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등왕각 왕발이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1. 20. 13:52

등왕각서 왕발

중국 역사상 요절한 천재가 더러 있지만 왕발처럼 짧은 인생 중 극적인 고사를 전하는 이가 그리 흔할까?

왕발은 650년에 태어나 676년(혹 675년이라는 설이 있지만 지금은 거의 676년을 인정하는 추세임)에 죽었으니, 나이 겨우 27세였다. 그러나 그는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한 사람으로 불리어졌을 뿐만 아니라 <등왕각서(滕王閣序)>라는 천고의 명문장을 남긴 인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수(隋)말의 저명한 학자인 문중자(文中子) 왕통(王通)의 손자였고, 수말초당의 유명한 문인 왕적(王績)의 종손(從孫)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매우 총명하였고, 시를 지을 줄 알았기에 사람들이 신동이라 여겼다.

≪구당서(舊唐書)≫<왕발전>에 의하면, “6세에 글을 지을 줄 알았고, 글의 구상은 막히는 법이 없고, 글에 대한 정감도 아주 빼어나서, 형들과 글짓는 재주가 비슷했기에, 부친의 친구 두이간(杜易簡)이 항상 이에 대해 ‘이것은 왕씨 집안의 보배로운 세 그루 나무(王氏三珠樹)’라고 칭찬했다”

◇ 등왕각 그림 
그의 나이 14살 때 우상(右相) 유상도(劉祥道)가 관내(關內)로 순시를 왔을 때, 그의 기특한 재주를 보고

그를 조정에 추천했다. 그리하여 664년에 천자가 임시로 주재한 대책(對策)시험에 합격하여

조산랑(朝散郞)이란 직책을 받았다.

668년, 당시 패왕(沛王) 현(賢)이 그의 명성을 듣고 왕부(王府)의 수찬(修撰)을 시켰다.

그리하여 몇몇 글을 올렸고, 또한 ≪평대초략(平臺鈔略)≫10편을 완성하여, 비단 50필을 받았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평탄하게만 흘러가지 않는 모양이다. 이것이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운명은 성격’이란 말이 맞는 것인지 모르지만, 옛글에 따르면 총명한 사람은 항상 경박한 허물이 있기에,

 덕을 쌓고 독서를 통하여 이를 보충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들 가슴깊이 새겨야 할 듯 하다.

칼끝,붓끝,입끝,손끝,발끝 등등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특히 옛날 봉건시대에서는 조심해야

할 것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꼭 붓끝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그의 운명을 돌려놓은

일이 한꺼번에 터져버린다.

당시 황족들은 투계(鬪鷄)가 즐겼는데, 왕발이 이를 가지고 <격영왕계문(檄英王鷄文)>을 지었다가

고종(高宗)의 미움을 받고 왕부에서 쫓겨난다. 그리하여 호북성 강한(江漢)지방으로 유람을 떠나서 사천성 촉땅을 떠돌게 된다. 이런 와중에 그는 괵주(虢州: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靈寶縣) 남쪽)에 약초가 많다는

말을 듣고 곧 괵주참군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오만했기에 동료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점을 가볍게 보아 넘겨버리기가

쉽지만 인간으로써 가장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그가 괵주의 참군으로 있을 때, 죽을죄를 저지른 관노(官奴) 조달(曹達)을 숨겨주었다가 일이 누설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관노를 죽여 버렸다.

그는 결국 죽을죄를 얻게 되었고, 뒤에 요행이 사면되었지만 관계에서 제명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그의

부친 왕복치(王福畤) 또한 옹주(雍州: 지금의 섬서성 중부와 감숙성 동북부)의 사공참군(司功參軍)에서

교지(交趾: 지금의 월남 북부)의 령(令)로 좌천당한다.

명망있던 한 집안의 보배였으며 가문의 자랑이었던 한 젊은이가 한순간에 가문에 먹칠을 하고 불효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왕에 엎질러진 물, 누구를 탓할 것인가?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일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이 무렵 그는 그의 일생 중 가장 많은 창작활동을 하였는데, 조부 왕통의 ≪속서(續書)≫16권에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25권을 완성하였고, ≪당가천세력(唐家千歲曆)≫,≪합론(合論)≫10편,

≪백리창언(百里昌言)≫18편 등을 찬술했다.
복고(腹稿)라는 성어가 바로 이 왕발로 인해 비롯되었다. 여기서 잠시 복고에 대해 소개할 테니 그의

필화(筆禍)와 관련지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란다.

≪신당서(新唐書)≫<왕발전>에 의하면, 그가 글을 지을 때, 처음부터 정밀하게 구상하지 않는다. 먼저 먹을 몇 승(升)을 갈아놓고, 술을 흠뻑 마신 뒤 이불을 덮고 잔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붓을 잡고 단번에 한 편을 완성하는데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도 “왕발이 늘 비문을 지을 때 먼저 먹을 몇 승 갈아놓고 이불을 덮고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붓을 들고 쓰면, 처음대로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는데, 당시 사람은 이를 복고라고 한다”고 했다.

창작을 하는 이들은 왕발의 ‘복고’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방법을 통해 영감을 얻거나 구상을 할 것이다. 이 복고가 좋고 나쁜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위의 고사를 통해 볼 때, 왕발이 시문을 구상하고 창작하는데 있어서 남다른 재능을 가진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좋지 않은 일도 오롯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했든가?
역설적으로 졸지에 가문의 죄인이요 불효자가 된 왕발은 또한 ≪명심보감≫<순명편(順命篇)>의 한 구절을 차지하는데, “때가 오니 바람이 등왕각으로 보내고, 운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를 때렸다.(時來風送滕王閣, 運退雷轟薦福碑.)”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 구절을 부연하면 이렇다.

왕발은 불효자가 되어 멀고 먼 교지로 폄적당한 부친을 뵈러 나선다. 교지로 가는 중간지점인 홍주(洪州: 지금의 강서성 남창(南昌))에서는 도독(都督) 염백서(閻伯嶼)가 등왕각을 짓고, 중양절날 낙성식을 거행하여 자신의 사위를 수많은 명사들 앞에 거창하게 등장시킬 참이었다.

이 무렵 왕발은 동정호(洞庭湖) 부근에 있었으니, 홍주와는 거리는 700여리나 되었다. 전전날인 7일날 밤 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 등왕각 낙성식에 참가해서 등왕각서문을 지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상 700여리의 길을 하루만에 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거리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순풍이 때맞춰 잘도 불어주어서 그날 저녁에 홍주에 도착하게 된다. 그 다음날 때맞춰 낙성식에 참석하여 <등왕각서>를 짓고, 명사들 앞에서 염백서의 사위를 대신하여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뒷 구절은 천복산의 비문을 탁본해 오면 높은 값을 지불하겠다는 말을 듣고 가난한 서생이 온힘을 들여서 겨우 천복산에 도착했는데, 그날 저녁에 벼락이 비석을 때려서 산산조각이 났다는 고사임.)

왕발의 경우에 이것이 때가 온 것일까? 하여간 그 상황만을 고려하면 때가 온 것임은 틀림없다. 순명편의 요지는 속된 말로 “되는 놈은 뭘 해도 되고, 안되는 놈은 뭘 해도 안된다.”는 것처럼 보인다. <순명편> 첫구절에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다(子曰: 死生有命, 富貴在天.)”고 했다. 정말 그럴까? 그래서 어쩌라고……

≪명심보감≫<순명편>에서는 사람의 운명과 분수가 정해져 있다는 요지로 말하고 있지만, 필자는 명(命)자에 주목한다. 명을 운수로 풀이하든, 명령으로 풀이하든, 하늘(天)이 보시기에 억지로 강구하여서 하늘의 뜻에 역행하지 말라는 의미로 본다. 복이 오면 이를 겸손하게 즐기며 덕을 더 쌓고, 화가 온다면 더욱 수양하며 자신을 더 낮추고 산다면 설마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각설하고, 왕발은 이곳에서 몇 달간 제법 대접다운 대접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그해 11월에 영남도독부가 있는 남해(南海: 광동성 광주)에 도착했고, 바다를 통해 교지로 가려다가 바다에 빠져서 겨우 살아났지만 놀람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혹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설도 있음) 이때 그의 나이 겨우 27세.


◇ 등왕각 

이것이 그에게 때가 온 결과인가?
때맞춰 등왕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등왕각서>를 지은 것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한 천재작가의 이름을 영원히 남겨놓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 또한 때가 왔다면 때가 온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그의 음주시를 보면, 천재에서 죄인으로, 촉명받던 한 집안의 수재에서 불효자로 뒤바뀐 운명을 누가 만들었던 간에, 인생의 굴곡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한 천재작가의 회한이 가슴을 저미어 온다.

<교외의 흥취(郊興)>
空園歌獨酌(공원가독작), 텅빈 동산에 노래부르며 홀로 술을 마시고,
春日賦閑居(춘일부한거). 봄날 한가로운 삶을 노래하네.
澤蘭侵小徑(택란침소경), 등골나무가 오솔길로 침범하고,
河柳覆長渠)하류복장거). 강가의 버들은 긴 도랑을 뒤덮었네.
雨去花光濕(우거화광습), 비가 그치니 꽃빛이 젖고,
風歸葉影疏(풍귀엽영소). 바람 그치니 잎사귀 모습이 성기다.
山人不惜醉(산인불석취), 산인은 술에 취하기를 아까와 않지만,
唯畏綠尊虛(유외록존허). 오직 푸른 술잔이 비는 것을 걱정하네.

<교외의 동산에서 곧바로 시를 읊다(郊園卽事)>
烟霞春旦賞(연하춘단상), 안개와 놀은 봄날 아침에 감상하고,
松竹故年心(송죽고년심). 송죽은 옛날의 마음을 생각케 하네
斷山疑畵障(단산의화장), 끊어진 산은 획을 그어서 막은 듯 하고,
懸溜瀉鳴琴(현류사명금). 허공에 걸린 급류는 거문고 소리를 내며 쏟아지네.
草遍南亭合(초편남정합), 풀이 두루 퍼졌다가 남쪽 정자에서 합쳐지고,
花開北院深(화개북원심). 꽃이 피니 북쪽 정원이 더욱 깊다.
閑居饒酒賦(한거요주부), 한가로이 살다보니 여유롭게 술마시며 시를 짓는데,
隨興欲抽簪(수흥욕추잠). 흥에 따라 관직을 그만두고 싶어라.

<聖泉宴>
披襟乘石蹬(피금승석등), 가슴을 풀어헤치고 바윗길을 오르네,
列籍俯春泉(열적부춘천). 장부를 늘어놓고 봄샘을 굽어보네.
蘭氣熏山酌(난기훈산작), 난향이 산에서 마시는 술잔을 물들이고,
松聲韻野弦(송성운야현). 솔바람소리는 들판에서 뜯는 거문고연주를 더욱 운치있게 하네.
影飄垂葉外(영표수엽외), 그림자는 퍼져 잎사귀 밖으로 드리우고,
香度落花前(향도낙화전). 향기는 낙화 앞으로 옮겨가네.
興洽林塘晚(흥흡림당만), 저녁에 숲과 연못에 흥이 넘쳐나고,
重岩起夕烟(중암기석연). 겹겹이 쌓인 바위로 저녁 안개가 일어나네.

<滕王閣詩(등왕각시)>
滕王高閣臨江渚(등왕고각임강저), 높은 등왕각은 강가에 임해있고,
佩玉鳴鸞罷歌舞(패옥명란파가무); 패옥소리와 난새소리 울리며 노래와 춤을 추네.
畵棟朝飛南浦雲(화동조비남포운), 그림같은 용마루는 아침에 남포의 구름위로 날아오르고,
珠簾暮卷西山雨(주렴모권서산우); 주렴은 저녁에 서산의 비를 말아 오르네.
閑雲潭影日悠悠(한운담영일유유), 한가로운 구름과 소에 비친 모습은 날마다 여유롭고,
物換星移幾度秋(물환성이기도추); 경물이 바뀌고 별자리가 옮겨가며 몇 번의 가을을 보냈던가!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 등왕각에 있던 황손은 지금 어디에 있나?
檻外長江空自流(함외장강공자류)! 난간 밖 장강은 공연히 저절로 흐르는데.


◇ 등왕각 전경 

<봄날 교외로 나와(春日還郊)>
閑情兼嘿語(한정겸묵어), 한가한 마음에 말은 묵묵,
携杖赴岩泉(휴장부암천). 지팡이 짚고 바위샘으로 갔네.
草綠萦新帶(초록영신대), 초록이 새 허리띠처럼 엉켰고,
榆青綴古錢(유청철고전). 느릅나무 푸른 싹은 옛 동전처럼 맺혔네.
魚床侵岸水(어상침안수), 강바닥은 강언덕을 침식하고,
鳥路入山烟(조로입산연). 새만 다니는 길은 안개묻힌 산속으로 이어지네.
還題平子賦(환제평자부), 돌아와 장형(張衡)의 <歸田賦>를 흉내 내어 지으니,
花樹滿春田(화수만춘전). 꽃과 나무가 봄밭에 가득하네.

<봄 동산에 술을 놓고 시를 짓다(對酒春園作)>
投簪下山閣(투잠하산각), 벼슬을 그만두고 산각으로 내려와,
携酒對河梁(휴주대하량). 술을 들고 강가의 다리에서 이별하네.
狹水牽長鏡(협수견장경), 좁은 강은 길고 긴 거울을 안고 있는 듯,
高花送斷香(고화송단향). 높은 곳의 꽃은 끊어진 향기를 전해오네.
繁鶯歌似曲(번앵가사곡), 번거로운 앵무새는 가곡처럼 노래하고,
疏蝶舞成行(소엽무성항). 드문드문한 나비는 줄을 지어 춤추네.
自然催一醉(자연최일취), 자연히 술에 취하도록 재촉하니,
非但閱年光(비단열년광). 비단 세월을 깨달아서만은 아니라네.

<산방에서 저녁에 일어나(山扉夜坐)>
抱琴開野室(포금개야실), 거문고 안고 거친 방을 나와,
携酒對情人(휴주대정인). 술을 가지고 정인을 대하네.
林塘花月下(임당화월하), 숲과 연못가에 꽃이 핀 달빛 아래,
別似一家春(별사일가춘). 한 집안의 봄날과 아주 닮았네.

<봄동산(春園)>
山泉兩處晚(산천양처만), 산과 물 두 곳엔 해질녘,
花柳一園春(화류일원춘). 꽃과 버드나무 가득한 동산의 봄경치.
還持千日醉(환지천일취), 천일 동안 취해서,
共作百年人(공작백년인). 함께 백년을 사는 사람이 되자꾸나!

<은거하는 곳에서 홀로 마시며(林泉獨飮)>
丘壑經涂賞(구학경도상), 언덕과 골짜기 가는 길에서 감상하고,
花柳遇時春(화류우시춘). 꽃과 버드나무는 때를 만나니 봄이라네.
相逢今不醉(상봉금불취), 서로 만났지만 지금은 술에 취하지 않으니,
物色自輕人(물색자경인). 봄경치로 인해 우정이 자연히 가벼워졌기 때문이라네.

<타향에서 흥취를 풀어냄(他鄕叙興)>
綴葉歸烟晚(철엽귀연만), 잎사귀를 장식하는 안개 낀 저녁무렵,
乘花落照春(흥화낙조춘). 꽃을 틈타 해가 떨어지는 봄날.
邊城琴酒處(변성금주처), 변성은 거문고를 타고 술마시는 곳,
俱是越鄕人(구시월향인). 짝한 사람은 월땅이 고향 사람.

<九日>
九日重陽節(구일중양절), 구월구일 중양절,
開門有菊花(개문유국화). 문을 여니 국화 피었네.
不知來送酒(부지래송주), 누가 술을 부쳐왔는지 모르지만,
若個是陶家(약개시도가). 아마도 도씨네 이겠지.

<蜀中九日>(《纪事》作和邵大震, 一作蜀中九日登玄武山旅眺.)
九月九日望鄕臺(구월구일망향대), 구월구일 망향대,
他席他鄕送客杯(타석타향송객배). 타향 다른 자리에서 나그네를 전송하는 술잔드네.
人情已厭南中苦(인정이염남중고), 사람의 마음은 이미 남쪽의 고생이 지겨운데,
鴻雁那從北地來(안홍나종북지래). 피난민은 북쪽에서 찾아오네.

<九日懷封元寂>
九月郊原望(구월교원망), 구월에 교외로 나가 바라보니,
平野遍霜威(평야편상위). 평야엔 두루 서리가 위엄을 부리네.
蘭氣添新酌(난기첨신작), 난향기가 새 술잔에 더하고,
花香染别衣(화향염별의). 꽃향기는 특별한 옷을 물들이네.
九秋良會少(구추양회소), 구월 가을철은 좋은 모임은 적고,
千里敵人稀(천리적인희). 천리에 적을 만든 사람은 드무네.
今日龍山外(금일용산외), 오늘 용산 밖으로 나오니,
當憶雁書舊(당억안서구). 친구의 편지가 그립네.  강경범 생활문화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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