 大 風 而 全 軍 이 漂 沒 하다. 時 에
:갑자기 큰 바람이 일어나서 전군이 물에 떠다니는 판에
百 濟 가 請 隋 爲 軍 導 라가 受 我 密 諭 而 未 果 하다.
:백제가 수나라에 청하여 군의 향도가 되려 하다가 고구려의 타이릇을 받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左 將 高 成 이 密 有 親 隋 之 心 하여 陰 壞 莫 離 支 北 伐 之 計 러니
:좌장군 고성은 은밀하게 수나라와 친할 마음이 있어 은밀하게 막리지의 북벌계획을 막았다.
至 是 하여 屢 請 遣 師 하여 攻 破 百 濟 有 功 이라.
:이에 여러 차례 청해서 출사하여 공격함으로써 공을 세웠다.
獨 莫 離 支 力 排 衆 議 하고 强 執 以 南 守 北 伐 之 策 하여
:그러나 홀로 막리지는 대중의 의견을 물리치고 남수북벌의 정책에 집착하여
屢 陳 利 害 以 從 하다.
:여러차례 이해관계를 들어 말하므로 이 말에 따르게 되었다.
及 高 成 이 卽 位 하여 盡 棄 前 帝 之 遺 法 하고 遣 唐 求 老 子 像 하여
:고성이 즉위하게 되자 전황제의 모든 정책은 폐기되었다. 사신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노자의 상을 구하여
使 國 人 으로 聽 講 道 德 經 하고 又 動 衆 數 十 萬 하여 築 長 城 하니
:백성들로 하여금 도덕경을 청강시켰다. 또 무리 수십만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게 하였으니
自 扶 餘 縣 으로 至 南 海 府 히 千 有 餘 里 라.
:부여현으로부터 남해부에 이르는 1000여리이다.
時 에 西 部 大 人 淵 蓋 蘇 文 이 請 罷 講 道 敎 하고 又 以 停 長 城 之 役 으로 極 陳 利 害 로대
:때에 서부대인 연개소문은 청하여 도교를 강하는 것과 장성쌓는 일을 중지시키고자 했으나
帝 甚 不 悅 하여 奪 蘇 文 之 兵 하고 命 監 築 長 城 之 役 하여
:제는 기꺼워하지 않고 소문의 병사를 빼앗고는 장성을 쌓는 일의 감독을 시키더니,
密 與 諸 大 人 으로 議 誅 滅 之 러니
:은밀하게 뭇 대인과 더불어 의논하여 연개소문을 주살코자 하였다.
蘇 文 이 先 得 聞 知 하고 乃 嘆 曰
:소문은 앞질러 이 말을 들을 수 있어 장탄식하며 말하기를,
豈 有 身 死 而 國 全 之 理 乎 아. 事 急 矣 오 時 不 可 失 也 라하고
:'어찌 이몸이 죽고나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랴? 일은 급하다. 때를 잃지 말지라.' 하고
悉 集 部 兵 하여 若 將 閱 武 者 하고 盛 陳 酒 饌 하여
:모든 부장을 모아 마치 열병하는 것처럼 하고는 성대하게 술상을 벌려
召 諸 大 臣 하여 共 臨 視 之 하니 皆 至 라.
:뭇대신을 초청하여 함께 이를 시찰하자고 하였다. 모두가 참석하자
蘇 文 이 勵 聲 曰
:소문이 소리를 크게 내며 격려하기를,
門 近 虎 狼 而 不 救 하고 反 欲 殺 我 乎 아하고 遂 除 之 라.
:‘대문에 호랑이 여우가 다가오는데 백성구할 생각은 않고 되려 나를 죽이려 한다. 빨리 이를 제거하라'하니
帝 聞 變 以 微 服 潛 逃 하여 至 松 壤 而 下 詔 招 募 나
:제는 변고를 듣고 평복으로 몰래 도망쳐 송양을고 가서 조서를 내려 나라의 대신을 모으려 했으나
國 人 無 一 人 至 者 라. 自 不 勝 愧 汗 하여 遂 自 殞 碎 而 崩 하다.
:한 사람도 오는 사람 없고 보니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저절로 숨이 떨어져 붕어하였다.
朝 代 記 에 曰 淵 蓋 蘇 文 은 一 云 蓋 金 이니
:<<조대기>>에 가로대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이라고도 한다
姓 은 淵 氏 요 其 先 은 鳳 城 人 也 라. 父 曰 太 祚 요 祖 曰 子 遊 요
:성은 연씨. 그의 선조는 봉성 사람으로 아버지는 태조라하고, 할아버지는 자유라하고,
曾 祖 曰 廣 이니 並 爲 莫 離 支 라. 弘 武 十 四 年 五 月 十 日 에 生 하고
:증조부는 광이라 했으니, 나란히 막리지가 되었다. 홍무 14년 5월 10일 태어났다.
年 九 歲 에 選 爲 皂 衣 仙 人 하니 儀 表 雄 偉 하고 意 氣 豪 逸 하여 每 與 軍 伍 로 列 薪 而 臥 하고
:나이 9살에 조의선인에 뽑혔는데 의표웅위하고 의기호일하여 졸병들과 함께 장작개비를 나란히 베고 잠자며,
手 瓠 而 飮 하며 群 焉 而 盡 己 하고 混 焉 而 辨 微 하여
:손수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시며, 무리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다하였으니,혼란한 속에서도 작은 것을 다 구별해내고,
賞 賜 를 必 分 給 하며 誠 信 周 護 하여 有 推 心 置 腹 之 雅 量 하며
:상을 베풀때는 반드시 나누어 주고, 정성과 믿음으로 두루 보호하며, 마음을 미루어 뱃속에 참아두는 아량이 있고,
至 有 緯 地 經 天 之 才 하니
:땅을 위로 삼고, 하늘을 경으로 삼는 재량을 갖게 되었다,
人 皆 感 服 하여 無 一 人 異 懷 者 也 러라.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여 복종해 한 사람도 딴 마음을 갖는 자가 없었다.
然 이나 用 法 嚴 明 하여 貴 賤 一 律 하고
그러나 법을 쓰는데 있어서는 엄명으로 귀천이 없이 똑같았으니
若 有 犯 者 면 一 無 假 借 하여 雖 當 大 難 이라도 少 不 驚 心 하며
:만약에 법을 어기는 자 있으면 하나같이 용서함이 없었다. 큰 난국을 만난다 해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었으니
與 唐 使 酬 言 호대 亦 不 屈 志 하여 常 以 自 族 陰 害 로 爲 小 人 하며
:당나라 사신과 말을 나눔에 있어서도 역시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고,항상 자기 겨레를 히치는 자를 소인이라 하고,
能 敵 唐 人 으로 爲 英 雄 이라.
:능히 당나라 사람에게 적대하는 자를 영웅이라 하였다.
喜 焉 而 下 賤 可 近 이요 怒 焉 而 權 貴 俱 震 하니
:기쁘고 좋을땐 낮고 천한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있으나 노하며 권세있는 자나 귀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겁냈다.
眞 一 世 之 快 傑 也 니라.
:참말로 일세의 쾌걸인저!’라고 했다.
自 言 生 於 水 中 하여 能 潛 泳 竟 日 이라도 尤 健 不 疲 라하니
:스스로 ‘물 가운데 살아서 능히 잠행할 수 있고 온종일 더욱 건장하게 피로할 줄 모른다’고 말해였다.
衆 咸 驚 伏 地 하여 羅 拜 曰 滄 海 龍 神 이 復 爲 化 身 矣 라하다.
:무리들 모두 놀라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가로대 ‘창해의 용신이 다시 몸을 나타내심이로다’라고 했다.
蘇 文 이 旣 放 高 成 帝 하고 與 衆 으로 共 迎 高 臧 하니 是 爲 寶 臧 帝 라.
:소문은 마침내 고성제를 내어 쫓고 무리와 더불어 함께 고장을 맞아들여 이를 보장제로 삼다.
蘇 文 이 旣 得 志 에 行 萬 法 爲 公 之 道 하여 成 己 自 由 하고 開 物 平 等 하여
:소문 드디어 뜻을 얻어 만법을 행하니, 대중을 위한 길은 정기 자유 개물 평등으로 하고,
三 忽 爲 佺 하고 皂 衣 有 律 하여 注 力 國 防 하며 備 唐 甚 盛 이라.
;삼홀을 전으로 하고,조의에 율이 있게 하고,힘을 국방에 쏟아 당나라에 대비함이 매우 완전하였다.
先 與 百 濟 上 佐 平 으로 俱 存 立 義 하며
:먼저 백제의 상좌평과 함께 의를 세웠다.
又 請 新 羅 使 金 春 秋 하여 館 於 私 邸 曰
:또 신라의 사신 김춘추에게 청하여 자기의 집에 머무리도록 하며 말하기를,
唐 人 이 多 悖 逆 하여 近 於 禽 獸 하니
:‘당나라 사람들은 패역하기를 짐승에 가깝습니다.
請 吾 子 하여 須 忘 私 仇 하고 自 今 三 國 이 敍 族 合 力 하여
:청컨대 우리나 그대들은 반드시 사사로운 원수를 잊고 지금부터 삼국은 백성들의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直 屠 長 安 이면 唐 醜 를 其 可 擒 也 라.
:곧바로 당나라 서울 장안을 쳐든어가 도륙한다면 당나라 괴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오!
戰 勝 之 後 에 仍 舊 地 而 聯 政 하여 仁 義 共 治 요
:전승의 뒤에 옛 영토에 따라서 연정을 실시하고 인의로써 함께 다스려
而 約 相 勿 侵 하여 爲 永 久 遵 守 之 計 가 何 如 요
:약속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영구준수의 계획으로 함이 어떻겠소?’라고 하며
勸 再 三 호대 春 秋 가 終 不 聽 하니 惜 哉 라.
:이를 재삼 권하였으나, 춘추는 종래 듣지 않았으니 애처롭고 가석할 일이었다.
開 化 四 年 에 唐 主 李 世 民 이 謂 群 臣 曰
:개화 4년 당나라 이세민이 군신에게 말하기를,
遼 東 은 本 諸 夏 之 地 어늘 隋 氏 四 出 師 而 不 能 得 하니
:‘요동은 본래 제하의 땅이다. 수나라가 네번 출사하였어도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予 今 出 兵 은 欲 爲 報 諸 夏 하여 子 弟 之 讐 라하고
:나는 이제 출병하여 제하를 위해 자제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고 하다.
世 民 이 親 佩 弓 矢 하고 率 李 世 勣 程 名 振 等 數 十 萬 하여 到 遼 澤 하니
:세민은 친히 활과 화살을 차고 이세적 정명진 동 수십만 명을 이끌고 요택에 이르다
泥 淖 二 百 餘 里 에 人 馬 가 不 可 通 이라.
:진흙길 200여리 사람과 말이 다닐 수 없었다.
都 尉 馬 文 擧 가 策 馬 奔 擊 하여 旣 合 戰 이러니 行 軍 摠 管 張 君 叉 가 大 敗 하니
:도위 마문거가 말에 채찍질하며 달려가 공격했지만 이미 싸움을 벌였던 행군총관 장군차는 대패했다.
李 道 宗 이 收 散 軍 하고 世 民 이 自 將 數 百 騎 하여 與 世 勣 으로 會 하여 攻 白 岩 城 西 南 하니
:이도종은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였고 세민은 몸소 수백기를 이끌고 세적과 합쳐 백암성의 서남쪽을 공격했다.
城 主 孫 代 音 이 詐 遣 請 降 이나 而 實 은 欲 乘 隙 反 擊 이라.
:성주인 손대음은 속여서 항복을 청하게 하고 실은 틈을 엿보아 반격하고자 하였다.
世 民 이 至 安 市 城 하여 先 自 唐 山 으로 進 兵 攻 之 라.
:세민은 안시성에 이르러 먼저 당산으로부터 병사들을 진격시켜 이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北 部 褥 薩 高 延 壽 와 南 部 褥 薩 高 惠 眞 이 率 官 兵 及 靺 鞨 兵 十 五 萬 하여
:북부의 욕살 고연수와 남부의 욕살 고혜진은 관병 및 말갈병 15만 이끌고
引 至 直 前 하고 連 安 市 爲 壘 하여 據 高 山 之 險 하며
:똑바로 전진하여 안시에 연결되는 진지를 쌓고,높은 산의 험악한 곳에 의거하여 진지를 쌓고
食 城 中 之 粟 하여 縱 兵 掠 其 軍 馬 하니
:성의 곡식을 식량으로 삼고, 병력을 종휭무진으로 풀어 놓아 당나라군마를 약탈했다.
唐 奴 不 敢 犯 이요 欲 歸 나 則 泥 淖 爲 阻 하여 坐 困 必 敗 라.
:당나라군을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고 돌아가려고 해도 지흙길이 가로막았으니 가만히 앉아서 패하는 길밖에 없었다.
延 壽 가 引 軍 直 前 以 進 하니 料 去 安 市 四 十 里 라
:고연수는 군대를 이끌고 똑바로 나아가서 안시성에서 약 40리 떨어진 곳에 나아가더니,
遣 人 하여 問 於 對 盧 高 正 義 하니 以 其 年 老 習 事 也 라. 正 義 曰
:사람을 보내 대로 고정의에게 물었으니 그는 나이가 많아서 모든 일에 익숙했다. 정의노인은 대답하기를,
世 民 內 芟 軍 雄 하여 化 家 爲 國 하니 亦 不 凡 常 이라.
:'이세민은 안으로 군웅들을 제거하고 집을 바꿔 나라를 이루었으니 역시 범상하진 않다.
今 據 全 唐 之 兵 而 來 하니 其 銳 를 不 可 輕 也 라.
:지금 모든 당나라의 병력이 떨치어 나왔으니 업신여길 수가 없다.
爲 吾 計 者 컨대 莫 若 頓 兵 不 戰 하여 曠 日 持 久 하고
:우리들로서 바람직한 것은 군대를 움직이지 말고싸우지 않으며,여러날을 두고 지구전을 펴며,
分 遣 奇 兵 하여 斷 其 糧 道 니 糧 道 旣 盡 하고
:날랜 병사들을 보내 그 식량 보급의 길을 끊는 것보다 좋은 계책은 없다.
求 戰 不 得 하면 欲 歸 無 路 러니 乃 可 勝 也 라.
:식량이 이미 끊겨 싸우고자 하나 싸워주지도 않고, 돌아가려해도 길이 없으니 결국 이기기 마련이라‘ 고 하였다.
延 壽 從 其 計 하여 賊 來 則 拒 하고 賊 去 則 止 하며
:고연수는 그 계략에 좇아 적이 오면 막고, 적이 도망가면 곧 추격을 멈추고,
又 遣 奇 兵 하여 焚 奪 糧 路 하니
:또 날랜 병사들을 파견하여 식량의 길을 끊고, 불태우거나 빼앗게 하자
世 民 이 百 計 誘 之 以 賄 나 面 從 而 內 違 하여
:이세민은 백가지 계략으로 유혹하여 뇌물도 썼으나 겉으로는 따르는 체하고는 속으로는 거슬렸다.
數 遣 陰 襲 陷 裂 하니 賊 之 死 傷 이 酷 多 라.
:수시로 습격을 감행하여 마구 무너뜨리니 적군의 사상자는 쌓여만 갔다.
延 壽 等 이 與 靺 鞨 로 合 兵 爲 陣 하고 持 久 作 戰 이라가
:고연수등은 말갈과 병력을 합쳐 진지를 펴고 지구전을 벌이다가
一 夜 豹 變 하여 急 襲 電 擊 하니
:어느날 저녁 표변하여 작전을 개시하여 급히 습격하여 번개처럼 치니,
世 民 이 幾 被 圍 迫 하여 始 有 懼 色 이라.
:이세민은 거의 포위될 �하게 되자 비로소 두려운 빛을 보였다.
世 民 이 又 復 遣 使 하여 懷 財 寶 하고 謂 延 壽 曰
:이세민은 또다시 사신을 파견하여 재물과 보화를 보내면서 연수에게 말하기를,
我 以 貴 國 强 臣 이 弑 其 君 上 故 로 來 問 罪 요
:‘나는 귀국의 힘있는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였으므로 그 죄를 물으려온 것이다.
至 於 交 戰 하여 入 貴 境 에 蒭 粟 이 不 給 故 로 間 有 焚 掠 幾 處 而 已 오
:그대의 나라에 들어와서 싸움을 하게 됨에 말 먹이와 식량을 공급할 수가 없어서 얼마간 노략질을 몇 곳에서 했었을 뿐이니,
俟 貴 國 修 禮 納 交 則 必 復 矣 라한대 延 壽 曰
:그대의 나라가 예를 갖추어 수교를 기다리면 반드시 회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연수는 말했다.
諾 다. 退 貴 兵 三 十 里 則 吾 將 見 帝 矣 리라.
:'좋다, 그대의 군사가 30리를 후퇴하면 곧 나는 우리 황제를 알현코자한다.
然 莫 離 支 는 爲 國 柱 石 이요 軍 法 自 在 하니 不 須 多 言 이요
:그렇지만 막리지는 국가의 기둥이다. 군법을 스스로 갖고 있으니 많은 말도 팔요가 없다.
汝 君 世 民 은 廢 父 弑 兄 하고 淫 納 弟 妃 하니
:그대의 임금 세민은 아비를 폐하고 형을 죽이고 동생의 아내를 음란하게도 받아들였으니,
此 可 問 罪 也 라. 以 此 傳 之 어다.
:이것이야말로 죄를 물을 만하다. 으 뜻을 이세민에게 전하여라.'
於 是 에 四 遣 督 察 하여 益 加 守 備 하고
:이에 사방으로 감시관을 보내 더욱 더 방비를 굳혔다.
依 山 自 固 하고 乘 虛 奇 襲 하고
:산에 의지하여 전지를 굳히고 허를 틈타 기습하니,
世 民 이 百 計 無 術 하여 痛 恨 遼 東 出 兵 之 不 利 而 已 悔 無 及 焉 이러라.
:세민은 백가지 계략을 다 써도 어쩔수가 없어 요동 출병의 불리를 통한히 여길 뿐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柳 公 權 小 說 에 曰 -유공권의 소설에서
六 軍 爲 高 句 麗 所 乘 하여 殆 將 不 振 하고
:‘육군은 고구려의 조롱거리가 되고 거의 떨쳐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候 者 告 英 公 之 麾 가 黑 旗 被 圍 라한대 世 民 이 大 恐 이라하니
:척후병이 영공의 군기는 흑색 깃발(고구려의 군기 색갈)로 에워 싸였다고 보고 하니 세민은 크게 놀랐다.
雖 終 自 脫 而 危 懼 如 被 어늘
:종내 저 혼자 탈출했다해도 위험을 이와 같있다.'라고 하였으니,
新 舊 唐 書 와 及 司 馬 公 通 鑑 에 不 言 者 는 豈 非 爲 國 諱 恥 乎 아.
:<<신구당서>>와 사마공의 <<통감>>이 이를 적지 않음은 어찌 나라를 위해 치욕스러운 일을 숨기려 함에서가 아닐까보냐?
李 世 勣 이 言 於 世 民 曰
:이세적은 세민에게 말한다.
建 安 은 在 南 하고 安 市 는 在 北 하니
:'건안은 남쪽에 있고 안시는 북에 있습니다.
吾 軍 糧 을 早 己 失 輸 遼 東 ( 今 昌 黎 )이어늘 今 踰 安 市 而 攻 建 安 이라가
:우리 군대의 양곡은 벌써 요동으로 수송할 길을 잃었습니다. 지금 안시성을 넘어 건안을 습격하는데
若 高 句 麗 가 斷 其 輸 送 이면 勢 必 窮 矣 리니
:만일 고구려가 수송로를 끊으면 군세는 궁하게 될 것입니다.
不 若 先 攻 安 市 니 安 市 下 則 鼓 行 而 取 建 安 耳 라.
:먼저 안시를 공격함만 같지 않을 안시가 함락되면 곧 북치고 행진하여 건안을 취할 뿐입니다.'
安 市 城 人 이 望 見 世 民 旗 蓋 하고
:안시성의 사람들은 세민의 깃발이 덮어오는 것을 멀리 바라보며
輒 乘 城 鼓 譟 하여 唾 罵 世 民 하고
:성위에 올라치고 떠들며 침을 뱉으며 세민을 조롱했다.
數 其 罪 目 하여 以 告 于 衆 하니
:그의 죄목을 열거하면서 무리에게 떠들어 댔다.
世 民 이 怒 氣 極 甚 하여 以 爲 陷 城 之 日 에 男 女 를 盡 坑 之 라하니
:세민은 몹시 화를 내면서 성을 함락시키는날 성중의 남여를 가릴 것 없이 모조리 흙구덩이에 생매장하겠다고 했다.
安 市 城 人 이 聞 之 하고 益 堅 守 하여 攻 之 不 下 러라.
:안시성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더욱 더 굳게 성을 지키니 성을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았다.
時 에 張 亮 兵 이 在 沙 卑 城 이나 而 欲 召 之 未 果 하여
:때에 장량은 사비성에 있었는데 그를 불러오게 하였으나 채 이르지 못하였고.
低 回 失 機 하고
:이리저리 망설이는 사이 기회를 잃고 말았다.
張 亮 이 將 移 兵 하여 襲 烏 骨 城 이라가 反 爲 官 兵 所 敗 라.
:
李 道 宗 이 亦 在 遭 險 不 振 하니 於 是 에 唐 奴 諸 將 이 議 自 相 岐 하여
:이도종도 역시 험악한 곳에 떨어져 떨치지 못하니 당군의 여러장수들은 의논한 끝에 갈라졌다.
世 勣 은 獨 以 爲
:세적만이 홀로 생각하기를
高 句 麗 가 傾 國 救 安 市 하니 不 若 捨 安 市 而 直 擣 平 壤 이라가 長 孫 無 忌 以 爲
:
天 子 親 征 은 異 於 諸 將 하여 不 可 乘 危 徼 行 이니
:'천자의 친정은 제장의 정벌과는 달라 요행을 바라고 행동한다는 건 안될 일이다.
今 建 安 新 城 之 敵 衆 이 數 十 萬 이오 高 延 壽 所 率 靺 鞨 이 亦 數 十 萬 이니
:지금 건인 신성의 적은 무리가 수십만이요. 고연수가 이끄는 말갈의 군대도 역시 수십만이다.
國 內 城 兵 이 若 又 回 烏 骨 城 而 遮 樂 浪 諸 路 之 險 이면
:국내성의 병력도 오골성을 돌아 낙랑의 여려길을 차단할 것 같다.
如 是 則 彼 勢 日 盛 하여 急 於 迫 圍 요
:그리 된다면 저들의 세력은 날로 성해지고 포위당하는 것이 될 것이다.
而 我 翫 敵 이라가 悔 無 及 焉 하리니 不 如 先 攻 安 市 하고
:그러니 우리가 적을 우롱하다가는 후회막급이 될 것이니, 먼저 안시성을 공격하고
次 取 建 安 然 後 에 長 驅 而 進 이 此 萬 全 之 計 也 라하여.
:다음에 건안을 취하고 그런 후에 천천히 진격하느니만 못하다. 이것이 만전책이다.'라고 했다.
未 之 決 이라 安 市 城 主 楊 萬 春 이 聞 之 乘 夜 深 하여 以 數 百 精 銳 로
:이 문제가 채 결론도 나기전에 안시성주 양만춘은 이를 듣고 밤 깊음을 틈타
縋 城 而 下 하니 賊 陣 自 相 踐 踏 하여 殺 傷 甚 多 라.
:수백의 정예를 데리고 밧줄을 타고 성을 내려오니 적진은 스스로 서로 밟고 찔러 살상된 자가 수없이 많았다.
世 民 이 使 李 道 宗 으로 築 土 山 於 城 東 南 隅 러니
:세민은 이도종을 시켜 흙산을 성의 동남쪽에 쌓게 하였다.
官 兵 이 從 城 缺 出 擊 하여 遂 奪 土 山 하고 塹 而 守 之 하여 軍 勢 益 振 하니
:관병(고구려병사)은 성의 틈사이로 출격하여 마침내 토산을뺏고 참호를 파고 이를 지키니 군세는 더욱더 떨치더라.
唐 奴 諸 陣 이 殆 失 戰 意 라.
:당군의 여러 진은 거의 싸울 힘을 잃으니,
傅 伏 愛 는 以 戰 敗 로 斬 하고 道 宗 以 下 는 皆 徒 跣 請 罪 라.
:부복애는 패전으로 목잘려 죽고 도종이하 모두가 맨발로 나와 죄를 청하였다.
莫 離 支 가 率 數 百 騎 하고 巡 駐 灤 坡 하여 詳 問 情 形 이오 遣 命 摠 攻 四 擊 할새
:막리지는 수백기를 이끌고 난파를 순시하며 상세하게 정세를 듣더니 사람을 보내 총공격하여 사방을 칠 것을 명하였다.
延 壽 等 은 與 靺 鞨 로 夾 攻 하고
:연수등도 말갈병과 합쳐 협공하고
楊 萬 春 登 城 督 戰 하니 士 氣 益 奮 하여 無 不 一 當 百 矣 라.
:양만춘은 성위에 올라가 싸움을 격려하니 사기는 더욱 떨쳐저서 일당백의 용맹이 없는 자가 없었다.
世 民 이 憤 不 自 勝 하여 敢 出 決 戰 이나
:세민은 이기지 못함을 분하게 여겨서 감연히 나서서 싸우려 했다.
楊 萬 春 이 乃 呼 聲 張 弓 하여
:양만춘은 이에 한마디 소리지르며 화살을 당겨 반공에 날렸다.
世 民 出 陣 이라가 矢 浮 半 空 하니 遂 爲 所 中 하여 左 目 沒 焉 이라.
:세민은 진에서 나섰다가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떨어져버렸다.
世 民 이 窮 無 所 措 하여 從 間 道 遁 할새
:세민은 어쩔 줄을 모르고 군사들 틈에 끼어서 도망쳤다.
命 世 勣 道 宗 하여 將 步 騎 數 萬 하여 爲 殿 하니
:세적과 도종에게 명하여 보볍 기병 수만을 이끌고 후군이 되도록 하였으나
遼 澤 泥 淖 하여 軍 馬 難 行 이라.
:요택의 진흙길은 군마의 행군을 어렵게 했다.
命 無 忌 하여 將 萬 人 하여 剪 草 塡 道 하고
:무기에게 명하여 모든 병사들에게 풀을 베게하여 길에 깔고 메우게 하고,
水 深 處 는 以 車 爲 梁 하고 世 民 이 自 繫 薪 於 馬 鞘 하여 以 助 役 하다.
:물이 깊은 곳은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하니. 세민도 몸소 장작을 말고삐에 연결하여 매고 역사를 도왔다.
冬 十 月 에 至 蒲 吾 渠 駐 馬 하여 督 塡 道 하고 諸 軍 이 渡 渤 錯 水 할새
:겨울 10월 포오거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고 길이 메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모든 군사가 발착수를 건너는데
暴 風 雪 이 占 濕 하여 士 卒 이 多 死 者 어늘 使 燃 火 於 道 하여 以 待 之 라.
:심한 바람과 눈이 몰아쳐서 사졸들을 적시니 죽는 자가 많이 많이 나왔다. 이에 불을 길에 지피고 기다렸다.
時 에 莫 離 支 淵 蓋 蘇 文 이 乘 勝 長 驅 하여 追 之 甚 急 하니
:때에 막리지 연개소문은 승승장구 이들을 심히 급하게 이들을 추격했다.
鄒 定 國 은 自 赤 峯 으로 至 河 間 縣 하고 楊 萬 春 은 直 向 新 城 하여 軍 勢 大 振 이라.
:추정국은 적봉에서부터 하간현으로 이르고, 양만춘은 곧바로 신성으로 나아가니, 군세는 크게 떨쳐졌다.
唐 奴 多 棄 甲 兵 而 走 하여 方 渡 易 水 하니
:당나라 군사는 갑옷과 병기를 마구 버리면서 도망가, 드디어 역수를 건넜다.
時 에 莫 離 支 가 命 延 壽 하여 改 築 桶 道 城 하니 今 高 麗 鎭 也 라.
:때의 막리지는 연수에게 명하여 용도성을 개축케 하니 지금의 고려진이다.
又 分 遣 諸 軍 하여 一 軍 은 守 遼 東 城 하니 今 昌 黎 也 요
:또 제군을 나누어서 일군을 요동성을 지키게 하니 지금의 창려이다.
一 軍 跟 隨 世 民 하고 一 軍 守 上 谷 하니 今 大 同 府 也 라.
:일군을 세만의 뒤를 바짝 쫓게 하고 또 일군을 상곡을 지키게 하니 지금의 대동부이다.
於 是 에 世 民 이 窮 無 所 措 하여 乃 遣 人 乞 降 하니
:이에 세민은 궁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침내 사람을 보내 항복을 구걸케 되니
莫 離 支 가 率 定 國 萬 春 等 數 萬 騎 하여 盛 陳 儀 仗 하고 鼓 吹 前 導 하여
:막리지는 정국 만춘 등의 수만 기를 이끌고 성대하게 의용을 갖추어 진열한 뒤 선도하게 하여
入 城 長 安 하여 與 世 民 으로 約 하니 山 西 河 北 山 東 江 左 가 悉 屬 於 我 라.
:장안에 입성하여 세민과 약속하였으니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 강좌가 모조리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先 是 에 高 句 麗 가 與 百 濟 로 外 競 俱 存 하니 遼 西 地 에 有 百 濟 所 領 曰 遼 西 晉 平 이요
:이에 고구려는 백제와 더불어 백제와 경쟁하는 사이가 되어 함께 요서의 땅에 있게 되었으니, 백제가 영유하던 곳은 요서의 진평이라 했다.
江 南 에 有 越 州 하니 其 屬 縣 은 一 曰 山 陰 이요 二 曰 山 越 이요 三 曰 左 越 이러니
:강남에는 월주가 있었다. 그 속현은 산음 산월 좌월이있었다.
至 文 咨 帝 明 治 十 一 年 十 一 月 하여 攻 取 越 州 하고 改 署 郡 縣 하니 曰
:문자제의 명치 11년 11월에 이르러 월주를 공격하여 취하고, 서군현을 고쳐
松 江 會 稽 吳 城 左 越 山 越 泉 州 요 十 二 年 에 以 新 羅 民 於 泉 州 하여 以 實 之 라.
:송강 회계 오월 좌월 산월 천주라 했다 12년 신라의 백성을 천주로 옮기고 이로써 알맹이를 삼았다.
是 歲 에 以 百 濟 不 貢 으로 遣 兵 攻 取 遼 西 晉 平 等 郡 하니 百 濟 郡 廢 하다.
:이해에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병력을 파견하여 공격하여 요서의 진평 등의 군을 취하고 백제군을 폐했다.
王 介 甫 曰 淵 蓋 蘇 文 은 非 常 人 也 라하니 果 然 이로다.
:
莫 離 支 가 在 則 高 句 麗 與 百 濟 로 俱 在 하고 莫 離 支 가 去 則 百 濟 가 與 高 句 麗 로 俱 亡 하니
:
莫 離 支 는 亦 人 傑 也 哉 로다.
:
莫 離 支 가 臨 終 에 顧 謂 男 生 男 建 曰 爾 兄 弟 는 愛 之 如 水 하라.
:
束 箭 則 强 하고 分 箭 則 折 하나니 須 無 忘 此 將 死 之 言 하여 貽 笑 於 天 下 隣 國 之 人 하라.
:
時 則 開 化 十 六 年 十 月 七 日 也 오. 墓 는 在 雲 山 之 九 峯 山 也 라.
:
高 麗 鎭 은 在 北 京 安 定 門 外 六 十 里 許 하고
:고려진은 북경의 안정문 밖 60리 되는 곳에 있고
安 市 城 은 在 開 平 府 東 北 七 十 里 하니 今 湯 池 堡 요
:안시성은 개평부의 동북 70리 되는 곳에 있다. 지긋의 탕지보이다.
高 麗 城 은 在 河 間 縣 西 北 十 二 里 하니
:고려성은 하간현의 서북 12리에 있다.
皆 太 祖 武 烈 帝 所 築 也 라.
:모두 태조무열제가 쌓은 것이다.
唐 樊 漢 이 有 高 麗 城 懷 古 詩 一 首 하여 傳 於 世 其 詩 曰
:당의 번한은 고려성 회고의 시 한술르 세상에 전하니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僻 地 에 城 門 闢 하니 외진 땅 성문은 열렸는데
雲 林 에 雉 堞 長 이로다. 구름 끝 성벽은 길기도 해라.
水 明 留 晩 照 요 물 맑은 곳에 저녁빛 비치더니
沙 暗 燭 星 光 이로다. 강변이 어둡자 촛불 별빛 반짝이네
疊 鼓 連 雲 起 하고 북소리 맞춰 구름이 보이니
新 花 拂 地 粧 이로다. 새 꽃이 흙 털며 새단장하고
居 然 朝 市 變 하여 언제나처럼 아침의 거리는 밝아오건만
無 復 管 絃 鏘 이로다. 다시 들을 길 없는 관현의 소리여
荊 棘 黃 塵 裡 오. 가시밭 누런 먼지 속
蒿 蓬 古 道 傍 이로다. 옛 길 옆에는 잡초만 무성하네
輕 塵 은 埋 翡 翠 오 먼지 따위에 묻힌 비춰여
荒 隴 은 上 牛 羊 이로다. 황량한 언덕엔 소와 양만 오르지
無 奈 當 年 事 하니 어쩔거나 옛날의 일을
秋 聲 肅 鴈 行 이로다. 가을 소리 고요하니 기러기만 나르네
予 雖 不 文 이나 追 其 韻 而 次 之 하니 曰
:내 비록 운율은 따를 바 없지만 뒤를 이어 보련다.
遼 西 尙 存 古 城 墟 하니 요서엔 아직도 옛 성터가 있다네
想 必 名 邦 運 祚 長 이로다. 생각컨대 큰 나라에 왕조는 길었으리
燕 峀 層 戱 多 戰 色 이오 연나라 험한 산 싸움도 많고
遼 河 는 蕩 漾 共 天 光 이로다. 요하는 도도히 하늘 빛으로 흘러라
風 林 空 谷 演 舞 態 하고 바람숲은 빈 골짜기에 흔들리는데
仙 禽 高 樹 欲 啼 粧 이로다. 학은 높은 가지에 울어 단장하네
干 旄 關 防 一 夕 變 하여 군기와 장수는 하룻밤에 변해도
呼 賣 振 鈴 聞 凄 鏘 이로다. 장사꾼 방울소리 요란키도 해라
燕 掠 元 來 盡 我 有 요 연도 양도 본디는 우리 땅이었나니
官 兵 久 鎭 飮 馬 傍 이로다. 고구려 군사 진치고 말먹이던 곳이었지
英 雄 不 作 時 事 去 하니 영웅은 나지 않고 세상은 흘러가니
無 復 驅 敵 如 驅 羊 이로다. 다시는 양떼처럼 적을 몰지 못하고
今 我 弔 古 無 限 意 는 이제와서 끝없이 옛 일을 슬퍼하며
爲 贐 核 郞 萬 里 行 이로다. 핵랑의 만리붕정에 이별노래 부르네.
朝 代 記 에 曰 太 祖 隆 武 三 年 에 築 遼 西 十 城 하여 以 備 漢 하니
:
十 城 은 一 曰 安 市 니 在 開 平 府 東 北 七 十 里 요 二 曰 石 城 이니 在 建 安 西 五 十 里 요
:
三 曰 建 安 이니 在 安 市 南 七 十 里 요 四 曰 建 興 이니 在 灤 河 西 요
:
五 曰 遼 東 이니 在 昌 黎 西 南 境 이요 六 曰 豐 城 이니 在 安 市 西 北 一 百 里 요
:
七 曰 韓 城 이니 在 豐 城 南 二 百 里 요 八 曰 玉 田 堡 니 舊 遼 東 國 이니 在 韓 城 西 南 六 十 里 요
:
九 曰 澤 城 이니 在 遼 澤 西 南 五 十 里 요 十 曰 遼 澤 이니 在 黃 河 北 流 左 岸 이라.
:
五 年 春 正 月 에 又 築 白 岩 城 桶 道 城 하다.
:
三 韓 秘 記 에 曰 舊 志 에 云 호대 遼 西 에 有 昌 遼 縣 하니
:
唐 時 에 改 遼 州 하고 南 有 碣 石 山 而 其 下 則 白 岩 城 이니 亦 唐 時 所 謂 岩 州 가 卽 此 也 라.
:
建 安 城 在 唐 山 境 內 하고 其 西 南 이 爲 開 平 이요
:
一 云 蓋 平 이니 唐 時 에 亦 稱 蓋 州 가 是 也 라.
:
資 治 通 鑑 에 曰 玄 菟 郡 은 在 柳 城 盧 龍 之 間 이니
:
漢 書 에 馬 首 山 이 在 柳 城 西 南 이요 唐 時 築 土 城 이라하다.
:
延 佗 渤 은 卒 本 人 이니 來 往 於 南 北 曷 思 而 理 財 致 富 하여 至 累 巨 萬 이라.
:연타발은 졸본 사람이다. 남북의 갈사를 오가면서 재물을 모아 부를 이루어 거만금에 이르렀다.
陰 助 朱 蒙 하여 其 創 基 立 都 之 功 이 居 多 라.
:은밀하게 주몽을 도와 창업입도의 공을 세웠다.
後 에 率 衆 하여 轉 徙 九 黎 河 而 賈 漁 鹽 之 利 러니
:뒤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로 옮겨 고기잡이와 소금장사를 하게 되더니
及 高 朱 蒙 聖 帝 가 伐 北 沃 沮 할새 納 穀 五 千 石 하고 移 都 訥 見 而 先 自 願 納 하여
:고주몽성제가 북옥저를 칠 때에 양곡 5,000석을 바쳤다. 서울을 눌현으로 옮길 때는 앞질러 자납을 원하여
招 撫 流 亡 하여 以 勤 王 事 하니 以 功 으로 得 封 於 坐 原 이요
:유망민을 초무하고 왕사를 권하여 공을 세웠으니 좌원에 봉작을 받았다.
而 年 八 十 에 歿 하니 時 는 平 樂 十 三 年 丙 申 春 三 月 也 라.
:나이 80에 죽으니 바로 다물 34년 병인 3월이다.
高 朱 蒙 이 在 位 時 에 嘗 言 曰 若 嫡 子 琉 璃 來 면 當 封 爲 太 子 라하야늘
:고주몽은 재위할 때 일찌기 말하기를 ‘만약 적자인 유리가 오거든 마땅히 봉하여 태자로 삼을 것이다.’라고 했다.
召 西 弩 가 慮 將 不 利 於 二 子 라하여
:소서노는 장차 두 아들에게 이로울 것이 없음을 염려하였는데
歲 庚 寅 三 月 에 因 人 得 聞 浿 帶 之 地 肥 物 衆 하고
:경인년 3월에 패대의 땅이 기름지고 물자가 풍부하고 살기 좋다는 말을 사람들에게서 듣고
南 奔 至 辰 番 之 間 近 海 僻 地 하여 而 居 之 十 年 에
:남쪽으로 내려가 진 번의 사이에 이르렀다. 바다에 가까운 외진 곳으로 여기에 살기 10년 만에
買 田 置 庄 하여 致 富 累 萬 하니
;밭을 사고 장원을 두고 부를 쌓아 몇 만금이러니
遠 近 이 聞 風 하고 來 附 者 衆 이러라.
:원근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와 협력하는 자가 많았다.
南 至 帶 水 하고 東 濱 大 海 하여 半 千 里 之 土 境 이 皆 其 有 也 라.
:북쪽은 대수에 이르고 서쪽은 큰 바다에 임했다. 반천리의 땅이 모두 그의 것이었다.
遣 人 致 書 于 朱 蒙 帝 하여 願 以 內 附 어늘 帝 甚 悅 而 獎 之 하시고
: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몽제에게 올리며 섬기기를 원한다고 하니 주몽제는 몹시 기뻐하시며 이를 장려하여
冊 號 召 西 弩 하여 爲 於 瑕 羅 라.
:소서노를 어하라라고 책봉했다.
及 至 十 三 年 壬 寅 而 薨 하고
:13년 임인에 주몽제가 돌아가셨다.
太 子 沸 流 가 立 하니 四 境 이 不 附 라.
:태자 비류가 즉위하였는데 모두가 그를 따르지 않았다.
於 是 에 馬 黎 等 이 謂 溫 祚 曰 臣 聞 馬 韓 이 衰 敗 立 至 하니
:이에 마여등은 온조에게 말하기를 ‘신등이 듣기는 마한의 쇠퇴는 이미 들어난 일이요
乃 可 往 立 都 之 時 也 라. 溫 祚 曰 喏 다.
:가서 도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라고 했다. 온조가 ‘좋다’고 승락하니
乃 編 舟 渡 海 而 始 抵 馬 韓 彌 鄒 忽 하니
:곧 배를 짜서 바다를 건너 처음 마한의 미추골에 이르렀다.
行 之 四 野 에 空 無 居 人 이라.
:앞으로 나아가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텅 비어서 사람 사는 곳이 없었다.
久 而 得 到 漢 山 하여 登 負 兒 岳 而 望 可 居 之 地 할새 馬 黎 烏 干 等 十 臣 이 曰
:한참 만에 한산에 이르러서 부아악에 올라 살만한 땅을 살펴보고는 마여 오간등 열명의 신하들이 말했다.
惟 此 河 南 之 地 는 北 帶 漢 水 하고 東 據 高 岳 하고 南 開 沃 澤 하고
:‘생각컨대 이 하남의 땅은 북쪽이 한수를 끼고 동쪽은 크고 높은 산이요 남쪽은 기름진 평야가 열려 있고
西 阻 大 海 하니 此 天 險 地 利 難 得 之 勢 라.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으니 이곳은 천험의 지리를 갖추고 있어 얻기 어려운 지세이옵니다.
宜 可 都 於 此 오 更 不 可 他 求 也 라한대
:마땅히 도읍을 정할 만한 곳입니다. 여기보다 나은 곳을 찾지 마시옵소서.’
溫 祚 가 從 十 臣 議 하여 遂 定 都 于 河 南 慰 支 城 하고
:온조는 열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 하남의 위지성에 도읍을 정하고
仍 稱 百 濟 하니 以 百 濟 來 故 로 得 號 也 라.
:백제라고 칭하니 백제라는 이름은 백사람이 건너 왔다는 뜻의 이름이다.
後 에 沸 流 가 薨 하니 其 臣 民 이 以 其 地 로 歸 附 하다.
:뒤에 비류가 죽으니 그의 신하와 백성들이 그의 땅을 가지고 귀순해 왔다.
斯 盧 始 王 은 仙 桃 山 聖 母 之 子 也 라.
:사로의 시왕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昔 에 有 夫 餘 帝 室 之 女 婆 蘇 가 不 夫 而 孕 하니 爲 人 所 疑 하여
:옛날 부여제실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自 嫩 水 로 逃 至 東 沃 沮 하고 又 泛 舟 而 南 下 하여 抵 至 辰 韓 奈 乙 村 하니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렀다.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時 에 有 蘇 伐 都 利 者 하여 聞 之 하고 往 收 養 於 家 而 及 年 十 三 에
: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岐 薿 夙 成 하여 有 聖 德 이라. 於 是 에 辰 韓 六 部 가 共 尊 하여 爲 居 世 干 하니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진한 6부의 사람들이 존경하여 거세간이 되니
立 都 徐 羅 伐 하고 稱 國 辰 韓 이요 亦 曰 斯 盧 라.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으로 하고, 또한 사로라고도 하였다.
任 那 者 는 本 在 對 馬 島 西 北 界 하니 北 阻 海 하고 有 治 曰 國 尾 城 이요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경계였다. 북은 바다로 막히고 치소가 있었는데 국미성이라 한다.
東 西 에 各 有 墟 落 하여 或 貢 或 叛 이러니
:동서에 각각 마을이 있다. 어떤자는 조공하고 어떤자는 반한다.
後 에 對 馬 二 島 가 遂 爲 任 那 所 制 故 로 自 是 任 那 는 乃 對 島 全 稱 也 라.
:뒤에 대마의 두 섬은 마침내 임나가 통제하는 바가 되었다. 때문에 임나는 이 때부터 대마도를 다 뜻하는 말이 되었다.
自 古 로 仇 州 對 島 는 乃 三 韓 分 治 之 地 也 요 本 非 倭 人 世 居 地 라.
:옛부터 구주와 대마도는 곧 삼한이 나누었던 땅으로 본래 왜인들이 살던 땅이 아니었다.
任 那 가 又 分 爲 三 加 羅 하니 所 謂 加 羅 者 는 首 邑 之 稱 也 라.
:임나는 또 갈려서 삼가라가 되었다. 소위 가라는 가장 중심이 되는 읍의 이름이다.
自 是 로 三 韓 이 相 爭 하여 歲 久 不 解 하니
;이 때부터 삼한은 서로 다투고 싸워왔고 세월이 오래 되도록 적대감을 풀지 못하였다.
佐 護 加 羅 는 屬 新 羅 하고 仁 位 加 羅 는 屬 高 句 麗 하고 雞 知 加 羅 는 屬 百 濟 가 是 也 라.
:좌호가라는 신라에 속하고, 계지가라는 백제에 속함은 바로 그것을 말한다.
永 樂 十 年 에 三 加 羅 는 盡 歸 我 하니 自 是 로 海 陸 諸 倭 가 悉 統 於 任 那 하여
:영락 10년 3가라가 모두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바다와 육지의 여러 왜인들은 모두 임나에 통제되었으니,
分 治 十 國 하니 號 爲 聯 政 이나
:열나라가 나누어 통치하면서 연정이라고 했다.
然 直 轄 於 高 句 麗 하여 非 烈 帝 所 命 이면 不 得 自 專 也 니라.
:그러나 고구려에 속하여 열제의 명하는 것이 아니면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는 못했다.
阿 踰 佗 는 三 國 遺 事 에 以 爲 西 域 云 이나 而 今 考 諸 古 記 則 阿 踰 佗 는 今 暹 羅 云 하니
:아유타는 삼국유사에서 서역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옛날 여러 기록을 고찰해 보면 곧 아유타는 지금의 섬라를 말함인듯 하다.
然 則 阿 踰 佗 人 이 或 爲 大 寔 所 侵 逐 하여 到 此 而 居 歟 아.
:그렇다면 아유타의 사람들은 대식사람들 때문에 쫓기어 이곳에 이르러 살았던 것인지?
李 茗 留 記 에 云 호대 古 有 百 濟 商 하여 海 往 阿 踰 佗 하여 多 得 財 寶 而 歸 할새
:이명의 <<유기>>는 말한다.‘옛날 백제의 장사꾼이 있었는데 바다를 건너 아유타에 가서 많은 재보를벌어 돌아왔다.
其 人 이 從 我 而 來 往 하여 日 尤 交 密 也 라.
;그 곳 사람들도 백제 사람들을 따라와 내왕했던바, 날로 교제하여 친밀해졌다.
然 이나 其 俗 이 懦 不 慣 兵 하여 多 爲 人 所 制 라하니라.
:그렇지만 그 풍속은 겁이 많고 싸움엔 익숙지 않아 많은 사람에게 통제되고 제약을 받게 되었다.’
※주: 태백일사 저자의 생각에 아유타는 인도의 아요다이가 아니라 버마의 아유타였을 것이라'하는 내용이다. 지리적으로 인도보다 가까우므로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파사석탑이 인도 아요다이의 특산인 돌인 것이 판명되고 태양문장등 많은 수로왕의 유적과 북인도 옛 아유타국의 유적에 유사점이 입증되어 저자의 생각이 틀린 것으로 증명되었다.
又 曰 平 壤 에 有 乙 密 臺 하니 世 傳 乙 密 仙 人 所 建 也 라.
:또 말하기를,‘평양에 을밀대가 있는 바, 세상에선 말하기를 을밀선인이 세운 것이라 한다.
乙 密 은 安 臧 帝 時 에 選 爲 皂 衣 하고 有 功 於 國 하니 本 乙 素 之 後 也 라.
:을밀은 안장제 때 뽑히어 조의가 되고 나라에 공이 있었는데 본래 을소의 후손이다. 집
居 家 에 讀 書 習 射 하고 歌 詠 三 神 하며 納 徒 修 鍊 하고 義 勇 奉 公 하니
: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배우며 삼신을 노래하고 무리를 모아 수련하니, 그 옳음과 용기에 공으로 봉해졌다.
一 世 皂 衣 가 其 徒 三 千 이라. 所 到 雲 集 하여 齊 唱 多 勿 興 邦 之 歌 하니
:일세의 조의로서 그의 무리는 3,000이었으니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모여서 다물흥방의 노래를 제창했다.
因 此 하여 可 鼓 其 捨 身 全 義 之 風 者 라. 耳 其 歌 에 曰
:이에 의하여 그 몸을 던져서 의를 다한다는 풍속을 고취한 사람이었다.’고 하였으니. 그 노래에서 말한다.
先 去 者 爲 法 兮 여 지나간 것은 법이 되고
後 來 爲 上 이로다. 뒤에 오는 것은 위가 되네
爲 法 故 로 不 生 不 滅 이요 법이라는 것은 그래서 날 것도 사라질 것도 없으며
爲 上 故 로 無 貴 無 賤 이로다. 위라는 것은 그래서 귀할 것도 천할 것도 없지
人 中 天 地 爲 一 兮 여 사람 가운데 하늘도 땅도 하나일 뿐이고
心 與 身 卽 本 이로다. 마음은 신과 더불어 근본에 닿나니
爲 一 故 로 其 虛 其 粗 가 是 同 이요 하나이기 때문에 빈 것도 찬 것도 같은 것이며
卽 本 故 로 惟 神 惟 物 이 不 二 로다. 근본에 닿기 때문에 신이라 함이나 사물이라 함이 둘이 아닐 뿐
眞 爲 萬 善 之 極 致 兮 여 참은 온갖 착함의 극치이고
神 主 於 一 中 이로다. 신은 참나를 주관한다네
極 致 故 로 三 眞 歸 一 이요 극치이기 때문에 세가지 참은 하나로 돌아오고
一 中 故 로 一 神 卽 三 이로다. 참하나이기 때문에 일신은 곧 셋이라
天 上 天 下 에 惟 我 自 存 兮 여 하늘 위 하늘 아래 다만 내가 스스로 있음이여
多 勿 其 興 邦 이로다. 다물은 나라를 일으킴이라
自 存 故 로 處 無 爲 之 事 오 스스로 있기 때문에 티 없이 일을 하고
興 邦 故 로 行 不 言 之 敎 로다. 나라를 일으켰기 때문에 말없이 가르침을 행하였지
眞 命 之 大 生 이 性 通 光 明 兮 여 참천명의 큼이여, 성품을 낳아 공명에 통하네
入 則 孝 出 則 忠 이로다.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서면 충성함이라
光 明 故 로 衆 善 無 不 奉 行 이오 광명은 그래서 모든 선을 행하지 않음이 없고
孝 忠 故 로 諸 惡 一 切 莫 作 이로다. 효와 충은 그래서 모든 악은 일체 짓지 않나니
惟 民 之 所 義 는 乃 國 爲 重 兮 여 백성의 옳은 바는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無 國 我 何 生 고 나라없이 나라는 건 어떻게 생겼을 것인가
國 重 故 로 民 有 物 而 爲 福 이오 나라가 소중하기 때문에 백성은 사물이 있어 복을 누리고
我 生 故 로 國 有 魂 而 爲 德 이로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엔 혼이 있어 덕을 누린다네
魂 之 有 生 有 覺 有 靈 兮 여 혼의 생을 낳고 각을 낳고 영을 낳음이여
一 神 攸 居 之 爲 天 宮 이로다. 일신의 그윽한 거처는 천궁이 되네
三 魂 故 로 智 生 을 可 以 雙 修 오 삼혼은 그래서 지혜와 생을 함께 닦을 수 있고
一 神 故 로 形 魂 을 亦 得 俱 衍 이로다. 일신은 그래서 모습과 혼을 함께 이루는 것이라
俾 我 子 孫 으로 善 爲 邦 兮 여 우리들 자손 착하게 나라를 이룸이여
太 白 敎 訓 이 吾 所 師 로다. 태백의 가르침은 우리의 스승일세
我 子 孫 故 로 統 無 不 均 이요 우리들 자손들은 그래서 그래서 다 평등하고
吾 所 師 故 로 敎 無 不 新 이로다. 우리들의 스승은 그래서 가르침마다 새로워라
乙 密 仙 人 이 嘗 居 臺 하여 專 以 祭 天 修 鍊 으로 爲 務 하니
:을밀선인은 일찌기 대에 살면서 하늘에 제사올리고 수련함을 임무로 삼았다.
盖 仙 人 修 鍊 之 法 이 參 佺 爲 戒 하고 健 名 相 榮 하여
:대개 선인의 수련법은 참전으로 계를 삼아 스스로를 굳세게 하고 영광되게 한다.
空 我 存 物 이 捨 身 全 義 하여 爲 國 人 式 하니
:나를 비워 사물이 있게하고 몸을 버려 옳음을 지켜서 나라 사람들의 사표가 됨이니,
風 仰 千 秋 에 足 以 起 感 이요
:천추에 우러러 감흥을 일으킬 만한 것이다.
亦 爲 人 尊 之 象 徵 也 라. 後 人 이 稱 其 臺 曰 乙 密 이라하니 乃 錦 繡 江 山 之 一 勝 也 로다.
:역시 사람들의 존경하는 상징이 되었으니, 후세 사람들은 그 대를 칭하여 을밀이라 했으며, 바로 금수강산의 빼어난 곳의 하나이다.
- 고구려국 본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