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형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문종 때 정인지(鄭麟趾) 등과
『고려사』 개찬에 참여했고, 전라도 관찰사, 형조 참판, 대사성, 호조 참판, 중추부 판사 등을 지낸 인물입니다. 현손(玄孫)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가 지은 신도비명에 보면, 저자의 탄생과 관련한 일화가 있습니다. 부친 이회림(李懷林)이 늦도록까지 아들이 없어 삼각산(三角山)에
기도하여 그를 낳았다는 이야기와, 저자가 태어나기 전날 밤에 부친이 꿈을 꾸었는데, 큰 바위에 앉아 있자니 백룡(白龍)이 바위를 쪼개고 나와
날아오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석형(石亨)은 이 꿈으로 인해 생긴 이름입니다.
이 시에서 저자는 비가 갠 봄날 아침의
청신(淸新)한 풍경과 이를 바라보는 마음을 노래하였습니다. 새봄의 풍경처럼 시에도 거추장스럽고 까다로운 부분이 없습니다. 아침, 밝은 풍광,
구름이 지나간 산,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들, 들판의 아지랑이, 솔숲에 부는 바람 등 봄 풍경을 대표하는 소재들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증점이 비파를 놓고 일어섰다는 것은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보이는 말입니다. 공자가 여러 제자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 보라고 하자, 증점이 비파를 타다 말고 일어나서 대답하였습니다.
“늦은 봄에 봄옷이 지어지면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저자는 자연 속에서 흥취를 느끼며 살겠노라는 뜻을 증점에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증점은 의관을 갖춰 입고 동자를 데리고 무우에 가서 목욕하고 읊조리고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자신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이런 흥취를 다
느끼고 있노라며 자연과 함께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하고 있습니다.
미세 먼지로 뿌옇던 하늘을 본 터라 봄비에 맑게 씻긴 봄
풍경이 더욱 반갑습니다. 이 시절, 앞이 안 보이게 뿌연 먼지 같은 세상 이야기들을 씻어줄 단비도 함께 내렸으면 합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그런 봄 말고, 마음 한 구석도 구애됨이 없이 그저 울긋불긋 꽃대궐을 만끽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화창한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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