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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 백 열 여섯 번째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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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일록』: 조선중기 전쟁과 일상에 관한 기록들 |
2010. 5. 31. (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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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일기 하면 대부분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난중일기』이외에도 오희문(吳希文)의 『쇄미록(鎖尾錄)』, 이노(李魯)의 『용사일기(龍蛇日記)』,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기(亂中雜記)』등 다양한 일기류 자료가 전한다. 『고대일록(孤臺日錄)』또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일기로서, 최근 남명학연구원에서는 『고대일록』역주본을 출간하였다.(2009년, 태학사 출판) 『고대일록』은 경상우도 함양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한 정경운(鄭慶雲:1556~?)이 쓴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대한 전쟁 체험 일기이다. 정경운은 전란 때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소모유사(召募有司)로, 의병장 김면(金沔)의 소모 종사관으로 활약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의병활동을 비롯해, 당시의 전언이나 편지, 조보(朝報), 방문(榜文)까지 수록하였다. 『고대일록』은 오늘날 신문이나 뉴스처럼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정경운은 정인홍(鄭仁弘)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사족 신분으로 고향인 함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정황들도 생생히 기록하였다. 정경운은 정유재란 시에 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일기에는 그 날의 비참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카가 산에서 정아(貞兒)의 시신을 찾았다. 목이 반 이상 잘린 채로 바위 사이에 넘어져 있었는데 차고 있던 칼과 손이 모두 평소와 같았다. 오호라! 내 딸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내가 처음 왜적이 기이한 행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차고 있던 칼을 주면서 ‘만약 불행한 일을 만나면 너는 적의 뜻에 따르지 말라.’고 하였다. 이후로는 한 번도 머리를 빗지도 않고 얼굴을 씻지도 않으면서 ‘큰 도적이 이제 이른다니 내가 살기는 어렵겠다.’는 말을 그 모친과 항상 말했다고 한다. 드디어 흉적을 만나자 당당하게 겁도 없이 왜적을 나무라면서 생(生)을 버리고 절개를 온전히 하였으니 곧구나, 내 딸이여.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 오호라, 네가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한 것은 잘하기는 잘한 일이지만, 내가 여식의 목숨도 구하지 못해 흉적의 칼 아래 운명케 하였구나. 손을 붙들고 피난하여 시작과 끝을 함께 하고자 하였는데. 타일에 구천(九泉)에서 손을 잡고 다시 만날 때 나는 진실로 너만 못하니 무슨 낯으로 너를 위로하겠느냐? 너의 높은 절개는 내가 마땅히 그 뜻을 전(傳)을 지어 기록할 것이다. 의복을 다 잃어 몸을 염습(殮襲)할 도구도 초라하기 짝이 없으니 통곡하고 또 통곡한다.
[猶子到山 得貞兒屍 斬首過半 覆於石間 所佩刀子及投手 皆菀若平生 嗚呼 我女至於此極耶 我始聞賊奇解 所佩刀子遣之曰 若遇不幸 汝不從賊云云 自後 一不梳頭洗面曰 大賊今至 我生難必之焉 與厥母每每說道云云矣 卒于凶賊 屹然無㥘 罵詈賊奴 捨生全節 貞哉我女 不愧其名矣 嗚呼 汝之捨生取義 善則善矣 我不能救一女息 殞命兇鋒之下 扶携避亂 以共終始 他日九泉 握手重逢 則我實負汝 何面慰汝 至於汝卓立之節 則我當敍傳以志矣 衣服盡失 殮身之具 草草莫甚 痛哭痛哭”] -『고대일록』 1597년 8월 21일(기묘)
『고대일록』은 1592년(선조 25) 4월 23일부터, 1609년(광해군 원년) 10월 7일까지 쓴 일기로, 출생부터 부모를 일찍 여의는 등 불우한 시절을 보낸 삶의 행적이 나타나 있다. 그가 스스로 삶을 진술한 부분을 보자.
나는 두 살에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부께 의지하여 길러졌다. 아홉 살에 외왕부(外王父)께서 또 돌아가시고 열세 살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거상중에 맏형에게 수학하였고 외왕모(外王母)께 길러졌는데 열다섯에 또 여의었다. 이때부터 형 보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였고 형수 보기를 어머니와 같이 하였다. 열아홉에 또 형님을 잃었는데, 학업은 어(魚) 자와 노(魯) 자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외로운 신세는 몸과 그림자가 서로를 위로할 지경이었다. 경오년(1570년, 15세)부터 기묘년(1579년, 24세)까지 형수를 우러르며 생명을 이어나가기를 마치 한유가 정부인(鄭夫人)에 대해서 하는 것과 같이 하였다.
[余二歲早孤 依外祖父鞠養 九歲外王父又沒 十三歲慈母見背 孤喪中從伯氏受學 衣食於外王母 十五又失之 自是視兄猶父親 嫂猶母 十九又失兄 學未知魚魯 形影相弔 自庚午至己卯 仰嫂爲命 猶韓愈之於鄭夫人] - 『고대일록』, 1605년 4월 7일(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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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일록_서울신문 기사(2009. 10.23)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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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술 이력서에서 정경운은 자신의 불우한 삶을 회고하고 있다. 2세의 부친 사망, 9세의 외조부 사망, 13세의 모친 사망, 15세의 외조모 사망, 19세의 형 사망 등 그의 어린 시절은 가족의 사망이 연속되는 시기였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맏형에게 수학하고 외조모에 의해 길러졌다. 15세부터는 형수에게 의지하여 삶을 이어갔음도 밝히고 있다. 불운이 연속으로 이어지던 그의 삶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인물이 바로 정인홍이었다. 일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 외에는 바로 스승인 정인홍과 그의 동정에 관한 것이다. 정경운은 정인홍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사년(1581년, 26세)에 비로소 스승을 찾을 줄 알아 내암 선생께 배움을 청하였는데, 선생께서 못난이라고 물리치지 않으시니 그 후 잇따라 출입하였다. 매양 ‘가을달이 차가운 강물에 비친다[秋月照寒水]’는 시구1)를 생각하며 부모와 같이 우러르고 신명(神明)과 같이 믿었다.
[辛巳始知尋師之道 請見於來庵先生 先生不斥之以無似 厥後夤緣出入 每思秋月照寒水之句 仰之如父母 信之如神明] -『고대일록』, 1605년 4월 7일(신해)
정경운은 이어서 “나는 궁향(窮鄕)의 만학(晩學)으로서 이미 스승을 받드는 입설(立雪)의 고초도 없었고, 또 학우들과의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공부도 모자라 끝내 담장을 마주보는 듯함을 면하지 못해 도(道)의 영역과 서로 격리되었다. 마치 기러기가 풀이 무성한 못 가운데 내려 앉아 머리가 파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았다. 노둔함을 채찍질하여 선생께 나아가 많은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고, 때로는 문안 편지를 올려 연달아 이끌어주시는 답장을 받았다.” 고 하여, 정인홍이 자신의 노둔함을 깨우쳐주는가 하면 편지를 통해서도 계속 가르침이 이어졌음을 기록하고 있다. 정경운은 정인홍이 고향으로 내려오면 거의 매일 찾아가 뵙는 제자이기도 했다. 1600년 7월 23일, 24일, 25일에는 연이어 스승을 찾아뵙는 기록이 보이며,2) 정인홍이 부인의 묘 개장을 위해 묘자리를 찾아볼 때도 수행한 3명(강위서, 강경정) 중의 한 명이기도 했다.3) 정경운은 어린 아들이 요절했을 때도 자신의 아픔보다, 역시 자식을 잃은 스승의 아픔을 먼저 생각할 만큼 충실한 제자였다.4)
오시(午時)가 지나서 어린 아들이 요절(夭折)했다. 불쌍한 마음과 애틋한 정을 글로 쓰자니, 참담하여 탄식할 따름이다. 나는 강보에 싸인 아이도 오히려 슬픈데, 하물며 내암선생은 어떠했겠는가?
[過午 稚子夭折 不忍之心 藹然之情書之 則慘於悒而已 以余襁褓之兒 猶且惻怛 而況於來庵先生乎] -『고대일록』 1593년 4월 7일(신묘)
『고대일록』은 전쟁 체험과 전쟁 이후 사회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의미 이외에 당시 지방 사족의 중앙 정치에서의 대응 모습이나, 지방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모습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비교적 중앙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정경운이 지방에서 활약하는 모습들은 조선중기 생활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정경운이 정인홍을 절대적으로 존숭하는 모습에서 산림(山林) 정인홍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고대일록』의 완역을 계기로 이 시기를 살아간 선조들 모습이 보다 생생히 다가올 것을 기대한다.
1) 주자가 지은 시 [齋居感興]의 한 구. 2)『고대일록』, 1600년 7월 23일, 24일, 25일 기록 참조. 3)『고대일록』, 1600년 7월 25일(을축). 4) 정경운은 1593년 마흔 가까이 되어 아들을 얻었지만, 불과 열흘 만에 아들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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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주요저서 -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일지사, 2000 -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램덤하우스, 2003 -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 함께, 2007 -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8 -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새문사, 2009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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