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년에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은 성리학 이론논쟁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퇴계 이황에게 충고를 담은 편지를 보냅니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니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예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말해 헛된 이름을 훔쳐 남을 속이려 합니다. … 선생 같은 어른이 꾸짖어 그만두게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 억제하고 타이르심이 어떻습니까?"
이때는 퇴계가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과 사단칠정논쟁(1558~1566)을 치열하게 벌이던 중이었었기에, 남명의 편지는 에둘러서 퇴계를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퇴계는 남명에게 변명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나서, 못다 한 이야기를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습니다. 그 내용이 위의 글인데, 요약하면 실천을 바탕으로 논쟁을 한다면 이론과 실천 둘 다 발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편지를 받은 제자는 정유일(鄭惟一, 1533~1576)이고, 그의 자(字)가 자중(子中)입니다.
요즈음도 남명과 같은 취지의 비판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일부 정치인과 사회단체가 현실에서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고원한 원칙과 이상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원칙과 이상은 그저 허공에 뜬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퇴계의 말처럼 현실을 반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상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한다면 이론과 실천은 함께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를 돌아보면, 조선 시대의 학문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것보다는 ‘입으로 천리를 논했던’ 사단칠정논쟁을 통해 깊어진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논쟁의 내용이나 결론 때문이라기보다는, 당대의 노성(老成)한 대학자와 신진학자들 사이의 격의 없는 논쟁이 당대 지식인들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이 서로 말과 글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계속 쌓여서 학문이 되고 문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퇴계가 살던 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사람 사는 이치는 다를 게 없습니다. 일상의 삶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원칙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서로 논쟁하고, 그 원칙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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