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南村先生 詩書

가야산 등반 후기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9. 4. 25. 01:15

가야산 등반 후기

                  南村 서 호원


오후 4시만 되면 돌아오는 은행 빚

하루에도 수백기업 수천공장  부도 소리에 지구촌이 식은땀을 흘린다.

아! 이 처절한 불경기 속에서도 봄은 오는가?


그래도 봄은 천지와의 약속을 지킨다.

도심 아파트 콘크리트 틈새에도 봄이 찾아와

노란 민들레 한 송이 앙증맞게 피워내고

시멘트 사이로 어렵게 자라난 라일락 나무

서러움의 눈물 그  꽃 향기로

냉정한 도심을 흐드러지게 애무한다.

가슴 시린 도시가 봄에 취해 눈물 배인 얼굴이 배시시 웃는다,


유림향우회도 내 고향사람들의 절절한 약속이다,

2009년 4월19일 07:00 사당동에서 부르는 소리 어김이 없다,

나중에 신청한 몇 사람은 참석을 거절 했다는데도

40석의 자리가 빼곡히 들어차고도 몇 사람이 자리없이 서성인다. 버스 정원이 넘친다.

그래서 버스는 한명이라도 더 올세라 두려워하며 즉시 떠난다,

이제는 버스2대를 고려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즐거운 비명이다.

 

이산 저산 산 벗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서 꽃 대궐이다.

그 사이로 길게 깔린 고속도로위를 거침없이 달린다.

내 고향 유림사람들은 賞春客이 되어 옛 추억 더듬는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화장산 원경>

베름바구 모퉁이 그 무덤가에 피어있던 빨간 백일홍 이야기/

버더리 뒷동산 묘지 잔디밭에 소 매어놓고/ 할미꽃 따서 머리에 꽃고 골짜기 도랑에서

된장 풀어 가재잡고 진가에 뒷산에서 다복솔아래 찰갈비 나무하던 이야기

/버더리 아이들(1947년생들) 가재잡으러 갔다가 대포알을 주어다가

또래 아이들 10여명이 모여 앉아 뚜드리다가

터져서 죽고 다친 이야기 등등 한도 끝도 없다.

버스가 경부고속을 타는가 싶더니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거쳐

협천 가야산 까지 3-4시간을 가는데 창밖을 스치는 꽃 대궐 봄 경치

취하고 소꼽친구/죽마고우 에게 취하여 지루한 줄 모른다.


11시 30분 가야산자락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남쪽의 화창한 봄기운은

애시 당초 웃도리를 벗어 배낭에 걸치고 산을 탄다.

가야는 신라에게 망한 나라이다 그 마지막 왕이 우리들의 고향 화개 왕산에 묻혀 있다

가야를 신라에게 바쳤다 하여 부하의 칼에 목이 짤려 대굴 대굴 굴러가다가

멈춘 자리에 묻어준 것이 왕산이라고 누군가가 설명을 한다.

가야산은 그 가야 사람들의 원한이 긷든 산이다.

 

산이 크지는 않는데 매우 가파르다. 소나무 보다는 잡목이 욱어져 있고

그 나무 아래 키가 작은 山竹나무가 가는 곳 마다 욱어져 있어 참으로 아름답다,

동양화를 즐기는 필자는 대나무만 보면 마치 君子를 만난 듯 경외감을 갖는다.

저 가냘픈 시누대 山竹나무가 당뇨병 특효약인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학서적에 보면 산대나무를 달여 놓고 물대신 마시면 혈관 속에 노폐물을 씻어내고

오즘을 잘 나오게 하여 당뇨를 낳게 한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농촌에 다니며 산죽을 베어다 응달에 말리게 하여

아주 헐값에 사다가 그 삶은 물을 농축하여 작은 병에 담아 당뇨병 치료제로

수 십 만원씩 받고 한국에 도로 수출 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아직 4월인데도 여름 날씨 같이 더워서 헉헉 대면서 산을 오르니 모두가 힘들어 한다.

좋은 카메라를 울러 메고 와서  우리들의 사진을 담당 하는

골프장의 전문기자 서봉원씨가 베령개는 왜 베렝개냐고 묻는다.

베링개 사람이 답한다.

봄이 되면 진달래 철죽 으로 꽃 단장을 하는 花粧山(화장산) 아래

꽃 대궐 마을이 花村이다 지금은 동네 뒤에 저수지가 있어 해마다 농사가 풍년이지만

옛날에는 저수지가 없어 하늘만 처다 보는 천수 답 뿐이라서

가뭄이 심한 해에는 농사를 망치는 해가 많았다 한다.

농사 망치는 해는 베렝개라 하고 농사가 잘 된 해는 화촌 이라 했다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향이야기에 취하여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중봉을 지나 상봉에 이르렀다.

상봉은 바위로 된 더욱 험준한 산이다. 가야산은 長年山이다.

아직도 힘차게 솟구치는 중이어서 흙은 아래로 흘러내리고

산속의 바위가 불뚝 불거져 나와 1430고지의 험준한 바위정상을 이루고

칠불봉과 상왕봉이 소의 두 뿔을 연상켜 한다.

철 사다리를 설치 해두지 않았다면 함부로 오르지 못할 산이었다.

북쪽으로는 성주군 가천면이고 남쪽으로는 경남 협천군 가야면이고

동쪽으로는 경남 수륜면 백운리요 서쪽으로는 거창군이 자리하여

이 가야산 준령을 따라 경계를 맞대고 있다.

가야산은 정상이 절경이다. 깎아지른 듯 기암절벽과 그 절벽 틈틈이

만고풍상을 겪으며 자라고 있는 노송의 자태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비록 한발 한발 오를 때 마다 다리가 천근만근이 되어 철다리 난간에

매달리면 사정을 하면서도 주변에 펼쳐지는 절경에 피로감이 말끔히 씻어진다.


오후 2시가 넘어 상왕봉 정상에서 먹는 점심을 꿀맛이요

힘들게 짊어지고 올라온 음식과 술로

아리까리! 깔랑꿀꺽! 아리까리! 깔랑꿀꺽!

얼얼할 때 까지 마시고 나니 쌓인 피로가 눈 녹 듯 풀린다.

너무 가파른 산행길이다 보니 후미와 선두는 1시간씩이나 차이가 심했고

정 재삼 등반 대장은 대원들을 챙기느라 진땀을 뺀다. 모든 대원들이

식사를 완전히 끝내고 모두 출발 한 후에야 겨우 후미가 도착했다.


내려오는 길에 나이가 70줄에 든 선배들 중에는 다리가 경직되고

쥐가 나서 잘 걷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을 보면 이번 등산길은

매우 힘들고 버거운 산행 이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모두 즐겁다.

하산을 하고 보니 해인사 경내로 들어선다.

과연 海東 第一 道場이라 명명 할 만 하다. 우선 그 규모 면에서 대단하다.

海印寺의 海印은  중생 구원을 상징한다. 天地가 開闢(개벽) 될 때

변산의 海王 도수를 붙인 조화의 도장을 海印이라 하는 것이며 그 도장으로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의 이마에 印을 쳐서 살리는데

그 도장을 받을 자리를 印堂이라 한다.

그러나 중생들은 얼굴 관상에서 도장印자를 놓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해인사에는 海印이 없다.

또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 대저 팔만대장경은 어떤 글인가?

8만 4000가지의 법문이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84.000가지 상황윤리이다.

그러나 그 팔만대장경을 읽고 지키려는 이가 별로 없다.

다만 부처님께 돈을 내고 복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자만 부지기수이다.

대저 복을 돈으로 살수 있다고 보는가?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데서 복도 받고 고통 속에서 해탈도 할 수 있건만

사람이 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는가? 그래서

부처님도 열반에 들기 직 전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신다.

입으로 떠들지 말고 너 자신을 찾으라는 가르침이다. 口頭禪

수행을 배울 때 제일 먼저 듣는 말 氣虛卽 受物이요 心虛卽 受道라

그릇을 비웠을 때 물질을 받을 수 있듯이 마음을 비워야 도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의식을 비우면 잊고 살았던 잠재의식이 떠올라 모든 걸다 알게 되고

그 잠재의식도 버리면 무의식이 떠올라 전생의 윤회과정을 모두 알게 되고

그 무의식도 버리면 천지 만유가 공유하여 하나로 녹아있는 일심자리에들게 되는 것이다. 억조중생의 마음기록이 아카샤기록 - 우주 어디에도 다 통하는 절대 진리의 자리다.

그것을 불가에서는 見性成佛이라 한다.

자기의 본래자리요 하나님의 마음자리요 상제님의 마음자리요

미륵부처님의 마음자리이니 그 자리에 들어가면

全知라 모르는 것이 없고 全能이라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경지다.

이곳에서 수행을 하셨던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하셨다.  <성철 사리탑>

그 마음자리를 가보지 못한 자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그 경지에 가 본 자도 역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말은 산을 알고 오르는 자와 모르고 오르는 자의 차이다.

 

등산코스를 알면 난코스도 즐길 수 있지만 등산 코스를 모르는 자는 다만 고통일 뿐이다.

眞理를 알고 인생을 사는 자는 인생을 즐기며 경영하여 운명을 개척하지만

진리를 모르고 사는 자는 만사가 고통이요 원망하며 운명에 끌러다닌다.

그래서 스승을 정하여 진리를 배우며 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깊은 생각에 잠기어 해인사의 경전을 돌아보고 내려오니 숲속에서

먼저 내려온 향우들이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얼큰한 돼지고기찌개

권 커니 잦 커니 술 몇 잔 나누고 버스에 오르니 벌서 6시가 넘었다.

 

해인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더욱 절경이다. 100살 먹은 아람 들이

소나무가 개울을 따라 울창하고 그 소나무 숲 뒤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려 쳐

떠나는 나그네를 10여리나 따라 나와  배웅을 한다.

아! 친절한 대 자연이여 오늘 여기 오기를 참 잘 했다


인생은 산을 오르며 권세를 얻고 물길을 따라 녹 줄을 챙긴다.

한 쪽 다리는 현실을 밟고 또 한쪽 다리는 理想(이상)을 밟는다.

현실과 이상이 너무 멀면 가랑이가 찢어지고

現實에만 치우치면 각박하여 슬퍼지고

理想에 치우 치면 돈이 없어 배가 고프다.

그러나 이 모든 인생 살이가 참 나를 찾아가는 산행이다

평생 머리  깎고 수행하는 저 노승도 또한 나를 찾아 떠나는 사람이다.


우리 유림 산악회가 매달 다른 산을 오르지만 결국 향수를 달래는 일이고

잃었던 죽마고우를 찾고 그 죽마고우와 산을 오르며 아련한 추억의 이삭을 줍는다.

그 추억의 이삭이 살아온 내 인생의 조각이요

그 조각 모음이 참 나이다.

 긴 세월 가물 가물 사라져 가는 나를 찾아서 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 힘든 작업에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찌든 현실에다가 낭만과 여유라는 지랫대를 끼워 넣는 것이다.

삶에 낭만과 여유가 보태지면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더 이상

찌들지 않고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낭만과 여유는 힘이요 지랫대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 하는 아주 강력한 힘이 되고 내 뒤에 지원군이

있다는 자신감이 되는 것이다. 

여유와 낭만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서 소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가리라 하는 사람은 평생 못 간다.

 

시간을 내서 가야 한다. 행복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행복을 찾아 힘들여 만든 행복만이 짜릿한 성취감과 만족감이 동반된

진정한 행복인 것이다.

 

우리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헤어지는 아쉬움을 술과 노래와 춤으로 달래면서

서울에 도착 한 것은 밤 11시가 넘었다.

이번에도 아낌없이 봉사 하신 등반대장과 임원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가야산 등반후기  -- 南村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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