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南村先生 詩書

설악산 등산 후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8. 10. 20. 22:13

2008년 10월 19일

 

예상은 했었다!

오늘 각 매스컴에서 설악산 단풍 요번 주가 절정이라고 하도 떠들기에 ... ...

설악산이 복잡하리라 짐작은 했지만

05:00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챙겨 창동역에 오니 6시10분

6명 정도 타고서 06:30분에 서둘러 떠나 07:00정각에 

사당역에 당도 하니 우선 사당역 모든 도로가 관광버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겨우 비집고 버스를 세우니 회원들이 속속 승차 한다, 아주 성적이 좋다.

혹시 나 떼어 놓고 가지 않을까?

눈치를 씰금 씰금 보면서 서둘러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이 보인다.

1-2명은 자리에 않지도 못하고 떠난다. 이제 우리 유림산악회도 버스 두 대 의 시대가

목전에 박두 한 것 같다. 즐거운 일이다. 팔당 호수 주변을 갈 때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시야가 흐리지만 별다른 지장 없이 달리고 달려 한계령을 넘을 때는 수많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길가 양옆 절개지에 담배풀이 큼직한 잎을 자랑 하며

꽃을 피우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그 담배농사를 지어 돈을 만졌다 정부에서 담배씨를

받아다가 모종을 하고 한철 열심히 키워서 누렇게 단풍이 들면 동네 건조대에서 찌고

 

뒷산에 철사를 매고 널어서 말리고 물을 뿌리면서 단을 묶어서 담배 감정하여 1.2.3등급을

매긴다. 이렇게 담배 감정을 해서 돈을 받으면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 큰돈을 만져  보았다.

그 담배 농사 하면 잊지못할 추억이 있다.

그때 버더리 동우네 집으로 기억된다. 그날 어른들은 제사 지내러 가시고

동네 아이들만 한 방에 모였는데 별별 작란을 다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 놀다가

책상서랍 속에 담배 감정하여 받은 돈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빳빳한 지폐가 몇 다발 되었다

여름 내내 보리밥 먹으며 피땀 흘려 농사지은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기가막한 돈이 건만

어린 철부지 악동들에게는 돈이 사탕으로 보였다 버더리 같은 깡촌에 가계가 있을리 없지만

집에다가 화장품이며 사탕이며 과자들을 받아다 놓고 파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아는 꼬맹이 들이

그 돈의 단위나 가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한 장씩 빼어다가 사탕이며 과자를 사다가 먹었다

밤 1- 2시까지 어른들이 돌아올 때까지 4-5번이나 사다가 먹고 모두 비밀을

약속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이튼 날 아침에 동네가 떠들썩해지더니 온 동네

아이들이 속속 불려 왔고 문초가 시작 됐고 결국은 집집마다 부모에게 끌려 가

매 맞는 소리 아이들이 울며 도망치거나 초죽음이 되어 비는 소리로

온 동네가 한바탕 난리를 쳤다. 동네 어른들의 결론이 어떻게 낳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도 지게작대기로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매를 맞은 기억이 있다.    

 

지난 추억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버스가 한계령을 넘어가는데

뾰족뾰족 절묘한 봉우리들이 오색 창연한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버스 창가로

수없이 미끄러진다. 그냥 보내기 하 애달파서  똒닥이 핸드폰 카메라로 샷터를 눌러 본다.

 

전국의 인파가 설악으로 설악산으로 구름처럼 몰려왔다. 수수십만

등산로 이름은 흘림 골 - 차타고 가다가 한계령에서 한계를 느껴 흘림 골에 수만 명의

인파를 흘려 놓았다. 그리고 흘림 골 골짜기로 흘러넘쳐 사람바다를 이루었다.

필자도 설악산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런 인파는 처음 보았다.

 

그 거대한 설악산 골짜기  해 까닥 놀라 자빠져 있고 재채기만 해도 떨어질 것

같이 아슬 아슬 올라 앉아 있는 거대한 바위들이 근심어린 얼굴로 수십만 인파를

내려다보고 길가 단풍들도 사람바다가 내품는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 콜록거리고

골자기의 물은 오래전에 말라버려 먼지가 폴폴 난다.

 

저 기암절벽 바위들에는 응당 검푸른 이끼가 있어야 하건만 인간들이 내 품은 공해가

산성비 되어 내리니 그 이끼들은 흔적도 없이 죽어 사라진지 수 십 년

설악산 모든 기암들이 뼈를 앙상하게 들여 내고 마른기침 가쁜 숨을 토해낸다.

자세히 보면 단풍들이 아름답게 물들기도 전에 바스락 바스락 말라비틀어지고 있는

모습에 그대 단풍을 보려고 천리 먼 길 달려온 나그네의 가슴에 한숨이 피어난다.

등산로 철제 사다리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매달린 군상들 앞으로 갈 수도 돌아 갈수도 없이

다만 흘러 넘쳐서 밀려 갈뿐이다.

그러다가 조금 험한 곳을 만나면 1시간 이상씩

기다림의 연속이다. 서울의 무교동이나 명동을 옴 겨  놓은 것 같다.

에메랄드 빛 창공 아래 맑은 공기마시며 호젓한 골자기를 한가하게 거닐고 싶던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 신경질과 울화가 치미는가 보다

  그 깊은 설악산 산골짝에서

새치기 하지 말라 고함소리 욕설이 오가고 주먹다짐까지 하면서 하루 종일 산을 괴롭힌다.

결국 2시간 정도의 등산코스가 6시간이나 걸려 저녁 5시가 되어서야 관광버스가 있는

오색 약수터에 모일수가 있었고 임원진들이 이렇게 힘든 와중에서도 찌개를 끓이는

정성으로 버스 옆에서 소주 한잔 기우릴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고맙다.

6시가 되자 금시 캄캄해지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대부분 잠이 든다.

사실 다른 때보다 걸어온 거리가 짧았는데도 사람에 시달려 더욱 피곤하다.

사당에서 차가 끊어져 한성대까지만 가서 몇 차려 차를 갈아타고  수유리 집에 들어가니

새벽 한시가 넘었다. 해가 거듭 할수록 설악산 골자기 인파는 더욱 늘어날 것을 생각하니

설악 산신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이름난 명산을 찾을 때는 반드시 평일에나

가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