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제 후기
관악산은 火山이다.
그 火氣를 눌러주기 위해 남대문의 현판을 세워 달았다한다.
그리고 경복궁 광화문에 바다 깊은 곳에 산다는 해태를 돌로
깎아 세웠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먼 길을 달려와
의정부를 거쳐 도봉산->삼각산->인왕산->연대 뒷산->용산에서 끝났다.
산은 북에서 남으로 내달렸는데 물은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흐른다.
연대뒷산(지금의 봉원사 절)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서소문-> 청개천->
왕십리->한강으로 흘러들어 갔다. 山이 權이라면 물은 녹(祿)줄이다.
산은 뒤에서 앞으로 나가 바람을 갊아 혈 자리를 감싸 주어야 하고
물은 역으로 흘러 들어와야 녹이 진지해진다. 서울에 한강과는 거꾸로 흐르는
청계천이 500년 도읍의 녹줄 이다. 그래서 물줄기 청계천을 따라
상가가 크게 형성 되어 있고 전국에 쓰는 전자제품/의류/기계/공구/건축자재들이
청계천에서 풀려 나갔다. 청계천을 덮어 썩은 물이 흐를 때는 서울의 경제도 검은돈이
주장을 하였고 이후 그 덮었던 것을 뜯어내고 청계천물을 깨끗하게 했을 때
경제도 실명제가 되고 자금도 깨끗해진 것을 볼 수 있다.
또 남산은 목멱산이고 경복궁에 임금이 앉아 있으면 남산은 책을 올려놓는
책상의 역할이다. 동작대는 임금님 앞에 엎드려 문안을 올리는 형국이니
그곳에 국가를 위하여 충성을 바친 사람들을 모신 현충원이 자리 잡는 것이고
용산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반기를 드는 형국이니 일제 때는 일본헌병대가 있어
이 나라 조정을 짓밟았다. 그리고 해방 후에 미8군이 주둔하여 이 나라 조정을
쥐고 흔들었고 그 후에 국방부 건물이 들어와 5.16 군부정권이 계속 되다가
대전에 도읍지를 하려다가 취소가 되어 한을 품고 있는 신도안으로 국방부가
옴겨 가면서 문민정부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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