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마땅한 구차함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3. 10. 11:42

- 이백서른한 번째 이야기
2014년 2월 27일 (목)
마땅한 구차함
구차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면
구차하게 하는 것이 구차하지 않은 것이다.

苟而當 則苟亦不苟
구이당 즉구역불구

- 이시원(李是遠, 1789~1866)
 「구암설(苟庵說)」
 『사기집(沙磯集)』

 

  
  구차함이란 버젓하지 않거나 번듯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구차함에 대한 경계는 경전(經傳)의 여러 곳에 나오는데, 『예기(禮記)』「곡례(曲禮)」의 예가 절실하다. “재물을 대하여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말며, 어려움을 당하여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라.[臨財毋苟得 臨難毋苟免]” 우리는 이것 외에도 삶의 국면마다 이런 구차함에 대한 경계를 만나고, 그래서 구차함을 피해야 하는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구차함이 무엇에 대한 구차함이냐에 따라 구차함을 피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삶에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그 무엇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예컨대 의식주와 같은 것이다. 이것에 대해 자신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번듯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겉멋을 부리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버젓한 몇 평짜리 아파트가 나의 버젓함을 대표하는 것이 될 때 그 삶이 얼마나 초라하겠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라면 그렁저렁 대하고 쉽게 만족할수록 내면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다른 하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요구한 것, 자기 자신을 검속하는 것,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것 등에 대해서 대충대충 하고 쉽게 만족할수록 자기 성장은 요원해진다. 이런 것에 대한 구차한 타협과 만족은 내면의 삶마저 구차하고 황폐하게 한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위에서 말한 대로 그 구분이 확연하지 않은 때가 많다. 앞의 『예기』의 경계 중에 “재물을 얻으려는 것”에 대해 말하면, 재물은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재물을 얻겠다고 자신과 약속한 일이라면 그 일은 또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구암설(苟庵說)」에서 어떤 일이 구차한지 구차하지 않은지 논하기 앞서 그 일을 마땅함의 저울에 올려보길 권하였다: “무엇에 대해 구차하게 해야 하는가? 구차하게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구차하게 한다. 무엇에 대해 구차하게 하지 않아야 하는가? 구차하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해 구차하게 하지 않는다.[惡乎苟? 苟於苟; 惡乎不苟? 不苟於不苟.]”

  마땅함의 저울질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저울질을 거치면 구차함은 어느 측면에서든 더 이상 구애(拘碍)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 오재환(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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