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의 글밭 - 詩.書.畵/南村先生 詩書

죽음의 문턱에 서서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9. 6. 25. 23:06

음주운전 인도 돌진…3명 사망
 

*죽음의 문턱에 서서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7일 오전 10시20분께 서울 도봉2동 북부농협 사거리에서

유흥업소 종업원 A(36) 씨가 몰던 스펙트라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

행인들을 친 뒤 농협 건물 정문을 들이받고 멈춰섰다.
이 사고로 박모(59.여) 씨 등 행인 18명이 부상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 중 박 씨를 비롯한 3명은 치료 도중 숨졌다.
경찰은 A 씨가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직장 동료와 술을 마신 뒤

혈중 알코올 농도 0.193%의 만취 상태로

차를 몬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도봉경찰서는 A 씨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서

                                                                                            南村  서 호원

2008년 6월 7일 10:15

재경함양군 산악회에서 도봉산 등산을 가기위해 모인 곳은 도봉역

건너편 농협 앞이었다. 차도에서 인도를 지나서도 쑥 들어간 농협 앞

공터는 안전하고 넓었으며 함양군 산악회 10주년기념이라서 더욱 많은

사람이 모인 축제분위기다. 더러는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동창들끼리

사진도 찍어 주며 그간의 근황을 반갑게 나누고 있었다.

필자는 유림 향우회 소속회원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 오른 쪽 옆에 하 영재향우 내 앞에 정 재삼 대장 그리고 왼쪽에

정 재윤 향우 그리고 노 미숙 향우 형 춘정향우 노 호임 향우등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약 200여명의 향우들이 모였고

모든 접수를 마친 향우들이 질서 있게 출발을 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엄청난 속력으로 돌진한 그 무엇에 강하게 부닥치는 느낌과 함께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하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고막을 찢는 듯 들리는 여성들의 울부짖는 소리 남자들의 고함소리에

눈을 떳다. 내 몸은 차 밑에 있고 눈앞에 아주 가까이 차의 앞쪽

범퍼가 보였다.

그리고 가슴이 몹시 아프고 숨이 멈추어 있다. 왼쪽 다리. 어깨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숨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고 있다.

순간 이 숨을 되돌려 놓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숨을 쉬려고

무진 애를 썼다. 다시 정신이 가물가물 해져 갈 때 겨우 첫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어 숨 한번 쉬기가 무척

힙 들었다. 누군가 달려들어 차를 들어 올리고 차에 깔린 사람들을

끌어내는가 싶다. 나와 함께 3-4명이 깔려 있는 듯싶다.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 차 밑에서 끌어내다가 누군가 그대로 두라고 외치니

그대로 두었다. 이때 비로소 상황이 정리 되어 졌다.

 

<돌진해 온 승용차에 치어 신음하는 향우를 돌보는 장면과 뒤로 앰블런스가 보인다.>

 

이 군중 속으로 차량이 뛰어 들었고 나는 차의 정면에 서 있다가

주저앉으며 앞쪽 범퍼에 가슴을 심하게 부닥치고 콘크리트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그 위로 차가 덮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바로 내 옆에 있던 하 영재향우와 정 재삼대장이 바퀴에

깔린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낭자한 가운데

잠시 시간이 흐르고 사진 찍는 소리와 싸이련소리. 엠블런스 소리

119구급대들의 구두 발굽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면서 구조대원들이

내 귀에다 대고 무어라고 소리를 지른다. 발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어디가 아프세요? 나는 왼쪽을 가리켰다. 부목을 대고 들 것에 싣고

들고가 엠블런스에 실리었다. 여전히 숨쉬기가 어려워 하니 황급히

산소마스크를 씌운다. 계속해서 전화번호를 묻거나 무어라 계속 말을

시킨다. 환자가 의식을 놓을까 염려 하여 그리 하는 것 같다.

을지병원 응급실 구급차에서 내려졌다. 근심스런 내 마음처럼

하늘에도 먹장구름이 가득하고 굵은 빗줄기를 얼굴위로 툭툭 뿌린다.

일요일아침에 갑자기 들이 닥친 환자들로 을지병원 응급실은 갑자기

부산하다. 환자들의 신음 소리 휴식중인 의사들을 호출하는 소리

다행이 화를 입지 않은 향우들이 환자들을 챙기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환자들의 소지품을 챙기느라 혼란하다.

 

얼마 후 나의

동생이 오고 이어서 아내가 달려와 내 몸을 살피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본다. 누군가 괴로운 신음 속에 구토를 심하게 한다.

사고 직전에 나와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던 정재삼 등반대장이라 한다.

얼굴이 함몰되고 뇌출혈도 있다고 한다.

우리 향우회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봉사한 사람인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들의 대장이고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다. 안타깝다.

우리들은 차례로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하영재 향우가 늑골이

부려졌다고 한다. 얼마 후 나의 순서가 되어 엑스레이 촬영이

실시되고 혈액검사가 진행 되는 동안 나는 줄 곳 호흡이 곤란하여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 나의 검사결과를 보고 온 가족들이

나는 다행히 심한 타박상일 뿐 뼈가 상한 곳은 없다고 한다.

본인이나 가족들은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하게 됐다.

 

닝겔을 꼽고 진통제를 놓아주고 보호자를 불러 검사 필름을 보여주고

퇴원을 하라고 명령 한다. 을지 병원이 일요일이라 의사도 병실도

모자라는 것 같다. 집 가까운 곳 수유리 대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수속을 밟는 동안 하 영재 향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었다.

사고난지 3시간여 지난 후에 들리는 충격적인 슬픈 소식이다.

 

즉시 수술을 했다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못내

떨칠 수가 없었다. 이번 사고로 벌써 3명의 고귀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다. 함양군 향우회 간부님들과 유림 향우회 간부들이 차례로 달려와

내손을 잡고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분들은 언제나 고생이 많다.

고마운 분들이다. 아직 혼란스런 을지병원을 떠나 

아직 움직일 수 없는 나의 몸뚱이는 빳빳하게 누운 채로

수유리 대한병원으로 실려 가서 난생처음으로 입원이란 것을 했다.

 

 

사고 다음 날 병원에서 18명 중경상에 3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교통

사고 TV 뉴우스를 보고서야 우리가 얼마나 큰 사고를 당했으며

내가 그 대형사고 중심에 있었고 나와 마주서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바퀴에 깔려 생명을 잃었거나 중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과 함께

자동차 밑에 깔렸었는데도 마침 앞쪽이어서 큰 상처 없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앞에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치를 떨어야 했다.

 

외국 영화 브르스 월리스가 나오는 심령 영화에서 주인공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활동하는 것이 나오는데

혹시 나도 내가 죽은 줄도 모르고 이렇게 지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할 정도로 살아있다는 사실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만큼 정식적 충격이 컸던 것이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고 의사는 가볍게 말하는데

정작 나의 몸뚱이는 통증이 극심했다. 왼쪽 어깨. 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이 아프고 목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슴이 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슴에 복대를 매고  목에도 견고한 틀을 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2일 동안 대소변도 받아 낼 정도였다.

여러 가지 약물치료와 전기치료를 받으며 아픔과 투쟁을 했다.

그런 노력으로 일주일 만에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10일 만에 부축을 받으며 걸을 수 있었고 15일 만에 퇴원을 했다.(6월22일월요일)

아니 가족과 주변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집을 부려서

병원생활을 탈출 했다. 할 일 많은 사람에게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마음만 30살이지 환갑나이의 몸뚱이는 움직여 주지 않는다.

막상 퇴원하여 움직여 보니 허벅지 통증으로 걸음도 걸을 수가 없고

가슴이 결려 물건을 들 수도 상체를 구부릴 수도 없다. 어깨와 목도 여전히 아프다.

병원에 가만히 누어있을 때는 견딜 만 했는데 그것이

순전히 진통제 때문인 것을 퇴원하고서야 깨달았다. 퇴원 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동안이나 통원치료를 받아야 할지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많은 향우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부디 나처럼 튀어 나오지 말고 답답하시더라도 참고 견디어

꼭 다 나은 후에 나오시길 바라면서

늦었지만 하 영재 향우님의 영전에 弔辭(조사)를 지어 올립니다.

 

 

하 영재님 영전에

 

하 형!

그날 불의의 사고로 님 은 갔습니다.

아직 20년은 더 살아도 될 餘命(여명)을

못내 아쉽게 포기하고 거부하는 몸짓으로 떠나가셨을

님 의 심정을 헤아릴 때

우리 유림 향우들은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통곡하며 애도하며 사무치는 마음으로

저마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구나

그 사고가 있기 직전 까지 우리들과 형이

마주서서 다정한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이

이제 영원한 이별의 슬픈 마지막 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들 남은인생 속에 각인되어져서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맺힐 뼈저린 아픔이겠습니다.

 

그날 우리는 예기치 못한 너무도 큰 사고를 당했기에

우리들은 그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 왔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거니와

님께서 종이학 되어 영겁의 세계로 떠나가셨다는 사실

그 또한 믿어지지 않습니다.

님 또한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사실이

또한 실감나지 않으시겠지요?

 

私情(사정)없는 대자연은 억겁의 세월 속에

윤회의 수례바퀴를 굴리며 우리네 영혼을 성숙시키는 섭리!

애달프지마는 가야하고 또 와야 하는 천리를 어이 하리오

 

우리에게 너무도 다정하고 포근한 님의 모습이

어찌 쉽사리 잊어지기야 하겠습니까 마는

그래도 이제 시린 가슴 쓸어 않고 님을 놓아 드리겠습니다.

님께서도 저희들과의 인연들을

아름다운 이승의 추억으로 고이접어 갊머두고

다시 오실 來生(래생)을 준비 하소서

님께서 가실 길이 부디 좋은 하늘이기를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冥福(명복)을 기원 하나이다.

 

하 영재님의 영전에

유림 향우들을 대신하여 南村이 만사를 지어 올리나이다.--

 

2009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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