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죽음, 즐거움과 슬픔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3. 10. 12:00

- 여든한 번째 이야기
2014년 3월 6일 (목)
죽음, 즐거움과 슬픔

죽음이야 선군의 화보다 앞서있고
무덤이야 선군의 유택에 가까우니
아, 너의 요절은
즐거울 일이지 슬픔이 아니구나
모질게 살아가는 나는
사는 것이 너무 괴로우니
너의 묘지명에 눈물 적시며
이 슬픈 마음 고하노라

其死也前先君之禍
其藏也近先君之宅
嗟爾之夭
可樂非戚
是頑然者
以生爲毒
涕漬爾銘
唯哀是告

- 김창협(金昌協, 1651~1708)
「여섯째 아우 묘지명[六弟墓誌銘]」
『농압집(農巖集)』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예조 판서, 대제학 등을 지낸 김창협이 18세로 요절한 동생 김창립(金昌立, 1666~1683)의 묘지명으로 쓴 글이다. 묘지명과 함께 작성된 병서(幷序)에는 그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 설명되어 있다. 묘지명은 원래 아버지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지으려 했는데 김창립이 죽은 지 7년 만인 1689년 기사환국 때에 김수항이 죽음을 맞게 되자 대신 김창협에게 당부하여 짓게 하였으며, 이에 따라 다시 7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자신이 이 묘지명을 쓴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감정은 슬픔이다. 그대가 떠났으니 애통한 일이며, 너도 슬프고 나도 슬프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러나 김창협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즐거울 일이지 슬픔이 아니[可樂非戚]’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왜 그런가? 김창협 자신은 아버지가 유배 길에 오르고 또 그곳에서 사사(賜死)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 속에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다. 이에 반해 아우는 비록 요절했지만, 그 죽음이 아버지의 죽음보다 앞서 있었기에 부친의 참상을 목격하지 않았으니 즐거운 일이고, 또 현재의 무덤이 아버지의 무덤과 가까이에 있어 죽어서라도 아버지 곁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인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나와 별 상관없는 죽음이라 생각될 때에는 무덤덤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죽음이란 단어는 항상 슬픔이란 단어를 동반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을 멀리 보내야 할 때에는 슬픔이란 단어만으로는 그 심정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슬픔이란 떠나는 자의 슬픔인가, 아니면 남은 자의 슬픔인가?

  호상(好喪)이라 말하는 경우에는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다지 슬픈 기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경우 떠나는 자는 슬프고 남은 자는 기쁜 것인가, 아니면 양쪽 모두 기쁜 것인가? 고통스러운 질병 또는 힘겨운 생활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에는 슬픔으로 그를 떠나보내면서도 “저세상에서는 고통 없이 편안히 지내소서.”라는 말로 죽은 이를 축원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는 떠나는 자의 기쁨이고 남은 자의 슬픔인가? 희망 없이 크게 아픈 사람을 문병한 뒤엔 돌아서서 흔히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아픈 사람의 고통을 생각해서인지, 옆에서 간호하는 사람의 힘겨움을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이런 경우에도 “즐거울 일이지 슬픔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산 사람의 즐거움과 슬픔은 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의 즐거움과 슬픔까지 우리가 논할 수 있을까?

  김창립은 자식으로 딸을 하나 두었다고 한다. 17세에 결혼하여 18세에 죽었으니, 그가 죽었을 당시 딸은 포대기에 싸여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아무런 추억을 갖지 못하고 자랐을 딸과 젊디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부인은 그 죽음을 기쁨이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죽은 자가 지각이 있다면 그런 자식과 부인을 생각하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는 나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억지로 다른 사람들과 죽은 사람의 감정까지 멋대로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내와 어린 딸의 곁을 떠난 김창립의 죽음이, 나는 아직도 슬프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