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관이란 경연을 맡은 관리를 말한다. 경연은 왕이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철학적 이념과 역사적 사례를 통한 교훈을 습득하고 연마하는 강학의 마당이다. 정치를 교화(敎化), 곧 무지몽매한 인민을 가르치고 이끌어서, 계몽하여서, 의식을 변화시켜 원래 권력이 의도한 목표에 이르게 하는 일로 인식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경연은 정치의 연장이며, 국왕의 핵심적인 정치 행위였다. 당대 사회에서 일어난 일을, 과거의 유사한 사례에서 유추하여 지침을 찾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서 정치의 이념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정치학습의 공간이다. 따라서 강관, 곧 경연관은 유교 사회의 세계관과 가치관, 역사의식을 지니고서 제왕이 유교적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가르치고 이끄는 제왕의 스승이었다.
뛰어난 왕과 현명한 재상, 이른바 성군 현상(聖君賢相)은 유교적 정치 세계의 이상적인 정치적 파트너십이다. 역사상 뛰어난 정치를 이루고, 뚜렷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제왕들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그 제왕들의 정치를 함께 일군 재상들의 이름이 한 벌로 따라다닌다. 어느 사회라도 원대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와 탁월한 역량을 지닌, 뛰어난 재상 또는 고문관이 역할을 나눠서 잘 협력하면 나라가 발전하고 인민은 행복하다. 권력자는 늘 자기 마음을 열어놓고 따끔한 충고에 귀를 기울이며, 재상이나 고문관은 언제나 없을 수 없는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권력의 모순을 지적해야 한다. 권력자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보좌관이 권력자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달콤한 말만 하면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연산군에게도 성군이라고 칭송한 신하가 있었으며, 걸주(桀紂) 아래에서도 행복을 느낀 사람은 있었다.
사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말은, 어쩌면 돌발로 일어난 해프닝의 말일 수도 있고, 진심으로 각하의 방귀까지도 걱정하는, 각하를 진정으로 존경하여 나온 말일 수도 있다. 각하의 정치가 잘 되어서 인민이 모두 행복했다면 이 말은 시원한 우스개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각하는 방귀를 뀌어서 시원해졌을지 몰라도 인민은 각하의 방귀에 코를 찌푸렸고, 보좌관의 알랑방귀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각하의 몸 상태와 심기까지도 배려하는 세심하고 섬세한(?) 보좌진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알랑방귀를 기뻐하는 각하가 더 문제이다. 권력을 해바라기 하는 보좌관은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생리이다. 그러므로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에 아첨하는 것을 나무랄 것이 아니다. 간신배는 언제 어느 때, 어디에나 있다. 아예 간신배를 말끔히 솎아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아부하고 아첨하는 간신배를 솎아낸다고 해서 권력의 주변이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 간신배의 농간에 틈을 주지 않는 일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만 각하가 계셨던 것은 아니다. 각하는 우리 주위에 늘 있다. 우리는 누구나 권력을 쟁취하려고 하며,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손에 잡으면 그것을 누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얼마간 각하이다. 우리는 겉으로는 각하를 미워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각하가 되려고 한다. 방귀 뀐 일을 두고 시원하시겠다는 한마디에 기뻐한 각하를 비웃지만 사실 웃을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아부한 보좌진이나 아부를 듣고 좋아한 각하나 나에게는 객관적 대상이기 때문에 그 일이 비웃음거리가 되지만, 내가 각하라면 아부하는 말이 달콤하게 들리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내가 보좌진이라면 남에게 질세라 심기까지 살펴가며 한마디라도 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싶어질 테니까. 우리에게는 누구나 저열한 권력욕과 과시욕, 권력에 기생하여 한몫 챙기려는 욕망이 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권력에 아첨하고, 남의 아첨을 즐기게 된다. 새 옷을 입으면 처음에는 어색하나 차츰 길이 들어 편해지듯, 아첨과 아부도 처음에는 낯간지럽지만, 자꾸 들어버릇하면 기분 좋아지고 우쭐해지게 마련이다.
사족(蛇足) 한 마디! 각하(閣下)란 이름은 사실 그리 고매한 칭호는 아니다. 늘 나더러 면서기가 되라고 소원하셨던 선조고(先祖考)께서 사시던 세계에서는 각하란 어마어마하게 높은 나리였지만, 원래 각하는 장관급을 부르던 호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관찰사, 곧 오늘날 도지사를 순상(巡相) 각하라고 불렀고, 근현대에도 군대의 준장, 소장과 같은 장성급을 준장 각하, 소장 각하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통령 각하란 호칭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이름으로는 몇 급 아래다. 조선 시대에는 각하의 위로도 재상을 일컫는 합하(閤下), 세자를 일컫는 저하(邸下), 왕을 일컫는 전하(殿下)라는 이름이 있었고, 또 고종이 제국을 선포한 뒤로는 폐하(陛下)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대통령 각하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대통령 전하, 대통령 폐하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대통령이란 말도 이상하기는 이상한 말이다. 통령이면 통령, 총통이면 총통, 주석이면 주석이지 '대통령', '대총통', '대주석'하고 큰 대(大)자를 하나 더 하면 옥상옥인 셈이다. 일본이 대일본이라 하고, 중국이 대중국이라 하고, 영국이 대영국, 미국이 대미국이라 하면 우리가 듣기에 편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