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양반집에서는 마을 서당에서 일정한 학습 과정을 마친 다음 산사(山寺)에 보내 학업을 쌓도록 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산사는 지금의 고시원 역할을 한 셈입니다. 아들을 산사에 보내놓고 위로와 격려를 전한 편지글이 문헌에 제법 많이 실려 있습니다. 위 글도 조선 중기의 재상 서애 유성룡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편에 나온 대목입니다.
서애는 아들 넷을 두었는데, 그중 장남은 심한 종기로 병상에 있었고 아래 세 아들을 어디 산사에 보내 공부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어느 날 산사에서 온 편지를 받고 별일 없다는 소식에 안심하면서도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에 서애는 편지를 보냅니다.
“스님 말씀에 너희들이 새벽까지 책을 읽는다니 참말이냐? 옛 책에, 삼경(三更 밤11시~새벽1시)까지 잠을 못 자면 피가 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이로 인해 초췌해진다고 하였다.”
하고, 위와 같은 말로 공부하는 방도를 일러줍니다.
너무 급히 나아가면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는 말은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에 “그 나아감이 빠른 사람은 그 후퇴하는 것 또한 빠르다.[其進銳者 其退速]”라고 한 것을 인용한 말입니다. 그 주석에, “나아감이 빠른 자는 마음을 씀이 너무 지나쳐서 그 기운이 쇠진하기 쉽다. 그러므로 후퇴가 빠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논어(論語)』자로편(子路篇)에 “빨리하려 들면 달성하지 못한다.[欲速則不達]”라고 한 성현의 말도 같은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음만 앞서서 분주히 쫓기듯이 하는 것은 게으름 피우며 했다말았다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성취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과가 같기 때문입니다.
편지 말미에 서애는 거듭, 자신의 역량을 헤아려 공부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으니, 행여 기력이 약해져서 병이라도 날까 우려하는 부정(父情)이 크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당부 속에는 후일 만날 때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아이들의 진보된 모습에 대한 기대감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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