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사회는 유교를 버리고 있다
인문학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서점에서는 인문학 책이 많이 팔리고 있고, 인문학 강좌에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현장을 가보면 한국 유학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음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이다. 한국 인문학 역사에서 유학을 빼놓을 수 없다. 더욱이 유학은 문사철을 모두 아우르는 학문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인문학 열풍의 현장에서 한국 유학에 대한 관심을 찾아보기가 어려운가.
우리 사회가 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이고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낡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유교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유교가 여성 차별적이고, 충과 효를 강조하는 데서 보듯이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가족 정실주의(情實主義)와 보수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1985년과 2005년도 통계청의 종교인 통계를 보면 불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등 한국의 모든 종교의 신자가 늘고 있는데, 유독 유교만 신자 수가 483,366명에서 104,575명으로 78.4%가 줄었다. 한국 사회는 유교를 버리고 있다.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조선 사회는 유교 사회이기에 유교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조선 사회가 망하고 일제 식민지가 되었을 때, 유교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때부터 유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해방 후 한국 사회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유교와 유학이 우리 시대와 맞지 않는 가치 체계이고 현세에 별 쓸모없는 낡은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 유교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과연 유교는 버려야 할 고물인가. 유교가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것은 조선 시대다. 한국인들은 한국 유교가 조선 시대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발전된 봉건적인 이데올로기라서 지금 우리 사회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트교, 불교, 이슬람교를 포함한 세계적인 종교 대부분이 지금부터 1,500년에서 2,000년 이전 시기, 유목사회 또는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이들 종교는 유교보다 훨씬 이전에 성립되었음에도 세계 종교로 발전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한국인들은 왜 다른 종교와 비슷한 시기, 또는 그보다 후대에 성립된 유교를 낡고 우리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왜 유교만 현대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가?
필자는 유교 경전에 대한 해석이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유교를 짊어지고 갈 유림 층의 취약함이 두 번째 이유라 생각한다. 세계적인 종교는 인류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쉽게 설파하고 있다. 사실 세계적인 종교들의 경전을 찬찬히 살펴보면,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생각보다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종교들은 보편적 가치 중심으로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새롭게 정리해 왔다. 이에 반해 한국 유교만은 그렇지 못하였다. 조선 사회가 망한 후 유교에서도 새로운 해석을 위한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3. 사회적 약자, 위기에 처한 세계 어린이를 돕는 유교
그렇다면 유교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현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 중심으로 유교를 과감히 재해석해서 쉽게 일반인들에게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유학자 장재(張載)는 모든 사람이 동포라는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효라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펼치고 있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이다. … 모든 사람은 나의 동포요, 여타 사물과 생명들은 내 친구이다. 군주는 집안의 맏이에 해당하고 대신들은 그 맏이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내 집 어른을 받드는 것이고, 힘없고 외로운 자를 보살피는 것이 내 자식을 거두는 일과 같다. 위대한 자는 이 덕성이 몸에 밴 사람이오, 현자는 우리 중 뛰어난 사람이다. 천하에 고단하고 병든 사람, 부모 없고 자식 없고 지아비 없는 사람이 모두 나의 형제이다. 넘어지고도 호소할 데 없는 가련한 사람들이다. 이 덕성을 지켜가는 것이 아들 된 도리요, 이 길을 싫어하지 않고 즐겨 따르는 자가 진정한 효자이다. 이 덕성을 돌보지 않는 것은 패덕이요, 인간성을 배반하는 것이다.”
장재는 사회적 약자야말로 우리 형제인데 이들을 돕는 것이 효자라고 하고 있다. 효를 가정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 효로 확장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복지사회를 뒷받침하는 이론을 장재에게서 읽을 수 있다. 퇴계가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의 동포이고, 만물은 모두 나와 같은 평등한 존재이다. 성인은 이 같은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 사람 모두를 동포로 보자는 퇴계와 장재의 글은 사해동포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들고 있고, 인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글로벌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다.
한국 유교의 중심 기관은 향교와 서원이다. 필자의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효를 강조하는 향교와 서원이 사회적 약자를 돕는 프로그램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세계인을 같은 동포로 보고, 아프리카 어린이를 포함하여 위기에 처한 세계 빈곤지역 사람들을 돕자는 프로그램을 포함시켰다는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 우리 사회와 세계의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이 진정 유교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일이고, 향교와 서원이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시작해야 할 일이 아닐까?
유교를 우리 시대에 맞는 가치, 인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에 맞게 재해석하여 우리 시대의 훌륭한 문화자산이 되게 하는 작업을 지금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우리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한 재해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향교와 서원이 앞서서 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유교가 스스로 변할 때 일반인들은 유교를 우리 시대의 소중한 문화자원, 정신적 자신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4. 한국인들의 변화, 선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며칠 전 한국인들의 선비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가 신문에 실렸다. 한국인 75%가 선비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12%에 불과하였다. 조선 시대 유교 사회를 이끈 선비를 좋게 보고 우리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선비 정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그 이유로 선비의 ‘인격 수양’과 ‘청렴’을 들었다. 선비정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권위주의’ ‘당파 싸움’ ‘융통성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한국 사회가 선비정신의 영향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있다’와 ‘없다’가 각각 41.55와 45.7%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선비 정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관으로 보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통계는 한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왜 유교와 유학을 우리 시대의 문화자산, 정신자산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국 역사에서 전통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조선 시대 문화이다. 조선 시대 문화는 유교문화이다. 때문에 우리가 전통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유교와 유학을 버릴 수 없다. 유교와 유학을 제외하고 한국의 전통문화, 한국의 인문학을 논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교와 유학이 우리 시대의 문화 자원, 우리 시대 문제에 답하는 인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의 재해석을 통한 현대화 작업을 계속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유학과 유교의 현대화는 향교와 서원이 사회적 약자를 돕고 위기에 처한 세계 어린이를 돕는 일과 같은 조그마한 실천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