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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를 키우는 법 -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녀, 어떻게 키워야 하나?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3. 10. 12:12

- 삼백열네 번째 이야기
2014년 3월 10일 (월)
난초를 키우는 법 -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녀, 어떻게 키워야 하나?

  봄이 왔다. 만물이 약동하고, 모든 이들이 설렌다. 바람은 곱고 햇볕은 따사로우며, 새싹은 돋아나고 꽃은 핀다. 천지자연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특히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 아이들이다. 새로이 학교에 입학하는 새내기 꼬맹이들이다. 새로운 희망이 가득한 얼굴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환하게 웃으며 재잘대는 꼬맹이들의 모습, 생각만 해도 저절로 흐뭇해진다.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도, 마냥 흐뭇해하지만은 못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저렇게 환한 얼굴로 생동감 넘치게 웃을 수 있을지 걱정되어서다. 우리는 저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언제나 환하게 웃으면서 아름답게 커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경쟁에서 낙오하면 그대로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질곡에 빠뜨린다. 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가슴이 아프다.

  어떤 집의 남쪽 담장이 무너진 으슥한 곳에 난초가 자라나 있었다. 무너진 흙더미가 난초를 에워싸고, 우거진 덤불이 난초를 뒤덮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난초가 자라나 있는 줄을 몰랐다. 이에 주인이 어린 동자를 시켜서 우거진 덤불을 제거하고 무너진 흙더미를 정리하고 단을 쌓아 난초가 잘 보이게 하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그 난초를 귀하게 여겨서 그런 것이다. 그러자 곁에서 보고 있던 객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난초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도리어 난초를 해치는 것이다. 무릇 이 난초는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자라나서 우거진 덤불 속에서 크면서 자신을 숨긴 채 지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자네는 흙더미를 정리하고 덤불을 걷어내어 숨겨져 있던 것을 잘 보이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귀하게 여기는 바에는 반드시 이름이 붙는 법이다. 장차 이름을 붙이는 자가 ‘이 풀은 상서로운 풀이고 향기로운 풀이다.’라고 하면서, 손으로 쓰다듬고 코로 향기를 맡아, 난초를 본성대로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 난초에게 있어서 다행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말하기를,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이 난초는 기이한 풀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곳에 숨겨져 있어서 끝내 그 기이함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 또한 난초에게 있어서 다행이겠는가?”

라고 하니, 객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것을 걱정하는가. 이 난초는 그윽한 곳에서 오래도록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장차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면, 바람을 맞고 비에 젖어 뿌리가 굳건해지고 입이 무성해지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을이 되어 서리와 이슬이 내려 뭇 초목들이 시들어 죽은 뒤에는 자네 집 뜰에는 푸른빛이 도는 풀이 있을 것이며, 겨울이 되어 눈이 내려서 뭇 기운이 폐색된 뒤에는 자네의 방안으로 은은하게 스며드는 향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난초가 제아무리 기이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들 드러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무릇 사물이 숨겨지고 드러남은 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이처럼 급급해하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객을 돌아보고는 큰 소리로 웃은 뒤에 동자에게 손짓하여 그만두게 하고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舍南敗垣之陰。有蘭茁焉。土崩者擁之。草蔓者緣焉。過者罔有知爲蘭。主人敎童子去蔓䟽崩。壇以崇之。貴之也。客有笑于傍曰。子之貴蘭。適以害之也。夫是蘭也。惟崩中乎生。蔓側於長。幽獨掩晦。是以茂也。今子欲夷厥由生。芟厥由長。章厥由晦。貴之所在。名必隨之。將有名之者曰玆瑞草也。香草也。手就而摩。鼻就而嗅。罔以遂厥性。豈蘭之幸哉。主人曰雖然。爲玆異草也。猶閟鬱于玆。卒莫見奇。斯又其幸歟。客又笑曰奚患。夫是夫惟處幽也久。殆將顯。風滋雨潤。根鞏而葉強。方秋霜露旣降。百卉枯死。子之庭。有嫩然靑者。方冬霰雪旣集。衆氣閉蟄。子之室。有黯然香者。雖欲其不見奇。得乎哉。凡物幽若顯在時。子胡汲汲焉。於是主人顧客大噱。麾童子曰止。夫子之言。殆達者也。
 
- 남유용(南有容, 1698~1773), 「난설(蘭說)」, 『뇌연집(雷淵集)』

                     

                           
     ▶김응원(金應元, 1855~1921)의 묵란도(墨蘭圖),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자료출처: 국립진주박물관 홈페이지                 

 

  
  조선 영조 때 대제학과 호조 판서를 지낸 남유용이 쓴 글이다. 남유용은 본관이 의령(宜寧)이고, 자가 덕재(德哉), 호가 뇌연(雷淵), 시호가 문청(文淸)이다. 바른말을 잘하고 청백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던 인물로, 정조(正祖)의 스승을 지내기도 하였다. 난초를 가꾸는 법에 대해서 말한 이 글은, 우리가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화두(話頭)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교육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역대의 정부마다 숱하게 많은 조처와 처방을 내놓았다. 이번 정부에서는 ‘선행학습금지법’이라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법까지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교육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도리어 갈수록 더 꼬여만 갈 것 같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이유로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명문대학을 나오는 것만이 평생의 앞날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인 학벌 위주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자식만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서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학벌 위주의 사회 분위기와 자기 자식만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마음, 이 두 가지가 서로 맞물려서 갖가지 병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먼저 해소하지 않는 한, 어떠한 처방을 내리고 어떠한 조처를 취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백약이 무효이다.

  얼마 전 언론 보도를 보니, 요즈음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스터디룸‘이라는 가구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 스터디룸 가구라는 게 도대체 무언가? 한 사람이 들어가 앉으면 꽉 찰만한 크기의 직육면체 부스 안에 책상과 의자가 부착돼 있는 것인데, 이 가구의 값이 2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좁은 공간의 부스가 공부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차단하고 집중력을 극대화하며,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기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스터디룸 가구라니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자녀를 사람으로 보아 양육(養育)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만 할 줄 아는 동물로 보아 사육(飼育)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지나친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그렇게까지 공부해야만 하는 아이들이 불쌍하고, 그렇게까지 자녀를 닦달해야만 하는 강남 엄마들이 불쌍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좋은 학교에 가야만 대접받는 우리 사회가 불쌍하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제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더라도 극성스러운 강남 엄마들한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강남 엄마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 역시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일 뿐이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부모들은 강남 엄마들처럼 할 수 있는 능력과 처지만 된다면, 모두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누구나 그렇게 할 것이다.

  옛말에, 자식 교육은 성인(聖人)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다 자기 자식이 좋은 학교를 나와서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남들로부터 대우를 받으면서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식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온갖 극성을 떨면서 자기 뜻대로 자식을 키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자식을 무조건 의사를 만들고 법관을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부모 된 자의 욕심이다. 그렇게 키울 경우 그 자식이 설령 좋은 직업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지는 미지수이다.

그윽한 난 빈 골짝서 자라나거니,
뽑아오지 않더라도 뭐가 해 되랴.
제 스스로 춘풍 속에 자라나서는,
좋은 향기 멀리까지 풍길 것이리.

幽蘭在空谷
不採亦何害
只自長春風
馨香期遠大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진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이 지은 「술회(述懷)」라는 시이다. 난초는 그저 비바람도 맞고 서리와 눈도 맞고 자라야 한다. 그래야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건강한 이파리를 가진,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난초로 자란다. 온실 속에서 사람의 손길에 의해 자라난 난초는 보기만 좋을 뿐, 자연 속에서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라난 난초만 못한 것이다.

  난초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알맞은 교육을 적당하게 받으면서 자라야지만, 건강하게 자라나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사람들은 자신의 지나친 욕심으로 자식들의 삶을 짓눌러서는 안 된다. 그저 자식들이 하루하루가 행복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들이 지나친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 어울려 지내면서 밝게 웃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서로 어울려 지내도 행복해 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저 꼬맹이들이 자라나서도 밝은 웃음으로 웃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정선용 글쓴이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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