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아버지의 당부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1. 16. 20:47

- 이백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2014년 1월 16일 (목)
아버지의 당부
너무 급히 나아가면 물러나는 것도 빠른 법이니,
차분히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제일이다.

進銳則退速 不如從容不廢之爲有益也
진예즉퇴속 불여종용불폐지위유익야

-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아이들에게 보냄[寄諸兒]」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卷12

 

  
  예전, 양반집에서는 마을 서당에서 일정한 학습 과정을 마친 다음 산사(山寺)에 보내 학업을 쌓도록 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산사는 지금의 고시원 역할을 한 셈입니다. 아들을 산사에 보내놓고 위로와 격려를 전한 편지글이 문헌에 제법 많이 실려 있습니다. 위 글도 조선 중기의 재상 서애 유성룡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편에 나온 대목입니다.

  서애는 아들 넷을 두었는데, 그중 장남은 심한 종기로 병상에 있었고 아래 세 아들을 어디 산사에 보내 공부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어느 날 산사에서 온 편지를 받고 별일 없다는 소식에 안심하면서도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에 서애는 편지를 보냅니다.

“스님 말씀에 너희들이 새벽까지 책을 읽는다니 참말이냐? 옛 책에, 삼경(三更 밤11시~새벽1시)까지 잠을 못 자면 피가 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이로 인해 초췌해진다고 하였다.” 

하고, 위와 같은 말로 공부하는 방도를 일러줍니다.

  너무 급히 나아가면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는 말은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에 “그 나아감이 빠른 사람은 그 후퇴하는 것 또한 빠르다.[其進銳者 其退速]”라고 한 것을 인용한 말입니다. 그 주석에, “나아감이 빠른 자는 마음을 씀이 너무 지나쳐서 그 기운이 쇠진하기 쉽다. 그러므로 후퇴가 빠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논어(論語)』자로편(子路篇)에 “빨리하려 들면 달성하지 못한다.[欲速則不達]”라고 한 성현의 말도 같은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음만 앞서서 분주히 쫓기듯이 하는 것은 게으름 피우며 했다말았다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성취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과가 같기 때문입니다.

  편지 말미에 서애는 거듭, 자신의 역량을 헤아려 공부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으니, 행여 기력이 약해져서 병이라도 날까 우려하는 부정(父情)이 크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당부 속에는 후일 만날 때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아이들의 진보된 모습에 대한 기대감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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