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제 후기
----------------------------------------------南村 서호원
2009년 3월 15일 10:00
사당역7번 출구 앞에 모인 유림사람들!
어제는 영하의 매서운 꽃샘주위라서 오늘 시산제가 잘 될지 걱정 했지만
기우였다. 바람은 좀 불어도 기온은 영상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등반대장님의 가족들이 동원 되고 배현옥/노미숙/서원숙/노호임등
부지런한 임원들이 정성껏 준비하여 나누어 주는 커피는 향우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뜨거운 여성들의 가슴처럼 따뜻하고 달콤하고 구수하였다.
오랫만에 보이는 향우들도 많아서 그간의 안부들을 묻느라 왁지지껄하다.
집에서는 별로 사투리를 안 쓰다가도 향우회만 오면 유독 심하다. 우리들이 들으면
향수(鄕愁)에 젖을 말들이지만 경상도의 투박한 사투리가 소란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싸움난줄 알겠다.
10:30 산행이 시작 되었다.
관악산은 火山이다. 산행 거리는 짧아도 대단한 경사이다.
30여분 올라가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봄 바람에 공해가 날라가 시내 전체가
아주 잘 보여서 서울의 풍수지리가 환하게 드러난다.
이곳 관악산에서 강한 화기(火氣)를 서울의 혈자리 경복궁으로 보내고 있다.
너무 강렬한 관악산 火氣를 눌러주기 위해 남대문의 현판을 세워 달았다한다.
그리고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앞에 깊은 바다속에 산다는 해태를 돌로 깎아 세웠다.
남대문이 관악산의 화기를 주체할 길이 없어 스스로 자기 몸을 태워 혈자리 경복궁을 지켜 낸다.
유교에서 가르침의 골간 仁義禮智(인의예지) 四端(사단)을 동서남북에 배치 하였다.
유교를 숭상 했던 조선은 도읍지 서울의 4대문을 유고가르침대로 이름지어 불렀다.
남대문을 崇禮門/동대문은 興仁之門/서대문을 敦義門/북대문은 弘智門 이라고 했다.
서울의 風水地理(풍수지리-風藏得水)를 아는데까지만 설명 해 보면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출발한 백두대간은 먼 길을 달려와
의정부를 거쳐 도봉산->삼각산->인왕산->연대 뒷산에서 끝났다.
산은 북에서 남으로 내달렸는데 물은 거꾸로 흐른다.
물은 연대뒷산(지금의 봉원사 절 뒤)에서 시작되어 서소문-> 청개천->서울을 가로질러
왕십리로 흘러들어 갔다. 한강과는 반대로 흐르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럽다.
山이 權(권세)이라면 물은 녹(祿-돈)줄이다.
산은 혈자리를 좌우로 감싸서 바람을 갊아 혈 자리를 감싸 주어야 하고
물은 逆(역)으로 흘러 들어와야 녹이 진진해진다. 서울에 한강과는 거꾸로 흐르는
청계천이 500년 도읍의 녹줄이 되었다. 그래서 福祿(복록)의 물줄기 청계천을 따라
商街가 크게 형성 되었다 이조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전국에서 쓰는
전자제품/의류/기계/공구/건축자재들이 청계천 상가에서 풀려 나갔다.
청계천을 덮어서 썩은 물이 흐를 때는 서울의 경제도 검은돈이 주장을 하였고
그 덮었던 것을 뜯어내고 청계천물을 깨끗하게 했을 때를 전후로
경제자금도 실명제가 되어 깨끗해진 것을 볼 수 있다.
물은 이와 같이 역하면 재산이 되지만 산이 역하면 반역을 한다.
남산은 목멱산이고 경복궁에 임금이 앉아 있으면 목멱산 남산은 책을 올려놓는
책상 安山역할이다. 동작대는 공작이 임금님 앞에 엎드려 문안을 올리는 형국이니
그곳에 국가를 위하여 충성을 바친 사람들을 모신 현충원이 자리 잡는 것이고
남산에서 한줄기 흘어 나온 용산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반역을 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일제 때는 용산에 일본헌병대가 주둔하여 이 나라 조정을 짓밟았다.
그리고 해방 후에 미8군이 주둔하여 이 나라 정부를 쥐고 흔들었고
그 후에 국방부 건물이 들어와 5.16 군사정권이 계속 되다가
그 옛날 대전에 도읍지를 하려다가 취소가 되어 한을 품고 있던 신도안을 解寃(해원) 시키느라고
국방부가 대전으로 옴겨 가는 싯점을 전후로 혈자리 청와대에는 문민정부로 바뀐다.
이로서 신도안을 해원 시키면서 반역의 용산 운수가 소진 되었던 것이다.
이는 절대로 필자가 지어 낸 것이 아니다.
천지에는 그런 이치가 본래부터 존재 하고 있음을 피력했을 뿐이다.
12:00 험한 관악산을 넘어서 작년에 시산제를 지낸 장소에 도착 했다.
옥황상제님/서울 기지신/관악 산신의 지위룰 모시고
모필로 직접 쓴 축문을 읽었다. 축문은 산행 중의 무시고와
어려운 경제위기 속을 잘 혜치고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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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
歲次 檀紀 四三四二年 己丑 二月 辛丑朔 十九日 己未
柳林 鄕友會 登攀隊長 00 生 鄭 在三
伏以微誠 頓首百拜 盥手焚香 跪告于
今定 柳林 鄕友會 登攀隊 己丑年 始山祭
告祀致誠 之日 하야
玉皇上帝 下鑑之位와
서울 首都大 基地神 之位와
冠岳山 山神 之位 前에
謹以 酒果로 略設 恭獻하고 伏惟
吾道之 柳林 鄕友會 登攀隊 全員이
山行 安全 規則 遵守하야
山行 無 事故 健勝 至心祈願하옵고
又 諸 生計 事業 大成 하야
諸 家政經濟 豐登하야 家族和睦을 謹奏
玉皇上帝 榻下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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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임원진들의 헌작과 다른 산악회에서 오신 임원진들의
헌작을 하고 모든 뜻있는 향우들의 헌작을 모두 받았다.
모든 시산제 절차가 끝나고 이어서 팔각정에서 음복을 하였다.
어릴 때 산에 갔다가 묘사지내는 분들을 만나면 묘옆에서 기다리다가 떡이며 돼지고기를
얻어 먹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참으로 배 곺은 시절이니 그 음식이 꿀 맛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산이나 논두렁에서 먹는 음식은 정말 맛이 좋다.
음식 맛을 내는 3대요소가 있다. 시장이 반찬이요/ 따뜻함이 반찬이요/여럿이 함께 먹는것이
반찬이다. 오늘은 그 삼대 요소는 물론이요 대 자연의 정취까지 겯들여 지고 그리운 고향의
죽마고우들까지 함께 했으니 오죽했으면 여북했겠나? 준비한 음식들이 순식간에 게 눈감추듯 한다.
그럴듯한 바위를 골라 모여앉아 골프협회 전문기자 서봉원 향우가 찍어주는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을 하였다.내려오니 함양군향우회 회장님과 유림면 향우회 정재규 회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며 인사말씀을 할 때는 산악회의 안전과 친목을 기원 하며 건배제의를 하고 모두 잔을
들어 건배를 임차게 외친다.
다시 헤어져야 함이 아쉬워 열심히 술잔을 부딯치는 동안
모두가 얼굴이 벌겋게 취기가 돌 때쯤 삼삼 오오 혜어져 갔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은
사람들은 3층 노래방에서 유림 등반대 회장의 배꽆잡는 사회로 한 곡조씩 뽑으면서
요즘 불경기로 얼어붙은 가슴들을 훌훌 떨어 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 갔다.
이번 시산제에는 약 60여명 이상이 참여 하였다. .
갈수록 참여 인원이 늘어 가는것이 너무도 기쁘다.
아직도 참여 하지 못하는 향우들이 이 글을 읽고 더욱 많은 분들이 참여 하시기 바라며
참여하고 있는 향우님들이 서로 연락 하여 서로 참여켜 하여
다음 산행에는 3대 4대의 버스가 떠나게 되기를 바라며
이번에도 아낌없이 봉사 해 주신 유림 등반대장을 비릇하여
여려 인원진들에게 모든 향우들을 대표하여 감사 드리는 바이며
특히 구술 땀을 흘리면서 제물을 짊어지고 가파른 관악산을 기어 올라 갔던 향우님들에게
큰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서 후기글을 마칩니다.
--남촌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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