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관(諫官)을 설치한 것은 좋은 제도로서, 개보(介甫, 왕안석(王安石))가 그것을 그르게 여긴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의론이 불가한 이유는 대개 3가지가 있다. 이제 그의 말에, “간관은 관직이 낮고 책임이 중하여, 공자(孔子)가
명분을 바로잡았던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간관의 직임은 반드시 신진(新進) 사류(士類)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그 관직이 낮을 수밖에
없다. 대개 돈후하고 신중하여 천하의 상도(常道)를 지키고 천하의 사물을 진정시키는 것은 노성(老成)한 이보다 나은 이가 없지만, 지기(志氣)가
날카로워 천하의 시비를 바로잡고 천하의 득실을 논하는 것으로는 신진보다 나은 이가 없다. 이것이 간관은 반드시 신진을 쓰는 이유이다. 관직은
비록 낮지만, 자신은 관직이 낮다고 해서 스스로 낮게 여기지 않고, 남들은 관직이 낮다고 해서 그 말을 낮게 여기지 않는다. 유독 개보만이 그
낮음을 혐의스러워하니, 불가한 첫 번째 이유이다. 그의 말에, “옛날에는 관사(官師)가 서로 바로잡고, 백공(百工)들이 각각 자신이
맡은 일을 가지고 간언하였으니, 간관은 옛날의 제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듣기로 옛날에는 풍속이 순후하고 일이 간단하여 유사(有司)가
각각 그 직분에 따라 가부를 아뢰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후세에는 형편상 그렇게 할 수가 없었으니, 만약 그대로 행한다면 장차 그
번잡함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대개 간관의 책임은 의당 공평하고 충직한 사람이 맡아야 하니, 사납게 굴거나 들추어내는 것을 가지고
능력의 척도로 여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간관의 재주는 백, 천사람 중에서 한두 사람에 불과하니, 이 한두 사람을 들어서 별도로 간관으로 삼아서
맡기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간관을 두지 말고 백관들로 하여금 구차하게 나란히 서서 일마다 하나하나 따지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이에 간관을
설치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래서 좋은 제도가 되는 것이다. 만약 옛날에 없던 것을 지금 새로 만들었다고 그르게 여긴다면,
삼공(三公), 삼고(三孤), 육경(六卿)은 주(周)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요순(堯舜) 임금 시대에는 삼공, 삼고, 육경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서경(書經)』에 “요순 때에 백 가지 관직을 두었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하(夏)나라, 상(商)나라 때는 관원이 배가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세대가 내려올수록 일이 번다하여 관직이 옛날에 비해 늘어났다는 뜻일 따름이다. 개보는 유독 옛것에 집착하여 오늘을
규제하려고 한단 말인가? 불가한 두 번째 이유이다. 그의 말에 “임금의 명이 나온 뒤에 간관이 그것에 대해 간언하니, 위에서 받아들여
고치게 되면 이는 선비가 명령을 내고 임금이 듣는 꼴이 될 것이고, 만약 받아들이지 않고 행해버린다면 이는 신하가 말을 다하지 못하고 임금이
허물을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경우가 된다.”라고 하였다. 대개 임금의 과실은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과 같고 허물을 고치는 것은 해와
달이 바뀌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 침식이 있고 바뀔 때에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으니, 어찌 감출 수 있겠는가? 이제 개보가 간관의
간언을 가지고 ‘명령을 낸다.’고 하고, 임금이 들어주는 것을 가지고 마치 덕이 부족한 듯이 여겨, 사전에 은밀하게 진언하여 장차 있을 일을
구제하는 것만을 간쟁(諫諍)의 도라고 말하고, 명령이 나오고 일에 드러난 뒤에 간쟁하는 것을 불가하다고 한다면, 이는 그 마음이 장차 천하
사람들에게 허물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성왕(成王)이 군진(君陳)에게 경계하기를, “너는 아름다운 꾀와 아름다운 계책이 있거든 들어와
안에서 네 임금에게 고하고, 너는 마침내 밖의 백성들을 가르쳐 말하기를 ‘이 꾀와 이 계책은 오직 우리 임금님의 덕이다.’라고 하라.”라고
하였다. 옛날 사람이 이것 때문에 성왕이 광명정대함을 다하지 못했다고 의심하였는데, 개보가 또 그런 뜻을 답습한단 말인가? 불가한 세 번째
이유이다. 아아. 개보가 뜻이 강한 선비들을 시기하여 핍박하다 보니, 바야흐로 신법(新法)을 행하려고 할 때 언관(言官)들이 헐뜯는
경우가 많았다. 개보는 그것이 싫었기 때문에 이런 논의를 낸 것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후세의 간관들은 대개 녹봉이나 축내는 쓸데없는 관직일
뿐이니, 없애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없애지 못하는 것은 대개 또한 공자께서 그 예(禮)를 아낀 뜻*이
아니겠는가?
*공자께서
그 예(禮)를 아낀 뜻 : 형식이라도 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그 예의 본뜻을 복원할 수 있음을 말한다. 노(魯)나라 문공(文公)이 삭일(朔日)에
지내는 종묘(宗廟)의 제사에 아예 불참하자 자공(子貢)이 그 제사에 소용되는 양(羊)조차 아까워하여 없애려 하였는데, 공자가 “사(賜)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를 아끼노라.”라고 한 것에서 나왔다. 『논어』 「팔일(八佾)」 諫官之設良制也。而介甫非之非也。其論之不可。蓋有三焉。今其言曰諫官官卑責重。非孔子正名義也。蓋聞諫之任。必用後進之士。故其官不得不卑。夫敦厚周愼。守天下之典常。鎭天下之事物。莫善於老成。志氣鋩銳。直天下之是非。斥天下之失得。莫先於後進。此所以諫官必用後進者也。官雖卑。己不以官卑自卑。人不以官卑卑其言。獨介甫嫌其卑。不可一也。其言曰古者官師相規。工執藝事以諫。諫官非古也。蓋聞古也風淳事簡。有司之臣。各以其職陳可否。誠美矣。然後世勢不得因。縱因而行之。將不勝其紛然矣。夫諫之任。公平忠直之人所宜居。不以悍厲强訐爲得。是以諫官之材。百千人乃一二。則擧此一二。別爲諫官而任之可乎。勿置諫官而使與百執事者。苟然竝列。以一職一事責之可乎。於是諫官不得不設。而所以爲良制也。若以無於古刱於今爲非。則三公三孤六卿。周家所立。唐虞上世。未聞有三公三孤六卿者。書曰唐虞建官惟百。又曰夏商官倍。言世下事繁。官增于古耳。介甫獨奈何膠古而法今耶。不可二也。其言曰君命已出而諫官諫之。上聽而改。是士制命而君聽也。不聽而遂行。是臣不得言而君恥過也。蓋聞人君之過如日月之蝕。改過如日月之更。其蝕也更也。人皆見之。豈可使諱也。今介甫以諫官之諫謂制命。以人君之聽有若歉德。密陳於前。救之於將然。謂諫爭之道。而出於命發於事。然後爭之謂不可。則是其心將以諱過於天下之人也。成王戒君陳曰。爾有嘉謀嘉猷。入告爾后于內。爾乃順之于外曰斯謀斯猷。惟我后之德。嘗以此疑成王未盡光明正大。介甫又襲其意耶。不可三也。於乎。介甫猜隘執拗之士。方新法之行。言事者多毁之。介甫病之。故爲此論與。雖然後世諫官。大抵靡廩宂官耳。去之可也。然而不去者。蓋亦夫子愛其禮之意乎哉。
-
이의숙(李義肅, 1733~1807), 「간관론변(諫官論辨)」,『이재집(頤齋集)』 ,
잡저(雜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