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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0. 6. 3. 13:15

고전명구 - 백 열 여섯 번째 이야기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2010. 6. 3. (목)

어찌 우리 집안의 사사로운 원수라는 것 때문에,
조정에서 뽑아 쓴 인재를 버릴 수 있으랴?

   
 

豈可以吾家私讎   廢朝家揀用之人乎
기가이오가사수   폐조가간용지인호

- 이유원(李裕元),〈전모편(典謨編) 신도(臣道)〉, 《임하필기(林下筆記)》

[해설]

천안함 사태 이후로 한 달여의 선거기간 동안,
안 그래도 각종 대립으로 얼룩진 나라 분위기가
더욱더 극단으로 치닫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선은 당쟁으로 망했다는 말들을 할 정도로
당쟁에 대해서는 너나없이 부정적이면서도
정작 당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인조 때 일입니다.
박신규(朴信圭, 1631∼1687)라는 분이 호조의 좌랑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호조의 판서가 김수흥(金壽興)이었기 때문입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요?
박신규의 아버지 박계영(朴啓榮)이 사헌부 장령으로 있으면서
김수흥의 조부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을 심하게 탄핵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그 일로 체면이 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의 원수와는 한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다는 의리가 중시되던 시대입니다.
두 집안이 서로 좋은 관계일 수가 없겠지요.
박신규로서는 당연히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김수흥은 박신규에게 사람을 보내 조정에 나오기를 권했습니다.
“사적인 의리로 보자면 서로 어울릴 수 없겠지만,
어찌 우리 집안의 사사로운 원수라는 것 때문에,
조정에서 뽑아 쓴 인재를 버릴 수 있겠소?”
그 말을 들은 박신규도 흔쾌히 그 자리를 맡았다고 합니다.

옛날 선인들에게는 이렇게
국가를 위해서는, 대의를 위해서는
사적인 원한도 참을 수 있는 멋과 아량이 있었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으르렁거리는 지금 우리들에게
과연 국가를 우선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대립하고 싸우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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