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때 대제학과 호조 판서를 지낸 남유용이 쓴 글이다. 남유용은 본관이 의령(宜寧)이고, 자가 덕재(德哉), 호가 뇌연(雷淵), 시호가 문청(文淸)이다. 바른말을 잘하고 청백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던 인물로, 정조(正祖)의 스승을 지내기도 하였다. 난초를 가꾸는 법에 대해서 말한 이 글은, 우리가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화두(話頭)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교육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역대의 정부마다 숱하게 많은 조처와 처방을 내놓았다. 이번 정부에서는 ‘선행학습금지법’이라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법까지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교육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도리어 갈수록 더 꼬여만 갈 것 같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이유로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명문대학을 나오는 것만이 평생의 앞날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인 학벌 위주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자식만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서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학벌 위주의 사회 분위기와 자기 자식만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마음, 이 두 가지가 서로 맞물려서 갖가지 병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먼저 해소하지 않는 한, 어떠한 처방을 내리고 어떠한 조처를 취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백약이 무효이다.
얼마 전 언론 보도를 보니, 요즈음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스터디룸‘이라는 가구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 스터디룸 가구라는 게 도대체 무언가? 한 사람이 들어가 앉으면 꽉 찰만한 크기의 직육면체 부스 안에 책상과 의자가 부착돼 있는 것인데, 이 가구의 값이 2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좁은 공간의 부스가 공부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차단하고 집중력을 극대화하며,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기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스터디룸 가구라니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자녀를 사람으로 보아 양육(養育)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만 할 줄 아는 동물로 보아 사육(飼育)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지나친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그렇게까지 공부해야만 하는 아이들이 불쌍하고, 그렇게까지 자녀를 닦달해야만 하는 강남 엄마들이 불쌍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좋은 학교에 가야만 대접받는 우리 사회가 불쌍하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제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더라도 극성스러운 강남 엄마들한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강남 엄마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 역시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일 뿐이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부모들은 강남 엄마들처럼 할 수 있는 능력과 처지만 된다면, 모두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누구나 그렇게 할 것이다.
옛말에, 자식 교육은 성인(聖人)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다 자기 자식이 좋은 학교를 나와서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남들로부터 대우를 받으면서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식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온갖 극성을 떨면서 자기 뜻대로 자식을 키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자식을 무조건 의사를 만들고 법관을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부모 된 자의 욕심이다. 그렇게 키울 경우 그 자식이 설령 좋은 직업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지는 미지수이다.
그윽한 난 빈 골짝서 자라나거니, 뽑아오지 않더라도 뭐가 해 되랴. 제 스스로 춘풍 속에 자라나서는, 좋은 향기 멀리까지 풍길 것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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幽蘭在空谷 不採亦何害 只自長春風 馨香期遠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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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진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이 지은 「술회(述懷)」라는 시이다. 난초는 그저 비바람도 맞고 서리와 눈도 맞고 자라야 한다. 그래야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건강한 이파리를 가진,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난초로 자란다. 온실 속에서 사람의 손길에 의해 자라난 난초는 보기만 좋을 뿐, 자연 속에서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라난 난초만 못한 것이다.
난초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알맞은 교육을 적당하게 받으면서 자라야지만, 건강하게 자라나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사람들은 자신의 지나친 욕심으로 자식들의 삶을 짓눌러서는 안 된다. 그저 자식들이 하루하루가 행복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들이 지나친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 어울려 지내면서 밝게 웃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서로 어울려 지내도 행복해 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저 꼬맹이들이 자라나서도 밝은 웃음으로 웃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