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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2. 3. 17:19

- 삼백여덟 번째 이야기
2014년 2월 3일 (월)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동양사상의 뿌리를 찾아서, 공자와 맹자의 고향을 가다’라는 주제로 중국 산동성 곡부와 태산을 다녀왔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거리.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꿈에도 그리던 공맹 성인의 고향, 이른바 추로지향(鄒魯之鄕)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다녀올 수 있었다. 하늘길로 황해를 넘는 비행기 덕분에. 동행했던 선생님 한 분이 다녀오고 며칠 뒤 이런 말을 하였다. “비행기 좌석 뒤에 붙은 모니터에 뜬 중국과 한국의 지도를 보니 확실히 중원이라는 말을 실감하겠더군요. 우리나라 지도는 온통 초록색인데,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이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산동 지역은 태산 주위를 제외하고는 온통 누런색이데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우리 강산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비록 비행기 좌석에 붙은 모니터의 조악한 화면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중원 땅 어느 곳에서 동족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혁명가 김산의 추억 속에서도 조선의 냇물은 세상에 절망한 사람들이 기꺼이 몸을 던지도록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내가 순흥부에서 벗 신택경과 청량산 유람하기로 약속하고 서둘러 여장을 꾸려 출발한 것은 기축년(1709) 11월 초하루였다. 저녁에 안동 경계 청암정에 이르렀는데, 고 충정공 충재 권벌이 살던 곳이다. 도랑을 내고 둑을 쌓아서 물이 구복암을 감싸고 넘실대며 흘렀다. 바위 위에 정자 세웠는데 매우 절묘하여 즐길 만하였다. 이어서 삼계서원에 들렀는데, 바로 충재를 제향하는 곳이다. 금명구, 권보, 권모 세 사람과 함께 서원에서 잤다. 두 권 씨는 충재의 후손이다.
  이튿날 아침 봉화읍에 이르렀는데 홍세전이 문득 와서 동행하였다. 느지막이 불퇴령에 올라 청량산을 바라보았다. 이 산은 태백(백두)에서 뻗어 나와 남쪽으로 달려와서 우뚝이 높이 솟아서 작은 구역의 명산이 되었다. 마치 창과 깃대가 빽빽하게 늘어선 진영 모양 같기도 하고, 또 여러 부처가 연화탑 속에서 무리지어 옹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하늘 높이 떠서 구름과 어울려 있는 형세가 나지막한 산들 가운데서 빼어나니, 참으로 이른바 명불허전이다. 날이 어두워져서 촌락 사람들에게 관솔불로 앞길을 인도하게 하여 낙동강을 건너고 밤이 깊어서야 비로소 산에 도착했다. 하늘이 이미 캄캄해져서 길을 찾느라 애를 먹어 골짜기와 구렁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였다.
  연대사에서 자고, 다음 날 중들과 함께 걸어서 절 문 주위를 돌아 두루 둘러보았다. 산이 맑은 못, 거센 여울, 괴상한 바위, 첩첩한 봉우리와 같은 기이하고 뛰어난 경치는 없으나 사방 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아 공중을 이고 있지 않은 것이 없어서 병풍을 치고 휘장을 드리운 모양 같았다. 바라보니 마치 넘어져서 덮칠 듯하여 아득히 더위잡고 기어오를 방법이 없었다. 이런 점은 금강산과 속리산에는 없는 것으로서 여러 명산이 한 발 양보해야 한다.

余自順興府, 與申友澤卿約遊淸凉, 率爾裝出乃己丑十一月初吉也. 夕至安東界靑巖亭, 故冲齋權忠定公諱橃所居也. 引渠築堤, 水溶溶環繞乎一箇龜伏巖. 巖上爲亭, 甚妙絶可喜. 仍過三溪, 卽冲齋芬苾所也. 與琴生命耈, 權生莆, 謩三人, 同宿院中. 兩權是冲齋之後也. 翌朝至奉化邑, 洪生世全忽來會同行. 晩登佛退嶺望見淸凉. 蓋自太白迤而南, 突立矗矗爲一小區名山. 或如戈纛森列爲營陣狀, 或如衆佛羣擁於蓮花塔裏, 浮天和雲, 勢拔於培塿, 眞所謂名下無虛也. 昏黑使邨氓以松明導前, 涉洛川, 夜深始到山. 天色已黯黯, 艱難覓路, 殊不知洞壑之爲如何也. 宿蓮臺寺中. 次日與僧徒步繞寺門而周覽焉. 山無淸潭激湍之奇, 怪巖重巒之勝, 而四壁削立, 無不橕空, 如張屛垂帷狀. 見之若將壓倒, 邈邈然無計可攀援也. 此則非金剛俗離之所有而諸名山之讓一頭也.
 
- 이익(李瀷, 1681~1763), 「유청량산기(遊淸凉山記)」, 『성호전집(星湖全集)』

  
  이익의 청량산 유람기를 읽어보면 청량산을 여실하게 묘사하여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외청량, 내청량의 열두 봉우리 가운데 경관이 빼어난 주요 봉우리와 누각처럼 평평하게 펼쳐진 바위와 최치원, 김생의 전설이 어린 기암절벽과 자기 학맥의 큰 스승인 이황의 흔적을 낱낱이 들고 청량산에 깃들어 사는 산승들의 삶의 한 모습까지도 담아내었다.

  이처럼 옛사람들의 유람기는 한 시대를 주름잡은 문인의 글이라도 담담하게 그려내고, 호흡이 부드러우며, 마치 걸어가는 사람의 템포로 시선을 옮겨가서 자연스럽다. 깊은 학식을 지니고서 사물의 진상을 꿰뚫어보고 자연과 세상사 이치를 달관한 이라도 현학을 뽐내지 않는다. 일단 사진부터 찍어놓고, 그것도 무턱대고 찍어서 그 가운데 가장 잘 나온 것을 고르겠다고 사진기부터 들이대어 사진이 말을 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글로써 그려내고, 글로써 사진 찍어 보이는 것이다. 

  사진은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의 평면에 구현하는 것이지만 글은 상상이라는 한 차원을 더 부여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미리 알고 경험한 선이해(先理解)의 심상을 가지고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글로 묘사된 유람기는 사진을 첨부한 유람기와 달리 주관과 객관이 서로 융화하면서도 자기를 지킨다. 글은 글로서 있되 글을 읽고 그려낸 심상은 나만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사진이 없는 삶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만약 사진이 없다고 가정하고 산천을 유람하고 꽃과 나무와 경치를 감상해보자. 그리하여 글로 그려내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강과 산과 그 안에 깃든 초목과 짐승과 풀벌레와 기암괴석, 층암절벽, 청산벽계를 더 실존적으로 보게 되리라.

  청량산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산이다. 청량산 발아래를 흐르는 낙동강 물이 도산서원 앞을 지나 안동댐에서 잠시 모인다. 그리하여 청량산 먼발치는 안동과 경계를 이룬다. 성호 이익이 청량산을 유람했을 때는 행정구역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그리하여 지금은 봉화읍에 속해 있는 닭실마을 충재 권벌의 유적과 청암정을, 역사에서 소재를 따온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그 아름다운 정자를, 이익은 안동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다. 

  당시에 지금의 봉화읍은 내성(乃城)이라 불렸고, 안동부의 속현이었다고 한다. 그 이웃이 지금 봉성면에 속하는 원래의 봉화현이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에는 원래 봉화현이 지금의 봉성면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조선 말에 잠시 춘양면으로 옮겼다가 지금의 봉화읍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봉화군으로 이어져 온다. 낙동강의 한 지류가 되는 내성천이 바로 봉화읍 한가운데를 흐른다. 내성천이라는 이름은 봉화군 물야면에서 발원하여 지금 봉화읍의 옛 이름인 내성의 중심을 흘러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낙동강 본류는 바로 이익 일행이 유람한 청량산 발밑을 흐르는, 황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까지 흘러가는 강줄기이다. 이 강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 바로 목적도, 활용도도 불분명한,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기 저어되는 그 어떤 이유 때문에 짓는 영주댐으로 인하여.

  유년기 자연의 환경은 그야말로 거의 생득적(生得的)인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유년에 체험한 자연은 그대로 그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원인자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혹 징게 맹갱 외에밋들에, 그야말로 지평선이 보이는 유일한 곳이라는 김제 만경평야에 살더라도 산을 낯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산은 으레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산은 우리가 늘 안겨서 사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산도 밀어버릴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산을 필요에 따라 밀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강을 죽여 놓고도 살려 놓았다고 생짜를 부리며 우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일까?

  며칠 전에 금강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금강에서 생떼 같은 수만 마리 물고기가 죽어서 1년 넘게 조사했지만,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이란다. 비단같이 아름답다고 붙은 비단강, 금강이 죽음의 악취가 나는 저승의 삼도천 같이 되었지만, 과학문명이 첨단을 달린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강에 사는 민물고기가 떼죽음한 원인을 1년 넘게 조사하고도 알 수 없다고 하다니! 사람들은 알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그리고 또 알고 있다. 말을 하지 않고, 숨기려고 해도 그 원인을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양식을 가진 사람들은 말렸었다. 상식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민초들은 어이없어하였다. 그런데도 기어이 우겨서 강을 죽여 놓고, 물고기를 죽여 놓고,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를 낳고 길러온 이 아름다운 강산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심성을 갈가리 찢어놓고, 알량한 돈 몇 푼으로 공동체 촌락을 갈라놓고, 지구 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순 모래강을 헤집어 놓고, 강과 산 사이에 골골이 일구어서 갈무리해 놓은 우리 삶의 문화를 산산이 박살 내버렸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이토록 망쳐 놓았는가! 금강에서, 비단같이 아름다운 강과 금빛 모래 사이에서 헤엄치다 하루아침에 떼죽음을 당한 수만 중생의 원혼을 어찌 달래야 하는가!


  

  
김태완 글쓴이 : 김태완
  • (사)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
  • 주요저서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소나무, 2004
    - 『중국철학우화393』 소나무, 2007
    - 『율곡문답,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 역사비평사, 2008
    - 『경연, 왕의 공부』, 역사비평사, 2011
    - 『맹자,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꿈』, 아이세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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