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순흥부에서 벗 신택경과 청량산 유람하기로 약속하고 서둘러 여장을 꾸려 출발한 것은 기축년(1709) 11월 초하루였다. 저녁에 안동 경계 청암정에 이르렀는데, 고 충정공 충재 권벌이 살던 곳이다. 도랑을 내고 둑을 쌓아서 물이 구복암을 감싸고 넘실대며 흘렀다. 바위 위에 정자 세웠는데 매우 절묘하여 즐길 만하였다. 이어서 삼계서원에 들렀는데, 바로 충재를 제향하는 곳이다. 금명구, 권보, 권모 세 사람과 함께 서원에서 잤다. 두 권 씨는 충재의 후손이다. 이튿날 아침 봉화읍에 이르렀는데 홍세전이 문득 와서 동행하였다. 느지막이 불퇴령에 올라 청량산을 바라보았다. 이 산은 태백(백두)에서 뻗어 나와 남쪽으로 달려와서 우뚝이 높이 솟아서 작은 구역의 명산이 되었다. 마치 창과 깃대가 빽빽하게 늘어선 진영 모양 같기도 하고, 또 여러 부처가 연화탑 속에서 무리지어 옹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하늘 높이 떠서 구름과 어울려 있는 형세가 나지막한 산들 가운데서 빼어나니, 참으로 이른바 명불허전이다. 날이 어두워져서 촌락 사람들에게 관솔불로 앞길을 인도하게 하여 낙동강을 건너고 밤이 깊어서야 비로소 산에 도착했다. 하늘이 이미 캄캄해져서 길을 찾느라 애를 먹어 골짜기와 구렁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였다. 연대사에서 자고, 다음 날 중들과 함께 걸어서 절 문 주위를 돌아 두루 둘러보았다. 산이 맑은 못, 거센 여울, 괴상한 바위, 첩첩한 봉우리와 같은 기이하고 뛰어난 경치는 없으나 사방 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아 공중을 이고 있지 않은 것이 없어서 병풍을 치고 휘장을 드리운 모양 같았다. 바라보니 마치 넘어져서 덮칠 듯하여 아득히 더위잡고 기어오를 방법이 없었다. 이런 점은 금강산과 속리산에는 없는 것으로서 여러 명산이 한 발 양보해야 한다.
余自順興府, 與申友澤卿約遊淸凉, 率爾裝出乃己丑十一月初吉也. 夕至安東界靑巖亭, 故冲齋權忠定公諱橃所居也. 引渠築堤, 水溶溶環繞乎一箇龜伏巖. 巖上爲亭, 甚妙絶可喜. 仍過三溪, 卽冲齋芬苾所也. 與琴生命耈, 權生莆, 謩三人, 同宿院中. 兩權是冲齋之後也. 翌朝至奉化邑, 洪生世全忽來會同行. 晩登佛退嶺望見淸凉. 蓋自太白迤而南, 突立矗矗爲一小區名山. 或如戈纛森列爲營陣狀, 或如衆佛羣擁於蓮花塔裏, 浮天和雲, 勢拔於培塿, 眞所謂名下無虛也. 昏黑使邨氓以松明導前, 涉洛川, 夜深始到山. 天色已黯黯, 艱難覓路, 殊不知洞壑之爲如何也. 宿蓮臺寺中. 次日與僧徒步繞寺門而周覽焉. 山無淸潭激湍之奇, 怪巖重巒之勝, 而四壁削立, 無不橕空, 如張屛垂帷狀. 見之若將壓倒, 邈邈然無計可攀援也. 此則非金剛俗離之所有而諸名山之讓一頭也. - 이익(李瀷, 1681~1763), 「유청량산기(遊淸凉山記)」, 『성호전집(星湖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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