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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터에서 왜 도덕을 논하는가?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1. 20. 16:23

- 삼백여섯 번째 이야기
2014년 1월 20일 (월)
싸움터에서 왜 도덕을 논하는가?
  배부른 사자는 사냥을 나서지 않는다. 눈앞에 먹잇감이 있어도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고, 배가 고파져야 사냥에 나선다. 일단 사냥에 나선 사자는 작은 먹잇감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때로는 덩치에 맞지 않게 약은 수를 쓰기도 한다. 사자가 만약 체면 때문에 눈에 뻔히 보이는 정공법적인 사냥을 한다면, 늘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쟁에 임한다. 기껏 어렵게 의사결정을 하여 경쟁에 뛰어들고서도, 체면이나 명분에 얽매인 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승리할 자격이 없다.

  논하는 자들은 권모술수를 쓰는 것은 손무자(孫武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기모(奇謀)에 천착하며, 의리(義理)를 등지고 사술(詐術)에 의존하는 방식은 반드시 다 채택해야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인의 말에도, “남이 나를 속인다고 넘겨짚지 말고 남이 나를 믿지 않는다고 억측하지 말아야 하지만, 또한 먼저 알아채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아무리 정도를 지키더라도 적은 반드시 사술(詐術)을 쓸 것이니, 먼저 알아채지 못하면 반드시 그 꾀에 빠지게 되므로 먼저 깨달아서 이에 응하자면 할 수 없이 기책(奇策)을 쓰게 마련이다. 미복(微服) 차림으로 송(宋)나라를 지난 것*과 맹서(盟誓)를 저버리고 초(楚)나라로 간 것**은 권(權)이지 경(經)이 아니다. 권과 경은 차이가 있으니, 주자(朱子)가 이미 그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였다.*** 복병(伏兵)을 설치하고 기책(奇策)을 써서 적에게 불의의 패배를 안기는 것은 평시에 있어서는 절대로 차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말을 반드시 명백하게 하고 행동을 반드시 정대하게 하여, 적이 먼저 내 쪽의 할 일과 거취(去就)를 미리 알아서 방비를 치밀하게 하여 물샐 틈조차 없게 만들도록 해 놓고서 승리하기를 기대한다면, 이는 바로 송양공(宋襄公)과 진여(陳餘)가 천고에 비웃음을 받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 미복(微服)……지난 것 : 공자가 송(宋)나라를 지나갈 때 송나라 대부(大夫) 환퇴(桓魋)가 그를 죽이려고 하자, 변장을 하고 지나가 화를 면하였던 일을 가리킨다. 『孟子 萬章上』
**맹서(盟誓)를……간 것 : 초(楚)는 위(衛)의 오자인 듯하다. 공자가 포(蒲)를 지날 때 공숙씨(孔叔氏)의 반란군에게 잡혔다가 위(衛)로 가지 않는 조건으로 풀려났는데, 공자는 강요된 맹서[要盟]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위나라로 가버렸던 일이 있다. 『孔子家語』
***주자(朱子)가……말하였다 : 『논어』 자한편(子罕篇) 제29장의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권도(權道)를 행할 수는 없다.[可與立 未可與權]”는 구절의 주석에서 권(權)과 경(經)의 차이를 설명한 것을 가리킨다.


說者云。權謀用計。始於孫武子。其舍正而鑿奇。背義而依詐。未必皆可用。然聖人曰。不逆詐。不億不信。抑亦先覺者。是爲賢乎。我雖守正。敵必用詐。不先覺。則必陷。覺而應之。不得已用奇也。其微服過宋。背要盟而之楚。此權也。非經也。權經有別。朱子已明言之。設伏出奇。使敵意外摧敗。在平時。決不忍者也。若言必光明。行必正大。使賊先知吾行事去就。得以周防縝密。無容罅漏。然後僥倖賭勝。此宋襄陳餘貽譏於千古也。奚可哉。


- 이익 (李瀷, 1681~1763), 「군정서(軍政書)」,『성호사설(星湖僿說)』 권17

  
  세상에 절대적인 선(善)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화,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역(周易)』의 “수시변역(隨時變易)”이라는 말이나, 『회남자(淮南子)』에 보이는 “인시제의(因時制宜)”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무리 유가(儒家)의 큰 미덕이라고 해도, 노(魯)나라의 미생(尾生)처럼 다리 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홍수로 물이 차오르는 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죽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목숨이 달린 전쟁터라면 더더욱 상황에 맞는 대처가 필요하다.

  역사상으로 이런 이치를 어겨서 후대에 비웃음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송(宋)나라 양공(襄公)과 한(漢)나라 초기의 진여(陳餘)가 대표적이다.

  양공은 적이 침략해 오자, 전투 준비가 덜 된 적을 습격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수차례나 적이 진형을 갖출 수 있도록 공격을 늦추었다가 대패하고, 그로 인해 병사(病死)했던 인물이다. “송나라 양공의 어짊(宋襄之仁)”이라는 말은 이를 비웃으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진여는 명장 한신(韓信)을 맞아 싸우면서, 수하의 지략가인 이좌거(李左車)가 제시한 기습 작전을 채택하지 않고 유자(儒者)를 자처하며 정정당당하게 정면으로 대결하는 전략을 펴다가 대패하여 죽음을 맞았던 인물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이런 우를 범하는 것을 극구 경계하였다. 아무리 군자라도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저서에 양공의 어리석음을 거론하는 내용이 10여 차례 이상 보이고, 「송나라 양공에 대해 논한 글[宋襄公論]」 이라는 단편이 별도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유자의 비현실적이고 고루한 명분론을 얼마나 미워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개인 간의 경쟁일 수도 있고, 조직 간의 경쟁일 수도 있다. 방식이나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목숨 걸고 싸웠던 그 옛날의 전쟁처럼 하루하루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전투의 가장 큰 목표는 일단 이기는 것이다. 애초에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싸움이 시작된 뒤에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스포츠 정신에 입각하여 정정당당하게 겨루어야 하는 때도 있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적으로 공생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그 승패가 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 않거나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걸린 중요한 사안마저도 의외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자신들은 그것이 통 큰 배려이고 소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여 포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권경열 글쓴이 :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 주요역서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 『임장세고』, 한국국학진흥원, 2013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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