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설형문자=쐐기문자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6. 2. 9. 14:22

설형문자(쐐기문자)

다른 표기 언어 cuneiform writing , 楔形文字

요약 BC 3000년대말부터 BC 1세기경까지 많은 언어의 기록에 사용했다.

  • 설형문자 최초의 문서는 BC 3000~1000년대에 수메르어로 씌었는데 그림을 발음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조합해 표시했다.
  • BC 2000년대에 점차 단순화된 선을 사용했는데, 첨필로 점토판에 눌러 썼기 때문에 쐐기 모양이 되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씌었으며, 설형문자 부호는 행 옆에 표시했다.
  • BC 7~6세기에 설형문자 활용도는 줄어들었지만 학자나 보수적인 성직자들은 몇 세기 동안 계속
  • 사용되었다. 설형문자로 쓰인 최후의 점토판의 연대는 AD 75년경이다. 설형문자로 작성된 수메르어는 비교적 늦게 해독된 언어에 속한다.

 

 

BC 3000년대말부터 BC 1세기경까지 많은 언어의 기록에 사용했다. 설형문자로 작성된 최초의 문서는 BC 3000~1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 남부와 칼데아 주민들이 사용하던 수메르어로 씌어졌다.

고대 도시 우루크 유적에서 발견된 이 문서는 상형문자 양식의 설형문자로 작성되었으며 사물은 그림으로, 숫자는 짧은 선이나 원의 반복으로, 고유명사는 수수께끼 풀이원칙, 즉 그림을 그것이 묘사하는 대상물이 아니라 통상적 발음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을 바탕으로 한 그림의 조합으로 표시했다(→ 수수께끼그림).

BC 2000년대에 그림은 점차 단순한 선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끝이 경사진 첨필로 말랑말랑한 점토판에 눌러 썼기 때문에 쐐기 모양[楔形]이 되었다. 이전 시기의 설형문자가 위에서 아래로, 즉 세로 형태로 씌어진 데 비해 이 시기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씌어졌으며, 설형문자 부호는 행 옆에 표시했다. 설형문자 쓰기법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과 때를 같이하여 설형문자는 메소포타미아에 침입한 셈족계 아카드인의 언어표기법으로 채택되었다(→ 아카드 문자). 최초의 아카드 설형문자 명문의 연대는 구(舊)아카드기, 즉 초기 아카드기(BC 2450~1850경)이며, 이 시기 동안 아카드의 위대한 지도자 사르곤의 명문이 작성되었다.

설형문자는 아카드어에서 기원한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방언의 기록에 계속 사용되었다. 설형문자는 엘람인·카시트인·페르시아인·미탄니인·후르리인이 차용했다. 후르리인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히타이트인에게 설형문자 체계를 물려주었다. 설형문자는 또 히타이트 지배지역에서 사용하던 언어(루비어·하티어)의 기록에도 사용되었다(→ 히타이트어).

BC 7~6세기에 아랍어가 근동의 표준어로 확산되면서 페니키아 문자가 점차 널리 사용되었고, 페르시아 제국의 성장과 더불어 중동의 정치적 독립이 상실됨에 따라 설형문자의 사용도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많은 학자나 보수적인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몇 세기 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설형문자로 씌어진 최후의 것으로 알려진 점토판의 연대는 AD 75년경이다.

최초로 해독된 설형문자 문서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들에 대한 3개 언어로 작성된 왕가문서 중 구페르시아에 대한 부분이다. 이들 명문은 엘람어와 아카드어로도 씌어졌는데, 엘람어는 아직도 완전히 해독·조사되지 않았으며 아카드어는 학자들이 셈계 언어임을 인지하자 곧 해독되었다. 아카드어의 해독으로 설형문자 체계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설형문자로 작성된 다른 언어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독립된 언어가 아닌, 아카드어를 특수한 방식으로 쓴 것으로 생각되었던 수메르어가 설형문자로 작성된 것 중 가장 늦게 해독된 언어에 속한다.

문자의 발달과 종류_상형문자

[레벨:17]강창석
그림문자의 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문자가 상형문자(象形文字)이다. 상형문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딴 문자'라는 뜻이며,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가 대표적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楔形文字) 이전의 문자와 중국의 漢字도 상형문자의 범주에 속한다.
hiero.jpg
▲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

히에로글리프는 그리스어 '히에로스'(성스러운)와 '글리페인'(조각하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히에로글리프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뜻하는 말인데, 유럽에서는 이 말을 상형문자 전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최초의 사용 예는 기원전 3100년 경이고, 최후의 것은 필레섬에서 발견된 서기 394년의 비문이다. 그 이후 히에로글리프는 그리스문자나 아라비아 문자에 밀려 사용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는 유물이나 유적 등에서 볼 수 있는 이상한 문자 정도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근세에 와서 히에로글리프의 해독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었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사건이 바로 로제타석의 발견이었다.

로제타석.jpg
▲ 로제타석(Rosetta stone)의 히에로글리프

로제타석이란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원정한 1799년 8월, 로제타(엘 라시드) 지역에서 발견한 돌이다. 가로 75㎝, 세로 114, 두께 약 28㎝ 크기의 현무암으로 윗부분과 다른 곳에 약간의 손상이 있는데, 이 돌에는 세 종류의 문자가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3종의 문자는 각각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민중문자 그리고 그리스문자로서, 1814년 이래 영국인 '토마스 안'이 해독에 착수했고,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의 노력에 힘입어 1822년에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완전히 해독되었다.
내용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기원전 197년, 멤피스의 프타하 신전에서 열렸던 신관회의에서 결정한 법령이었다. 이 돌은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