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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 부모에게 달렸다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4. 3. 24. 13:04
- 삼백열다섯 번째 이야기

2014년 3월 24일 (월)

교육 문제, 부모에게 달렸다
올해 막내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느새 햇병아리 초등학생이 된 귀여운 조카 덕분에 형제들과 모처럼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의 기억은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 듯하다. 나 역시 초등학교 입학식 때 설레고 긴장했던 장면이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 하지만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의 느낌은 그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어느새 학부모가 되었다는 뿌듯함과 책임감으로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어깨가 무거워지던 순간. 아이가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탈 없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며 바람직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되새겨보는 순간이었다.

어릴 때는 혈기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온화하고 부드럽게 가르쳐서 본성을 따르게 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해야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해치지 않고 가르침도 따르기 쉽다. 만약 엄하게 윽박지르거나 매를 댄다면 순순히 따르지도 않을뿐더러 마음을 다치고 의욕이 꺾여 생병이 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무익한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부모와 자식은 은혜로 맺어진 관계이니, 차라리 가르치지 않을지언정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다 같을 수는 없으니 모두에게 최고가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자질이 뛰어나서 큰 인물이 될 만한 아이라면 학문을 하게 하고, 또 당대의 훌륭한 학자를 찾아가서 배우게 해야 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과거(科擧) 공부를 시킬 만한 아이라면 수준에 맞게 가르치고 또 반드시 성취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질이 다소 부족한 아이라도 교육을 포기하여 남에게 천시당하거나 질시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는 일찍 결정해야지, 시일을 늦추다가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식이 겨우 말을 배우면 대구(對句)를 짓도록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들어가면 과거 공부를 본분으로 삼고 학행을 겉치레로 삼게 된다. 그래서 종일 익히는 것이 모두 이욕(利欲)이고, 청소하고 응대하는 일과 효제충신(孝悌忠信) 등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고을에 미풍양속이 없고 세상에 훌륭한 인재가 없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정에서 부모가 예법에 맞게 행동하여 선한 말만 듣고 선한 행실만 보게 한다면 자제들의 언행도 반드시 모두 선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교재는 지금 시속처럼 『사략(史略)』을 우선할 필요가 없다. 먼저 『동몽수지(童蒙須知)』와 『소학(小學)』을 가르치되 쉬운 말로 설명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충분히 읽어 의문나는 점이 없게 된 뒤에 다른 책을 가르쳐야 한다.


人之幼也, 血氣未定, 敎之常須和緩, 以順其性, 則雖勞無傷, 而敎亦易從. 若敎督太嚴, 常加誚讓楚撻, 則所敎不必順從, 而心喪氣奪, 必至生病, 非徒無益, 而又害之. 況父子主恩, 寧廢其敎, 而不可如此, 切宜戒之.
凡人家子弟, 作人不同, 固難一一以向上事望之. 其有聰明端重可爲學問者, 固當敎以學問, 又求當世之賢人君子, 使之從學. 有不及於此而僅可爲文字科業者, 則敎之以此, 亦必期其成就. 雖其最下者, 亦不可棄而不敎, 爲人所賤惡. 此宜早決, 而不可遲晩失時也.
人家生子, 纔能言語, 先作對句, 已入學, 以科業爲本分, 以學行爲外飾. 終日所習, 無非利欲, 而不知灑埽應對孝悌忠信爲何事. 所謂“鄕無善俗、世乏良材”者, 皆以此也. 若使家庭之間, 禮法興行, 所聞無非善言, 所見無非善行, 則彼之所言所行, 亦必爲善而不爲惡矣.
凡小兒授書, 不必如今俗以史略爲先. 先敎以童蒙須知及小學, 以尋常言語解釋其義, 使之入於心耳, 而熟讀無疑, 然後敎以他書.

- 신익황(申益愰, 1672~1722), 「가숙잡훈(家塾雜訓)」, 『극재집(克齋集)』


조선 후기의 학자 신익황이 가숙(家塾, 서당)의 교육에 대한 견해를 적어 놓은 글이다. 서당은 공적인 초등교육 기관이 없던 시대에 마을이나 집안 단위로 어린 자제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그런데 평생 교육에 종사했던 신익황의 눈에 비친 당시 초등교육의 문제점이 오늘날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특성과 능력에 상관없이 고강도의 교육을 시키려 들고, 훗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조기에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유교 사회에서는 본래 바른 생활습관과 품성을 배양하기 위한 ‘조기 인성교육’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초등교육 단계의 교재로 『소학』, 『동몽선습』 등을 권장하였다. 지식 교육도 획일적이 아니라 개인의 수준과 능력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행해졌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지위나 부와 상관없이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인사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졌고, 국가에서는 개결(介潔)한 성품과 행실을 갖춘 선비에게 청백리라는 명예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후대로 가면서 성공과 출세를 위한 선행적 지식 축적과 과거 시험에 대비한 작문 연습이 초등교육 단계로까지 퍼져갔다. 신익황은 이런 현상이 부모의 욕심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하고, 학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자녀를 위축시키고 의욕을 꺾으며,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해쳐 역효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면서 아이의 수준과 성향에 맞추어 가르치기를 권하고, 지식보다 예절과 인성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의 높은 교육수준은 그간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이끌어 왔으나, 이제는 지나친 교육열이 사회 발전과 통합을 가로막는 한 가지 요인으로 지적되기에 이르렀다. 입시전쟁 속에서 극도로 거대해진 사교육 시장이 공교육을 무력화시키고, 부모의 능력이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현상으로 계층 간의 격차와 갈등이 증폭되었다. 막대한 교육비로 가정경제는 휘청거리는데 청년층의 실업난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불안해진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학원으로 내몰아 놀이터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는 미래 세대의 압박감과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시원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와 전쟁터와 다름없는 대학입시, 좋은 직장만을 목표로 하는 듯한 대학 교육현장.... 삶의 가치와 교육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모두들 말한다. 하지만 내 자녀의 교육문제에 당면하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진다. 부모는 내 아이가 경쟁에서 뒤쳐질까 봐 초조해하고, 그런 부모를 보며 아이들은 불안해한다.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경쟁 대열에 동참해 버리고 만다. 자녀 교육에 관한 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을 지키기가 어렵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시키던 때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주기만을 바랐던 초심(初心)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신익황이 진단한 ‘부모의 과도한 욕심’은 내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새삼 절감한다.



조순희 글쓴이 : 조순희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역서
    - 『홍재전서』, 『국조보감』,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번역에 참여
    - 『국역 기언 5』,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명재유고12』, 한국고전번역원, 2008
    - 『국역 허백당집3ㆍ4』, 한국고전번역원, 2011~2012
    - 『국역 회재집』,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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