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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선조38년(1605) 8월 18일에 사헌부에서 올린 계사(啓辭)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 해 7월 23일 기사에는 강원도와 경상도의 수해(水害) 피해 상황이 적혀 있는데, 홍수가 나서 객사와 관청, 군기(軍器)ㆍ창곡(倉穀)을 휩쓸어 버린 내용, 떠내려가는 지붕 위에서 닭이 울고 개가 짖어댄 내용, 칼을 쓴 죄인이 물에 떠내려 오기도 했다는 내용, 온 가족이 물에 빠지거나 산사태에 압사당해 여염 거리에는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해변에는 시체가 즐비하게 쌓였다는 내용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에 없던 천재지변을 만난 때에, 사헌부에서 천재지변보다도 심하다고 단정한 것이 다름 아닌 사치의 폐해였습니다. 백성이 부역에 동원되어 괴로움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수령들은 절일(節日)이니 생일이니 하는 구실로 팔도의 영문(營門)에 물품을 갖다 바치고, 감사란 자들도 태연히 그것을 받고 있는 세태에 대해 아뢰고 있습니다.
옛 왕들은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하늘의 기운도 작용한다고 보아, 천재지변이 있을 때에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위정자들의 잘못된 마음가짐과 사치와 횡포로 인해 백성의 원성이 쌓이고, 그 기운이 모여 천재지변을 부르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올 봄 만개한 꽃 위로 눈이 내리고, 구제역(口蹄疫)이 돌아 수많은 가축들이 ‘살처분’이라는 이름 아래 죽어 가고 있습니다. 한편 군수가 지역 건설업체로부터 별장을 뇌물로 받았다는 이야기, 검사가 스폰서를 두고 갖은 접대를 다 받았다는 이야기 등 공직자 비리와 관련된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천재(天災)를 하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먼저 사람이 천재를 불러들이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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